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라탄 자서전 Chapter 13 - 헬레나, 유벤투스
Chapter 13
검경이 모지의 통화를 도청하는 줄 꿈에도 몰랐던 게 오히려 복이었다. 우리는 밀란과 리그 수위를 다투고 있었고 나는 난생처음으로 한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헬레나는 말뫼를 오가며 낮에는 Fly Me in Gothenburg, 밤에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더불어 학업도 병행하느라 몸에 탈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내가 헬레나한테 말했다.
“됐네, 이 사람아, 이제 그만하고 나랑 합치자.”
서로 적응하는 게 큰일이기는 해도 헬레나는 큰 짐을 던 것처럼 반겼던 것 같다.
나는 카스텔로 광장 근처 인자기의 아파트에서 같은 동의 꽤 근사한 곳으로 이사했다. 천장이 높아 위층은 교회 같은 분위기, 스태프가 일하는 아래층은 커피숍 같은 분위기가 나는 곳이었다. 당시 헬레나와 나는 아이가 없는데도 친구처럼 친해진 스텝들이 종종 아침을 차려주곤 했다. 대신 우리한테는 호파가 있었다. 쿨하고 뚱뚱한 불독 새끼. 저녁으로 피자 세 판을 시키면 한 판은 나, 다른 한 판은 헬레나 차지였고 남은 한 판은 호파가 몽땅 먹어치웠다. 단지 크러스트는 먹지 못해 침이 줄줄 흘려대며 바닥에 내팽개쳐버렸지만. 호파는 우리의 아기였다.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각자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 사람이기도 했다.
온 가족이 비행기 비즈니스 클래스에 자리 잡고 두바이로 여행을 가는 중이었다. 나랑 헬레나는 비행기 안에서 처신하는 법을 똑똑히 알고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그렇지 못했다. 동생 녀석이 오전 6시에 위스키를 마시려고 했는데 마침 앞좌석에는 엄마가 앉아 계셨다. 그런데 참, 우리 엄마는 진짜 훌륭하신 분이지만 까불다간 혼쭐이 나는 수가 있다. 엄마는 우리가 술을 마시는 꼴을 늘 못마땅해하셨다. 우리가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알고 나면 댁들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엄마는 늘 하던 대로 쓱 신발을 벗더니 케키의 머리를 정통으로 갈겨버렸다. 쿵, 짝, 아야! 뚜껑이 열린 케키도 맞받아쳤고 오전 6시에 비행기 안이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헬레나는 쥐구멍이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대략 10시 15분 전에 토리노 훈련장으로 출근하곤 했다. 그러나 한번은 지각할 일이 발생했다. 아파트 주위를 돌고 돌아와 보니 연기냄새 같은 게 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헬레나가 그렇다고 했다. 나는 긴가민가했지만. 그러나 출근하러 문을 연 순간 복도에서 불길이 보였다. 누군가 장미를 쌓아놓고 불을 지른 것이다. 우리 아파트는 집집이 가스 스토브가 설치되어 있고 복도 바로 바깥 외벽으로 난간을 타고 가스관이 연결되어 있었다. 하마터면 가스가 폭발해서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급히 양동이에 물을 받아 불을 껐다. 그러고 나니 30초만 일찍 문을 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일었다. 그랬다면 불을 지르는 그 바보천치를 현장에서 발견하고 작살을 내버릴 수 있었을 테니깐. 우리 집에 불을 지른다고라! ! 그것도 장미로. 장미로 말이야! 경찰은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다. 당시에는 현재와 다르게 클럽 측에서 그다지 보안을 신경 쓰지 않았고 우리도 그 사건을 잊어버렸다. 늘 걱정만 하고 돌아다닐 수도 없을뿐더러 다른 걱정거리가 생기기 마련이니깐. 그리고 실제로 늘 다사다난했다.
이적 초기 Aftonblade(역주-스웨덴 타블로이드)에서 밥맛 두 놈이 나를 찾아왔다. 당시 나는 메리디안 호텔이 거처였는데 Aftonbladet 측에서 나와 손상된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쪽 말로는 내가 자기들 돈줄이라나. 미노도 옛일을 묻어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나 명심들 하시라. 나는 절대 잊는 법이 없다. 나는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나는 10년이 지나도 절대로 잊지 않고 되갚고야 만다.
내가 방에 머무는 동안 미노가 미리 Aftonbladet에서 찾아온 두 손님을 맞아 잠시 이야기를 나눠봤던 것 같다. 아래로 내려와 보니 대화가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 개인 광고! 거짓 경찰 보고서!! “창피한 줄 알아라 즐라탄!” 그것도 전국 방방곡곡에! 나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화가 치밀었다. ㅅ x 이놈들은 뭔 일 처리가 이래? 그래서 나는 인상을 써댔다. 두 녀석은 똥줄이 타들어 갈 만큼 겁이 난 게 분명했다. 심지어 나는 놈들한테 물병을 던지기도 했다.
“느그들이 우리 동네 출신이었다면 뼈도 못 추렸다.”
다소 험한 말이었을 게다. 그렇지만, 나는 진절머리가 난 데다가 뚜껑이 열릴 대로 열려 있었다. 내가 어떤 중압감을 느끼는지 말해줘 봤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미디어 문제만이 아니었다. 팬, 군중, 코치, 클럽 경영진, 팀 동료, 돈이 관련된 문제였다. 열심히 뛰어야 했고 골을 넣지 못하면 이곳저곳에서 군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뭔가 탈출구를 마련해둬야 했다. 나한테는 미노, 헬레나, 팀 식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또한 다른 것도 있었다. 복잡하지 않은 것이. 예를 들어 자동차 같은 것이. 나는 그런 것으로 해방감을 누렸다. 당시 나는 페라리 엔조가 있었다. 페라리 엔조는 이적 조건에 포함된 딜이었다. 나, 미노, 모지, 안토니오 지라도, 로베로트 베티가 한 방에 앉아 이적 협상을 하던 중 미노가 불쑥 내뱉었다.
“즐라탄은 페라리 엔조를 원합니다!”
다들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우리는 엔조 외에는 다른 것을 바라지 않았다. 엔조는 페라리가 새로 출시한 차였다. 페라리가 생산한 차 중에서 가장 쿨한 차. 게다가 390대만 한정 생산한 차이기도 했다. 우리도 과한 요구일 거로 짐작했다. 그러나 모지와 지라도는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따지고 보면 페라리도 유벤투스와 같은 계열사였다. 당연하지, 엔조 한 대쯤이야 대주고도 남을 테지.
“문제없네. 한 대 구해다 주도록 하지.”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 진짜 쥑이는 클럽이네!”
그러나 당연하게도 유벤투스 측 인사들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서명을 마치고 나서 안토니오 지라도가 물었다.
“그 차 말이야, 구형 모델인지, 그치?”
내가 허를 찔려 미노만 쳐다보자 미노가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아닙니다. 신찹니다. 390대만 한정 생산된 모델입니다.”
“문제가 생긴 것 같네.”
지라도의 말대로였다. 엔조는 달랑 세 대만 남아 있었고 거물급들이 차를 인수할 날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페라리사 회장인 루카 몬테제몰로한테 연락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것뿐이었다. 회장은 난감해했다. 그러나 결국은 타인한테 양도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나서 차를 내주었다.
“죽을 때까지 간직할 겁니다.”
실제로 나는 전심전력으로 엔조를 사랑한다. 헬레나는 엔조를 모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 취향에는 지나치게 거칠고 마초스러운 차라면서. 그러나 나는 미치도록 엔조가 좋다. 평범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엔조는 쿨하고 어썸하면서 빠르다. 나는 엔조에 걸맞게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엔조는 만족을 거부한다. 엔조를 바라보면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널 잃게 돼.’ 엔조는 전력을 쏟게 하는 동력이자 도화선이다.
한때는 심심하던 차에 마약처럼 문신에 빠진 적이 있다. 나는 늘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성격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크게 자극이 되어줬다고 할 것까지는 아니었다. 심사숙고도 했고 애초에는 거부감까지 들었다. 문신은 뭔가 악취미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은근히 끌리는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알렉산더 외스트문트가 문신에 입문하도록 거들어 주었다. 첫 문신은 엉덩이 양쪽에 내 이름을 흰색 글자로 새긴 것인데 선탠을 해야만 드러나는 것으로 단지 시험 삼아 해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점점 대담해졌다. 나는 '신만이 나를 심판할 수 있다.'라는 문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무엇을 읽건, 스타디움에서 외쳐대는 소리가 무엇이건 와 닿지 않았지만, '신만이 나를 심판할 수 있다!'는 마음에 쏙 드는 문구였다. 댁들도 자기 길을 스스로 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 문구를 새겼다. 그러고는 용도 한 마리 새겨 넣었다. 일본 문화에서 용은 전사를 뜻하고 나야말로 전사니깐.
나는 물결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인 잉어도 새겼고 역경에서 보호해주는 의미가 담긴 불교 문양도 새겼다. 그리고 물, 불, 흙, 불 같은 다섯 가지 원소도 새겼다. 나는 우리 가족도 새겨 넣었다. 권력을 뜻하는 오른쪽이라 오른손에는 아빠를, 심장이 위치한 왼쪽에는 형제, 자식, 여자, 엄마를 새겼다. 그러나 당시에는 가족과 멀어진 의붓누이를 새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는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누구는 가족이고 누구는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 아무튼, 나중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축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른 봄에 리그 수위가 결정될 때도 있지만, 그해에는 마지막까지 싸워야만 했다. 밀란과 우리는 70점으로 승점이 같았다. 당연히 신문에서는 대량으로 기사를 써대며 극적인 드라마로 몰고 가고 있었다. 우리는 5월 8일 산시로에서 정면대결을 했다. 마치 단판 결승전 같은 분위기였는데 밀란이 이길 거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밀란의 홈경기라는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스타디오 델 알피에서 겨룬 첫 시합은 서로 득점 없이 비겼다. 우리 팀 라인업이 강하다고는 해도 리그를 지배한 팀은 밀란이었고 태반이 밀란을 유럽 최강팀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그해 봄 밀란이 또다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오른 것도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다들 우리가 지는 데에 거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우리는 인테르전 이후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
라체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고 며칠이 지난 4월 20일, 나를 칭송하는 소리가 자자한 가운데 인테르가 나를 거칠게 마크하면서 부화를 돋을 거라며 미노가 경고를 해주었다. 인테르가 스타인 나를 막으려 애쓸 거라는 건 당연지사였다.
“살아남으려면 두 배로 강해져야 해. 그렇지 않으면 기회가 생기지 않을걸.”
나는 미노의 말에 평소처럼 대꾸했다.
“문제없어. 나도 거친 플레이가 좋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걱정이 들었다. 인테르와 유벤투스 사이에는 오래된 적의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해 인테르는 수비가 무척 포악했다. 그런 수비수 중 한 명이 마르코 마테라치였는데 세리야 A에서 독보적인 빨간 딱지 수집광이었다. 마테라치는 공격적이고 추한 플레이로 유명했는데 일 년 뒤 월드컵 결승전에서 지단한테 더러운 말을 지껄이다가 박치기를 당해 만방에 이름을 떨친 장본인이기도 했다. 마테라치는 상대를 갈구는 지저분한 입담과 거친 플레이의 화신이었고 종종 도살자로 불리기도 했다.
인테르에는 또한 작달막하면서 단단한 콜롬비아인인 이반 코르도바와 시니사 미하일로비치가 있었다. 미하일로비치는 세르비아인으로 발칸 전쟁과 뭔가 관련이 있다는 말이 무성했다. 그러나 다 헛소리였다. 경기장에서 벌어진 일은 발칸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나는 훗날 인테르에서 미하일로비치와 친구가 되었고 누가 어디 출신이고 어쩌고 하는 문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민족이 어쩌고저쩌고하는 헛소리에는 쥐뿔도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솔직히, 내가 그런 걸 신경을 쓸 처지도 아니잖은가? 우리 가족도 난장판이었다. 아빠는 보스니아인, 엄마는 크로아티아 출신, 그리고 의붓동생은 친아빠가 세르비아인이었다. 아니, 절대, NAVER, 도대체 민족이니 뭐니 하는 게 뭔 상관이야?
아무튼, 미하일로비치는 장난 아니게 거칠었고 프리킥이 일품이었다. 게다가 쉬지 않고 더러운 말로 상대를 갈궈댔다. 한 번은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패트릭 비에이라한테 "nero de merda(you black fuck)"라고 한 적이 있어서 경찰 조사를 받고 인종차별적인 언행으로 고소를 당했고 또 한 번은 나중에 한팀 동료가 된 아드리안 무투를 발로 차며 침을 뱉어서 여덟 경기 출장 정지를 당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성깔이 대단해서 폭탄처럼 폭발하곤 했다. 그렇다고 뭐 큰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경기 중에 벌어진 일은 경기장에 머문다는 게 내 철학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경기 중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게 되면 다들 놀라 나자빠지실 게다. 주먹질과 모욕이 난무하고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에게는 일상이나 다름없는 일이 뿐이다. 아무튼, 나는 인테르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니만큼 그쪽 애들과 붙어볼 기회가 없는 독자들께서 이해해주기만을 바란다. 나는 인테르가 거칠고 추하게 플레이하리라는 것과 잔인한 시합이 될 거란 사실을 직감했다. 평범한 시합이 아니라 증오와 모욕으로 점철된 시합이 될 것임을.
우리 가족과 내 명예를 더럽히는 헛소리가 난무했고 나도 지지 않고 강하게 받아쳤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고작 그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얌전히 팔짱만 끼고 있다간 무너지기 십상이다. 분노를 승화해서 시합에 쏟을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더욱 강하고 거칠게 싸웠다. 아마 즐라탄을 상대하는 선수들도 한시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다 자랐을 무렵 더는 아약스에서 뛰던 호리호리한 드리블러가 아니었다. 나는 더 무거워지고 더 빨라졌다. 나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절대로! 추후 인테르 감독인 로베르토 만시니가 이런 말도 했다. "이브라히모비치는 천재지변(phenomenon)입니다. 이런 수준으로 플레이하면 누구도 막을 수 없어요.”
신께서도 인테르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야 한다. 인테르는 무지막지한 태클을 걸어왔고 나도 못지않게 강하게 맞받아쳤다. 나는 짐승이었다. 나는 신문에서 일컫는 대로 “검투사(Il gladiatore)”였다. 그리고 시합이 시작되고 4분이 지나 나와 코르도바는 서로 머리끼리 충돌하고 그라운드로 나자빠졌다. 나는 어찔함을 느끼며 일어섰고 코르도바는 피를 흘리며 상처를 꿰매러 밖으로 나갔다가 머리에 밴드를 붙이고 되돌아왔다. 그 후 상황이 진정되기는커녕 더욱 격해져만 갔다. 뭔가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가장 음험한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봤다. 우리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무모함과 공격본능이 팽배한 가운데 13분이 흐르고 나는 미하일로비치와 충돌하며 그라운드로 나자빠졌다.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러나 이내 우리가 풀밭 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걸 깨닫고는 다시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그 순간 미하일로비치가 머리를 조금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반사적으로 박치기를 하듯 반응했다. 겉으로는 꽤 무시무시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의도는 겁을 주려는 것이었을 뿐 미하일로비치와는 거의 닿지도 않았다. 내 말을 믿으시라, 진짜로 박치기를 할 의도였다면 미하일로비치는 인사불성이 되었을 것이다. 단지 살짝 접촉이 있었을 뿐이었다. ‘까불면 돼진다 十새야!’라는 엄포에 가까웠다. 그러나 미하일로비치는 얼굴을 감싸면서 그라운드를 나뒹굴었다. 당연히 연극이었다. 미하일로비치는 나를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노란 딱지를 한 장도 득템하지 못했다. 그 순간에는 말이다.
노란 딱지는 1분 뒤 파발리와 다투다가 득템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몹시 추하고 거친 시합이었다. 그러나 나는 시합에 집중하면서 우리 팀의 찬스에 모두 관여했다. 그러나 그날따라 인테르의 골키퍼인 프란세스코 톨도가 뽕이라도 맞고 나왔는지 연이어 선방쇼를 펼쳤고 결국 줄리오 크루즈의 헤딩골로 우리가 선취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우리는 만회하려 고군분투했다. 아까운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득점이 무산되고 복수심만 불타올랐다.
코로도바는 앙갚음으로 내 엉덩이를 걷어차다가 들켜 노란 딱지 한 장을 득템했다. 마테라치는 계속 나를 갈구려 애를 썼고 미하일로비치는 쉬지 않고 더러운 입을 나불대며 추한 태클을 걸어왔다. 그러나 나는 열심히 뛰었다. 나는 앞만 보고 뛰었다. 나는 열심히 싸웠고 전반 종료 직전에 아까운 슛을 날리기도 했다.
나는 후반전 들어 크로스바 상단에 맞는 장거리 슛을 날렸고 톨도의 엄청난 반사신경이 없었더라면 골이 될만한 프리킥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득점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종료 1분이 남았을 무렵 또다시 코르도바와 조우했다. 우리는 서로 몸끼리 충돌했다. 그리고 아마 반사적인 반응이었을 테지만, 나는 주먹으로 코르도바의 턱을 때렸다. 혹은 목이었나? 아무튼, 그다지 심하지 않았고 별일 아니었다. 우리는 그날 경기 내내 그런 식으로 치고받았다. 주심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댓가가 남아 있었다. 우리는 졌다. 순위표를 보면 알겠지만 스쿠데토를 희생할 수도 있는 뼈저린 패배였다.
남은 댓가라는 것은 이탈리아 리그 규율 위원회에서 내가 코로도바를 때리는 장면을 검토하고 나서 세 경기 출장정지를 때린 것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격인 선고였다. 나는 리그 수위를 다투는 데에 보탬이 되어주지 못하게 되었고 최고 중대한 시합인 5월 8일 밀란전에도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부당했다.
“저는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있어요.”
나는 기자들한테 하소연했다. 인테르 선수들의 수작을 참고 견딘 사람은 나인데 오히려 그런 나만 처벌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 팀에서 내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너무 가혹한 처벌인데다가 클럽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릴만한 결정이었다. 클럽 경영진도 스타 변호사인 루기 치아페로를 불러와 항변했다. 루기 치아페로는 예전에 유벤투스의 약물복용 사건을 변호한 사람인데 주먹질이 볼을 다투다가 의도치 않게 발생한 일이라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경기 내내 내가 인테르 선수의 온갖 공격과 모욕을 참아내야 했던 사실도 부각시켰다. 그리고 심지어는 독순술 전문가를 고용해 미하일로비치가 나한테 뭐라고 외쳤는지 밝혀내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미하일로비치가 한 말은 대부분 세르비아어라서 쉽지만은 않았다. 대신 미노가 나서서 미하일로비치가 우리 가족과 엄마를 두고 한 말은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너무나 조악하다고 말했다. 미하일로비치는 미노의 말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라이올라는 피자나 굽는 사람일 뿐입니다.”
사실 미노는 평생 피자를 만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단지 부모님 식당에서 잡일을 거들어 주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미노도 반박했다.
“고맙게도 미하일로비치는 자기 발언으로 우리가 이미 다 아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 보였습니다. 미하일로비치는 그다지 영리하지 않습니다. 즐라탄을 모욕한 사실을 반박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미하일로비치는 인종주의자입니다. 이미 그런 전력이 있습니다.”
난장판이 벌어졌다. 양측에서 비난이 오고 갔다.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는 루치아노 모지는 서슴없이 음모가 있었으리라는 운을 띄었다. 내가 주먹질을 한 장면은 Mediaset가 출처로 베를루코니의 회사였다. 그리고 베를루코니는 밀란의 구단주이기도 했다. 주먹질 장면 필름이 위원회로 전달된 시기가 조금은 너무 이르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신문을 펼쳐 보면 알겠지만, 내무부 장관 말대로 나날이 온갖 다툼으로 온 세상이 혼란한 이 마당에 말이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없이 출장정지가 확정되고 말았다. 나는 가장 중요한 밀란전에 나설 수 없게 되었다. 그토록 리그에서 날아다녔건만 정작 리그 수위를 결정하는 시합에는 나서지 못해 관중석에서 앉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몹시 잔인한 처사였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중압감이 대단했고 온갖 방면에서 별 희한한 이야깃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내가 출장정지를 당한 사건은 그 중 일부분이 되었다. 이런 서커스도 없었다.
딴 곳이 아닌 이탈리아에서 유벤투스가 함구령을 내리고 미디어와 접촉을 금지했다. 클럽의 일원은 누구라도 입을 다물어야 했다.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더 이상은 내 출장정지에 대해 항변하는 것도 불허했고 모두 입을 봉하고 당시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일전이랄 수 있는 게임에만 집중해야 했다. 우리와 밀란은 모두 76점으로 승점이 같았다. 한편의 스릴러였다. 밀란전은 이탈리아 내에서 큰 화젯거리였다. 밀란의 홈 경기로 8만 석 표가 팔렸다. 가장 중요한 선수인 나는 출장정지를 당했고 아드리안 무투도 출장정지 중이었다. 제비나와 타키나르디는 부상 중이었다. 우리는 베스트 스쿼드가 아니었다. 그러나 밀란은 초호화 라인업이었다. 수비수로는 카푸, 네스타, 스탐, 말디니, 미드필드에는 카카가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전방은 인자기와 세브첸코가 책임지고 있었다.
예감이 불길했다. 리그를 제패할 기회를 날려버릴 수도 있는 내 무용담을 신문으로 읽는 건 그리 신나지 않았다.
“즐라탄은 처신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차분해져야 해요.”
그런 비슷한 말들이 도처에서 들려왔다. 심지어는 카펠로도 그런 흰소리를 해댔다. 근데 ㅅ x, 경기에 나서지도 못하는데 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그러나 우리 팀은 전의로 불타고 있었다. 직전에 벌어진 일로 모두 분개하며 이를 갈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27분이 지났을 무렵 델 피에로가 왼쪽 드리블을 치고 나가다 밀란에서 가장 부지런한 가투소한테 막혀 공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델 피에로는 공을 따라가 바이시클 킥으로 박스 쪽으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다비드 트레제게가 헤딩한 공이 그물망 안을 갈랐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밀란은 강력하게 압박을 가했다. 그리고 후반전 11분쯤, 인자기가 무방비 찬스에서 슛을 때렸다. 그러나 부폰한테 막혔고 인자기 쪽으로 공이 튀어 다시 찬스가 생길 찰나 잠브로타한테 막히고 말았다. 서로 찬스가 계속 이어졌다. 델 피에로는 헤딩 슛으로 크로스바를 맞췄고 카푸는 박스 안에서 유니폼이 잡혀 넘어졌지만, 페널티 킥을 얻지 못했다. 공방이 끊이지 않는 경기였다. 그러나 1-0이라는 결과가 끝까지 유지됐다. 우리는 이제 자력으로 리그를 우승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도 곧 다시 경기에 나설 수 있게 되어 어깨에서 짐을 던 기분이었다. 우리는 5월 15일에 홈에서 파르마를 대적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중압감이 닥쳐왔다. 그 경기가 복귀전이라서 뿐만이 아니었다. 제일 잘 나가는 축구지 열 곳에 설문을 벌인 결과 내가 유럽의 공격수 중에서 세브첸코와 호나우도에 이은 세 번째 공격수로 뽑혔다. 또한, 잘하면 발롱도르를 탈 수 있을 거란 말도 나돌았다.
어느 쪽이든 나한테 이목이 쏠리고 있었다. 특히, 카펠로가 밀란전의 영웅인 트레제게를 벤치에 앉히고 나를 선발로 내세워서 열심히 뛰어다니도록 강요당한 기분이었다. 어느 한계를 넘지 않는 한에서 전의를 구해야 했다. 다시는 폭발해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또다시 출장정지를 맞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모두 나를 주시할 것이고 경기장 안 모든 카메라가 나를 놓치지 않고 쫓아다닐 게 분명했다. 그런데 필드에 들어서자 팬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이브라히모비치, 이브라히모비치, 이브라히모비치.”
마치 천둥에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경기에 몰두할 수 있었다. 우리는 1-0으로 앞서갔다. 그리고 23분에는 카모라네시가 찬 프리킥이 키에 비해 헤딩실력이 형편없다는 소리를 듣는 나한테 날아왔다. 그리고 나는 온 힘이 실린 헤딩으로 골을 넣었다. 정말 멋들어진 골이었다. 나는 완전히 부활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호각이 울리기 몇 분전, 레체와 밀란의 스코어가 전광판에 떴다. 2-2. 스쿠데토가 거의 우리 수중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다음 경기에서 리보르노를 이기기만 하면 리그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고도 필요 없었다. 밀란이 5월 20일 파르마전에서 3-1로 져서 우리가 자동으로 챔피언이 된 것이다. 토리노에서는 길거리로 쏟아져나온 사람들이 울고불고 난리를 쳤고 우리는 지붕이 뚫린 버스에 타고 카퍼레이드를 했다. 버스는 도통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온통 사람들 천지였다. 모두가 노래를 부르거나 갈채를 외쳤댔다. 나는 다시 아이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그 후 팀 전원이 파티에 참석했다. 나는 나쁜 기억 때문에 평소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지만, 이날은 맘껏 마셔댔다.
우리는 리그를 제패했다. 이보다 더 신날 수는 없었다. 1968년 밀란의 쿠레 하민 이후로는 세리야 A에서 스웨덴인이 우승한 적이 없었다. 더구나 모두 내가 우승의 주역이라는 것에 이의가 없었다. 나는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외국인 선수로 뽑히기도 했다. 스쿠데토는 내 차지였다. 나는 들이키고 또 들이키고 마구 들이켰다. 프랑스인인 다비드 트레제게가 파티 내내 계속 술을 부어주었다. 보드카 머겅, 또 머겅, 트레제게는 꽤 점잖은 성품이었지만 이날은 아르헨티나인이 되었다. (트레제게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다.) 트레제게는 고삐를 풀고 맘껏 파티를 즐겼다. 이쪽에도 보드카, 저쪽에도 보드카, 사방이 보드카 천지였다. 그리고 나도 고주망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샤워를 하자, 샤워를 하면 좀 나아지겠지. 그러나 여전히 세상이 돌고 있었다.
머리를 움직이면 세상도 따라 돌았다. 결국, 나는 그대로 욕조에서 무너져 잠이 들고 말았다. 헬레나는 나를 깨우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나는 절대 남한테 얘기하지 말라는 다짐을 받아 놓았다.
나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다 
-ㅋㅋㅋㅋㅋㅋ즐라탄ㅋㅋ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ㅋㅋ
이번 챕터도 정말 재밌습니다ㅋㅋㅋㅋ
'넌 우리 동네 출신이었다면 뼈도 못 추렸다'ㅋㅋㅋㅋ
출처는 알싸의 ggio→하트워밍 님 입니다
길어도 엄청 재밌으니 심심할 때 라도 한번 봐 보세요 !! ㅋㅋ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