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갖고있는 딜레마
마드리드는 전통적으로 최고의 클럽이였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명사 앞에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일 때 어떤 기준을 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기준에서는 축구계에서 통용되는 거의 모든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클럽이 마드리드였기에, 저는 주저없이 마드리드 앞에 '최고'라는 타이틀을, 즐거운 마음으로 달아주고는 합니다. 대륙 컵 대회에서 누구보다 많은 우승을 차지했고, 시기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최고의 선수들을 갖추고 있었으며, 이름을 날린다 싶은 선수들은 누구나 한번 쯤 꿈꿔보는 클럽입니다. 축구 외적으로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마케팅 풀을 갖추고 있으며 그간 쌓아온 월등하고 압도적인 성적에서 비롯된 이미지는 이 팀 자체를 한 수준 위에서 놀게 만들죠.
다만 첫 번째 갈락티코 이후로 이 최강 팀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을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최고의 성적을 내기 위해서, 최고의 선수들을 모은다. 너무나 명쾌한 이 해법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사실은 딱 두 가지 였습니다.
그럼 그 최고의 선수들이 정말 잘 어울릴까?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선수를 위한 자리가 없이 괜찮을까?
이 질문들이 내포하고 있는 함정들을 모두 종합해서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팀의 스피릿은?
문제는 팀 스피릿입니다. 거창하지 않게 말하자면 팀의 분위기, 팀으로써 가지게 되는 열정과 헌신,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는데서 나오는 끈끈한 흐름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가 태연은 어느정도 좋아하고 수지는 어느정도 좋아한다는 걸 숫자로 비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정신적인 요소들은 수치로 표현해낼 수 없습니다.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이 요소가 성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많은 팬들은 간과하고는 하죠. 당연합니다. 우리는 라커룸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스피릿이 끼치는 영향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사회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알 겁니다. 죽기보다 싫은 사람과 일을 하는 기분이 어떤지, 목표의식 없이 조직된 팀이 어떤 꼴을 겪는지, 동료간의 유대감 없이는 업무 처리가 얼마나 껄끄러운지. 축구도 똑같습니다. 결국 사람 11명이 모여서 플레이 하는 스포츠인걸요.
기업이라면 사훈, 가족이라면 가훈에 빗댈 수 있는 이 팀 스피릿은 어떤 스포츠에 있어서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팀의 능력 = 선수 개개인의 능력의 합. 이라는 공식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입니다. 팀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스피릿은 선수 개개인이 본인의 어빌러티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게 하죠. 여러분의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여러분이 걷거나 뛰지 못하는건 아니지만,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 마음이 움직임에 따라 도저히 걷거나 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한 발자국을 더 내딛게 만들 수도 있죠. 팀 스피릿은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 주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팀 스피릿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됩니다. 하루 아침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으며, 게다가 모든 사람의 마음을 한 곳으로 만들기는 더더욱 요원한 일이니까요. 이러한 팀 스피릿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방법들은 아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유나이티드를 아주 오랫동안 지휘해온 퍼거슨은 자신이 만들어 낸 팀의 스피릿을 '위닝 멘탈리티'라고 표현했죠. 그 멘탈리티를 모든 선수들의 가슴에 심어주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을 투자했다고요. AC밀란 같은 경우에는 정말 잘 나갔던 시절에 주장을 기점으로 모두가 똘똘 뭉쳐 이런 팀 스피릿을 만들어 냈습니다. 좋은 주장들이 있었고, 좋은 규율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최근에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도르트문트가 있습니다. 도르트문트의 경기를 본 모두가 느꼈을 그 끈끈한 분위기와 짜임새 있는 플레이의 시발점 역시 팀 스피릿이죠. 이르건 늦건 도르트문트 유스를 한번씩은 거친 핵심 선수들은 아주 강한 유대감을 형성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20대 중반쯤의 한창 야심찬 선수들이 로이스를 필두로 자진해서 바이아웃을 제외한 재계약을 체결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 세 팀의 공통점은 자기 클럽에서 길러낸, 혹은 아주 젊을 때 부터 길러낸 선수들이 팀의 주축을 맡았다는 점입니다.
팀의 스피릿을 대표할 수 있는 선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선수는 보통 유스시절부터 팀에 몸을 담았던 선수이다.
취업 준비, 혹은 직장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많이 봤을 문구입니다. 회사의 사훈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원이 되라. 대기업들이 채용 되자 마자 엘리트 코스를 밟을 사원들을 선별해두고 XX맨을 만들기 위해 지독히도 노력하는 이유 역시 같은 궤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스펙이 좋고 머리가 좋은 친구들 보다 회사의 사훈을 정확히 이해하고 거기에 충실한 친구가 훨씬 더 일의 능률을 올리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직 전체에 퍼트리기 때문이죠. 그런 친구들이 젊은 나이에 임원을 하고 리더가 되는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입사 초기부터 몇몇 인재들을 선별해서 이런 정신력을 함양하는 교육을 시키기도 하구요. 초일류기업들은 대학에까지 손을 뻗쳐서 엄청난 돈을 투자해가며 인프라를 구축하기도 합니다. 이유는 당연하죠. 큰 돈을 들여 헤드헌팅을 해온 인재들보다 어릴 적 부터 손 때를 타며 길러온 어린 친구들이 더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업무적인 능력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10년, 20년을 업계에 종사하며 단맛,쓴맛,똥맛까지 다 봐가며 능력을 키워 온 사람들과의 비교는 부당할 수 밖에요. 그러나 그리 능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자기 사람들'을 키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죠. 전술한 '팀 스피릿'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측면에서 마드리드가 나아갈 방향을 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포텐셜을 충분히 증명해 낸 어린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를 마드리드 맨으로 키워내야 합니다. 다른 구단에 임대를 보내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팀 안에서 팀의 분위기에 적응하며 팀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선수들의 팀의 대들보가 되고 중심을 잡아주는 주장단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그리고 마드리드는 지난 시간동안 이런 과정들을 잘 겪어온 클럽이였습니다. 훌륭한 주장들이 있었고, 그 계보를 잘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축구를 본 이래로 딱 한번, 페레즈의 갈락티코 시절 이런 맥이 끊겼던 적이 있었고 그 때 어떤 참사가 일어나셨는지는 여러분들도 잘 알겁니다. 그 갈락티코가 해체되는 길고 지겨운 과정에 있어서 팬들끼리도 많은 상처가 났습니다. 레알매니아를 오래 전부터 해오셨던 분들은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껍니다.
마드리드는 최고다. 최고이기 때문에 최고의 성적을 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선수들을 써야한다. 그러니까 유스를 위한 자리는 없다. 이거, 오류입니다. 마드리드는 최고입니다. 그렇기에 최고의 성적을 내야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유스 선수들을 기용해야합니다. 유스를 위한 자리가 있어야합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선수를 원하고 있습니다. 베일,수아레즈,카바니,비달.. 이런 선수들 한두명이 더 없어서 성적이 부진하다면 그건 이미 최고의 클럽이 될 자격도 없는거죠. 마드리드의 스쿼드를 보세요. 대체 어디에 더 빅네임이 포진해야합니까. 네임밸류와 능력치로는 이미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하나하나 언급해가며 칭찬을 늘어놓기가 지겨울 정도로 좋은 선수들이 쌓였습니다. 어빌러티로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가 100이라면 이미 95까지는 근접해있습니다. 여기서 5를 더 채우고자 발버둥을 치는 건 정말 무익한 행동입니다. 반대쪽을 봐야죠. 95%를 채운 선수단이 왜 좋은 성적을 못내는지를 궁금한가요? 정말 그 채우지 못한 5% 때문일까요? 반대 사이드에는 채울 곳이 훨씬 더 많은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선수들은 항상 가까운 곳에 대기중입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쒀봐야 안다고. 쌀알을 보고 아 이건 죽 될 쌀이네, 그냥 제끼고 저기 밥 된거나 사오자. 라고 하는 의견에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선수가 가진 포텐셜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쉽게 한정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시작해 레지스타에서 만개한 피를로를 보십시오. 모두가 B급 선수라 여겼던 그 노숙자가 AC밀란에서 어떤 폼을 보였는지. 게다가 모두가 또 다시 퇴물이라고 업신여긴 그 노숙자가 유벤투스에서 어떤 클래스를 보여주는지. 밥만 먹는게 목적이라면야 뭐, 돈이 많다면 부담 없이 밥 할 노력을 제끼고 밥을 사다가 먹어도 되죠. 그런데 마드리드의 목적은 그게 아니잖아요 여러분. 집에서 깨끗하게 길러서 한 쌀 가져다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쒀봐가면서 맛있고 건강한 밥 지어서 먹어야죠. 반찬은 좋은거 잔뜩 차려놨고 집에 정성들여 기른 좋은 쌀도 있는데, 아 왜 굳이 장기적으로 그렇게 사먹다 보면 몸에 안좋은 영향만 끼치는 밥을 사먹으려고 합니까. 집에 있는 쌀로 밥 지으면 죽 될수도 있다고요? 밖에서 사온 밥은 중국산 쌀에 표백제 넣어서 불린 밥일 수도 있습니다. 안 될 확률은 어디에나 산재해요. 그러니까 우리 쌀을 사랑하고 우리 농민들을 아껴줍시다. 제가 절대 지금 글이 마무리가 안되는데 써놓은게 아까워서 이렇게 올리는게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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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 Mourinho 2013.06.30헤세 모라타 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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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god 2013.06.30마지막 세문장빼고 진지하게 추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대물 2013.06.30헤세 모라타 카르바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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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 2013.06.30유스가 잘하면 좋은 일이지만.. 유망주의 성장은 자리를 준다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상 만사 원하는 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한.. 페레즈의 갈락티코 1기가 유스를 중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은 오류입니다. 오히려 델 보스케 경질 이후 03/04시즌에 그냥 기회 주면 터지겠지 하는 심정으로 수준 높은 서브자원을 전부 팔아 버리고 그 자리를 무리하게 유스들로 채웠는데 파본, 브라보, 포르티요 등 이 친구들이 주전 체력 안배 역할조차 못해줘서 후반 DTD로 시즌을 말아 먹었죠.
그리고, 페레즈 취임 전에 제가 진정 끈끈한 팀 스피릿을 가졌던 것으로 여겼던 98년과 00년 챔피언스리그 우승 때, 결승전 스타팅 멤버 11명 중 칸테라 출신은 각각 두 명이었습니다. 유스 중심의 팀이 된다고 해서 팀 스피릿이 팀의 마지막 퍼즐을 채워준다는 보장은 없으며, 영입된 선수들로 스쿼드를 구상한다고 해서 팀 스피릿이 망가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유스를 실력에 관계없이 무조건 기용하기만 하면 포텐이 터져서 제2의 라울과 카시야스가 될 거라는 의견이 더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현 최고의 팀인 바이에른 뮌헨도 유스 중 잘 하는 애가 있으면 키워서 쓴 팀이지, 전체적인 시즌 운영은 포지션마다 기량 차이 별로 안 나는 알짜 두 명으로 더블스쿼드 도배해서 리그 챔스 다 먹자, 요거였습니다. 어쨌든 단테가 브레누보다는 축구를 잘 하지요. -
subdirectory_arrow_right Beelzebub 2013.06.30@낙화 저도 여기에 공감
이미 유스에 대한 과도한 신뢰를 보여주다 크게 털린 기억이 있기에 설득력있는 얘기라고 받아들이기가 힘드네여 -
낙화 2013.06.30이번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도르트문트에게 대패한 것은 양팀의 팀 스피릿이 차이가 났기 때문이 아니라 1차전에서 무링요의 전술이 완전히 실패했고 중원의 상보적 구성과 균형이 어긋나 있어서 베스트 11의 퀄리티도 2%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2차전에서 벤제마와 라모스 투입 이후 투혼과 집중력으로 2:0이라는 스코어를 만든 것만 봐도 현 선수들이 정신력이 썩어서 하나의 팀으로 기능하지 못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레알 마드리드의 스쿼드 밸런스와 경기력은 완벽하다고 생각지 않지만 이 친구들의 정신력은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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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백의의레알 2013.06.30@낙화 무리뉴 이후로 엘클 많이 치르고 하면서 선수들 승부욕이나 투쟁심이 이전보다 더 늘어난건 긍정적인 부분이라 해야겠군요. 1차전은 두고두고 아쉬웠고 하필 레비의 그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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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마초딩 2013.06.30*@백의의레알 글고 보니 뭐 챔스 내내 부상자가 많았지만, 돌문이랑 붙을 때마다 특히 더 부상당한 선수가 많았었죠.. 안타깝네여ㅠㅠ 아르비가 그 때 빙빙 제스쳐 땜에 퇴장당하긴 했지만, 그도 돌문 1차전 때 어차피 부상 땜에 어차피 못 나오는 거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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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프리오 2013.06.30라울 이케르만 봐도 클놈은 큰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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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ul 2013.06.30글이 결말에 좀 이상해지... 긴 하지만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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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úl 2013.06.30싹이 보이는 유스에겐 충분한 기회를 줬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그 싹을 판단하는건 감독이 되야하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