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를 추모하며

1980년대 브라질 대표 미드필더 소크라테스가 향년 57세를 끝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팬으로서 아쉽네요… 이러한 마음에 예전에 작성했던 1982 스페인 월드컵 텔레 산타나의 브라질을 재차 분석했습니다. 이수열 씨가 선물로 준 책도 참고해 이전보다는 내용이 나아질 거라 굳게? 믿습니다. 다음에 연재했다가 X모사의 농간으로 날라간 칼럼이라.. 더욱.. 애착이..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우승팀은 이탈리아였습니다. 주축 선수로는 파울로 로시를 들 수 있겠죠. 이 선수 정말 무섭습니다. 브라질을 상대로 역사상 최초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입니다. 게다가 당시 브라질은 1970 멕시코 월드컵 때와 버금가는 팀인데, 대단한 선수죠. 우연한 경기로 이 경기를 접했습니다. 브라질은 허점이 많더군요. 뒷공간을 자주 내줬고 이를 로시가 카운터 어택으로 공략했습니다. 자. 서론은 여기서 마무리하고요.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펠레와 브라질
브라질은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축구 강국입니다. 이를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브라질 최고의 슈퍼스타는 누구일까요? 월드컵 최다 득점 호나우두일까요? 아니면 레오디나스? 지쿠? 호마리우? 가힌사? 이들 모두 뛰어난 선수죠. 그러나 펠레를 앞설 수 있을까요? 요즘 메시가 펠레보다 우위라는 소리가 있지만 이건 낭설이라 생각하고요. 전 브라질 팬입니다. 이견이 있겠지만 양해 바랍니다. 자 그렇다면 펠레 얘기를 잠시 꺼내겠습니다. 펠레의 등장은 브라질 축구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아니 전 세계 축구의 흐름을 바꿨겠죠. 펠레에 대해 모른 사람들이 많을 거라 봅니다. 뛰어난 선수지만 접하기란 쉬운 게 아니죠. 저 역시 고작 펠레 관련 다큐멘터리 5개랑 어렵게 구한 1970 멕시코 월드컵 몇 경기에서 그를 접했습니다. 요즘처럼 풀 경기를 구하기란 쉬운 게 아니죠. 아쉽게도 포맷 때문에 사라졌지만…
펠레는 축구 선수가 갖춰야 될 모든 것을 지닌 완벽한 포워드라고 생각합니다. 펠레 덕분에 브라질이 줄리메 컵을 영구 소유할 수 있게 됐죠. 비센트 페올라와 마리오 자갈루가 이끈 브라질에서 에이스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습니다. 여기에 연계 플레이가 좋아 동료의 능력까지 한 단계 상승시켰죠.
문제는 펠레의 은퇴 후였습니다. 브라질은 역대 최고의 전력으로 월드컵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35세의 노장 펠레는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을 위해 뛰지 않겠다고 밝혔죠. 게다가 하얀 펠레로 불린 토스탕이 망막 병리 때문에 26세란 젊은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자이르지뉴와 히벨리누는 건재했지만 펠레와 토스탕이 없는 공격진은 누수가 컸죠. 당연히 성적 부진으로 이어졌습니다. 실상 부진은 아닙니다. 브라질엔 굴욕이지만요. 1974 서독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당대 최고의 팀 요한 크라이프의 네덜란드에 1-2로 패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브라질은 3위를 차지했습니다. 제가 접한 서적에 따르면 브라질은 좋은 경기력으로 팬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펠레가 있던 멕시코 월드컵에 비하면 2% 부족했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2%란 숫자는 작지만 우승과 3위는 엄청 크죠..
이후에도 브라질은 부진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나선 브라질은 조별 예선에서 스페인, 오스트리아, 스웨덴를 간신히 따돌리며 2차 리그에 진출했습니다다. 대회 직전 우승 후보로 꼽힌 브라질이 무기력하게 1승 2무로 결선 리그에 오르자 당시 대표팀 감독인 카우치뇨 감독에 대한 불신도 커졌죠. 심지어 자국 대통령까지 나서며 브라질의 선전을 부탁했다네요. 대통령의 입김 때문일까요? 2차 리그에 진출한 브라질은 페루와 폴란드를 각각 3-0, 3-1로 제압하며 결승 진출에 한발 다가섰습니다.
문제는 홈 팀 아르헨티나죠. 결승 예선 막판 브라질이 2차 리그 최종전에서 폴란드에 3-1로 이기자 아르헨티나는 페루를 4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 결승에 진출하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자 놀랍게도 아르헨티나는 페루를 6-0으로 제압합니다. 당시 떠돌던 소문은 비델라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길 원했고. 이를 위해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으로 입막음하길 원했답니다. 2년 전 쿠데타 끝에 정권을 장악한 사실을 월드컵 우승으로 바꾸고자 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차피 지난 대회고 그냥 낭설에 불과하니 이쯤에서 넘어가죠.
상처를 딛고 강호로 도약한 브라질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이후 브라질은 기존의 CBD를 브라질 축구 연맹(CBF)으로 바꾸며 개혁을 시도합니다. 스타 플레이어도 등장하는데요. 지쿠와 레안드루가 이끄는 플라멩구가 세계 클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팔상, 소크라테스, 토니뉴 세레주로 대표되는 황금 4중주가 탄생하죠.
자연스레 브라질은 1982 스페인 대회 우승후보로 부상했습니다. 워낙 전력이 탄탄해 대회 우승 후보 0순위로 꼽혔습니다. 이 대회에서 브라질은 오늘날의 4-4-2의 창조주로 불리는 텔레 산타나 감독의 지도력이 돋보였습니다.
80년대는 스탠딩 윙어로 불리는 전통적인 측면 미드필더의 역할이 변했습니다. 좀 더 세분화하자면 좌우 풀백이 직접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며 윙과의 포지션 변경을 통해 서로의 공간을 메워주는 형태의 전술이 등장한 거죠. 박지성과 에브라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70년대 등장한 토탈사커 때문에 전방 압박이 활성화됐고, 대인 방어보다는 지역 방어의 형태가 발전했습니다. 기존의 베컨바우어 같은 수비 맨 끝에 있는 리베로의 개념은 사라졌죠. 대신 수비진 바로 위에 꼭짓점으로 위치하며 공격의 빌드업 과정을 이끄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텔레 산타나 체제의 브라질은 어떠할까요?
텔레 산타나의 브라질은 황금 4중주로 불리는 지쿠, 소크라테스, 팔상, 토니뉴 세레주가 미드필더를 구성했습니다. 투 톱에는 에데르와 세르지뉴가 나섰고 포백은 주니오르와 루이시뉴 그리고 오스카와 레안드루가, 골키퍼는 페레스였습니다. 자 이제부터 지루할 수 있습니다. 세분화해서 얘기해볼까 하네요. 이 부분은 이수열 씨가 선물로 주신 ‘한눈에 축구전략의 역사’와 ‘축구의 전략을 읽는다’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산타나의 브라질은 공격과 수비 과정에서 포지션이 달랐습니다. 공격 상황에서는 지쿠를 공격적인 위치로 올리면서 측면으로 빠지게 했고 소크라테스를 중앙에 배치한다면 수비 시에는 소크라테스의 역할을 지쿠가 담당하며 소크라테스와 팔상이 중앙 미드필더로, 그리고 세레주가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았습니다. 산타나가 지향했던 브라질은 공격 축구의 주안점을 두는 것입니다. 이에 좌우 풀백이 1970년 대표팀보다 더욱 오버래핑을 시도했죠. 역시나 그들의 공간을 메우는 데 문제점이 생겼습니다. 이탈리아전 패배의 도화선일 수도 있죠. 어쨌든 산타나호는 내로라하는 강팀을 모두 격파했습니다. 대회 직전까지 승승장구했죠. 한 골을 먹히면 두 골을 넣는다는 철학이라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세분화하겠습니다. 최전방에 세르지뉴는 오늘날 포워드와 같이 포스트 플레이에 주력했습니다. 문제는 득점력이죠… 대신 지쿠와 소크라테스에게 공간을 열어줬습니다. 자신이 직접 골을 넣기보다는 체격적인 이점을 활용해 동료와 연계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측면의 에데르는 빠른 발을 이용해 상대의 우측 수비를 허물었죠. 전진한 지쿠는 공격을 지휘하며 상대의 좌측 수비를 적극적으로 공략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였던 팔상과 세레주는 공수양면에서 활발히 움직였습니다. 활동 영역이 넓었기 때문에 강인한 체력을 요구했죠.
수비진은 지역방어를 선택했습니다. 중앙 수비가 세트 피스 상황에서 득점에 가담했기 때문에 공간이 생겼고, 이 역시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공격과 미드필더 모두 완벽했던 산타나호는 상대적으로 부진한 수비진에 발목이 잡혔죠.
이제부터 월드컵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뭐 앞에서는 전술적으로 논했다면 이번에는 경기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브라질은 소련, 스코틀랜드, 뉴질랜드를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꺾으며 8강에 진출했습니다. 당시 8강전은 3팀이 리그전을 펼쳤고, 이 중 가장 성적이 좋은 팀이 4강에 진출했습니다.
브라질의 8강 첫 상대는 아르헨티나였습니다. 결과는 브라질의 3-1 완승이었습니다. 4년 뒤 아르헨티나는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죠. 자 마라도나는 이 대회에도 나왔습니다. 1979년 도쿄에서 열린 청소년 대회에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며 벼락 스타로 자리 잡았다죠. 그러나 브라질전에서는 그냥 못했습니다. 종료 직전에는 불필요한 파울로 퇴장을 당했고 8강 탈락의 원흉이 됐죠.
이 경기에서 브라질이 보여준 득점 루트는 간단했습니다. 첫 번째 득점은 프리킥에서 나왔는데요. 에데르가 찬 공이 골대를 맞고 나오자 쇄도하던 지쿠가 밀어 넣었습니다. 두 번째 득점은 역습 상황에서 나왔는데요. 아르헨티나가 중원에서 공을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자 공격수 세르지뉴가 이를 가로챘습니다. 이후 에데르와 지쿠, 팔상으로 이어진 패스가 재차 세르지뉴의 머리로 연결되며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모든 선수가 공격 과정에서 활발히 움직였고 득점으로 이어졌죠. 세 번째 득점은 주니로으의 오른발 중거리 슈팅이었습니다. 세르지뉴가 머리로 떨궈준 준 공을 지쿠가 상대 반칙으로 넘어지자 왼쪽에서 오버래핑하던 주니오르가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연결했습니다.
BUT…….. 2차 라운드 마지막 경기 이탈리아전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경기 장소는 바르셀로나의 세리아 경기장이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결과는 이탈리아의 3-2 승리였죠. 무려 파울로 로시가 해트트릭을 기록했습니다. 베아르조트 감독의 안목이 돋보였는데요. 로시도 잘했지만 젠틸레가 지코를 제대로 전담 마크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경기 내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늘 그랬듯이 브라질은 공격적으로 경기에 나섰습니다. 소크라테스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의 골문을 노렸지만 경기 시작 5분 만에 골을 허용했습니다. 가브리엘 오리알리와 안토니오 카브리니로 이어진 패스를 브라질 수비진이 놓쳤습니다. 이를 로시가 득점으로 연결했죠. 브라질은 소크라테스가 오른발 인사이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지만 또다시 수비진 실책으로 로시에게 골을 내줍니다.
기존의 브라질은 막강한 공격력으로 상대를 압도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전에서는 모든 문제점을 노출했죠. 결과와 상관 없이 이탈리아에 제대로 농락당했습니다. 이후 팔카오가 주니오르의 패스를 받아 득점으로 연결하며 재차 동점을 만들었죠. 역시나 로시가 결승 골을 넣었습니다. 브라질은 전원 공격이란 총 공세를 펼쳤지만 이탈리아 수비진은 난공불락 그 자체였습니다. 결국 패배했죠. 8강 탈락이라는 말 그대로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그러나 산타나의 공격 전술은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무관의 챔피언이란 오명 속에서도 브라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죠.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 이 대회에서 브라질이 보여준 화끈한 축구에 대해서는 다시금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보네요.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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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inho! 2011.12.05동영상 링크법을 모르겠네요 ㅠㅠ 그냥 사진만 하나 넣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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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주 2011.12.05젠틸레가 진짜 스케일이 다른 역대 최고의 지우개인듯 하네요 ㅋㅋ
담궜던 선수들이 마라도나에 지코 -
L.Messi 2011.12.05▦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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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경 2011.12.05좋은 글이네요.. 선추천.. 후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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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 2011.12.05▦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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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udrup 2011.12.05R.I.P 좋은곳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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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 2011.12.05잘 읽고 갑니다. 추천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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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 2011.12.05저때 브라질국대가 94년도 브라질 국대보다 인기가 더 많다죠. 우승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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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ul 2011.12.05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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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amhs 2011.12.05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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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zil 2011.12.07브라질국민들이 축구보는 안목은 전문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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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ño-Cuoco 2011.12.07소크라테스...아... 고인의 명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