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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

4-4-2, 일원론, 그리고 '수비용 미들'에 대한 환상.

더치맨 2014.11.01 03:21 조회 6,244 추천 35
수세시 4-4-2는 수비와 미들의 이중 저지선을 형성합니다. 미들 라인에 배치될 넷을 보면, 한 명이 볼을 쥔 상대의 플레이 선택을 제한시키기 위해 전진하는 사이 다른 셋은 이하의 공간을 균등하게 점유하는 형태를 취하게 되죠. 엘 클라시코에서 레알의 미드필더를 논한다면, 다른 무엇을 말함에 앞서 이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야할 겁니다. 이스코-크로스-모드리치-하메스의 4인 미들이 얼마나 4-4-2 수비의 기본을 체화하고 있느냐가 여기서 드러나니까요. 완벽하진 않지만 상당히 만족스러웠죠.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팀의 수비적 부하를 떠안는 수비 전용 미드필더'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오랫동안 팬덤 내부에서 만연해 있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을 선수들이 제대로 숙지하고 있다면, 사키의 말마따나 클럽의 구단주나 청소부가 뛰어도 상대의 공격을 방어해낼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팀 차원에서 이러한 기본 전술이 부재한다면? 말디니 여덟이 뛴다고 해도 답이 없습니다. 사키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밀란의 스타 플레이어를 통제하기 위해 선수 상대로 내기를 걸어, 자기가 지시한대로 움직이는 소수로 다수의 공격을 막아낸 적도 있지요. 당시 공세측은 제대로 볼을 전진시키지도 못했다고 하구요.

보다 가까이, 바로 독일 월드컵 직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캐릭은 킨을 대체할 수 없다는 언론의 비판을 퍼거슨은 그저 긍정합니다. 당시로선 맨유 감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이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었고 모두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었죠. 시즌이 개막하고 웃던 이들은 모두 침묵하게 됩니다. 대체 어떤 이유에선진 알 수 없습니다만 긱스-스콜스-캐릭-날두의 4인 미들이 너무나 잘 돌아가는 겁니다.

참으로 아쉬운 건, 팬덤에선 이를 보고 놀랍다, 퍼거슨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만 많았을 뿐, 정작 그 대단함이 어떻게 성립한 것인지에 대해선 설명하려드는 이가 많지 않았다는 겁니다. 저로선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오랜동안 축구팬인 제게 고민거리였습니다만, 그만큼이나 퍼거슨의 전술적 역량을 낮게 평가하는 이들 역시 곤혹스럽기만 했지요. 전술가라면 가질법한 학구적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었을까요. 모두가 중원에서 우위를 위해 양치기에 골몰하거나 피지컬적 우위로 상대의 볼을 쉬이 탈취할 수 있는 미드필더들을 찾아헤매던 게 독일 월드컵 직전까지의 유럽 무대입니다. 그리고 월드컵 직후 갑자기 맨유가 나타나고, 프리미어리그를 3연패하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두 번을 거푸 오르구요. 전후의 사정만을 따져봐도 전술적인 설명이 따라붙지 않는다면 이해하기 어려워보이죠.

앞서 이야기한 20년 전쯤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80년대 중반이요. 플라티니-지레스-페르난데스-티가나의 프랑스, 플라티니-보니에크-타르델리의 유벤투스, 마가트-마테우스-에더의 86 월드컵 서독, 마라도나-부루차가-엔리케-바티스타의 아르헨티나까지 축구에 있어 극단적인 분업 양상이 나타났죠. 그 중 대표성을 띌만한 프랑스를 볼까요? 페르난데스는 후방에서 흐르는 볼을 받아 올려주고, 플라티니는 신나게 벌려주거나 찔러주고, 티가나는 후덜덜한 운동량으로 쓸어담고, 지레스는 측면을 오가며 볼을 전진시킵니다.

그리고 여기에 사키가 등장하여 밀란을 맡고, 모든 것이 달라지죠.

트레블 맨유나 06-08 맨유를 떠올리시면 쉬울 겁니다. 기본적으로 442를 기반에, 하프라인 이하일 경우 수비/미들 두 줄 라인의 존디펜스로 통해 수세 국면을 맞이하죠. 윙으로 유명한 도나도니/긱스/베컴이지만 미들 라인에서 팀의 빌드업 리딩을 주도할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반면 중앙 미들로 잘 알려진 안첼로티/스콜스지만 사이드를 비롯하여 중원 어느 라인에 갖다두어도 자기 존재감을 발휘하며 그 자리에서 요구하는 바를 제대로 수행할 역량이 되거든요. 이건 수비시에도 마찬가지구요.

볼 전진을 막기 위해 윙을 마크하려는 어느 수비가 되었다고 생각해봅시다. 정신 차려보니 상대 윙을 따라 어느새 미들 라인까지 딸려나가 있고, 마크했던 윙은 미들마냥 자신을 등진 채 볼을 점유합니다. 그리고 미들인 줄 알고 신경 꺼두었던 놈은 우측면으로 돌아 치고 들어가네요. 마크하고 있던 우군은 자신의 마크 범위를 벗어나니 우왕좌왕입니다. 그리고 본래 윙이었던 적은 우측을 따라 능숙히 벌려주지요. 엄청 정교한 패스는 아닙니다만 교활한 포지셔닝으로 공간이 벌려지니 아주 날카롭게 들어갑니다. 이렇게 수비는 순식간에 바보가 됩니다. 상대하는 입장에서 참 대처하기 까다롭지요. 가장 무서운 건, 어느 위치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두루두루 활약할 수 있으니, 선수들간 플레이 선택의 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겁니다. 제가 든 예시 속에서 얼마 전 로마와 뮌헨의 챔피언스리그에서 일전을 떠올릴 분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설혹 뮌헨에게 기울었던 몇 가지 운이 따라주지 않아 스코어가 7:1까지 벌어지지 않았다고 한들, 두 팀간의 격차는 확연히 알 수 있던 경기였죠.

이처럼 축구를 개별 국면의 집합으로서가 아니라 단일한 하나의 체계로서 보고, 보아야한다고 주창했던 게 리누스 미셸과 아리고 사키, 요한 크루이프 등의 전술가들입니다. 분업화를 극렬히 반대하는 이들인 만큼, 이름한다면 축구에 있어 일원론자라고 일컬을 수 있겠네요. 이들의 축구관은 마켈렐레에 대한 사키의 생각을 보면 잘 드러납니다. 스페셜리스트라고 했던가요. 우군의 수세 국면, 하프라인 이하에서 마켈렐레가 보여주는 완성도 높은 커버 플레이는 그야말로 역대급입니다. 이미지와 달리 우군의 빌드업 국면에서 활약을 못하는 것도 아닌데요. 수비 라인에게 볼을 받아 미들이나 2선까지 볼을 끌어올려주는 후방 빌드업은 초일류였으니까요. 패스 셀렉션은 볼품 없었습니다만 문제될 건 없죠. 볼 주고 받을 거 없이 그냥 전방압박 뚫고 올라가면 되니까요. 워낙 우월한 운동능력과 이를 잘 살려낼 온더볼 테크닉 사이의 조응이 절묘했거든요. 그러나, 그럼에도 사키는 마켈렐레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외의 모든 영역에선 별다른 활약을 기대하기 어려웠으니까요. 이런 선수가 미들 라인에 있고 해당 선수를 중요 축으로 팀을 조탁할 경우,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공-수와 교차되고 이 둘이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순간 팀 차원에서 플레이 선택의 폭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스페셜리스트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했던 전술가들, 그러니까 분업화를 적극 주장했던 감독들을 우리는 이원론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에레니오 에레라, 트라파토니, 파비오 카펠로 등이 대표적이겠네요. 이들의 축구는 일원론자들의 축구와 달리 다양하고 폭넓은 플레이의 선택지를 갖진 못합니다만, 대신 소수의 패턴이나마 높은 수준으로 이뤄내기 훨씬 용이하죠. 팀의 공격 역량을 집약하는 개인(인테르의 산드로 마쫄라, 유벤투스의 미셸 플라티니, 로마의 프란체스코 토티)이 탁월할 경우 이들에 맞춰주는 것만으로 상당한 완성도를 보장받을 거구요.

물론 대부분의 현역 감독들은 일원론과 이원론 사이를 왔다리갔다리하는 실용노선을 걷습니다. 어디서나 일원론과 이원론을 표방하는 감독은 굉장히 소수구요. 그나마 찾아본다면? 전자야 많은 분들이 염두에 두실 펩 과르디올라겠고... 후자는... 글쎄요, 로베르토 만치니와 라파엘 베니테즈가 좀 가까워보이긴 합니다.

앞서 언급한 퍼거슨의 경우, 시즌 운영을 놓고 본다면 언뜻 실용노선을 걷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팀을 대표할 메인 전술을 짜고 이에 맞게 팀 스쿼드를 조탁해내는 과정은 철저히 일원론자로서 면모를 보입니다. 트레블 맨유의 미들 구성은 사키 밀란 판박이 수준이죠. 킨-레이카르트, 긱스-도나도니, 안첼로티-베컴, 콜롬보-스콜스로 완벽하게 대응됩니다. 06-09 맨유는 킨의 위치를 캐릭이 대신하고, 우군의 빌드업 역량을 집약하는 리더로서 역할은 스콜스가 떠안으며, 공미로서 스콜스에게 기대했던 바는 루니와 함께 찢어갑니다. 펩의 바르샤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었죠. 인혜는 사이드로 돌리고 부스케츠가 캐릭에 대응될 것이며, 레이카르트-킨, 그리고 06-09 맨유의 스콜스와 같이 샤비가 우군의 빌드업 리더로서 활약하는 동시에 공미 롤은 메시가 찢어갔었죠.

정리하자면, '수비 전용 미들'의 필연성은 이원론, 혹은 이원론에 입각한 분업을 일정 부분 수용하는 축구에선 진실될 수 있겠지만, 빌드업 부하를 찢어가며 미들 라인이 떠안을 수비 부하도 이런저런 라인이 골고루 떠맡을 역량이 되는 팀에게 있어선 그저 환상이며 허구란 겁니다. 물론 철두철미하게 일원론에 입각한 팀이 되기 위해선 스쿼드를 구성하는 선수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부분이 상당하겠지만요.

그리하여 레알의 성패는, 사이드의 이스코-하메스가 미들로서 어느 정도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좌우하리라 봅니다. 첫머리에서 언급했던 존 디펜스가 관건이겠죠. 뭐, 크로스-모드리치, 특히 크로스가 간혹 보여주는 멍때리는 모습을 얼마나 안 보여주느냐도 큰 부분일테지만, 선수 하나가 실책을 하더라도 이를 미들 라인 내에서 감당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먼저 이야기한대로, 상당한 수준이긴 하지만 완벽하다고 평하긴 일러 보입니다. 당장은 페페-라모스-카르바할의 출중한 개인 기량에 힘입어 수비시 미들 라인의 위기를 모면하고 있긴 한데 아무래도 외줄타기인 감이 있으니까요. 앞으로 남은 레알 마드리드의 14-15시즌 일정이 기대되는 이유일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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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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