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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첼로티의 선수 배치 ① - 베일은 왜 철밥통일까?

온태 2015.04.08 18:53 조회 5,467 추천 46
이런 거 쓰면 꼭 선발로 못나오거나 하던데... 가 현실이 되었습니다...저주왕



1. 베일은 왜 못할까?



선수를 볼 때 개인적으론 선수의 피지컬적 역량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직관적으로 파악하기에 가장 쉬우면서도 전술 적합성을 따질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기 때문이지요. 가령 넓은 커버 범위를 요구하는 포지션에는 기본적으로 스피드가 떨어지는 선수는 기용되기 어려울 것이고, 좁은 간격에서 움직이는 포지션에는 민첩성과 유연성이, 상대와 몸으로 직접적인 경합이 벌어지는 포지션에는 힘이 일정 수준 미만이면 써먹기 난감할 겁니다.

또한 피지컬은 선수의 지능과 기술을 발현하는 매개체입니다.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아무리 온몸으로 볼을 자유자재로 다루더라도 일정 수준의 피지컬적 역량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경기에서 그것을 구현해낼 수 없죠. 당장 이야라만 봐도... 모 게임에서는 피지컬이 후져도 멘탈과 테크닉이 피떡수준이면 괴물 대우를 해준다지만 현실 세계에서 그 경지에 이른 선수는 근래 선수들중엔 챠비 이외에는 떠오르는 선수가 없네요.

그럼 베일의 피지컬적 역량을 살펴봅시다. 다들 아시다시피 베일은 세계 최고의 스피드스타이고, 타고난 어깨골격이 매우 넓어 상대와의 힘싸움에서 쉽게 밀리지 않죠. 발목힘도 사기라 크로스나 슈팅의 질도 굉장히 좋습니다. 때문에 육체적 경합을 중요시하는 EPL에서 최고의 윙어로, 나아가 EPL을 대표하는 최고의 크랙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죠.

더불어, 유연성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체격이 상당하고 무게중심도 높아 민첩성이 그리 빼어나지 못함에도 본인보다 민첩한 풀백들과의 대결에서 쉽게 밀리지 않은 이유가, 볼 터치가 투박한 편임에도 그것이 그리 큰 흠이 되지 않았던 이유가 이 탁월한 유연성 때문입니다. 이게 없었다면 유럽대회나 국가대항전에서 큰 족적을 남기지 못했음에도 월드 클래스로 인정받을 수 없었을 겁니다. 리그 차이에 금방 들어간 얘기이지만, 영입 전~초기에 드리블은 호날두보다 좀 나아보인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이 유연성 때문이겠죠.

는 사실 지난 시즌까지의 이야기이고, 올시즌은 벌크업의 영향인지 이 유연성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부각된 문제가 볼을 다루는 능력의 급격한 하락이죠. 몸의 균형을 회복하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볼을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볼 터치로 예를 들면, 유연성이 좋을수록 밸런스 이동이 더 자유로워서 완벽하게 안정된 자세가 아니더라도 다음 동작을 수행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똑같이 투박하게 볼 터치를 가져가더라도 그것을 만회하기에 더 유리하죠. 돌파가 전혀 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원래도 빠른 페인팅 동작 후 돌파는 기대하기 힘들었고, 수비수의 뒷발 방향으로 길게 쳐놓고 경합하는 것이 베일의 패턴인데, 위에서 얘기했듯 그다지 빼어나지 않은 민첩성을 커버하던 유연성을 잃어버리면서 작고 민첩한 풀백을 상대할 때 어깨를 집어넣을 방법이 없어져버렸죠. 힘으로 무리하게 밀고들어가면 다 파울이구요.

물론 이는 미들 라인의 장악력이 향상되어 굳이 볼을 받아줄 필요가 없어지면서 포워드 라인에서의 영향력을 더 늘리기 위한 시도였지만, 썩 신통치 않아 욕을 두배로 먹고 있지요. 주로 결정력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눈여겨볼 것은 박스 바깥에서의 득점력입니다. 아무리 포워드 라인에서의 활동이 많다고 하더라도 지난 시즌에 비해 지나치게 적어요. 리가+챔스 기준으로 지난 시즌엔 51개를 시도해 6개를 성공시켰는데, 올시즌엔 40개 시도에 한골밖에 없습니다. 이것도 저는 유연성의 부족이 야기한 것이라고 봐요. 자세한 슈팅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떠들 능력이 없지만, 슈팅 준비 동작이 과도하게 크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이러다보니 상대 수비에 의한 블록이 늘어나고, 골키퍼들도 슈팅 경로를 예측하기가 쉬워져서 득점이 확 줄어든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외 수비 가담에서 드러난 문제도 활동 영역과 더불어 무거워진 몸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떠들 능력이 부족하네요. 기본적으로 민첩성이 떨어지면 전환 시 속도가 느려지는 게 사실이지만, 지난 시즌과 비교하면 전환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참여도 자체가 뚝 떨어졌죠. 수비 의지의 부족이라기보단 지구력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벌크업과 지구력의 상관관계에 대해 잘 아시는 분 계시면 답변 좀 해주세여...





2. 그럼에도 베일은 왜 철밥통일까?



아리고 사키의 입을 빌려 사키이즘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공격 시에는 플레이를 독점하고, 수비 시에는 공간을 컨트롤해야 한다." 가 되겠네요. 밸런스를 유지한 채 토탈 풋볼을 실현하길 원했던 사키는 선수들 간 공간 배분이 고른 플랫 4-4-2를 선택했습니다. 높은 수비 라인과 콤팩트한 대형을 활용한 압박을 통해 사키의 팀은 공간을 지배해나갔지만, 원하는 만큼 플레이를 점유하지는 못했습니다. 삼각형 형성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못해 짧은 패스를 주고받기 어려웠기 때문이지요. 때문에 사키이즘을 활용하는 팀들은 압박 후 측면을 활용한 빠른 역습을 주 공격루트로 삼았고, 이 과정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과정에서 전환 이론이 탄생합니다.(여기서의 전환은 공수 전환을 의미합니다. 횡방향으로의 전환은 사이드체인지로 지칭)

사키는 '볼은 사람보다 빠르다'라는 명제에 주목했습니다. 때문에 사키는 전환 속도의 향상을 위해 공격 시에는 패스의 속도를 살리기 위한 방법을, 수비 시에는 반대로 상대의 패스 속도를 늦추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수평 시프트입니다. 미드필더 4명을 일렬로 세운 채 공의 위치에 따라 압박을 가하는 선수가 유동적으로 변하는 이 시프트는 높은 위치에서 강한 압박을 구사할 수 있으면서도 밸런스를 잡아내는 데 유용했지만, 빌드업 시 볼을 전진시키기 어렵다는 단점 때문에 볼을 쥐고 있을 때 패싱 게임을 원활히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후대 감독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L자 시프트를 만들어냅니다.

<L자 시프트의 예>

L자 시프트는 중미 중 한명의 위치를 내려 빌드업 시 축을 잡는데 활용함으로써 수평 시프트의 약점을 보완합니다. 한명이 내려가면서 압박의 강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압박이 벗겨졌을 때 조금 더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죠. 더불어 이렇게 L자를 형성하면서, L자 시프트는 역습에서도 큰 이점을 가져갑니다. 볼을 쥔 상대 선수에게서 먼 쪽의 윙어가 역습 시 볼을 받고 전진하기 좋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선수는 압박에 영향력을 미치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의 사이드체인지를 대비하는 위치를 잡는 정도의 수비부담만을 안게 됩니다. 볼은 반대쪽에서 돌고 있기 때문에 이쪽의 선수는 넓은 공간을 마주하게 되고, 때문에 팀이 볼을 뺏어내면 이 선수는 즉각적으로 달려나가 역습의 첨병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마드리드에 도착한 안첼로티는 전체적으로 다재다능하면서도 역습에 특화된 몇몇 선수를 포함한 스쿼드를 보며 사키이즘을 활용할 생각을 했지만, 그러면서도 안첼로티는 본인의 팀이 볼을 점유하고 경기를 주도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안첼로티는 이 L자 시프트를 아예 포메이션에 적용시킵니다. 그게 현재의 4-3-3과 4-4-2의 중간 형태, 저는 비대칭 4-4-2라 칭하는 대형입니다. 왼쪽 측면 선수를 메짤라로 기용해 왼쪽 위주의 3미들을 형성하고, 그쪽 위주로 패싱 게임을 만들어나갑니다. 왼쪽에서의 부분 전술을 통해 상대를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때때로 상대가 과도하게 왼쪽으로 쏠린다 싶으면 빠른 사이드체인지를 통해 비교적 널널한 공간으로 속공을 시도하지요.

주지할 것은 이 오른쪽 윙어의 주 역할은 역습이나 속공의 첨병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볼을 받아 전진하기 좋은 위치를 찾는 감각과 빠른 전진을 위한 '속도'라는 피지컬적 조건이 가장 중요하지요. 베일은 이 두가지 조건을 세계에서 가장 잘 충족하고 있는 선수들 중 한명입니다. 더불어 외질이 방출된 이유, 디 마리아가 우측면 경쟁에서 완전히 밀린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스코가 들어오고 하메스가 오른쪽으로 나왔을 때 팀의 볼 순환은 물 흐르듯 이루어집니다. 미드필더 4명 전원이 볼도 잘 다루면서 패스&무브에도 통달하다보니 보는 입장에서 예쁜 그림이 나오면서도 상대를 압도할 수 있죠. 허나 패스&무브는 필연적으로 큰 체력 소모를 유발하고, 하메스의 물리적 속도는 전환 이론과 L자 포메이션의 장점을 살리기엔 역부족입니다. 포지셔닝 감각이 매우 빼어나기에 약팀 상대로는 그럭저럭 써먹을 수 있겠지만, 보다 역동적인 팀과의 경기(e.g. 리버풀과의 두 경기)에선 역습 시도에 제약이 많았죠. 

헤세는 어떨까요. 탁월한 속도와 로이스를 연상케 하는 포지셔닝 감각으로 지난 시즌 똑같은 위치에서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이미 보인 바 있지만, 부상 복귀 이후 헤세는 최고의 장점으로 꼽히던 포지셔닝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서서 볼을 받는 횟수가 뚜렷하게 증가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지요. 속도가 붙지 않은 채 상대를 벗겨낼 능력이 없으니 활약은 점점 미비해지고, 그럴수록 자꾸 마음이 급해지면서 좋지 않은 플레이를 반복하며 팬들의 탄식을 자아내고 있네요.

결국 전환 이론과 아름다운 축구의 양립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현 스쿼드에선 베일은 퍼스트 초이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Floren님이 정리하신 루머 모음(http://realmania.net/bbs/zboard.php?id=openbbs&no=66018)에서 발췌한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요.
"사이드에서 공을 받는 첫 터치와 첫 패스, 그리고 득점 기회를 찾아 박스 안으로 대각선 침투. 레반테전 몇 번의 찬스에서 되풀이됐던 그 작업을 정확하게 그 스피드로 해낼 수 있는 건 베일뿐이며 안첼로티는 그걸 최대한 활용하고 싶어 합니다."
팬들 입장에선 돌파는 고사하고라도 볼 터치부터 속이 터지지만, 스피드와 포지셔닝 감각은 그래도 팀에서 가장 좋은 편이니 어떻게든 피지컬 밸런스를 찾아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랄 뿐입니다.


p.s. 만약 베일을 대체해야 한다면(저는 체리셰프가 돌아오기에 중미로 대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역할을 생각할 때 아자르보다는 로이스가 적합하다고 봐요. 측면의 드리블러에게 역습을 전담시키는 것은 무리뉴에게는 자연스러운 방식이지만, 사키의 전환 이론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방식. 물리적인 속도에서나 포지셔닝 감각에서나 로이스가 우위에 있고, 특히 로이스의 포지셔닝 감각은 세계 최고 수준이죠. 뭐 안첼로티가 아자르 데려온다고 해서 활용할 방법을 못 찾아내는 사람은 아니겠지만, 속공의 방식을 바꾸는 작업이 선수 한명의 교체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기에 가급적 아자르는 안첼로티 하에서는 오지 않았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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