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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역대 회장 열전 (11편)

Elliot Lee 2015.03.15 23:23 조회 1,545 추천 21
레알매니아에서 레알 마드리드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준비한 프로젝트!

'레알 마드리드 역사 편찬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중에 있습니다. 

사이트 리뉴얼 이전에 레알매니아에 있던 역사 관련 게시판의 정보와 공식 홈페이지 정보등을 통합 편집하여 레알 마드리드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분들 위해 다시 제공하려고 합니다. 우선 맛뵈기로 역대 회장들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레알 마드리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감히 장담해봅니다.


* 불펌은 금지합니다. 이 자료에 대한 상업적 이용을 금하며 타 사이트로의 펌은 레알매니아 운영진의 허락하에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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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베르나베우(1934~1978)

출신 : 알만사
생년월일 : 1895년 6월 8일

진정한 레알맨, 마드리디시모들에게 불멸의 존재로 남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있어 구단 그 자체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레알 마드리드를 비단 스페인 최강을 다투는 팀이 아닌 유럽 최강을 다투는 팀으로 등극시켰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회장 시절 레알 마드리드는 '저승사자'라는 별명답게 상대 팀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14세의 나이로 레알 마드리드 선수로 뛰기 시작하면서 구단과의 인연을 가지기 시작했다. 선수시절, 확고한 독립성과 정직함,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구단에 대한 희생을 바탕으로 팀의 주장도 역임하였다. 15년간의 선수 생활을 뒤로 하고 은퇴를 한 이후, 코치, 이사, 그리고 회장에 이르기까지 구단 내 위치들을 역임하면서 진정한 '레알맨'의 모습을 보였다.

20세의 나이에 법학 학위를 받고 1943년 레알 마드리드 회장으로 선출되어 취임하게 되었다. 그는 다년간의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레알 마드리드 내에 조직 분업화를 실시하여 프로 코칭스태프 구성, '패냐스'라고 불리던 조직적인 팬클럽을 만들어 전문성을 높였다. 또한 축구 선수단만 보유하고 있던 레알 마드리드에 농구, 핸드볼, 테니스등 새로운 분야의 스포츠 선수단들을 발족하였며 구단의 활동 범위를 넓혀나갔다. 

베르나베우의 가장 큰 업적은 새로운 구장 건설과 선수 영입, 그리고 유럽구단대항전 개최로 볼 수 있다.  

회장 취임 직후 가진 첫 총회에서 그는 "우리는 더 큰 경기장을 필요로 하고 있고 그것을 만들 것입니다."라고 자신의 구장 건설의 포부를 밝혔는데 당시 일부 사람들은 그가 미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의 말이 현실화 되자 많은 이들이 그에게 협력하고 또 열광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거대한 포부는 부지 선택으로 시작되었고 오도넬에 위치한 경기장을 개보수하였고 1947년 12월 14일 새로운 차마르틴 구장이 정식으로 완공되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베레넨세스와 개장 기념 경기를 가졌다.  

1955년 이사회는 차마르틴에 있던 경기장의 이름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로 개명하였다. 그의 회장 재임 기간은 전 세계 축구 역사상 특별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의 유러피언 컵 6회 우승, 세계 클럽 대회, 스페인 리그, 코파 델 레이 우승등과 같은 영광들로만 가득차 있었다. 

그의 활동은 구단 내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그는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인 유로피언 컵 개최를 위해 엄청난 공헌을 하였다. 프랑스 축구 잡지인 L'Equipe 지의 가브리엘 아노는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이탈리아 구단들이 참여하는 토너먼트 대회인 '코파 라티나'를 계획해 베르나베우 등에게 제안했다.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대회 조직 위원회에 이 계획을 전달하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에 베르나베우는 직접 파리까지 방문하여 이 유럽대항전 제의에 찬성을 하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제 1회 유로피언 컵에 참가한 16개 구단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당초 유럽 축구 연맹인 UEFA는 이 대회를 반대했으나 이후 이 대회를 위임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1회 대회부터 5회 대회까지 레알 마드리드가 유러피언 컵에서 5연패를 이룩하면서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이 대회를 레알 마드리드 컵 대회라고 말하기 까지 했다고 한다. 베르나베우 회장 시절 6번의 유러피언 우승을 하였는데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회장도 선수도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

베르나베우는 선수출신으로 행정가, 축구 지도자등 축구 관련 직종을 거의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축구 경험이 엄청났는데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축구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1920년대 레알 마드리드 기술 부장 재임때, 그는 최고의 선수 영입에 열성이었고 이것이 회장이 된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루이스 레게이로와 모로우니를 시작으로 베르나베우의 최고의 선수 영입에 대한 야망은 디 스테파노, 리얼, 도밍게스, 코파, 산타마리아, 헨토, 파린, 소코, 아만시오, 피리, 산체스, 산티야나, 네쳐, 브라이트너, 푸스카스, 슈틸리케, 후아니토 등을 공격적으로 영입하며 '저승사자' 레알 마드리드 선수단을 구축하였다.

베르나베우는 소시오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35년간 회장직을 수행하였다. 1977년 8월 3일 자신의 건강악화를 느꼈음에도 24일 베라스케스의 은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휴가지에서 경기장으로 갔다. 이 행동으로 인해 42일간 입원 생활을 하고 수술까지 받았다. 이 해 11월 4일 구단 트로피 전시실에서 파티를 가졌고 그 다음날 스페인 축구 연맹 총회에서 베르나베우의 연맹 공로상 수여가 만장일치로 결정되었고 후안 카를로스 국왕을 직접 알현하는 영예도 누렸다. 또한 마드리드 시장이었던 호세 루이스 알바레스는 마드리드 출신이 아닌 베르나베우를 '마드리드 시의 양자'로 추선하는 제안을 하였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에 감동하고 있다. 나는 1900년부터 마드리드에서 살았고 마드리드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해주었기에 나도 마드리드를 매우 사랑하고 있다."라고 이때 베르나베우는 자신의 감회를 말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일정을 소화했던 베르나베우는 자신의 일신의 건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미국의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처럼 임기 중 사망하며 일생을 레알 마드리드를 위해 몸받쳤다. 베르나베우의 성공가도에 그 누구도 그를 대적하여 회장 후보로 입후보하지 않았다. 83년이라는 자신의 일생에서 60년의 26년 6개월간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로, 코치로, 부장으로, 이사로, 33년 6개월간 회장으로 레알 마드리드에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바쳤다. 



우 승
유러피언 컵 우승 6회
라 리가 우승 16회
코파 델 레이 우승 6회
인터네셔널 컵 우승 1회
라틴 컵 우승 2회
세계 클럽 챔피언쉽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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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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