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역대 회장 열전 (5편)
레알매니아에서 레알 마드리드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준비한 프로젝트!
'레알 마드리드 역사 편찬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중에 있습니다. 사이트 리뉴얼 이전에 레알매니아에 있던 역사 관련 게시판의 정보와 공식 홈페이지 정보등을 통합 편집하여 레알 마드리드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분들 위해 다시 제공하려고 합니다. 우선 맛뵈기로 역대 회장들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레알 마드리드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감히 장담해봅니다 .
오늘부터 하루에 한명의 회장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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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파라헤스(1916-1926)
출신 : 마드리드
생년월일 : 1883년 12월 17일
No.1 소시오 회장, '레알'의 칭호를 인가 받다
구단의 기둥 중 하나였던 파라헤스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레알 마드리드의 훌륭한 창립자"라고 말한 바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회장이었다. 특히 그의 재임기간에 스페인의 왕인 알론소 13세는 'Real'이라는 칭호를 구단에 내려 현재 우리가 부르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의 이름이 완성되게 된다.
레알 마드리드의 첫 정식 구장, 오도넬 구장
레알 마드리드 첫 프랑스 인 회장으로 알려진 페드로 파라헤스는 회장 취임 이전 그는 7번의 시즌 동안 4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선수로 경험했다. 잉글랜드에서 비지니스를 공부한 파레하스는 마드리드 F.C. 창립 당시 회칙 제정을 담당했다. 그는 또한 훌륭한 구단의 기획자였고 레알 마드리드의 현대적인 운영방식을 처음 적용하여 오도넬 거리의 경기장을 벽으로 쌓았고 관중에게 티켓을 팔면서 처음으로 구단의 수익을 창출하기 시작하였다.
1916년 마드리드 F.C.의 회장으로 취임하였고 이듬 해인 1917년 9년만에 코파 델 레이 우승에 성공하였다. 또한 마드리드 F.C. 임원진의 소망이었던 'Real'이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 노력하였고 1920년 6월 29일 스페인 왕실 궁내청에서 인가 서신이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토록 원했던'Real' 칭호는 스페인에 들어선 공화정이 정치적인 이유로 박탈하기 전까지만 사용 할 수 있었다. 인가를 윤허해 준 알폰소 13세는 자신의 아들인 알폰소 데 보르본 이 바텐베르그 왕자를 구단의 명예회장으로 임명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왕자는 13살인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따른 경기장 건설로 시설확장과 확충을 하기 위해 그는 노력하였다. 1923년 시우다드 리네알 경기장을 건설하였고, 1924년 5월 17일, 새로운 차마르틴 경기장이 완공되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잉글리시 FA 컵 우승팀이었던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친선 경기를 가졌다.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마드리드가 프로 선수들로 가득찬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3-2로 이겼다.
1923년부터 1924년까지 파라헤스는 스페인 국가 대표 감독으로 취임하여 1924년 올림픽 축구 대회에서 스페인 국가대표를 지도하였다. 총 3경기에서 1승 1무 1패를 기록하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1925년 8월부터 9월까지 약 한달동안 첫 유럽 원정 경기를 실시하였다.
1926년 파라헤스는 레알 마드리드 회장 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1950년 65세의 나이로 프랑스 보르도 근처 생 루베에서 사망하였고 그가 죽는 당시 그는 레알 마드리드 소시오 1번으로 기록되었다.
우승
마드리드 지역 대회 4회
코파 델 레이 1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