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시간이 없는 이케르, 시간이 남은 페레스
이케르가 떠났다.
잡음 속에 결국 떠났다.
이미 십대로 레알 마드리드 1군에 입성했고 약관의 나이에 세계적인 구단의 주전 수문장으로 발돋움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대표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커리어 상으로 견줄만한 선수들이 역사적으로도 많지 않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산 이케르'였고 '검은 양'사건의 주인공이었다. 빛과 그림자가 철저하게 이케르에게도 있었다. 확실한 건 그가 레알 마드리드의 몇 안되는 살아있는 역사라는 점과 개인적인 처신을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실력이 저하되어왔다는 점이다.
사실 약 15년간 그의 모습을 봐온 나로는 그와의 작별이 실감하기 어려운 것이다.
실력의 문제, 개인 처신의 문제, 구단의 문제 모두를 차치하고 레알 마드리드 수문장은 이케르 라는 익숙한 공식이 무너지게 되었다는 점은 아무래도 실감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나는 카시야스를 지지해왔다. 그렇지만 실력에 따라 떠날 수도 있는 프로의 세계의 법칙을 이해해왔고 또 그것을 당연히 받아드려왔다. 그리고 주장으로 주변을 제대로 통제 못한 그의 대처는 실망감을 주었다.
그렇지만 단 한번도 그가 초라하게 떠나야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고별식을 통해 이케르는 페레스와 함께했다.
이전에 포르투 이적을 위한 기자회견을 했을 때, 많은 언론들이 홀로 있는 그에 대해서 안쓰러워했고 페레스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높였다. 원래 레알 마드리드와 같은 대형 구단들은 언론의 좋은 기삿감이고 많은 기삿거리들을 생산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는 없고 실제로 그들의 말을 100% 신뢰한 적도 없었다.
원래 지난 주 금요일에 고별식을 준비했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금요일까지 이케르의 포르투 행은 확정 상태가 아니었다. 행사 일정이 급변했으니 어제 있었던 고별식이 약식인 것에 대해서도 이해는 된다.
레알 마드리드에 있어서 이케르는 19M 유로 이상의 가치가 된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에게서 직접 작별 인사를 받고 팬들에 둘러쌓여 그에 대한 고마움을 들을 자격은 최소한 된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포르투에 가면서 구단이 얼마나 많은 배려를 했는지에 대해서 언급한다. 맞다. 그러나 그 배려가 아가페적인 배려는 아니다. 프로답게 철저한 계산 속에 만들어진 배려다.
금전적인 배려도 매우 중요하다. 프로에 세계에서는 말이다. 그렇지만 축구선수도 구단관계자도 프로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많은 추억과 헌신을 해준 사람에게는 그에 알맞는 작별법이 있고 이게 기본적이면서도 진정한 배려이고 예우이다. 돈으로 마음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팬들의 입장을 막은 고별식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위에서 말했듯, 갑작스러운 일정변화로 그럴수는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고별식은 팬들과의 마지막 소통이자 직접 다가갈 수 있는, 같은 시공안에서 할 수 있는 작별이다. 팬들 없는 고별식은 어떤 배려인지 전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구단이 구단을 위한 배려를 했다고도 생각이 된다. 기자들 데려다 놓고 사진 찍고 좋은 그림 추려서 공식홈페이지와 언론에 내보내는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고별식 말이다.
고별식 이전에 페레스의 발언에 사람들은 언론이 틀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페레스의 입장을 들어본 적이 없다. 즉 구단의 공식 입장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전에 입장을 표명했다면 어땠을까 한다. 트로페오 베르나베우를 2년 연속 열지 않겠다고 했다가 역풍을 맞이했고 결국 올해는 개최를 하기로 했으나 상대구단이 정해지지 않았다. 페레스는 트로페오 베르나베우와 카시야스 고별경기를 한번에 처리하는 행정력을 보여주었다. 비약인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찜찜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카시야스를 생각해왔다면 단 한명의 팬이라도 미리 부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한다.
평소 철두철미하고 완벽하게 행사를 해내는 페레스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고별식이었다. 2천여명의 팬들이 찾아와 경기장 문 앞에서 입장을 요구했고 결국 그들의 요구는 받아드려졌다. 모양새가 절대 좋지 않다.
페레스는 뛰어난 회장이다.
재정적으로 구단을 안정시킨 것에 그치지 않고 풍족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엄청난 거물급 선수들을 믿기지 못할 정도로 쉽게 또 많이 영입해왔다. 그렇지만 그가 영입한 선수들이 구단에 꼭 필요하고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고는 쉽게 장담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의 영입수완이 일부 팬들에게는 세계 최고의 명성이 아니면 필요없어식의 발상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세계 최고의 명성'이라는 상품적 가치 이전에 '팀에 필요한' 축구적 가치가 기본적으로 내재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페레스는 아주 일반적인 말년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회장에 도전 할 수 있다면 실적에 신경을 더 많이 쓸 것이다. 그렇지만 마지막 임기에서는 실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업적에 치중한다. 시한이 정해진 미래와 시한이 없는 미래는 확실히 다르다. 정치학적으로 미국 대통령들은 첫번째 임기를 재선을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고 생각보다 온건한 정책을 추진하고는 한다. 그리고 재선에 성공하면 곧바로 자신의 색을 내기 시작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기를 원한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다. 페레스의 경우도 많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는 포스트-베르나베우가 되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페레스가 되고 싶어한다. 실제로 그정도의 능력과 실적을 갖춘 사람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선수로, 감독으로, 회장으로 레알 마드리드에 평생을 바친 베르나베우가 페레스는 절대 될 수 없다-물론 독단적인 성격과 상당한 영입수완은 비슷하다. 페레스를 위해 구단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단을 위해 페레스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만한 회장도 없다. 이케르는 이제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로 실패도 성공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페레스에게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이케르처럼 언젠간 떠나야 하는데 시간이 있을 때 자신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각자에게 남은 시간이 다르다.
시간이 없는 이케르는 떠나야했고 시간이 남은 페레스는 남을 수 있었다. 남는 자가 무조건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남는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승자가 될 수도 패자가 될 수도 있다. 어차피 우리 곁에 있는 것은 페레스, 그가 어떻게 시간을 쓸지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두고 보고 싶다.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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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파 2015.07.14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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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hamp 2015.07.14잘 읽었습니다. 페레즈가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모든 레알마드리드팬이 그 이별을 정말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페레즈 아저씨. 진짜 각성해주시길!!!
자주 느끼는 거지만 엘리엇님의 글 보면 아주 양질의 신문칼럼을 읽는 듯 합니다. 레매 사이트에만 걸려 있기 아까워요ㅎ~~~ -
파타 2015.07.14페레즈 마칠때 아쉬워하는 팬 반 잘가라 하는 팬 반 딱 그럴거 같아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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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론소♡ 2015.07.14동감하는 부분이 많은 글이네요 이케르가 떠나고나니 레매에 더 자주 들어오게 되는데 이케르에 관한 어떤 글 보다 좋은 글인거같습니다..ㅠㅠ 페레스는 남은 기간동안 일 똑띠해주고 깨끗하게 나갔으면 좋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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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헌 2015.07.14*페레즈는 여러 일이 있지만 딩요 못생겼다고 영입 안한 게 제일 기억에 남는듯.. 델보스케가 말한거라 더 충격 ㅋㅋ
암흑기 바르샤가 딩요하나로 챔스까지 먹었는데 우리팀 왔으면 얼마나 쩔었을지 .. -
MARVEL 2015.07.14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는 바보짓은 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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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irvoyance 2015.07.14너무 공감가는 칼럼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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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Potter 2015.07.14양쪽의 입장을 잘 정리해준 글이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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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빠 2015.07.14외모 보는 거 없어져야 합니다!!! 특히 전문적인 일에관해서는 !!!
외모는 부수적인것일뿐 -
날롱도르 2015.07.14고별식에 팬들 입장을 막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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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stian_O 2015.07.14마지막인만큼 잘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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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베일 2015.07.14페레즈 시간은 거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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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ul 2015.07.16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