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역대 회장 열전 (8편)
레알매니아에서 레알 마드리드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준비한 프로젝트!
'레알 마드리드 역사 편찬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중에 있습니다.
사이트 리뉴얼 이전에 레알매니아에 있던 역사 관련 게시판의 정보와 공식 홈페이지 정보등을 통합 편집하여 레알 마드리드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분들 위해 다시 제공하려고 합니다. 우선 맛뵈기로 역대 회장들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레알 마드리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감히 장담해봅니다.
* 불펌은 금지합니다. 이 자료에 대한 상업적 이용을 금하며 타 사이트로의 펌은 레알매니아 운영진의 허락하에 가능합니다.
---------------------------------------------------------------------------
라파엘 산체스-헤라(1935~1936)
출신 :마드리드
생년월일 1897년 10월 28일
정치보다 축구를 더 사랑한 회장
라파엘 산체스-헤라의 회장 기간은 1년 남짓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매우 성과적이었다. 그는 이전 회장들의 유산을 토대로 경기장 안밖에서 구단을 잘 이끌어나갔다. 그에게 있어 가장 큰 과제는 성장단계에 있던 구단을 위한 새로운 부지 확보였다. 선수단 강화를 위한 시설들과 새로운 구장을 통한 관중 및 예산 확보를 새로운 부지 확보를 통해 노렸다. 그렇지만 스페인 내전 발발로 인해 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무냐호르리와 르네 프티와 같은 선수들이 공부하였던 유명한 마드리드의 콜레히오 델 필라르를 오고 가면서 축구에 대한 애정을 더 강하게 가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우 친한 친구들이 되었고 이후 레알 마드리드 유스 팀에서 함께 뛰기 시작하였다.
마드리드 출신인 산체스-헤라는 정치가로 스페인 수상을 역임했던 호세 산체스-헤라의 아들로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제 2공화정에서 다양한 정치 경력을 쌓았다. 정치가 이외에도 변호사와 신문기자로도 활약을 하여 사회적으로 어느정도의 위치가 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1935년 5월 31일, 레알 마드리드 투표자들의 과반수를 득표하여 회장으로 취임하며 정치 경력을 종료하였다. 축구에 대한 애정이 정치에 대한 애정보다 컸었던 것으로 보인다.
알베르티와 켈멘 같은 선수들이 영입되어 바르셀로나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물론 사모라가 바르셀로나의 확실해보였던 득점을 막으면서 그들의 활약을 뒷받침했다.
레알 마드리드, 내전과 정치, 그리고 시대의 희생양이 되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면서 1936년 8월 4일 마드리드 F.C는 공화정 정부군에게 접수되었고 이 과정속에서 회장인 라파엘 산체스-헤라 뿐만이 아니라 이사회 전원이 경질되었다. 그리고 공화정주의자였던 산체스-헤라는 마드리드에서 피신하기를 거부하여 프랑코 정권에 의해 수개월동안 투옥되기도 하였다.
새로운 정권으로 인해 레알 마드리드는 소시오가 선출하는 회장이 아닌 권력의 힘으로 임명된 지도부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처음으로 소시오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회장이 있는 시기였다.
노동자 연맹 대표였던 후안 호세 바리호, 철도원 스포츠 조합,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코로나드(카스테야나 연맹), 앙헬 로드리게스 가르시아(바야돌리드 데포르티보), 크리스티노 로렌소(UD 살라망카)등이 스페인 축구 협회를 접수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레 코레트스 거리에 위치한 마드리드 F.C. 본부에 나타나 구단을 인계했다.
이를 통해 마드리드 F.C.의 소시오와 노동자 연맹 임원들은 현 구단의 이사진 대신 간부 위원회 및 위원회 인사권한 전체에 대해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노동자 연맹과 스페인 축구 협회를 장악하고 있던 바리호가 주도적으로 이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 시절 많은 풍문들이 돌았지만 사실무근한 것뿐이었다. 순수한 좌파 공화주의자 소시오들의 묘상이었던 마드리드 F.C.와같은 민주적인 구단은 두려워 할 것이 없었고 이들의 생각처럼 노동자 스포츠 연맹은 스포츠의 원리원칙에 입각해 구단을 운영해 온 일부 소시오들의 생각을 공정하게 보았다.
이후 스페인 내전으로 인한 혼돈의 정국 속에 마드리드 F.C. 또한 많은 피해를 보았고 1936년 8월 6일 부터 1939년 4월 16일까지 아구스틴 바레이라의 노동자 스포츠 문화 연맹이 마드리드 F.C.를 인계하였고 이후 리안드로 세치와 오르테가 대령이 그 자리를 위임받았다. 1939년 4월 16일부터는 재건 위원회의 라우레아노 오르티에스 데 사라테가 회장 직을 수행하며 시대의 희생양이 되었다.
우승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Mancomundo Trophy 1회
댓글 10
-
.라울 2015.03.06생년월일에 오타인가요?
-
subdirectory_arrow_right 베르나베우거주자 2015.03.06@.라울 맞는거같은데용
-
subdirectory_arrow_right .라울 2015.03.06@베르나베우거주자 첨에187년으로되어있어서요...
-
.라울 2015.03.06오늘도 좋은글보고갑니다.
-
각박한 세상 속 믿을 건 이스코 2015.03.06잘봤습니다~추천!
-
Satie 2015.03.06*잘 읽었습니다!
축구를 정말 많이 사랑하셨던 회장님이신가 봅니다.
수상역임자의 아들이라는 위치,타이틀을 가졌음에도.... 정치를 내려놓고 축구를 택했다니.... -
Satie 2015.03.06*본문 첫번째 단락에 있는
\'경기장 안밖에서 구단을 잘 이끌어나갔다\' 에서 \'안밖에서\'가 아닌
\'안팎에서\' 가 옳은 맞춤법입니다. 약간 어색하다면 어색합니다만 수탉,암탉,머리카락 이런 류의 것이랄까요 ㅋ
당장 제가 달은 이 댓글도 맞춤법 오류 투성이지만서도
건방지게 나서봤슴다! ㅋ -
Tonisco 2015.03.06수상아들인데 축구를..ㅎㅎ 좋네요
근데 사진작가가 안티인가..... -
Raul 2015.03.06늘 잘보고 갑니다~
-
오상아 2015.03.07잘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