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라파 마드리드의 처녀항해
드디어 데뷔했다.




라파 베니테스 호의 출발은 애당초 시작부터 삐걱거리며 여러 잡음을 냈다. 레알 마드리드-특히 페레스 회장 시절에-감독 경질은 큰 명분 없이도 실시되어왔고 그 후임들이 항상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아니다. 라파의 부임에 몸서리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실 그것은 라파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라기보다는 안첼로티의 경질과 안첼로티의 대체자가 라파라는 점에 대한 반대였다고 볼 수 있다.
프리시즌동안도 삐걱거렸다. 영입도 방출도 거기에 재계약도 잡음이 많았다. 이게 전부 라파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워낙 이해관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프리시즌 막판부터 개막전까지 가장 큰 삐걱거림은 바로 베일이다. '베일의 전술적 활용을 할 줄 아는 것이냐?'에 대해서 질문한다면 나는 욕을 엄청 먹을 것이다. 유럽 유수의 구단과 챔피언스 리그까지 들어올린 감독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라는 말과 함께이다. 난 아마추어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들보다 부정확하게 본다고 할 수는 없다-예술의 비평가들이 예술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비평을 하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일전에도 썼지만, 베일의 활약 저하는 공간에 크게 기인한다. 오른쪽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도 단순히 왼발잡이라서가 아니라 왼발잡이이기 때문에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폭이 오른쪽에서는 제한되기 때문이다-이는 디 마리아도 경험했다.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맞불을 놓을 수 있는 구단은 사실 많지 않고 다수의 구단들이 수비적인 대응으로 경기를 풀어나간다. 이런 일련의 이유 때문에 베일은 분단으로 달릴 수 없는 철마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라파는 호날두보다 베일에게 먼저 갔다
베일이라는 선수를 조련하는 것이 빠르고 효율적일까 아니면 그에게 맞는 자리와 전술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빠르고 효율적일까? 베일이 어리다는 점은 동의한다. 그래서 변화할 수 있다는 점도 어느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베일은 이미 토튼햄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성공을 경험했고 그 성공이 그를 레알 마드리드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그의 성공은 작은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말은 즉슨, 성공의 크기가 클 수록 단단하고 그것을 쉽게 변화시키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베니테스가 몇 년이나 레알 마드리드에서 안정적으로 감독직을 수행할 수 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렇다면 베일 입장에서 불확실한 베니테스를 믿고 그가 원하는데로 크게 변할 필요가 있을까? 라파 입장에서도 그를 변화시키는데 큰 노력과 시간이 든다는 점과 자신의 계약 연명을 위해서는 가시적 성과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베일을 탈바꿈 시킨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EPL Reunion
좁은 공간에서의 섬세한 볼터치나 키핑 그리고 창조적인 패스는 그냥 조련으로만 쉽게 되는 것도 아니거니와 짧은 기간에 그것을 이루어내기란 더더욱 불가능에 가깝다. 그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시켜주는 것이 낫다. 모두에게 말이다. 베일이란 선수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메디아푼타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라파가 그를 메디아푼타에 기용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는 주장에 일부 동의한다. 다만, 이는 스페인과 레알 마드리드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라파 마드리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문제일 정도로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시작부터 완벽했던 시즌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문제가 성장통인지 아니면 그냥 통증인지는 절대로 지금 판단할 수가 없다. 과정에 의해서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결과에 의해 과정이 미화되고 재구성될 수 있는 것도 가능하다. 축구와 같이, 특히 레알 마드리드와 같이 성적에 민감한 구단들은 후자를 우선시 한다. 그러고 우승을 한 뒤에는 전자를 중요시한다. 즉, 모든 것을 중요시한다.
잉글랜드에서 스페인 선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치는 이유는 단순하다. 부드러운 볼키핑과 패스 이 두 가지를 중시하는 스페인 축구의 핵심이 잉글랜드의 핵심과 다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베일의 메디아푼타는 잉글랜드에 어울리는 것이지 스페인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토튼햄과 웨일즈와는 다르게 레알 마드리드에는 같은 자리에서 그보다 나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들이 충분히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미는 것은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정말 페레스의 외압이 있다면 이해는 된다.
레알 마드리드가 리그 개막전에서 압도적인 결과를 낸 적은 사실 지난 10년간 손의 꼽을 정도로 적다. 0-0 무승부를 거둔 카펠로 마드리드의 리그 개막전이 생각난다. 비야레알과의 경기에서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카펠로를 물어뜯고 싶어했던 언론은 아닐까 다를까 열심히 카펠로를 난도질했다. 그렇지만 카펠로는 우승을 했다.
나도 답답해요.
나는 아마 레알 마드리드가 치룬 개막전의 10%정도를 봤을텐데 내게 있어 리그 개막전은 기대에 못미치는 경기로 일관되게 인식이 되어왔고 이번도 다를 것이 없다. 카펠로 마드리드 시절은 유독 더 실망감이 컸는데 극적인 서사를 가지고 우승하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에 쉽게 라파 마드리드에 대해서 예단할 수가 없다. 특히 1경기 보고 잘못 뽑았니 별로니 원래 저렇니 하기에는 무리가 크다.
만약 리그가 개막전 한 경기로 시작되어 그 경기의 종료가 리그의 종료를 의미한다면 이러한 비판은 백번 옳다. 우리 모두가 알듯, 리그는 이제 시작했을 뿐이다. 근데 끝난 것처럼 비판을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남았다-지난 시즌, 바르셀로나의 루이스 엔리케도 초반에 여러 구설에 올랐지만 결국 트레블이라는 금자탑을 이룩했다.
냄비와 같은 모습은 지금 나올 때가 아니다. 지단도 레알 마드리드 이적하고 윈터브레이크 직전까지 별로였다. 냄비의 모습은 적어도 윈터브레이크쯤 나오는 게 맞다. 기업은 분기별로 스스로를 평가하는데 축구에서는 전반기 후반기로 나누어서 평가할 수 있는 기간이 뚜렷하게 보인다. 최소 12월까지만 기다려보자. 어차피 우리가 열불내도 페레스가 안짜르면 라파는 안나간다. 열은 고혈압에도 안 좋다는데 지금은 아껴두고 추운 겨울에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 어떨까?
라파는 여느 감독들과 다르지 않다. 자신만의 철학이 확고하고 고집도 있다. 사실 역사 속에 선수들과 전설적인 팀들은 성적으로 우리에게 그 모습을 각인하지 경기력을 각인시키지는 않는다. 우리가 그들의 모습을 보기도 힘들거니와 당시의 그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단순한 수치인 통계에 의존해서 그들을 평가한다. 그렇지만 우승은 경기력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통계에 의해서 정해진다. 혹시 착각할까 이런 말을 꼭 붙이고 싶다. 나는 단 5분이라도 아름다운 축구를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고 싶지 5득점을 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감독이라는 직업에는 고집쟁이들이 많다
카펠로가 그랬듯, 라파도 재미없게 우승할 수 있다. 우승이 먼저일까? 경기력 혹은 아름다움이 먼저일까? 양자를 택일해야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고를 것인가? 이점을 생각하고 라파 마드리드의 첫 출발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정해보는 것은 어떨까? 콜롬버스처럼 서쪽으로 가면 인도가 있다고 하며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을 라파 마드리드에게 기대해볼 수 있을까? 적어도 2000년대초부터 레알 마드리드 팬이었다면-룩셈부르고의 노윙 전술, 슈스터의 변태 전술, 케이로스의 '?' 전술, 카펠로의 무조건 수비 전술을 다 경험해본 우리라면-이 정도 실험에서는 덤덤하지 않을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은 구단은 이런 경험이 없어서 지금 팬들도 힘들어하는 것 아닌가. 우린 단련되었다. 변화와 실험에.
쓰고보니 갑자기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저 배가 어떤 결과물을 가지고 돌아올지만 기다리는 우리는 항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답답함과 기대감이 있을테고 동시에 복귀한 배를 보며 환호나 실망과 분노 둘 중에 하나를 또 경험해야할테지.
댓글 14
-
DavidGandy 2015.08.25전술시험은 그래도 ㅠㅅㅠ
작년의 안첼로티가 갑작스레 경질당해서 독이든 성배느낌이 더 부각된거같긴하네요 -
파타 2015.08.25동감합니다. 물론 이미 불만에서 시작된 선택에서 조금의 서둔결과도 용납할 수 없는 부분도 이해는 합니다만... 도를 지나쳐버리면 결국은 비아냥과 비난뿐인거죠.
-
모첸 2015.08.25공감합니다. 아직 이적시장조차 닫히지 않은 상황이니만큼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불과 얼마전 안첼로티시절만해도 소시에다드전에서 4대2로 참패당한 이후 22연승의 쾌거를 보여주기도 했죠. 지금은 무작정 비난보다는, 이 경기를 통해 더욱 발전된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비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발 베일좀 어떻게좀..... -
날두의 호우주의보 2015.08.25동감합니다.. 너무 쉽게 비난일색은 조금 안타까워 보입니다.
그나저나 카펠로 때 우승은 정말 잊혀지지않네요 ㅎㅎ 영화로 만들어도 될정도의 스토리가 많았던 시즌 ㅋㅋ 최종전때 새벽에 소리지르다가 무슨일 난줄알고 부모님이 제방으로 뛰어오셨던..ㅎㅎ -
호렌지캬라멜 2015.08.25ㅊㅊ
-
KB9 2015.08.25아직 이렇다저렇다하기엔 섣부르다는걸 머리론 잘 알지만... 가슴속에 안감독님에 대한 애정이 너무 컷기에 괜히 더 못미덥고 못마땅한것 같아요.... ㅠㅠ 그저 앞으로 잘해주길, 불화없길 바라는 수 밖에... 흑흑
-
subdirectory_arrow_right Always 2015.08.25@KB9 2222
-
미첼 2015.08.25글 잘 읽고 갑니다~
전 베니테스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 우승보다 더 바라는 것은
선수단과의 관계이기 때문에 평가는 나중에~~~하렵니다.
부디 불화없이 팀을 이끌어가기를...
PS. 안감독님 ㅜ_ㅜ -
Cristian_O 2015.08.25잘 읽었습니다!!
-
러브리레알 2015.08.25좋은글 이네요 베감독도 분명 먼가잇으니 우리팀에서 러브콜한거겟죠 안감독의 마법처럼 우리에게 행복한 시즌을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
라울™ 2015.08.25개막 경기로 시즌 전체를 재단하는 것은 물론 우매한 일이죠. 다만 라리가에서의 성공 이후 오랜 시간을 거의 실패만 맛본 감독이기에 루머가 날때부터 반대를 했고, 개인적으로 이번 시즌은 성적, 재미, 현상유지 그 어떤 부분에서도 베니테즈에게 기대가 되는 부분이 없네요.
-
덕후축덕 2015.08.25실전에서 시험하는건 뭐 감독 권리이니 이해를 합니다만
하아 기대가 안되는건 사실입니다. -
안감독님 2015.08.25작년 윈터까지는 마드리드가 트레블이고 바르셀로나는 무관분위기였는데..............................................................................
-
Raul 2015.08.27잘 읽고 갑니다. 시즌 초니까 삐걱대는건 이해하는데 리가 특성상 경기력이 안 좋아도 꾸역승 거뒀으면 참 좋았을텐데 그게 너무 아쉽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