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클라시코 후기 : 긍정적 vs 부정적.
오늘 엘클라시코.. 음 어떻게 보셨나여.
몇 가지 측면에서 경기를 좀 되짚어보고 싶네요.
먼저 양 감독의 전술.
처음부터 맞춤 전술(?)로 안감독님이 승부수를 띄우면서, 뭔가 전략적으로 승리해보겠다는 노림수가 있었죠. 바르셀로나의 타타 역시 오늘 메시를 오른쪽 공격수 자리에 선발 출전시키면서 변화의 한 수를 뒀습니다.
그리해서
라모스 중앙 + 제로톱(+호날두-베일 스위칭) vs 메시 오른쪽 + 파브레가스 가짜 9번
이런 기책과 기책의 싸움으로 시작을 했네요.
결과적으로 봤을 때 저 두 작전은 전부 실패했습니다. 라모스는 일찌감치 카드 받았고, 제로톱(이라기보다는 표면상으로는 호날두 원톱 + 가끔 베일이 톱으로 올라가면 호날두가 사이드로 빠지는)은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했죠. 한 편, 메시는 오늘 90분 내내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고, 파브레가스는 백패스만 하다가 교체됐습니다.
결국 양 감독의 노림수는 둘 다 망했죠. 그러다 보니 전반전에는 쟤네는 더럽게 못하고, 우리는 끔찍이도 못하는 양상이 펼쳐졌습니다.
여기서 실력 + 약간의 행운이 따른 것이 네이마르의 골이었죠. 이것도 네이마르 골이 들어가서 그렇지 냉정히 타타의 전술이 성공한 것은 아니에요. 전반전까지만 해도, 이게 우리가 알던 엘클이 맞나 싶을 정도로 양 팀의 경기력은 별로였습니다. 뭐 탐색이라고 봐도 되겠지만 그러기엔 양 측의 공격이 너무 지지부진했죠.
먼저 변화를 준 건 안첼로티입니다.
라모스를 빼고 이야라멘디를 넣으면서 자신의 노림수가 실패했다는 걸 인정했고, 베일을 빼고 벤제마를 넣으며 4-3-3 형태로 다시 전술을 바꿉니다.
여기서부터 경기력은 가파르게 상승했다고 보네요. 중원에서 이야라멘디는 유벤투스전과는 달리 과감하게 전진패스를 시도했으며, 벤제마는 기합 바짝 든 모습으로 패널티 에어리어 바깥으로 넓게 움직이며 패스 플레이에 도움을 줬죠.
그 후로는 우리가 계속해서 공격을 주도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벤제마의 슛이 골대를 강타하고, 호날두가 침투에 성공하고, 중원에서의 점유율을 높여가는 장면들이 나왔죠.
그리고 모라타가 아닌 헤세를 투입, 헤세가 만회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전반의 노림수는 뭐 대망이었지만, 교체는 성공이라고 봐야겠죠. 유스 출신이 골을 터뜨렸으니 그나마 좀 마음이 낫네요.
별 변화를 주지 않던 타타는, 전반전부터 아예 보이지 않던 파브레가스를 빼고, 오른쪽에서 지지리도 하는 것 없던 메시를 가운데로 옮기며 산체스를 투입합니다. 근데 이 전술 역시도 뭐 딱히 맞아떨어진 건 아니에요.
엄연히 말해서 산체스의 골은, 완벽하게 개인 기량으로 만든 골입니다. 교체가 성공이면 성공이지, 바꾼 전술이 성공한 건 아니에요. 메시는 가운데로 옮겨와서도 딱히 하는 게 없었고, 꾸레들은 후반전에 이렇다할 날카로운 공격을 "만들지 못했"으니까요.
네이마르와 산체스에게 찬스들이 주어졌지만 그 전에 그네들이 만들어오던 정교한 플레이를 생각해보면 그와는 좀 거리가 있었죠.
오히려 원래의 전술로 회귀한 후에는 똑같이 한 골씩을 주고받았지만 우리 쪽 경기력이 더 좋았습니다. 후반전에는 진짜 뭔가 되겠구나 싶었으니까요. 산체스가 인생골을 성공시키지 못했다면 경기의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을 겁니다.
베날두 vs 메시마르.
소문난 잔치에 그다지 먹을 게 없었네요. 베일은 안첼로티의 모험적인 전술 하에서 뭐 딱히 능력을 보여주고 말 것도 없이 뛰어다니다 교체되었습니다. 엘클에서의 진가 증명은 뭐..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되겠네요. 반면 네이마르는 선제골을 기록했고, 우리 측면을 꽤나 괴롭혔죠. 사실 골을 넣어서 그렇지 네이마르도 후반에는 별 것 없더군요. 카르바할이 매우 잘 해줬습니다.
실점 장면에서의 네이마르의 침착함은 인정해야 하는 것과는 별개로, 카르바할은 매우 잘해줬죠. 공격에도 기여하고 열심히 뛰면서 후반전 좋은 흐름을 도왔습니다. 수비적으로도 네이마르와 훌륭히 맞섰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시간이 갈수록 네이마르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호날두 vs 메시.
둘 다 거의 경기에 기여한 것이 없네요. 호날두가 1어시를 기록하면서 그나마 좀 낫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메시는 특유의 수비진 뭉개기를 보여주지 못했고, 호날두는 피케-마스체라노의 느린 발을 공략하지 못했죠.
뭐 사실 양 감독이 전반전에 이상한 모험을 하느라 양 선수가 본인들의 기량을 100퍼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겠네요. 어쨌든 양 선수는 평소와는 달리 그다지 팀에 큰 기여를 하진 못했습니다. 딱히 누가 더 잘하고 못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만, 개인 대결에서는 호날두가 조금 더 나았다고 보네요. 그래도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했으니까요. 메시는 거의 골이었던 거 하나 날린 것 외에는 딱히 인상적인 모습이 없었고요.
그렇다면, 긍정적인 것은?
비싼 수업료를 내고 얻어낸 수확이 있다면, 이야라멘디-모드리치-케디라가 잘 돌아가고, 최전방에서 "벤제마만 잘해준다면" 안첼로티 감독이 구상하는 축구는 꽤나 경쟁력이 있겠다. 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보고 있기도 답답했던 전반전과는 달리, 후반전에 보여준 우리 팀의 "경기력" 은 꽤 고무적이었습니다.
벤제마는 패널티 에어리어 안에 짱박혀있기만 하던 지난 경기들과는 달리, 활발하게 측면, 2선으로 움직이면서 패스 플레이에 일조했네요. 그 때부터 우리의 2선-1선 사이에 활발함이 돌기 시작했으니까요. 얘는 이런 식으로 움직여야 됩니다. 이렇게 해야 공이 돌고, 공이 돌아야 공간이 나오고, 그 안으로 누군가가 파고 들어가야 찬스가 만들어집니다. 이 플레이를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호날두나 베일, 디마리아는 앞에 장승이라도 세워 놓는 게 없는 것 보다는 훨씬 좋은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이에요. 근데 그 장승이 적절하게 움직여주면서 패스도 곧잘 해주면 그 위력은 곱절이 되죠. 경기 보면서 확실히 느꼈네요. 벤제마만 잘해주면 2013년이 가기 전에 우리 팀의 "좋은 축구"를 볼 수 있겠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야라멘디가 전진패스를 과감히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지루하던 유벤투스전의 후반전과는 달리, 엘클의 후반전은 꽤나 속도가 있었네요. 이렇게 하면 잘할 것을 왜 그렇게 아꼈나 싶을 정도로 오늘 이야라멘디의 볼 배급은 괜찮았습니다. 패스하다 뺏기면 또 뺏으면 되잖아요. 앞으로도 좀 팍팍 전진패스를 시도했으면 합니다. 바르셀로나한테도 통하면 다른 팀들한테도 통할 테니까요.
그리하여, 벤제마가 정신을 좀 차려서 이 모습을 계속 이어가고, 이야라-모들-케디라가 이런 식으로 잘 해준다면 우리의 경기력은 빠르게 안정될 겁니다. 오늘 후반에서 보여주었던 중원에서의 볼 배급, 공격의 연계가 궁극적으로 안첼로티가 입히려고 하는 색깔일 거에요. 그 색깔이 그나마 45분 동안, 엘클 원정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게 가장 긍정적인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헤세가 넣었죠. 휴. 다행입니다. 그래도 우리 유스 출신의 선수가, 그것도 교체되어 들어와서 엘클 골 맛을 봤으니, 헤세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결론
결국엔 진 경기라지만, 돌아보니 이만큼이나 긍정적인 부분들이 있습니다. 산체스에게 허용한 인생 골을 제외하면 그래도 우리 선수들 잘 싸워줬어요. 오늘은 바르셀로나에게 행운이 따랐다. 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벤제마의 슛이 골대를 강타했고, 호날두가 조금은 미심쩍게 패널티킥을 인정받지 못했던 걸 제외하면 우리 선수들은 바르셀로나 홈에서 잘했습니다.
유효 슈팅 갯수는 우리가 오히려 많았고 점유율은 45:55 정도로 거의 비슷했습니다. 전반에 어버버하는 와중에도 점유율이 꽤 밀렸던 걸 생각하면 (39:61 정도였죠) 우리 팀은 후반에 꽤 괜찮게 플레이한 거에요.
아마 꾸레들도 이겨서 좋긴 해도 좀 찝찝하긴 할 겁니다. 걔네들 홈에서 걔네들이 더 잘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경기력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타타의 전술은 "산체스 In 파브레가스 Out" 하나를 제외하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었고요.
하.. 그래도 6점 차이네요.. 흠.. 뭐 어차피 오사수나가 비겨주기 전에도 5점차이였으니, 아직 충분히 여지는 있다고 보네요. 홈에서 되갚아주면 되고, 또 오늘같은 경기력의 바르셀로나가 리그에서 미끄러지지 말란 법도 없고요.
결국 벤제마가 앞으로 얼마나 정신 차려주느냐, 이야라멘디가 얼마나 경기를 만들어주느냐에 따라서 레알에게 반격의 여지가 있느냐, 아니면 작년과 마찬가지로 겨울이 되기 전에 결판이 나 버리느냐가 결정될 것 같습니다.
베일은... 저는 길게 봅니다. 지금은 적응기, 그리고 엘클라시코가 빨리 왔죠. 이미 모든 국대 경기를 소화하며 풀 핏으로 몸을 만들어둔 네이마르와, 프리시즌 중에 훈련 및 경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베일의 차이가 제대로 드러난 것이 이 경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베일, 한두 달만 쓰고 말 것 아니잖아요. 이번 시즌만 써보고 아니면 내칠 선수 아니잖아요. 당장 다음 리가 엘클에서도 써야 될 거고, 챔스 토너먼트는 아직 시작도 안했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베일은 계속 써야 되는 선수니...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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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의 래매 2013.10.27케디라는 확실히 이쉽고 이야라의 패스와 이스코의 조율의 눈만 뜬다면 상당히 개선되어질것 같습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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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색날두 2013.10.27다른 중미보다 있는 자원을 활용 했으면 해요..
이야라는 아직 보여준것도 없는데 귄도간이나 포그바 라니..
모드리치도 진짜 기대 엄청했는데 ... -
7Raul7 2013.10.27*동감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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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algado 2013.10.27긍정적: 축구할 줄은 알더라
부정적: 벤금님 닉넴이 그대로 -
플로베르 2013.10.27잘 읽고 갑니다..오늘 경기 그래도 개선의 여지가 보여서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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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축황 2013.10.27아깝다 닉넴 바뀔수 있었는데..
바보같이 그걸 못넣는 축황 -
샴 2013.10.27모드리치 이야라 케디라 조합이 오늘 굉장히 좋아보였고 이야라 잘하드만요ㅋㅋㅋ 유베전땐 왜그랬는지 커팅도 곧잘하고
벤제마는 오늘 뛰기도 많이 뛰고 중거리슛은 정말 아쉽ㅜㅜㅜㅜ
개인적으로 발데스 오늘 참 못막을건 막더니 헤세골은 막기 쉬워보였는데 먹히는... 들어가는거보고 오잉?! 싶었어요ㅋㅋㅋㅋㅋ
안첼로티도 베일도 길게 봐야죠 솔직히 새로운 감독 새로운 선수가 오면 1시즌정도는 적응기라고 해주는데 너무 급하지 않았으면 해요 요즘 맨날 적응기없는 선수들이 많은데 그건 그선수들이 대단한거고......
물론 안첼로티가 보여주려는 축구가 뭔지 모르겠다, 서서히라도 뭔가 만들어져가는게 안보인다, 무슨 엘클에서 실험이냐 이러시는 분들도 많지만 다양한 실험을 하고 경험이 쌓이면 정말 더 단단하고 오래갈 수 있는 전술이 탄생할거라 믿습니다 -
madridraul 2013.10.27그냥 처음부터 하던대로 하지 뜬금없이 라모스 수미기용 ㅋㅋ
아 오늘 무기력했던 전반때문에 너무 실망이네요... -
Raul 2013.10.27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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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키 2013.10.28저도 이야라의 전진패스가 경기양상을 바꿨다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