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후기
시작은 너무나도 완벽했습니다. 어설프게 물러난 상대에게 우리의 기술 좋은 선수들은 저승사자 수준이었고, 그렇게 두들겨 패는 과정에서 결과물도 두개나 얻어냈죠. 다만 골이 들어간게 극초반이었던 만큼 상대가 공격적으로 나오리라는 것이 자명했음에도 그에 대한 대처가 없었다는 게 많이 아쉽네요. 아니 없었다기보단 몇가지 있었는데도 영 시원찮았다고 말하는게 맞겠죠. 골을 더 넣어서 그로기에 빠트리지도 못했고, 블록을 단단하게 지켜서 지치게 만들지도 못한거니까요.
포메이션은 기존에 쓰던 것과 거의 똑같았습니다. 이스코가 하프윙이었고, 하메스가 우측에서 종으로 넓게 움직이는 역할을 맡았죠. 수비 시에는 4-4-2로 전환했는데, 앞쪽 블록이 형편없었습니다. 하메스는 그 넓은 폭을 커버할만큼의 스피드와 체력을 갖춘 선수가 아니었고, 때문에 종종 앞쪽 블록이 수적 열세에 놓였습니다. 그런 장면들에선 알론소가 생각나긴 하더군요. 알론소 역시도 넓은 커버 범위를 갖춘 선수는 아니지만, 시야와 예측력을 바탕으로 다른 선수들을 컨트롤하는 능력은 도가 튼 선수였으니 수적 열세에서도 더 효율적인 수비 형태를 갖출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그나마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 있던 모드리치는 하메스와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그거 커버하느냐 정신이 없었죠.
사실 제가 정말 까고픈 선수는 토니 크로스네요. 볼 흐름을 주도하는 상황에서의 빌드업 리딩이나 한방에 방향전환을 시켜주는 능력은 대단하지만, 블록을 형성했을 때의 커버 범위나 적극성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그나마 이것 뿐이면 다행인데, 가장 큰 문제는 주변 선수들에게 과부하를 유발했다는 것입니다. 공을 받아주는 움직임이 좀 부족하다는 평가를 듣는 선수였는데, 그 평가대로 포켓 플레이에 소극적이어서 센터백들이 압박에 자주 노출되었고 때때로 주변 선수들의 커버 범위를 생각하지 않고 전방압박에 참여해서 수비 앞쪽을 텅 비워놓기도 했었죠. 이 과정에서 가장 고생한 게 모드리치입니다. 모드리치는 크로스를 대신해 포켓 플레이도 해야 했으며, 주변 선수들이 멋모르고 전진할 때마다 그 공간을 거의 혼자 커버해야 했습니다. 그게 주 역할이 아닌 선수임에도 불구하구요. 센터백들도 커버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서 고생했는데 공을 쥔 상태에서도 압박에 계속 노출되니 더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습니다. 크로스가 좀더 부지런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들이죠.
물론 장점이 상당히 뚜렷하고 위력적인 선수이기에 빼는건 상상하기 힘들었고, 때문에 볼을 받아주는 움직임에선 역시 별 장점이 없는 이스코를 빼고 케디라나 이야라를 투입하거나 하다못해 하메스보다 커버 범위가 더 넓은 베일을 우측면으로 옮겨야 하지 않나 싶었는데 변화를 주지 않았고, 결국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뒤늦게나마 다 지친 모드리치를 빼고 케디라를 투입했지만 뭔가를 기대하기엔 너무 늦은 시점이었죠.
원래는 이케르 얘기도 좀 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지금도 어색한 짧은 후기란 제목이 더 어색해질뿐더러 쭈닝요님 글을 읽으니 일리있는 말씀 같아 다음에 할 얘기가 생기면 그때 몰아서 하는 걸로 할게요. 결코 짧지 않은 글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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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렌지캬라멜 2014.09.01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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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질한테왜질까? 2014.09.01깔끔하게 잘쓰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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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ul de Tomas 2014.09.01짧은 후기지만 항상 내용은 알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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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er Casiups 2014.09.01짧고 굵은 후기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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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또띠 2014.09.01전반초반의 소시에다드의 모습이 그 후 레알모습과 아주 똑같았죠. 압박도 안되고 협력도 안되고. 정말 뭐에 홀린듯한 느낌이었네요.
크로스에 대해서는 같은느낌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구티같은 느낌이 드네요. 수비는 기대할게 아닌것 같아요. 전반을 리드하고 마쳤다면 케디라나 이야라멘디가 일찍 나올수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
subdirectory_arrow_right 온태 2014.09.01@구또띠 저도 당장 급격한 역량의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주변에 다른 선수를 기용해서 단점 극복을 시도하려면 케디라가 반드시 들어가야 하지 않나 싶어서 그것도 좀 꺼려지긴 해요. 굳이 하메스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크로스가 맡아줘야 하는 자리는 홀딩이라고 보거든요. 정말 큰경기가 아니라면 답답해도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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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2014.09.01전반에 잘하다가 카르바할 머리찍고 내려올때 뭔가 싸~ 하더라니 그때 이후로 분위기가 확 바뀌더라구요.
매우 실망했지만 선수들이 새로운 역할에 적응중이라고 생각하고, 팀에 맞게 자신을 잘 변화시키길 바래야겠어요. -
crstian 2014.09.01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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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ees 2014.09.01분량 이정도면 딱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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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DA 2014.09.01이젠 적응이고 뭐고 잘뛰어줘야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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꽐디옹 2014.09.01잘 읽었습니다~ 근데 왠지 제 생각에, 무작정 까기에는 크로스도 억울할 면이 있을 것 같아요. 애초에 선수가 피보테 자리는 익숙치 않은데다 작년까지의 알론소 역할을 이적하자마자 맡기기엔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네요. 알론소 혹은 전문 수미만 있었더라도 경기에서의 본래 장점이 더 부각될 수 있을 텐데... 현재 스쿼드로 앞으로의 시즌을 운영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전술이 어서 빨리 쇄신되었으면 좋겠네요. (감히 온태님 글에 반박을 하는 제 자신이 쫌 무섭네요. 많이 부족하니 너그러이 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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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온태 2014.09.01@꽐디옹 제가 뭐라고... 저도 아직 모르는게 넘쳐흐르는 사람인데요.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서로 배워가는거니 부담갖지말고 댓글 많이 달아주세요ㅎㅎ
말씀해주신 부분에 대해선 사실 많이 공감해요. 첫술에 배부르기 많이 힘들죠. 근데 앞으로 크로스가 가장 많이 뛸 자리가 그 자리일테고(저는 미드필더 보강은 없을 거라 보는 입장이라), 제가 위에서 깐 내용들은 사실 예전부터 지적 or 의문시되어왔던 부분들이거든요. 그게 이번 경기에 다 터진 거구요. 이렇게 한번 터졌으니 앞으로 개선해나가는 과정이 있을텐데, 그때 이 경기와 비교해가며 어떤 점이 나아지고 있는지 비교해볼 수 있겠죠. 그래서 글에 대놓고 좀 다 적은 감이 있네요. 제가 짧은 후기 시리즈를 계속 쓰는 이유가 레매분들과 얘기하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봤던 경기들을 나름대로 기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거든요. -
라데시마찬양해 2014.09.01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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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왕 2014.09.01좋은글 입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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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2014.09.02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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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 2014.09.02아무래도 크로스는 알론소만큼 해줄순 없나봐요, 애초에 알론소랑 완전 똑같은 모습이 아니더라도 다른 스타일로라도 공백을 매워주길 바랬는데..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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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ul 2014.09.02캬아 늘 잘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