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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세대' 2009 스페인 U21

M.Salgado 2014.03.07 06:09 조회 4,629 추천 20
잔인한 이야기지만 스포츠가 추구하는 여러 정신적인 것들은 사회에선 통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작은 것이지만 공통되는 것도 있다. 바로 어린 세대에 필요 이상의 기대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기대가 크면 실망은 큰 법이라는 진리를...


축구에서도 청소년 대표팀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유소년 성장 시스템이 발전을 이루며 '애들 싸움'이란 취지가 이상하게 이상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본래 청소년 대표팀은 '유스팀에서 뛰는 선수들 + 몇 에이스'의 조합으로 이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는 주전 베스트 일레븐이 각 리그에서 주전으로 뛰고있는 선수들로 이뤄져있다. 이러니 축구팬들은 환장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청소년 대표팀의 선수 소집명단이 발표될 때면 축구팬들은 어느 구단이 얼마나 선수를 배출했는지 찾아보며 이는 쓸데없이 응원하는 팀의 자부심 싸움으로 번진다. 또한 몇 설레발떨길 좋아하는 축구팬들은 이름도 생소한 선수들의 유튜브 스페셜 영상을 찾아보며 다른 이들에게 "이 선수 넥스트 누구누구라네요"라며 소개하기도 한다. 물론 이게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고로 아는 척 할땐 어린 선수에 대해 아는 척하는게 축덕계에선 꽤 먹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어린 선수에 대한 지식은 5년 후 리그를 호령하는 선수들에 대한 지식으로 성장한다. 

이러한 어린 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조사가 꾸준히 이뤄지는 대표팀이라면 역시 스페인 청소년 대표팀을 뽑을 수 있다. 예전부터 유소년 선수 육성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며 그 성과도 이뤄낸 구단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길러내 다른 팀 주는 구단과 어린 시절부터 자기네 축구 철학을 세뇌하듯이 집어넣어 종국엔 그 스타일말고는 전혀 쓸 수 없어 버리는 구단 두 구단의 덕이 크다.

스페인 청대라 하면 화수분 같이 쏟아지는 인재들로 이뤄지는 팀이라는 인상이 있다. 그나마 우리의 기억을 들춰보자면 에밀리오 부트라게뇨로 시작하여 펩과 훌렌 게레로 세대를 지난다. 이후 라울과푸욜로 대표되는 20세기말 시대를 지나고... 아 챠비가 활약한 2000년대 초반도 빼놓을 수 없다. 그후 파브레가스와 이니에스타, 요렌테가 등장하고 최근에는 티아고를 중심으로 한 세대가 세계를 주름잡았고 이제는 헤세와 모라타가 스페인 U21 대표팀의 주축을 맡고 있다.

대체로 유럽 축구 청소년 대표팀의 세대라하면 2년마다 열리는 U21 대표팀 선수권을 기준으로 하는데, 스페인은 각 세대마다 성적에 상관없이 적어도 몇 명씩 스타를 만들어냈고 이는 곧 스페인 성인 대표팀의 힘이 되었다.

각 세대별 스페인 청대 출신 중 대표팀에서 알려진 선수들.
2002: 레이나, 챠비, 비센테, 마르체나, 호아킨.
2004: 발데스, 알론소, 토레스.
2006, 2007: 알비올, 아르벨로아, 파브레가스, 요렌테, 이니에스타, 실바, 후안프란, 솔다도.
2009: ???
2011: 데 헤아, 하비 마르티네스, 아드리안, 마타, 티아고.
2013: 데 헤아, 알베르토 모레노, 이야라멘디, 이스코, 코케, 티아고, 모라타.

주목해야할 점은 본선은 그 해 열리지만 예선전은 약 2년전부터 시작된다는 것인데, 이를 계산하면 파브레가스와 데 헤아의 경우 19세 대표팀을 건너뛰고 바로 U-21 대표팀으로 월반했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데 헤아나 하비 마르티네스의 경우 살면서 평생 한번 나가볼 대회에 두번이나 나가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포인트는 이게 아니고 2009년 대회에 대한 이야기다. 비록 하비 마르티네스가 출전했었지만 그의 케이스는 만 20세의 나이로 출전한 위에 설명한 '월반한 재능' 케이스다. 때문에 나는 하비 마르티네스를 제외할 경우 2009년 대회 멤버 중에서 지금 기대한만큼 제 역할을 해주는 선수가 있을까 생각해봤고 내 결론은 '없다'였다. 그렇다. 2009년 세대는 21세기가 시작된 이래 스페인 유일의 '망한 세대'다.

역시나 기대는 상당했다. 리가에선 티키-타카 철학에 따라 자란 바르셀로나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며 그에 질세라 레알 마드리드도 하비 가르시아와 그라네로를 리가 주전급 선수로 키워냈다. 세비야도 나바스 라모스 세대에 이어 디에고 카펠이라는 괜찮은 윙어를 발굴해냈고 데포르티보는 아드리안과 시스코라는 두명의 좋은 공격수를 만들어내 1998년 이후 10년만의 우승을 노렸다.

하지만 기대도 크면 실망도 크다고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스페인은 1승 1무 1패 B조 3위라는 어울리지 않는 성적으로 조별 본선 탈락이란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참고로 B조의 2위는 독일이 차지하고 1위는 무려 잉글랜드가 차지했다. 결승에는 이 두 팀이 그대로 붙어 독일의 우승으로 마무리되며 외질은 결승전 MOM을 수상받았다. 참고로 MVP는 대회 득점왕을 거머쥔 스웨덴에 마르쿠스 베리였다.

당시 스페인 경기 / 득점자

스페인 0 - 0 독일
0 - 스페인: 아센호; 세르히오 산체스, 토레혼, 치코, 몬레알; 하비 마르티네스, 라울 가르시아; 그라네로(페드로 레온 87'), 후라도, 시시(카펠 70'); 보얀(시스코 82').
0 - 독일: 노이어; 벡, 회베데스, 보아텡, 보에니슈(슈멜처 38'); 케디라, 아오고; 마린(벤 하티라), 외질, 카스트로(에버트 86'); 데야가.

스페인 0 - 2 잉글랜드 / 프레이저 캠벨, 제임스 밀너
0 - 스페인: 아센호; 아스필리쿠에타, 토레혼, 하비 가르시아, 몬레알; 마리오 수아레스(페드로 레온 81'), 라울 가르시아; 아드리안, 하비 마르티네스(시스코 69'), 후라도; 보얀(카펠 57').
2 - 잉글랜드: 조 하트; 크레이니, 마이카 리차즈, 오누하, 깁스; 무암바; 밀너(크레이그 가드너 84'), 캐터몰, 노블, 아담 존슨(월콧 62'); 아그본라허(프레이저 캠벨 39').

스페인 2 - 0 핀란드 / 토레혼, 페드로 레온
2 - 스페인: 아센호; 아스필리쿠에타, 토레혼, 마르카노, 몬레알; 마리오 수아레스, 라울 가르시아; 페드로 레온(호나탄 페레이라 68'), 그라네로(카펠 83'), 후라도(시시 21'); 시스코.
0 - 핀란드: 레흐보타라; 잘라스토, 포르틴, 투루넨, 라이탈라; 하말라이넨, 페르파림 하테마이; 메흐멧 하테마이, 스파르브(바사라 38'), 하콜라(카르카이넨 76'); 푸키(사디크 46').

어쨌든 스페인은 3위란 성적표와 함께 그대로 거품이 빠졌다. 하비 가르시아는 이후 페레스 회장이 부임하면서 벤피카로 팔려갔고 시스코는 뉴캐슬 최악의 영입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외 선수들도 막내였던 하비 마르티네스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다 망... 그냥 현재 근황을 보자.

2009 스페인 U-21 선수들 (당시 소속팀 → 현소속팀)

GK
1. 로베르토 히메네스 (레크레아티보 → 올림피아코스)
데 헤아로 유명해졌지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레알 마드리드만큼이나 골키퍼 육성에 꽤 신경을 쓴 팀이다. 아틀레티코 유스출신인 로베르토는 스페인 단계별 청대를 지냈는데, 당시 세르히오 아센호와 페드로 레온, 카노비오를 중심으로한 바야돌리드 돌풍으로 인해 정작 본대회에선 세르히오 아센호에게 키퍼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대회 이후엔 아틀레티가 바이백 조항으로 다시 데려왔으나 그와 함께 라이벌 세르히오 아센호도 영입해 결국 다시 떠나고 말았다. 이후 사라고사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이번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다시 입성했으나 이번엔 쿠르트와라는 거대한 산이 버텨 그리스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했다. 지난 시즌 겨울 이적 시장에 레알 마드리드의 영입 타겟 중 하나였으나 마드리드의 선택은디에고 로페스였다.

13. 세르히오 아센호 (레알 바야돌리드 → 비야레알)
만년 하위권 레알 바야돌리드가 그나마 자랑하던 것이 바로 세르히오 아센호와 페드로 레온이었다. 매경기 믿을 수 없는 선방을 보여주던 아센호는 2009년 U21 대회에서도 4살이나 많던 로베르토의 자리를 밀어내고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다.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성공 신화가 쓰여질 줄 알았지만 이른 슬럼프가 찾아오면서 다비드 데 헤아에 주전 자리를 내줬다.

2011년에는 무릎 부상으로 인해 시즌 전체를 날려먹으며 모두에게서 완전히 잊혀졌다. 그나마 이번 시즌 비야레알로 임대 이적해 꾸준히 출장하며 부활을 준비 중 이다.

23. 안토니오 아단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 레알 베티스)
레알매니아 회원이면 잘 아는 그 선수다. 카스티야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다 2010년 승격되었다. 하지만 이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012/2013시즌에는 카시야스의 부상으로 얻은 천금같은 기회를 알아서 날려먹었다. 이후 자유 계약으로 시장에 나왔으나 여름 이적 시장에 새 팀을 찾지 못하고 11월에야 이탈리아 칼리아리로 이적했다. 칼리아리에서 단 두경기 뛰었는데 그 경기를 본 사람의 말로는 정말 못했다고 한다. 이후 칼리아리와도 계약을 해지하고 레알 베티스로 둥지를 옮겼다. 스페인 물이 맞는지 베티스에선 잘하고 있다.


DF
2. 미겔 토레스 (레알 마드리드 → 올림피아코스)
토레스하면? 미겔 토레스! 하던 시절. 카스티야에서 뛰었으나 카펠로 당시 레알 마드리드 감독에 의해 승격되었다. 유틸리티 수비수로 공격을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수비형 풀백으로 뛰었다. 구티 중심 시절 레알 마드리드 팀플레이 스페셜 영상에 나오는 크로스로 유명하다. 2009년 대회에선 백업 멤버로 벤치에만 있었다.

이후 헤타페로 이적해 주장까지 맡았지만 이번 시즌 카스티야 시절 은사 미첼 감독의 부름으로 그리스 올림피아코스로 이적했다. 백업 수비수로 뛰는 중으로 딱 자기 수준에 맞는 팀으로 갔다.

3. 나초 몬레알 (오사수나 → 아스널)
오사수나가 애슬레틱 빌바오, 레알 소시에다드와 어깨를 나란히하던 시절이다.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와 함께 양 측면 풀백으로 혜성같이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2009년 대회에서도 주전 레프트백으로 출전했으나 역시나 수비적인 면에서 문제를 보였다.

이후 말라가로 이적했으나 뜬금없이 레프트윙어에서 레프트백으로 전향한 엘리세우와 주전 경쟁을 했다. 이후 두다까지 레프트백으로 기용되며 더욱 경쟁에 빡세졌다. 하지만 지난해 말라가의 재정난을 틈타 잉글랜드 아스널로 이적해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백업 레프트백으로 중용받고 있었으나 최근 오사수나시절 후배 아스필리쿠에타가 왼쪽에서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 불안한 상태다.

4. 하비 가르시아 (레알 마드리드 → 맨체스터 시티)
레알 마드리드 유스 출신으로 오사수나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한시즌을 보낸 상태였다. 수비형 미드필더였으나 레알 마드리드에서 센터백 백업으로 뛰기도 했었고 스페인 21세 대표팀에선 토레혼과 함께 주전 센터백으로 출장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발도 느려 쉴새없이 상대에게 공략당하며 무너졌다. 잉글랜드전 패배의 원흉 수준으로 지목받고 바로 다음 경기 부턴 치코에게 자리를 내줬다.

레알 마드리드도 하비 가르시아는 이 팀에서 뛸 레벨이 아니라며 벤피카로 이적시켰다. 하지만 이는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21세 대표팀 모두 그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래 수비력을 겸비한 미드필더로 수비보단 빌드업에 큰 장점을 가지는데 수비를 기대한 것. 이후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5. 마르크 토레혼 (에스파뇰 → 카이저슬라우테른)
당시만해도 다니 하르케와 함께 에스파뇰이 발굴해낸 유망주 센터백 듀오로 명성을 떨췄다. 하지만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였던 니코 파레하가 영입되면서 주전 자리가 위태로워졌다. 결국 2009년 대회에서 주전 센터백으로 출전했으나 그냥 VIP석에서 월콧 뛰어당기는거만 보다 끝났다. 이후 라싱 산탄데르로 이적했다.

안타깝게도 라싱 산탄데르에서도 잘하진 못했다. 결국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독일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뛰는 중이다. 딱 이 정도 수준이었을지도.

12.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오사수나 → 첼시)
윙어출신으로 라이트백으로 전향해 오사수나의 주전자리를 꿰찼다. 미겔 토레스를 밀어내고 주전 라이트백으로 출전했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프랑스 마르세유를 거쳐 잉글랜드 첼시에서 뛰며 최근에는 왼쪽 수비수로 자주 출전한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는 양측면 백업으로 소집되는데 아무래도 아르벨로아가 컨페드컵 이후 신뢰를 많이 잃은 것으로 보여 오사수나 시절 동료 몬레알과 함께 브라질로 갈 것으로 예상된다.

14. 세르히오 산체스 (에스파뇰 → 말라가)
에스파뇰에서 하르케와 토레혼에 이어 탄생시킨 유망주 수비수다. 레알 마드리드도 지켜본 재능으로 2006/2007시즌 카스티야로 임대 이적한 바 있다. 당시 카스티야는 막장 수비진으로 강등권이었는데, 세르히오 산체스 영입 이후 그나마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으나 강등을 피하진 못했다. 2009년 대회에선 백업 센터백으로 참가해 독일과의 대결에서 수비 강화를 위해 주전 라이트백으로 출전했다.

이후 세비야로 이적해 라이트백과 센터백을 오가며 활약했다. 루벤 데 라 레드처럼 경기 중 돌연히 쓰러져 많은 이들의 걱정을 샀으나 데 라 레드와는 달리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깔끔하진 않지만 정력적으로 뛰어 물고 늘어지는 타입이다. 짜증나는 타입의 수비수. 현재는 말라가에서 뛰고 있다.

15. 치코 (알메리아 → 스완지 시티)
187cm의 장신 센터백인데 공중볼 처리 능력과 함께 거침없이 슬라이딩 태클을 날려 유명해진 선수다. 2009년에는 백업으로 벤치워머였다.

2010년 당시 중위권 팀이었던 이탈리아 제노아로 이적해 잘해낼 줄 알았으나 이탈리아 무대에선 통하지 않으며 제대로 망했다. 당시만 해도 이 세대 중 가장 망한 선수가 될 줄 알았으나 나중에 시스코가 등장한다....

2011년 레알 마요르카에서 뛰었고 당시 감독 미하일 라우드룹 감독의 부름을 받아 스완지 시티로 이적했다. 슬라이딩을 즐기는 선수라 항상 레드 카드가 따라다닌다.

16. 이반 마르카노 (라싱 산탄데르 → 올림피아코스)
수비수가 지녀야할 단단함에 공격전개 능력까지 모두 갖춘 완성형이 될 것이라 판단받으며 FM에서 좋은 포텐을 부여받은 그 선수다. 2009년에는 백업으로 참가했다.

이후 여러 구단의 쟁탈전 아래 비야레알이 영입하면서 많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진짜 귀신같이 망하면서 러시아 루빈 카잔으로 이적했다. 이번 시즌에는 미첼 감독의 스페인 커넥션의 일원으로 그리스 올림피아코스에서 뛰고 있다. 비야레알도 에펨믿고 샀다가 망한듯...


MF
6. 하비 마르티네스 (애슬레틱 빌바오 → 바이언 뮌헨)
본래 지난해에 열린 대회에 출전했어야 할 나이인데 월반해서 4년전 대회에 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전 미드필더로 출전해 팀의 중심축 역할을 맡았다. 이 대회에서 당한 굴욕은 다음 대회인 2011년 대회에서 우승으로 갚는다. 사실 너무 유명해서 더이상 쓸 말이 없음.

7. 시시 곤살레스 (레크레아티보 → 오사수나)
발렌시아 유스 출신으로 유망한 레프트윙어였으나 임대만 다니다가 결국 레크레로 이적했다. 17세 이하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세스크, 후라도와 함께 에이스로 활약해 2009년 대회에서도 7번 유니폼을 받았다.

이후 바야돌리드를 거쳐 오사수나로 이적했으나 세후도와 아르멘테로스에 밀렸다. 어린 시절 드리블 돌파를 주로하는 타입은 성인 무대에서 훅갈 수 있음을 증명한 타입.

8. 라울 가르시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오사수나 유스 출신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중거리 슈팅 능력을 지녀 기대를 받았던 선수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영입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2007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그런데 수비형 미드필더가 수비를 잘 못해서 '사실은 거품이었구나~' 하고 다들 안심했다. 2009년에는 스페인 U21팀 주장으로 출전했으나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라울 가르시아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길을 포기하게 되는데 지금보면 이는 대성공이다. 좋은 슈팅 능력을 바탕으로 압박할 줄 아는 공격수로 변신하면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큰 힘이 되고 있다.

10. 호세 마누엘 후라도 (마요르카 →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뛰어는 볼컨트를로 카스티야의 지단이란 평을 듣던 미드필더였으나 2006년 주전으로 뛰겠다고 이적 선언을 한 후 선택한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다. 덕분에 유다도라는 별명도 얻었었다. 사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주전경쟁에서 실패해 망하는게 아닌가 싶었으나 2008/2009시즌 레알 마요르카로 임대 이적해 좋은 모습을 보여 약간의 기대를 얻은 채 2009년 대회에 출전했다. 그런데 독일과 잉글랜드 두 팀의피지컬이 너무 좋아서 후라도 기술로는 큰 재미를 못봤다.

이후 독일 샬케에서 뛰다가 현재 러시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뛰고 있다. 피지컬의 한계를 넘지 못한 케이스.

11. 에스테반 그라네로 (헤타페 → 레알 소시에다드)
후라도가 카스티야의 지단이라면 그라네로는 레알 마드리드 C의 지단이라 불렸다. 후라도 이적 후 카스티야의 플레이메이커로 뛰었으며 이후 다크호스 헤타페의 플레이메이커가 되었다. 2009년 대회에선 후라도와 함께 빌드업에 참여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뛴 걸로 기억. 물론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QPR로 이적했으나 모두가 알다시피 결과는 강등이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레알 소시에다드로 임대 이적했으나 전방 십자 인대 부상으로 망했다.

17. 디에고 카펠 (세비야 → 스포르팅 리스본)
세비야에서 나바스와 함께 양측면 윙어를 맡으며 세비야의 전성기를 이끈 윙어다. 빠르고 드리블을 잘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라모스랑 마르셀루만 못 막은거였다. 이후 리스본으로 이적했다. 그래도 카시야스 스페셜에 나오는 명장면 만들어줬으니 된거야...

18. 마리오 수아레스 (마요르카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꾸준하게 제 몫을 다해주는 수비형 미드필더다. 2009년 대회에서도 하비 마르티네스랑 짝을 이뤄 피보테 역할을 맡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스 출신으로 마요르카의 활약을 바탕으로 친정팀으로 다시 이적한 후 가비와 찰떡호흡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주전 피보테로 활약 중 이다.

22. 페드로 레온 (레알 바야돌리드 → 헤타페)
사실상 리가에서 가장 잘하던 어린 선수였는데 이상하게 로페스 카로 감독은 너무 클래식한 스타일이라 생각했는지 후반 다 끝나가는 마당에나 출전시켰고 선발 출전도 탈락이 확정된 핀란드전에나 시켜줬다. 노력에 비해 보답을 못받는 인생인가보다.

2010년 레알 마드리드에 입성했으나 주제 무리뉴 당시 감독과의 불화로 다음 시즌 헤타페로 이적했다. 거기서 헤타페 에이스 놀이하고있다. 아디다스 광고에 나오는 밀란 상대로 동점골 넣는 장면은 리얼.... 참고로 내가 엄청 밀었다. 인정.


FW
9. 보얀 크르키치 (바르셀로나 → 아약스)
못커도 라울. 설명 끝.

19. 시스코 (뉴캐슬 유나이티드 → 코르도바)
데포르티보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스페인 선수들의 잉글랜드 이적이 유행처럼 번져가던 때라 시스코 역시 뉴캐슬로 이적했다. 하지만 첫 시즌 부상으로 불운한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이후 부상을 달고 살며 완전히 훅갔다. 현재는 세군다리가 코르도바에서 뛰는 중이다.

20. 호나탄 페레이라 (라싱 산탄데르 → 비야레알)
라싱 시절 지기치와 빅앤스몰 투톱을 이루며 활약했던 그 선수다. 내가 이 선수를 처음알게 된건 유소년 대회 때 골키퍼가 퇴장당해서 호나딴이 어쩔 수 없이 골키퍼 장갑을 꼈는데, 엄청난 선방을 보여줬다는 뉴스를 보고나서다. 어쨌든 자기의 신체적 한계를 잘 알고 지기치를 이용한 공격으로 라싱 산탄데르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이후 베티스를 거쳐서 비야레알에서 주전 공격수로 뛰고있다. 이 글을 쓰게 만든 계기도 간만에 이 친구 생각이 나서 때문이다.

21. 아드리안 로페스 (말라가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 당시만 해도 터질듯 터지지 않는 유망주였다. 스페인 유소년 대회와 유스리그에선 정말 잘하는데 이상하게 성인 무대에선 골이 터지지 않아 여기저기 임대 생활도 했었다. 2009년 대회에서도 참가는 했으나 비중은 보얀과 시스코에 이은 세번째 공격수 수준이었다.

이후 시스코가 떠난 데포르티보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원래 2010/2011시즌 종료 후 데포르티보와 1년 연장 옵션이 있었는데 아드리안이 이를 파기하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자유 계약으로 이적해 데포르 팬들의 맹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후 팔카오와 좋은 호흡을 보여 스페인 대표팀에도 잠시 승선했으나 팔카오 이적 이후 디에고 시메오네 아틀레티 감독이 코스타와 라울 가르시아 투톱을 중용함에 따라 백업으로 밀린 상태다.


사실 망했다 망했다해도 양측면 수비수인 아스필리쿠에타와 몬레알은 아르벨로아 덕분에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 승선한 확률이 높다. 그래도 각 세대마다 주전급 한명씩은 배출해내는 스페인인데 2009년 유럽챔피언십 멤버들은 그 기대에 비하면 아쉬운게 사실이다.

스페인 성인 대표팀과 바르셀로나의 성공아래 2009 스페인 U21의 실패는 크진 않지만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이슈였다. 이 세대의 실패 이후 스페인 U21의 신임 감독이었던 루이스 미야는 철저히 바르셀로나 스타일을 따랐으며 대부분의 선수를 바르셀로나에 몸담은 선수 중심으로 선발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이 시기를 시작으로 최근 모라타, 헤세의 등장 이전까지 파레호 정도를 제외하곤 레알 마드리드의 유스 시스템 선수들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래서 우승했나보다.

결론은 여러분 축구 아는 척하려면 유스경기보세요. 이번 멤버글을 쓰면서 몇몇 선수들은 조사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체계적으로 기록이 나와있는 경우가 얼마 없어서 아쉬웠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이탈리아 팬분은 아예 엑셀파일로 이탈리아 대표 선수들이 언제 나오고 몇번 출장했는지 기록을 다 남기셔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시던데 부럽더라. 난 귀찮아서 그런 건 못하고.... 잠이나 자야겠다... 여러분 맛살토크 많이 사랑해주세요... 보얀처럼 망할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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