개인적인 발렌시아전 후기
바쁜 일정 때문에 빨리빨리 넘기면서 시청해서 좀 급하게 본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아쉬운 마음에 몇 자 적어봅니다.
1. 우리는 지난 두 경기와 같은 포맷을 들고 나왔습니다.
높은 위치에서부터 압박하고 3선 중심으로 점유를 하며 측면에서의 크로스로 결정짓는 방식을 이번 경기에도 들고 나왔는데 여전히 팀 전술의 큰 틀에서 말고 부분부분 세밀한 지점들에 대해 그리 약속된 게 많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운도 많이 따르지 않았고 심판 판정도 아쉬웠지만(발렌시아 쪽에서도 아쉬운 판정은 있었겠으나, 가뜩이나 스코어 밀리고 있는 팀 입장에서는 판정이 필요 이상으로 관대해서 상대가 적극적으로 파울을 활용하게 되면 더더욱 신경쓰이고 화날 일이지요), 기본적으로 우리 팀이 발렌시아를 파훼하기엔 짜임새 있는 움직임들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너무 이른 시간에 2실점을 했기 때문인지, 더불어 발렌시아의 전방압박이 거셌기 때문인지 후방에서 차근차근 올라오는 과정도 여유있지 못했습니다.
발렌시아의 강한 전방압박을 의식해서인지, 최근 2경기와는 달리 다시 예전처럼 크로스와 모드리치가 깊숙이 내려와 후방 빌드업에 관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카세미루가 정말 붕 떠 보이네요.
공격 전개 과정에서 주로 3선 이상의 높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상대의 거센 압박을 맞아 볼 전진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채로 어정쩡하게 앞에 있게 된 경우가 잦았습니다.
수비 시에는 여전히 공을 잘 빼앗았지만, 팀 차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을 갖고 슬금슬금 올라오는 상대의 3선 미드필더들을 적극적으로 마크 또는 압박하려다 우리팀의 두 센터백 바로 앞의 위험 지역에 넓은 공간을 허용했습니다.
때문에 그 빈 공간에 발렌시아가 공을 투입하는 시도를 많이 했고, 이미 올라가버린 카세미루를 대신하여 라모스나 바란이 공 받은 상대의 공격수 또는 2선 요원을 마크하러 앞으로 딸려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백포의 중앙에 큰 균열을 만들어내어서 발렌시아 선수들이 그 틈으로 마음껏 패스를 넣어줄 수 있었지요.
카세미루가 지금껏 그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수비해 줌으로써 재미본 적도 많지만, 오히려 오늘은 카세미루가 센터백들 앞에서 공간을 먹어주는, 기다리고 버티는 수비를 했다면 좀더 문전이 든든해지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아무래도 크로스를 많이 올린 것이 독이 된 이유 중 하나로 너무 잦은 크로스 위주의 기회창출로 인해 템포를 말아먹게 되었기 때문임을 들 수 있겠지요.
허나 한편으로는 경기 초반을 아프게 넘기고서, 중반에 우리 팀이 잠시 공을 갖고 템포를 죽이고 상대를 요리조리 두드려 보았음에도 도통 꿈쩍이질 않아주는 발렌시아의 수비로 인해 탐색전에서 그리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크로스를 올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답답하던 차에 영점이 제대로 맞은 마르셀로의 크로스를 호날두가 잘 마무리해준 것을 보고 다시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것인가 했는데, 오히려 후반에는 더더욱 답답해졌네요.
리그 1위를 안정적으로 굳힐 기회였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반면 발렌시아는 두줄 수비 후 잘 짜여진 역습이 제대로 주효했습니다.
특히 경기 극초반 아직 우리팀 선수들이 채 집중력을 끌어올리기도 전에 발렌시아의 약속된 듯한 깔끔하고 시원시원한 플레이+결정적 찬스에서 공격수의 재치 한방을 통해서 연거푸 2골을 내어준 것은 너무 뼈아팠습니다.
첫 골은 자자가 너무 잘했어요.
바란이 마크 붙었는데 거기서 그렇게 할 줄이야 ㅋㅋㅋ
반면 둘째 골은 바란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높은 위치에서 터치를 미스내어 질 나쁜 패스를 했고, 여지없이 실점으로 응징당했습니다 ㅠ
그래도 이번 시즌 동안 오늘 빼고는 여태 쭉 잘해주었으니, 다음에 복귀하고서는 보다 좋은 폼으로 나와서 집중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나바스 역시 둘째 골 장면에서는 많이 아쉽네요. 원래 저런 것 잘 막아주었는데...
그래도 이후 파레호의 날카로운 프리킥을 막아준 것과 위기 때마다 적절히 나와주어 커버해준 것은 좋았다고 봅니다.
또한 라모스 옆에 생긴 거대한 빈틈을 아무도 메꿔주려 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고 봅니다.
발빠른 바란이 뒤늦게나마 뛰어왔지만 이미 공은 골문을 향해 날아갔지요.
우리가 공격을 할 때에는 발렌시아가 버스 두 대 세워놓고 내려앉아버리니 우리 2선 지역이 6~8명에게 둘러싸여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그 지역에 공을 투입해야만 더 좋은 기회들을 모색할 수 있기에 최전방 요원들이 내려오든 모드리치가 들어가주든 했는데, 너무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공을 빠르게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덕분에 2선을 기점으로 슈팅 기회를 만들어내는 플레이를 성공시키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두줄 수비 바깥인 3선에서 전방을 향해 스루패스를 넣어주는 선택지는 상대의 수비 간격이 촘촘해서 마찬가지로 확실하지 않은 방법이었고, 뒷문을 따는 찍어올리는 패스 역시 발렌시아의 수비라인이 내려앉아 있어서 성공하기 어려웠다고 봅니다.
안 그래도 크로스 올리는 걸 너무너무 좋아하는 지단호인데 상황마저 이러니 더더욱 크로스에 의존하게 된 것 같아요.
또 크로스를 많이 올리면 코너킥을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구요. 우리 팀은 세트 피스에서의 득점이 워낙 출중하니까요.
호날두, 벤제마, 하메스 3톱이 활발하게 2선의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움직여주었으나 최전방 선수 하나의 움직임으로 파생된 공간을 다른 선수들이 바로바로 활용해주는 게 여전히 잘 안 되네요.
이런 장면들에서 아직도 우리팀의 공격 부분전술이 없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계획된 대로 한꺼번에 움직여야 하는데, 하나하나 움직여서 따로따로 노는 느낌이랄까요.
더불어 발렌시아 선수들이 수비 때 뭔가 엄청 결연해서, 우리팀 선수들의 더미 플레이에 그렇게 끌려다니지도 않았고요.
자신들이 먼저 잡은 좋은 자리들을 우리에게 여간 내어주지 않고서 공이 지나가고 우리 선수들이 자리잡을 공간들을 잘 차단했습니다. 마치 무리뉴 시절 우리팀을 보는 듯했어요.
오늘 경기에선 우리팀 선수들이 올리는 크로스들의 질도 여느 때와 같지 않았을 뿐더러, 발렌시아 수비들도 측면에서 우리 선수들이 공 차려는 모션을 취하면 아예 다 박스 안으로 들어와 버리더군요.
공격 시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활용해서 상대 수비들이 대놓고 박스 안에 밀집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크로스의 성공률도 더욱 높아질 텐데요.
공격 전개의 다양성은 꼭 개선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3. BBC의 폼 자체는 최악까지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물론 예전 벤제마-호날두 연계랑 베일의 한방 본능으로 경기당 3골 이상씩을 넣으며 여러 팀들을 탈탈 털어먹던 그 시절보다야 못하지만 적어도 오늘 경기에서는 각자 1인분씩은 해주었다고 봅니다.
최근 경기력이 오르고 있는 데다 오늘 골까지 넣은 호날두는 물론이고, 교체되어 들어오자마자 우측면 휘저어주고 예리한 킥 몇번 보여준 베일도 뛴 시간에 비해 아주 형편없던 건 아니었습니다.
특히 벤제마는 확실히 몸이 가벼워졌는지 오늘 2선과 측면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여주며 수비진에 작지만 여러 차례 균열들을 만들어주고, 간결한 터치와 적절한 드리블로 전방에서 공이 잘 움직이도록 해주었습니다.
허나 공격수들이 아무리 전술적으로 1인분씩 한다고 해도 결국은 골을 넣어야 정말 잘한 것인데, 그런 점에서는 벤제마가 아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두줄 수비를 지키면서도 우리 최전방 선수들과 공 없이 침투하는 선수들에 대해서는 대인마크를 여간해선 놓치지 않았던 발렌시아 선수들의 집중력도 뛰어났지만, 우리 선수들 간의 사인도 잘 맞지 않았는지 적절한 오프더볼 움직임을 활용한 유기적인 플레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하메스가 나가고 베일이 들어오니 벤제마는 가뜩이나 좁은 2선 구역에서 함께 연계해줄 사람이 줄어서인지, 그리고 갓 투입되어온 베일의 침투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서인지 점점 아래가 아닌 우측면으로 크게 움직임을 벌려주었습니다.
덕분에 망갈라가 여러 차례 우측면으로 강제 소환되었는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카르바할이나 베일을 발렌시아 선수들이 잘 붙잡아서 끝내 유의미한 찬스가 만들어지지 못했네요 ㅠ
아무래도 오늘 호날두의 헤딩 영점이 살아있음이 전반 끝날 즈음의 득점으로 증명되었기에, 우측면을 흔듦으로써 호날두를 위한 기회를 만들어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허나 우측면 페너트레이션은 끝내 개인돌파 말고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4. 하메스의 폼이 점점 올라오고 있습니다.
오늘의 패배는 너무 뼈아프지만 그래도 한 가지 긍정적인 면을 찾자면 최근 하메스의 폼이 돌아오고 있던 흐름이 오늘까지도 이어진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우측면 최전방과 중앙 2선 3선을 왔다갔다 해주며 벤제마와 함께 작게나마 틈을 만들고 상대 수비를 움직이게 해주었습니다.
또 번뜩이는 패스 능력도 한 차례 과시했구요.
다만 모드리치, 카세미루와 함께 셋이서 동선이 좀 안 맞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카세미루는 오늘 높은 위치에서 자리잡는게 애매한 때가 많았는데요.
크로스나 모드리치가 공을 잡았을 때에 '저거 카세미루가 옆에 딱 붙어있지 않았으면 곧바로 측면으로 벌려줄 수 있었는데!!' 싶은 장면들이 있었어요.
또한 하메스가 전방에 머물다 내려오면서 모드리치와 자리가 겹치는 순간들이 이른 시간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경기 초반에 모드리치가 좀 붕 떠 보이다가 모드리치가 우측면 근처가 아닌 경기장 중앙 쪽으로 이동하면서 어찌저찌 동선이 덜 꼬이게 되기는 했습니다.
이렇게 동선이 겹치다보니 하메스-모드리치-카르바할의 연계가 지난 나폴리 전에서만큼 효과적이란 느낌은 잘 받지 못했어요.
오늘은 하메스가 내려오면서 생긴 전방의 자그마한 공간을 카르바할이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려는 느낌이었는데, 그런 카르바할의 움직임에 대한 패스 투입은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한편 베일이 들어오고서는 너무 우측면의 두 선수끼리 자체적으로 풀어가는 느낌이어서 버겁고 답답해 보였습니다.
둘의 기량이 워낙 출중하다 보니 어떻게 크로스를 올릴 각은 꾸준히 나왔지만요.
이후, 심지어 모드리치마저 바스케스로 바꾸면서 중원에서 베일과 카르바할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했어요.
벤제마가 우측면으로 빠지면서 거들어주러 왔지만 상대 수비들이 빈 공간을 바로바로 메꾸어서 큰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자자가 빠지고 마리오 수아레스까지 들어오면서 9백을 세워버리니... 그 때에는 중원마저 정말 답답해졌죠.
5. 개인적으로 교체카드 활용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어차피 무한 크로스 올려서 헤딩을 할거면 차라리 바스케스 말고 모라타를 넣었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ㅠㅠ 아님 이스코 투입해서 두줄 수비 사이의 공간을 활용하든가...
이렇게 낮은 위치에서 쫀득쫀득한 버스 수비를 하는 팀에게는 헤딩을 잘 따줄 공격수들을 넣어서 주구장창 크로스를 올리든가 아니면 개인전술이나 재치 있는 부분전술로 좁은 공간에서도 파괴적인 면모를 보일 수 있는 테크니션들을 기용하든가 하는 식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보는데, 어차피 크로스 올려서 헤딩 시킬 거면 바스케스보다 모라타가 더 나았을 것 같아요 ㅠㅠ
혹 바스케스 투입이 어떤 의도였을지 짐작되시는 분들께서는 댓글로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에고 조금 쓴다는 게 ㅠㅠ
무튼 다음 경기는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올해는 리가 우승하길!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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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REDIBALE 2017.02.23저도 모라타를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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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꿈나무 2017.02.23하이라이트만 봤는데, 수비는 아쉬웟지만 공격은 경이로울 정도였는데ㅠ 다음 경기 기대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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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 2017.02.23잘 봤습니다. 3미들의 동선이 여간 맘에 들지 않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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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ul 2017.02.26좋은 글 감사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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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나갱 2017.02.2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바스케스의 투입 이유는 정말 수비기여+드리블+크로스였겠군요. 이 글 쓸 때에는 기억이 덜 났는데 바스케스가 들어오고서 베일이 점차 중앙 지역으로 옮겨갔던 것 같습니다.
음... 말씀하신 대로 선수단과 주장단뿐만 아니라 지단 감독 역시 평정심을 잃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아무리 강팀 축구여도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구성원, 특히 감독과 주장단이 흔들리면 경기 내적으로 규율을 잃는 모습이 나오기 마련이지요.
그 혼란스러움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토니와 마르셀로가 조급해 보였던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뭐라도 해보려고 토니는 평소에 많이 하지는 않던 포풍드리블을 시전하고, 마르셀로 역시 계속 크로스 올리려고 하는데 그것들마저 잘 안 됐죠.
모라타도 뵨자마님 말씀 듣고 보니 박스 안에 십여 명이 밀집한 상황에서 정말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싶긴 합니다. 몸끼리 부대끼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것 같고 확실히 신체 균형은 우수한 편이 아니니까요.
모쪼록 피드백 잘 해서 다음 리그 경기는 확실히 잡아주길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