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합시다
축구 게시판에 처음으로 글 적어봅니다. 이런 경기 후라서 적는 글이고, 또 신나는 글은 아니기 때문에 아쉽기는 하지만 부끄럽고 수줍게 감히 발을 들여봅니다.
오늘 발렌시아와의 경기는 분명 즐거운 결과가 아닙니다. 10점 차였던 승점은 어느새 겨우 4점 차가 됐고, 그 와중에 가장 나쁜 것은 이것이 홈이었단 겁니다. 적어도 레알 마드리드라면 인간계 팀과의 홈 경기 정도는 이겨줬어야 했습니다. 2:0으로든 1:0으로든 6:5으로든요.
결과는? 골조차 넣지 못한 무승부였습니다. 그것도 스물아홉 번의 슈팅을 낭비하면서요. 바로 옆 동네도 패배했던 팜플로냐 원정에서 5:1로 승리했단 것을 감안하면 오늘의 경기력을 마냥 괜찮다고 달래줄 수는 없는 노릇이죠.
물론 우리는 아직도 앞서 있습니다. 4점 차로요. 다음 라운드에서 바르셀로나와 같은 결과를 거둔다고 가정했을 때, 엘클에서 이긴다면 7점 차가 되고, 진다면 1점 차가 되겠죠. 이긴다면 좋겠지만 진다면 정말 리그 경기 하나하나를 챙겨봐야 하는 상황이 올 겁니다. 그때도 바르셀로나는 자력 우승이 불가능한 상황이니 괜찮다고 넘어가실 건가요?
현재 일정은 우리 편이 아닙니다. 몇몇 주심이 우리의 편이 아니듯이요.
바르셀로나에게 승점 10점이 앞서 있었던 것은, 우리가 잘했던 것도 맞지만 바르셀로나가 수많은 무를 캤다는 이유도 큽니다. 그리고 그렇게 바르셀로나가 무승부를 거둔 팀들 대부분을 우리는 앞으로 맞이하게 됩니다. ATM이야 바르셀로나가 홈에서는 5:0, 원정에서는 2:1로 이겼으니 넘어간다 하더라도 (물론 ATM을 상대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요), 앞으로 리가에서 만나게 될 세비야와 빌바오는 바르셀로나에게서 승점 1점씩을 뺏어온 팀들입니다. 그리고 우연스럽게도 현재 바르셀로나는 23승 6무 2패, 레알은 25승 4무 2패를 기록하고 잇습니다.
결국, 바르셀로나가 두 번 더 많이 거둔 2무의 주역들을 우리는 지옥의 일정 속에서 맞이한다는 겁니다.
그걸 감안했을 때, 발렌시아를 홈에서는 이겨줬어야 했습니다. 물론 발렌시아가 잘 했습니다. 과이타가 미쳤구요. 그래도 이겨줬어야 했습니다. 바르셀로나가 발렌시아 홈에서 무승부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홈에서는 화끈한 5:1 승리를 거뒀었죠. 우리는 발렌시아 원정에서 3:2 승리를 거둔 후, 홈에서 쿨하게 2점을 잃었습니다. 정말 바르셀로나에 비해 유리한 상황을 맞이하려면, 발렌시아로부터는, 적어도 홈에서는, 확실히 이겨줬어야죠. 그런데 우리는 비겼네요.
정리하자면, 오늘 우리는 바르셀로나가 원정에서 2점을 잃게 만들었던 상대로부터 홈에서 똑같이 2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바르셀로나가 딱 두 번 더 많이 거둔 무승부의 상대들을 죽음의 일정 속에서 맞이하게 되네요. 거기에 지역 라이벌이 남아 있으며, 우리가 결코 좋아할 수 없는 히혼 역시 우리를 곧 찾아옵니다.
일정 상으로 우리가 에이 괜찮아, 까짓 거 4점 앞서 있으니까 우쭈쭈, 할 만한 상황이란 게 아니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바르셀로나 역시 쉬운 일정만은 아닙니다. 어쩌다가 우리를 이겼던 레반테, 우리랑 비겼던 말라가, 지역 라이벌 에스파뇰이 남아 있거든요. 제가 말했던 식으로 계산한다면 바르셀로나가 우리랑 같은 팀을 상대로 같은 결과를 낼 때 잃을 승점이 더 많네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여태까지 우리팀들과의 상대전적으로 봤을 때, 우리 팀이 조금 더 험난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런 일정을 제외하고서도, 4점 차의 무게감은 적지 않습니다.
물론 5점 차로 뒤지고 있다가 4점 차가 됐다던가, 1점 차에서 4점 차로 늘었다던가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좋겠죠. 하지만 그건 단순히 기대치가 달라져서가 아니라, 분위기를 타게 되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6점을 잃었습니다. 분위기가 급속도로 나빠진다고 상상해도 딱히 반박할 수 없는 상황이죠. 1점 차에서 4점 차가 됐다면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10점 차에서 4점 차가 됐다는 건 분명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던가, 분위기가 꺾였다던가 하는 식으로 풀이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저하된 사기는 팬들을 멘붕시키듯이 선수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우리는 레알의 선수들이 얼마나 화끈하고 정열적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긴 지가자가를 정리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되네요.
그래도 노력해서 요약해보자면, 바르셀로나가 승점을 잃었던 팀들을 우리는 앞으로 맞이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4점만을 앞서 있을 뿐이구요. 거기에 앞으로 우리는 한 번 홈에서 독일의 명문을 상대하게 되며, 두 번 독일의 한 도시에 방문하게 됩니다. 쉬운 일정만은 아니라 이거죠. 그 상태에서 우리는 10점에서 4점으로 줄어드는,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하락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우리는 엘클 원정을 떠나게 됩니다. 독일을 갔다오자마자요. 독일에서 결과가 좋게 나오길 바라고 믿어보지만, 혹시라도 홈에서 결정지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결코 옆 나라로 떠나는 게 관광 느낌만은 아닐 거라 이거죠. 특히 고작 4점 차이가 나는 이런 상황에서는요.
불안해합시다.
앞으로 새벽마다 일어나서, 혹은 밤을 새서 경기를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십 점 차였을 때와는 다르게, 바르셀로나가 이길 때마다 꽤 큰 히스테리를 부려야 하는 상황도 왔구요. 저는 기말고사 기간을 그깟 공놀이와 함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불안해하고, 마음껏 까줍시다.
우리는 밤샌 보람도 없게 만든 이 귀엽고 예쁜 레아릐들이 까면 깔수록 잘하는 팀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음껏 까고 비판합시다. 까짓 거 팬인데 비난도 해봅시다. 레플에 얼마를 들이고 지갑에, 악세사리에, 휴대폰 커버에 얼마를 들였으며 또 잘 보지도 않게 된 레알TV에 얼마를 들였는데 홈에서 비긴 팀 따위 좀 비난도 해봐도 되지 않을까요. 까짓 거 비난합시다. 멍청한 공격수, 바보 같은 미드필더, 정말 바보인 수비수.. -_-
어차피 우리가 까봤자 걔네는 모르겠죠? 그러니까 우리 스트레스라도 풉시다. 아니, 어쩌면, 혹시라도 우리의 기운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분노라던가, 멘붕이라던가, 뭐 어떤 것들이 설명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현상을 통해 느껴질 수도 있고, 또 느끼는 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정신을 차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좀 까봅시다.
하지만 이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겠죠? 그러니까 감독님을 믿어봅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감독님이 저의 이 ㅡㅡ 불안한 감성을, 화나는 감정을 그대로 전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지도자가 책임을 지는 것보다, 아랫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능률의 증가를 더 직접적으로 불러오기도 합니다. 부끄러워보고, 책임감을 느끼면 다음 경기부터 더 죽도록 뛰겠죠. 약 빤 과이타보다 더 약 빤 것 같은 경기력을 보여줄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매번요. 물론 제가 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주급을 그렇게 받는데 매번 그렇게 해줘야죠-_-
따지고 보면, 바르셀로나에게 무승부를 거둔 팀들이 우리에게도 무승부를 거두리란 법은 없습니다. 빌바오가 잘한다 한들 우리에게도 잘하리란 보장도 없으며, 히혼이 다시 한 번 저번 시즌마냥 감독님과 팀에게 ㅓㄹ마ㅣㄴ얼 ㅏㅁ;ㅣㄴ얼 ㅣㅏ한 짓을 할 이유도 없고, ATM이 하필이면 이번 시즌부터 승점 인출이 불가하다는 선언을 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까짓 세비야는 우리가 6:2로 이겼던 상대였고 (뭐 바르샤는 오사수나 8:0으로 이기고 3:2로 졌지만, 그래도 세비얀데 우리가 정신 무장은 좀 하겠죠), 그라나다는 우리가 이겨야만 하는 상대입니다.
다만 가장 큰 난관은 바르셀로나인데, 이 4점의 승점 차는 결국 바르셀로나를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또다른 이유를 준 셈이기도 합니다.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바르셀로나를 이겨야만 합니다.
스트레스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distress와 eustress. distress는 말 그대로 우리가 흔히 아는 스트레스로서, 사람의 기분과 활동량을 저하시키며, 낙담시키게 하는 그런 종류라고 알고 있구요, eustress는 반면 사람을 긴장시키며, 낙담 대신 정신 무장을 시켜주는 그런 종류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eustress는 성공적인 벼락치기를 하게 만드는 그런 종류이기도 한데, 바로 이게 우리 선수들에게 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긴장감을 eustress라고 봤을 때, 선수들이 딱 이 긍정적인 스트레스를 받아서 정신 무장을 하고, 매 경기 매 경기 이겼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이겨야만 합니다.
우리는 저 먼 영국의 어느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은 팀도 아니고, 이탈리아의 제가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만큼 까보고 싶은 그런 팀도 아닙니다. 우리는 레알 마드리드고, 물론 저도 반드시 좋아하는 측면은 아니지만, 팬들은 승리 외의 결과에는 냉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는 반드시 이겨야만 하구요. 그리고 이 좁혀진 승점 차와 그에 따른 불안, 스트레스는 앞으로의 모든 경기에서 전승해야 하는 이유를 줄 겁니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말해봅니다. 심지어 아스날도 홈에서는 맨시티 상대로도 이길 줄 알던데요. 심지어 썬파수나나 버거킹도 홈에서는 바르셀로나 상대로 이깁니다. 우리는 홈 원정 가릴 거 없이 다 이겨야죠, 안 그래요? 레알 마드리드잖아요 :)
처음 써본 축구 글이고, 또 축구에 대한 깊은 지식은 없습니다. 어차피 발렌시아와의 경기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써주셨거나 써주실 거라 믿고, 또 그 외에 덧붙일 내용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과이타 잘했음. 우리 결정력 짱) 언급은 딱히 안 하게 됐네요.
어떻게 끝마쳐야 할 지 모르겠지만, 뭐. 선수들을 비판하고 까줄 수 있을 정도로만 불안해해봅시다. 레매에서 까면 잘 하게 되잖아요? :) 그렇게 유스트레스를 주고, 전승을 기대해봅시다. 앞으로 독일에 두 번이나 가야 하는데, 휴가 때까지는 단단히 정신 차려야죠!
¡HALA MADRID HASTA LA MUERTE!
+ 그러니 레알 공식 페북은 이번만큼은 did u know로 사람을 현혹하지 말고, 4점 차의 현실을 자꾸 선수들에게 상키시켜줘 봅시다. 바르샤한테 이번에는 꼭,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는 걸요.
+ 그나마 이렇게 된 거 조석 웹툰에서 바르셀로나 칭찬이 나오겠죠? :) 조석님이 칭찬하면 다 망한다는 게 최트루? 김레알? ㅋㅋㅋㅋ (스페인 끝판왕 드립->스위스한테 패배. 아르헨티나 짱->독일한테 대패. 브라질 직업:승리자 드립->네덜란드한테 패배. 독일 칭찬->스페인한테 패배. "파란 애들이 뛰어다니다가 이겨"->첼시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알 칭찬->엘클 대패.. ㅜㅜ 그리고 기타 등등) 그러니까 이번에도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된 거 조석의 저주를 기대해봅니당.
근데 얼마 전부터 꾸준히 저주 걸어온 것 같은데.. 그래서 요새 메시가 피케이 외에는 그냥 산책호빗이 된 건가요? 흥.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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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ul.G 2012.04.09될 팀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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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카찡 2012.04.09팀의 상황을 잘 짚어주셨네요. 안심할 상황이 아닌 만큼, 더 정신적으로 단단히 무장한 팀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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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라울 2012.04.09공감합니다. 불안해하는게 당연한 상황이고 그런 기분을 표현할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불안해하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마치 레알마드리드팬이 아니라 불순분자 마냥 보일수도 있겠지만 다같은 팬이기에 월요일 새벽에 일어나서 축구보고 화나서 잠을 세시간밖에 못잔것도 잊은채 출근하는 겁니다. 불안해하는건 너무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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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야신 2012.04.09공감합니다. 불안한 건 어쩔수 없는 상황이죠.
10점차이던 승점이 4점차로 줄고 1점까지 줄어들 수 있게 되었고 요즘 삐끗하는 빈도가 잦아졌다보니... -
Christian Eriksen 2012.04.09전 아직도 괜찮은데.. 오히려 이계기로 인해 선수들은 마음을 다잡을테고 또무리뉴의 어록나오나요. .. 제로타이틀ㅋㅋㅋㅋㅋㅋㅋ 뭐그런언변으로인해 다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제일까다롭게생각하는건 엘클원정이아닌 .. 마지막 빌바오원정.. 그경기가무섭네요. -
★ 2012.04.09불안합니다....저도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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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죽이 2012.04.09*이 상황에 에이 괜찮아 우쭈쭈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불안해 하는걸 보고 추스리자는 의미인거죠.
어쨌든 갈수록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건 사실이네요. 하지만 팬들은 이런 상황을 즐길 필요도 있습니다. 모회원이 항상 하는 말을 빌리자면 현세대들의 기억 한도 내에선 우린 편하게 우승해본 적이 거의 없죠. 선수들이야 필요하다면 감독님이 잘 채찍질 해줄거라고 믿고 우린 우리대로 정줄 단단히 잡고 응원하면 됩니다. 우승을 하던 시즌엔 반드시 맞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전 마냥 불안하지만은 않네요.
그리고 엘클라시코 얘기를 하자면 승점 1점이라도 뒤진 팀은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엄청납니다. 설레발은 금물이지만 이번 엘클라시코가 어느 때보다 기대되는 이유기도 하고요. 우린 이러한 심리적 우위를 끝까지 잘 지켜나가야겠죠. -
San Iker 2012.04.09불안해할만한 상황이나 그 불안감에 휩쓸려 팀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시진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승리에 너무 익숙해지셔서 무승부만 해도 충격을 심하게 받는 분들이 계셨던 거 같은데 이제는 진정하셨겠죠..ㅎ -
subdirectory_arrow_right 카이저라울 2012.04.09*@San Iker 근데 그 무승부가 최근 5경기에 몰려있었고 너무 빠른 속도로 10점이 4점으로 좁혀졌단거죠... 무엇보다 바르샤가 말도 안되게 9연승, 아니 10연승이건 몇연승이건 할 기세라서 한경기라도 미끄러지면 끝이라는 압박감이 무승부가 마치 패배처럼 느껴지게 한 원인같아요 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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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arlos 2012.04.09그 어느 때보다 간만에 수월하게 트로피에 가까워진 것 같았는데 수월하지 않을수도 있을 것 같은 상황으로 바뀌니 그런 것 같아요.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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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제마드리드 2012.04.09불안할수밖에없죠. 이기회에 선수들이 제대로 정신무장좀 하고 왔으면 좋겟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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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티옹 2012.04.09이래야 레알마드리드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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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 2012.04.09추천합니다 추천 이제 긴장의 끈을 잡아야죠 다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