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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목요일 5시

Saeta Rubia- 디스테파노, 영원한 레전드

Eminem 2014.12.15 19:18 조회 3,453 추천 3

지난 13-14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라 데시마’를 이루며 전 세계의 관심이 우리 팀에 쏠렸었죠. 레알은 16강에서 샬케를 합계 9-2로 무자비하게 이기며 그 기세를 몰아 12-13시즌에 레알을 4강에서 떨어뜨린 돌문을 맞아 합계 3-2로 복수를 하며 마침내 4강에서는 독일 챔피언이자 12-13시즌 챔스 우승팀이었던 바이에른 뮌헨까지 합계 5-0으로 화끈한 공격력을 보여 줬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라 데시마를 눈 앞에둔 5월 25일, 카샤스의 판단실수로 1-0으로 끌려가던 레알은 후반 추가시간에 모드리치의 코너킥을 라모스가 믿을 수 없는 헤딩골로 연결하면서 동점을 만들었고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 갔습니다. 연장전에서 디마리아가 꼬마 수비수 2명을 제끼고 슛을 한걸 쿠르투아가 막자 뒤따라오던 베일이 헤딩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역전골을 성공시키고 완전히 포기한듯한 꼬마의 수비진을 헤집은 마르셀로의 골과 날두옹의 깔끔한 pk골로 4-1의 대역전승을 거둔 레알은 마침내 9번째 우승을 거둔지 12년 만에 라데시마, 즉 10번째 우승을 거둡니다!!!



이 10번의 우승중 1955-56, 1956-57, 1957-58, 1958-59, 1959-60 시즌은 5연속 우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이 있는데 이 기록은 헥토르 리알, 레이몽 코파, 호세 산타마리아, 미겔 무뇨스, 아만시오 아마로, 산티야나, 푸스카스, 그리고 디 스테파노까지 당시 최고의 스타들을 모아놓았던 또다른 ‘갈락티코’이자 ‘백곰군단‘이 이룬 기록입니다. 이중 푸스카스는 현재 ’푸스카스 상‘이라는 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죠.ㅎㅎㅎ 전 이중에서 마라도나가 ’난 내가 펠레보다 더 좋은 성수였다고 확신할수 없지만, 나는 의심의 여지 없이 디 스테파노가 펠레보다 더 좋은 선수였다고 말할수 있다‘ 라고 할 정도로 대단했던 디 스테파노에 대해서 알려 드리고 싶네요.ㅎㅎㅎ



디스테파노께서는 1926년 7월 4일에 태어나셔서 올해 7월 7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근처를 산책하시다가 돌아가셨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

아르헨티나 리버플레이트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서 1949년에 미요나리오스로 이적해서 뛰다가 레알의 50주년 경기에 초청된 미요나리오스를 따라와서 강한 인상을 남기고 1953년에 우리팀으로 왔네요. 처음에 올때 바르셀로나와 우리가 동시에 계약을 체결해서 다투다가 결국 1년을 우리팀에서 1년은 꾸레에서 뛰는 걸로 협의가 됬는데 우리 팀에서 뛸때 아직 폼이 완전히 안올라와서인지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꾸레는 ‘음 생각보다 별로네?’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죠. 그래서 우리는 꾸레에 보상금을 주고 디스테파노를 완전 영입했는데 그 뒤부터 완전히 폼을 찾은 디스테파노는 날라다니며 1964년까지 8개의 라리가 우승컵 (2번의 4연속), 한번의 코파 델레이, 그리고 5번의 유러피언 컵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메이저 대회에서만 14개의 우승컵을 레알마드리드에 선물하였습니다. 은퇴후에도 레알마드리드 감독을 하다가 최근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레알마드리드 명예회장으로써 많은 업적을 남기셨죠. 또한 잘알려져 있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원래 포지션이었던 공미를 제외하고도 스트라이커, 중미, 수비수, 심지어 골키퍼까지도 재능을 보이면 존재 자체로도 상대 팀에 위협이 되었죠. 심지어 우루과이의 소설가 가예아노는 디스테파노를 두고 ‘축구장은 그의 발 아래에서 태어났다’라는 찬사를 보냈다네요.ㄷㄷ 그리고 포워드였던 푸스카스와 ‘영혼의 파트너’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잘 어울렸던 공미였던 디스테파노는 레알에서 396경기 307골로 공미답지 않은 화끈한 공격력을 보여 주기도 했네요, 나중에 날두옹도 이렇게 레알의 레전드로 남아줫으면 하네요!!!

ps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ㅜㅜ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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