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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지난 20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전설들

Hola Bonita 2013.07.17 22:09 조회 7,653 추천 14



지난 20년간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위대한 전설들을 정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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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데미르 비토르
베니토 플로로가 영입한 이 브라질 풀백은 달랑 세 게임만을 뛰고 전 소속팀인 상파울루로 복귀한다.





프레디 링콘
콜롬비아의 전성기의 주역인 이 미드필더는 91년에 라 리가로 진출한 발데라마와 이기타의 뒤를 이어 호르헤 발다노가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다. 링콘은 리아소르에서 열린 수페르코파를 통해 데뷔했는데, 이 경기에서 그는 골대를 맞춘다. 그러나 이 시즌 18경기에 출장해 2골에 그친 그는 한 시즌만에 브라질로 이적했고 그곳에서 은퇴하게 된다.






(에드윈 콩고와 줄리우 세자르, 두 전설의 투샷)

에드윈 콩고 (사진 좌)
지금 생각해도 왜 영입했는지 이해가 잘 안 가는 이 선수는 위에서 말한 링콘 이후 레알 마드리드에서 플레이한 또다른 콜롬비아 선수이다. 아니, '플레이한 선수'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 같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단 한 번의 공식경기도 나온 적이 없으니까. 그는 계약기간이 끝나는 01/02 시즌까지 임대만 전전하다 팀을 떠나게 된다.

줄리우 세자르 (사진 우)
레알 마드리드에서 의외로 많은 22경기에 뛴 줄리우 세자르는 입단한지 한 시즌만에 밀란으로 쫓겨나듯 임대를 떠났지만 그의 형편없는 퍼포먼스는 여전했고 결국 다음 시즌에도 소시에다드로 임대를 떠났다. 현재 그는 토론토 FC에서 선수 경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제 호베르투
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19경기를 출장했는데, 놀랍게도 이는 두 시즌에 걸친 기록이다. 하지만 그는 운 좋게도 커리어에 리가와 수페르코파 우승을 추가한다. 이후 분데스리가로 떠난 그는 바이에른 뮌헨과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다. (그가 레알 마드리드 소속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세크레타리우
그는 제 호베르투와 함께 파비오 카펠로 휘하에서 리가 우승을 커리어에 추가했다. 그와 제 호베르투의 공통점이 또 하나 있는데, 타 클럽 이적 후에 더 큰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그는 포르투 이적 이후 무링요 휘하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 멤버가 된다.







로베르토 야르니
1998년 월드컵 크로아티아 4강 진출의 주역 중 하나인 로베르토 야르니는 월드컵 전부터 레알 베티스의 손꼽히는 선수 중 하나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월드컵 이후 주가가 대폭 상승한 이 선수를 영입하려 했지만 베티스는 리그 내의 팀에 이적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결국 코벤트리 시티로 이적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코벤트리 시티는 한 달도 되지 않아 야르니를 레알 마드리드로 팔아버리고 이는 축구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의 선수 경력으로 남게 된다. 이런 복잡한 영입 과정에도 불구하고 야르니는 풀백에서 부동의 주전인 호베르투 카를로스를 넘지 못했고 결국 한 시즌만에 팀을 떠났다.






데얀 페트코비치
페트코비치 또한 소리소문없이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간 선수들 중 하나이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두 시즌 동안 달랑 여섯 게임을 플레이했는데, 출장 시간으로 환산하면 81분에 불과하다.




오그녜노비치
히딩크가 레드 스타에서 영입한 이 세르비아 출신 스트라이커는 같은 국가 출신이라는 점과 헤어스타일 때문에 페쟈 미야토비치를 연상하게 만들었으나 실력은 그에 반도 못 미쳤다. 역시 달랑 22게임만을 플레이하고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한다.

미야토비치를 연상하게 만드는 동유럽 갱스터간지






니콜라 아넬카
1999년 클럽의 엄청난 재정난과 히딩크 감독의 전술 개입 폭로 등으로 위기에 봉착한 로렌초 산스 이사회장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 건의 대형 영입을 성사시킨다. 그 중 하나가 지금도 레알 마드리드 역대 이적료 순위 10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3500만 유로의 사나이 니콜라스 아넬카다. 그리고 그는 99/00 시즌 30경기 3골이라는 화려한 기록을 남기며 한 시즌만에 PSG로 떠난다.

몇 년 후 포포투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라울과 이에로가 주동하여 자신을 왕따시켰다고 주장했지만, 그 인터뷰에서 자신의 훈련 무단 불참 및 700분 연속 무득점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는 와중에도 본인 위주로 전술을 개편해야 한다는 기상천외한 인터뷰를 남긴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니, 언급할 수 없었다고 표현하는 점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지 10년 후 남아공 월드컵에서 아넬카는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항명 및 파벌 문제를 일으키고 퇴출당하며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몸소 입증했다.







왈테르 사무엘
02/03 시즌 이에로의 노쇠화와 03/04 시즌 수비수 부족 및 유스 수비진의 부진으로 최악의 위기를 겪은 레알 마드리드는 2004년 여름 드디어 빅 네임 센터백 영입을 성사시킨다. 그가 바로 당시 세리에 A 최고 센터백으로 손꼽히던 Il Muro(The Wall, 벽) 왈테르 사무엘이다. 팬들은 그토록 염원하던 빅네임 센터백의 영입에 열광했으나 사무엘의 퍼포먼스는 처참했다. 결국 사무엘은 한 시즌만에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인테르로 이적하면서 세리에 A로 복귀했다. 

사무엘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10년 이상 이어진 19번 잔혹사의 계보에 속한 선수이기도 하다.








(우드게이트의 입단식 사진. 왜 입단식과 데뷔전에 입고 나온 유니폼의 시즌이 다른지 생각해보자.)
조너선 우드게이트
마드리드는 페르난도 이에로가 떠난 이후 계속해서 그의 대체자를 찾았고, 2004년 여름 그 후보로 낙점한 선수는 하필이면 왈테르 사무엘과 조너선 우드게이트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메디컬 테스트에서 이상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가비 밀리토의 이적을 취소한 바 있지만, 우드게이트는 그러지 못했다. 결국 그의 부상은 그의 데뷔를 크게 늦췄을 뿐만 아니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우드게이트는 입단 15개월만에 치른 데뷔전에서 자책골을 넣고 퇴장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로젠보리전에서 데뷔골을 넣고 팀닥터와 함께 그 기쁨을 나눴다.

5개월 후 치른 아스날전에서 우드게이트는 킥오프 8분만에 부상을 당했고 이 경기는 그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치른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 우드게이트가 전담마크하기로 한 앙리는 결승골을 득점했고 아스날은 8강에 진출한다.






파블로 가르시아 (사진 좌)
오사수나에서 영입한 이 우루과이산 미드필더는 지단, 베컴 호나우도…그리고 역시 레알 마드리드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우루과이산 풀백 카를로스 디오고와 함께 라커룸을 썼다.
현재 35세인 그는 지금도 PAOK에서 플레이하고 있다.

카를로스 디오고 (사진 우)
레알 마드리드는 2005년 여름, 또 다른 우루과이 선수를 리버 플레이트에서 영입했다. 데뷔 초에는 특유의 깔끔한 태클로 나름 주목을 받았으나 겨울 이적시장에서 우선협상권을 이용해 영입한 시시뉴가 주전을 차지하고 노장인 살가도에게도 밀리면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 후 그는 몇 년간 레알 사라고사에서 뛰었는데, 이 팀에서 디오고는 세비야의 루이스 파비아누와 역사에 남을 혈투를 벌이게 된다.

지금 봐도 모니터 밖으로 피가 튀길 듯한 사투의 현장




안토니오 카사노
로마의 핵심 선수 중 하나였으나 2006년경 연봉 인상 문제로 인해 구단 경영진과 불화를 일으키고 결국 팀 동료들과 작별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안토니오 카사노는 06/07 시즌 레알 마드리드로 부임한 은사인 파비오 카펠로 아래에서 갱생을 다짐했으나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한다. 힘나스틱전에서 경기 도중 자신을 교체한 카펠로에게 항명하여 구단으로부터 징계를 받는가 하면 방송국의 카메라에 카펠로의 뒷담화를 하는 장면이 포착되기까지 한다. 결국 카사노는 로마의 라디오 방송에 참석하여 카펠로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한편 전 소속팀인 로마와 토티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으나 외면당하는 굴욕을 맛본다. 이후 구단에서 체중 증가량당 벌금 부과라는 희대의 조치까지 받은 카사노는 결국 2007년 삼프도리아로 임대를 떠나며 그 화려한 행보에 종지부를 찍는다.

카펠로를 흉내내며 조롱하는 카사노




줄리앙 포베르
08/09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임시 감독으로 취임한 후안데 라모스는 베컴의 이적 이후 좀처럼 주인을 찾지 못한 오른쪽 윙어 영입을 요청했는데, 그 결과 영입한 선수가 바로 웨스트햄의 줄리앙 포베르였다. 그리고 그는 레알 마드리드에 달랑 두 게임만 뛰고 사라진다.

놀랍게도 그는 단 한번이지만 프랑스 대표팀에서 뛴 적이 있는데, 지단의 10번을 달고 득점을 했다!

그는 라싱 산탄데르전에서 뤼쌩과 형제상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로이스톤 드렌테
2007년 U-21 유럽 챔피언쉽에서 엄청난 활약으로 대회 MVP에 등극하며 수많은 클럽들의 러브콜을 받은 로이스톤 드렌테는 그 해 여름 유망주로서는 상당한 거액인 1300만 유로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선수 시절 위대한 전설이었으나 은퇴 후에는 다른 의미로 전설이었던 페쟈 미야토비치의 역작이었다. 그러나 그는 2010년까지 4년간 알코르콘전 0-4 대패 등 충격적인 패배의 순간마다 주역으로 남게 되며 에르쿨레스로 임대 이적을 떠난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던 시절보다 오히려 에르쿨레스에서 뛰던 시절 레알 마드리드에 더 많은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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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렌테는 갈락티코마저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등장하는 사진마다 위치에 관계없이 주인공이 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출중한 랩 실력을 과시하는 드렌테







하밋 알틴톱
2011년 무리뉴 감독이 미드필드 및 수비진의 다용도 백업 자원으로 염두에 두고 자유계약으로 영입한 알틴톱은 프리시즌 일정이 채 시작하기도 전에 수술을 받게 된다. 이후 그는 긴 재활 과정을 거쳐 복귀했고 다용도 자원이라는 목적에 걸맞게 풀백과 윙어 등 여러 포지션에 고루 출장했으나 여러 포지션에서 고루 못하면서 결국 한 시즌만에 갈라타사라이로 이적한다. 비록 스포츠적인 면에서는 기대 이하였으나 수술을 받던 당시 경기에 못 나오는 기간 동안 급료를 받지 않을 것을 요청하면서 팬들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남게 되었다.






누리 사힌
2011년 분데스리가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누리 사힌은 사비 알론소의 장기적 대체자로 낙점받고 그 해 여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팬들은 분데스리가를 호령하던 사힌의 아우라를 기대했으나 그는 프리시즌이 채 지나기도 전에 계속해서 부상을 당했고 결국 11월이 가까워져서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그러나 부상에서 회복한 후에도 그는 제대로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고 자신의 장기인 패스보다는 걸핏하면 재발하는 장염으로 마드리드 팬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믿기지 않지만 일단 아직까지는 레알 마드리드 소속이다.







카카
베스트 오브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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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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