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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크루이프: 왜 이 네덜란드의 인물이 위대한가?

야누자이 2016.05.06 18:23 조회 4,336 추천 3

Johan Cruyff


그가 감독으로서 팀을 지도했던 적은 20여 년 전이다.

그가 선수로서 노발대발하며 경기를 뛴 것도 30여 년 전이다.

아마 당신은 요한을 오버롤 94의 작살나는 스텟을 가진 FIFA Ultimate Team의 일원으로 봤을 뿐일 거다.

그렇다면 요한 크루이프를 두고 왜 이렇게 야단법석인가?


바로 그 턴

Johan Cruyff playing in the 1974 World Cup

1974년 월드컵 준결승전 뱀 같은 스윙동작으로 아르헨티나의 수비진의 넋을 빼놓는 크루이프

크루이프 이전의 선수들은 실낱 같은 희망만을 안고 단지 상대방을 향해 직선주파를 보여줄 뿐이었다. 뭐, 바람직하지 않았다.

하지만 1974년 월드컵에서 이 더치맨이 스웨덴의 얀 올손을 마감시간을 차마 믿지 못하는 주정뱅이처럼 만들었을 때, 그 누구도 그런 플레이를 보지 못했었다. 어깨를 낮추고, 페이크패스, 인스텝으로 툭 치고 홱 돌려 나간다.

글로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디오를 본다면, 당신은 즉시 수긍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크루이프 턴'은 이제 모든 축구판의 기교쟁이들의 교과서가 되었고, 이 모든 것은 바로 이 남자로부터 시작되었다.


토탈 풋볼

Netherlands returns home after the 1974 World Cup

1974년 월드컵 결승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환영인파로 가득찬 네덜란드 선수단 개선 행렬

어느 위치에서 플레이하는가?

아주 쉬운 질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1974년 월드컵 네덜란드 스쿼드의 일원이라면 딱 잘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렌지 군단은 끊임없이 전방을 박살내고 뒷공간을 커버하며, 무한 스위칭 윙플레이와 포지션 스왑을 보였고 이를 통해 공간을 창출하고 대혼란을 야기했다.

당신의 선수들과 붙어 있다고? 행운을 빈다.


요한이 없으면, 리오넬도 없다?

Barcelona's fabled La Masia academy

바르셀로나의 라마시아 아카데미

네덜란드의 아약스에서 모든 것을 이룬 뒤 크루이프는 £922,000라는 월드 레코드 이적료를 기록하며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그 두 배를 쳐줬어도 거저다.

그는 누 캄프의 선수로서 하나의 라 리가 우승 타이틀을 차지했다.

Johan Cruyff poses with a Barcelona dream team

요한 크루이프가 그의 드림팀 쾨만, 스토이치코프, 라우드롭 등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감독으로 다시 돌아와 네 개의 리그 타이틀을 더 획득하게 된다. 하나의 유러피언컵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그의 위대한 유산은 단지 트로피 캐비닛 따위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라 마시아다. 크루이프가 책임자가 되기 이전 바르셀로나 유스 아카데미는 스트렝스와 피트니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의 중심에 볼을 놓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리오넬 메시, 안드레 이니에스타, 그리고 사비를 필두로 '작지만 아름다운 세대'가 세상에 나타났다.

펩 과르디올라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한 크루이프가 성전의 기틀을 닦았죠. 바르셀로나 감독들은 그 이후로 단지 채우고 재생산할 뿐입니다."


패널티

지난 달, 바르셀로나의 패널티킥은 축구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셀타 비고를 상대로 6-1로 승리한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는 킥하지 않고 태연하게 공을 옆으로 굴려 팀동료 루이스 수아레즈가 때려 넣게 했다. 원조냐고? 아니다. 크루이프 플레이북의 리프다.

1982년 아약스 시절 크루이프와 그의 동료 Jesper Olsen이 똑같은 모습을 보인 적 있다. 그것도 더 훌륭하게. 크루이프가 공을 굴리자 Olsen은 골키퍼의 이목을 끈 뒤 다시 원래의 패널티키커에게 공을 건넸고, 키커는 유유히 빈 골대에 공을 차 넣었다.

메시와 수아레즈는 그들의 퍼포먼스를 크루이프에게 헌사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름과 넘버

데이비드 베컴이 마이클 조던의 백넘버 23번을 따라하기 전에, 마리오 발로텔리가 9번의 상징으로 45번(4+5=9)을 사용하기 전에 요한 크루이프는 기존 11번의 틀을 깼던 첫 슈퍼스타였다. 아약스의 이 더치맨이 14번을 달게 된 것은 순전히 라이벌 PSV 아인트호벤을 상대로 한 승리 이후부터였다. 그는 국제대회에서 알파벳순서에 따라 1번을 달아야할 경우에도 14번을 달 수 있도록 허가 받았다. (기사 내 링크에 따르면 원래 크루이프는 9번이었는데, 경기 전 팀동료 Muhren이 7번 셔츠를 찾지 못하자 자신의 9번 셔츠를 건넸고, 옆에 있던 14번 셔츠를 들고 경기에 들어섰다고 함 / 리누스 미헬스의 네덜란드 스쿼드는 이름순으로 번호 배정했는데 그것에 따르면 요한 크루이프는 1번이었으나 14번을 달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고 함)

크루이프의 죽음 이후 증권거래소 업자들은 그의 전소속 클럽 아약스의 14주를 사들이며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이런 헌사에 아약스 주가는 4% 상승하기도 했다.

Jordi Cruyff

그리고 이런 셔츠 장난질은 크루이프 시니어에서 그치지 않았다. 현재 이스라엘 클럽 마카비 텔 아비브의 스포츠디렉터 자리에 있는 요한의 아들은 크루이프라는 이름의 부담감 때문에 그의 등판에 크루이프 대신 Jordi를 새겼다. 1996년 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을 당시,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처음으로 등에 성이 아닌 다른 글귀를 새길 수 있도록 허가 받은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출처 BBC 풋볼

http://www.bbc.com/sport/football/35893452



크루이프 사망 이후 헌정기사로 나온 기사입니다(3/24).

바르까 레전드 찬양 일색이라 거북할 수도 있겠지만(저는 조금 거북..), 크루이프라는 존재만큼은 정말 부럽네요. 크루이프즘의 전성시대를 똑똑히 목격하고 있는 세대로서, 세계를 지배하는 축구철학의 대들보가 자신의 팀 레전드라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요?

물론 펩의 축구가 챔스에서 무너졌고 티키타카도 다소 힘이 빠지면서 무적의 만능전술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며, 크루이프즘도 길게 보면 리누 미헬스의 축구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온전히 바르까의 업적이라 볼 수는 없겠죠. 그래도 전술적으로 정체성이 뚜렷하다는 건 대단한 것 같아요. 멋있기도 하고.

그래서 전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 지네딘 지단이 감독으로서도 큰 족적을 남긴 크루이프 같은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더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안첼로티 축구의 계승자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언젠가는 지단의 축구가 유럽을 지배하길 바랍니다. 이미 크루이프 헌정 경기에서 bbc와 함께 시원하게 분탕질 치고 왔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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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7

arrow_upward 지난 4년간 발렌시아와의 홈경기 결과입니다. arrow_downward 요즘은 오른쪽에서 골이 많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