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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타페화요일 5시

어마무시한 네덜란드 공격수 계보

아름 2016.12.08 11:59 조회 6,205












요한 크루이프

국가대표 48경기 33골



완벽한 재능과 운동능력, 피지컬을 바탕으로 70년대 네덜란드를 이끌었다

리누스 미헬스 감독이 고안한 토탈 풋볼의 개념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그의 단짝 요한 네스켄스와 함께 아약스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달성했으며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그의 조국을 결승 무대로 이끌었다.


이때 아약스와 네덜란드 대표팀의 토탈 풋볼은 전 세계 축구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꾼 계기가 되었고, 아리고 사키의 밀란부터 펩의 바르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현대 축구 기본 전술의 토대가 되었다.
















루드 굴리트

국가대표 66경기 17골



최전방 스트라이커부터 센터백까지,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지능적이었던 그는 190cm에 달하는 큰 키와

100m를 10초대에 주파하는 엄청난 운동능력을 지닌 괴물이었다.

더하여 수리남계 아버지로부터 받은 탄력적인 신체와 완벽한 볼컨트롤을

구사한 그는 1988년 유로 대회에서 앞서 서술한 요한 크루이프의 역할을

완벽히 재현해냈고, 당당히 조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90년 월드컵에선 그 유명한 레이카르트-푈러간 충돌로 인해

네덜란드는 16강에서 탈락했고, 94년 월드컵에선 감독과 불화로 인하여

출전이 무산되었지만, 네덜란드 역사에 손꼽을만한 선수인건 변함이 없다.












마르코 반 바스텐

국가대표 58경기 24골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스트라이커 중 하나였던 그는

안드리 셰브첸코 이전의 무결점 스트라이커였으며 교과서라고 불렸다.


역사상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슈팅 능력을 지녔고, 큰 키를 이용한 공중전에도

능했으며, 동료들과 연계플레이도 최상급이었고, 심지어 필요할때는

한두명을 제낄 수 있는 드리블 능력까지 보유했다.


그의 친정팀 아약스에서 17세부터 23세까지 6시즌간 보여준 133경기 128골은

지금봐도 경악할만한 기록이다. 하지만 부상은 커리어 내내 발목을 잡았고,

28살이라는 다른 선수들이라면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에 은퇴를 결심하게된다.


그가 짧은 보여준 짧은 시간동안 6번의 리그 득점왕, 1988년 유로 대회 우승

그리고 3번의 발롱도르 수상은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만 하다.













데니스 베르캄프

국가대표 79경기 37골




비행기를 타지 못해 생긴 별명인 논 플라잉 더치맨으로 유명한 그는

델 피에로, 라울 곤잘레스와 함께 쉐도우 스트라이커의 교과서로 불렸다.


세계 최고의 볼 컨트롤과 트래핑 능력을 바탕으로 직접 득점을 하기보단

동료들을 뒤에서 지원해주는 역할에 능했고, 그가 최전성기를 지낸

아스날 FC에선 영혼의 짝궁 티에리 앙리와 함께 지금까지도 화자되는

03-04시즌 프리미어 리그 무패우승을 일구어낸 주역이었다.


하지만 국가대표에선 불운했다.

94년, 98년 월드컵에서 연속으로 브라질을 만나 패배했으며

유로 2000 대회에서도 이탈리아를 만나 끝내 승부차기끝에 패배했다.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국가대표 79경기 40골



명문팀 아약으 유스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밀란 제너레이션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며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네덜란드인답게 188의 큰 키를 가지고있었던 그는

엄청난 헤딩 능력을 가진 타켓형 스트라이커였다.


반 바스텐이 부상으로 일찍 은퇴한 AC밀란에 그의 후계자로 입단하게 되나,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여 기량을 만개한다.

히바우두, 클루이베르트, 피구 라는 최고의 공격편대를 바탕으로 바르셀로나는

1차례의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클루이베르트 또한 182경기 90골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며 승승장구했다.


국가대표에서 활약 또한 대단했다.

로빈 반 페르시 이전 네덜란드 A매치 최다골 기록자였으며

유로 2000에서 득점왕까지 차지했다.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성공을 맛본탓일까, 바르셀로나 시절 이후

기량이 눈에 띄게 하락하여 여러 팀을 전전하다가 조용히 은퇴하게된다.















루드 반 니스텔루이

국가대표 70경기 35골



패트릭 클루이베르트와 생년월일이 같은 그는

라이벌 클루이베르트가 승승장구하던 시절 2부리그에서

그것도 모자란 득점 능력을 보여주며 잊혀지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성장했고, 마찬가지로 큰 키를 바탕으로

박스 안에서 어떻게든 골을 집어 넣는데 능한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결국엔 명문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을 하며,

그리고 득점왕을 차지하며 클루이베르트를 넘어섰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클루이베르트를 상대로 주전 자리를 따 내었으며,

후에 명문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이적한 시즌에 득점왕,

3개 리그 득점왕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작성했다.













로빈 반 페르시

국가대표 101경기 51골



네덜란드 A매치 최다 득점자


많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2번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른 그는

간결한 퍼스트터치와 무시무시한 왼발 슈팅을 지닌 당대 최고의 공격수였다.


8년간 아스날에 몸담은 그는 부상으로 인하여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으나,

11-12시즌 기량이 만개하여 30골 13어시스트라는 대기록을 작성한다.


더하여 11년도엔 앨런 시어러 36골에 이은 단일 년도 최다골 2위(35골)에

랭크될만큼 득점능력만큼은 남부럽지 않았다.


이듬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둥지를 옮긴 그는 마찬가지로

엄청난 활약을 펼쳐 알렉스 퍼거슨경에게 리그 우승을 선물한다.


2014년 월드컵에도 출전한 그는 조국을 월드컵 3위라는 성적을 거두었는데

조별리그 스페인전에서 카시야스를 상대로 매우 아름다운 골도 기록하였다.













아르연 로번

국가대표 89경기 31골



반 페르시와 마찬가지로 유리몸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그의 스피드는 국가대표 선배 오베르마스를 떠올리게 한다.


현재 가장 빠른 축구선수중 하나로써 12-13시즌 바이에른 역사상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국가대표에서 그는 아쉬움을 남겼다.

2010 월드컵에서는 베슬리 스네이더와 함께 조국을 결승으로 이끌지만

결승전에서 상대 골키퍼 카시야스의 맹활약 속에 준우승에 머물렀고,

2014 월드컵에선 그야말로 하드 캐리를 하며 팀을 4강으로 이끌었지만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여 3위에 머무른다.














멤피스 데파이

국가대표 27경기 5골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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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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