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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체::

음식덕후 알론소

번즈 2011.10.07 17:27 조회 7,180 추천 17
알론소가 음식을 몹시 좋아하는 거는 이미 작년 엘 파이스 세마날 인터뷰에서 낱낱이 드러났지만, 이번에 좀 더 본격적으로 먹는 것에만 관련된 질문을 받은 인터뷰가 떴어요ㅋㅋㅋㅋㅋㅋ 바빠서 해석이 조금 거칠긴 한데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어서 올려봅니다. 대부분의 지명, 식당 이름, 음식 이름등이 다 바스크말이고 뭐 그래서 좀 낯선 고유명사가 계속 나열되는데, 최대한 설명은 달아보려고 하긴 했어요. 그리고 중간에 미식 클럽 얘기가 계속 나오는데, 저게 바스크 지방에서 특이하게 나타나는 형태로 저쪽서는 많이들 하는 거라고 해요. 미식 클럽이라고 꼭 무슨 거창한 맛집을 가는 건 아니고, 보통은 몇몇이 모여서 조용하게 같이 요리하고 먹고 뭐 그런 거라고.

위에 거는 어제, 10월 6일자로 뜬 엘 파이스의 El comidista라는 블로그에 실린 인터뷰고, 아래는 작년 10월에 엘 파이스 세마날에서 했던 인터뷰인데 같이 보면 좋을 거 같아서 예전에 번역했던 걸 긁어왔습니다~ 저는 알론소 참 안 그럴 거 같은데 이런 의외의 면을 드러낼 때 마다 너무 웃겨요ㅋㅋㅋㅋㅋㅋㅋㅋ다른 분들도 재밌게 보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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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06 El Comidista
(http://blogs.elpais.com/el-comidista/2011/10/gastropoligrafo-entrevista-comida-xabi-alonso.html)

  흔히들 우리 바스크인들은 잘 먹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흔한 말은,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선수이자 훌륭한 음식의 빅팬인 샤비 알론소에게는 들어맞는다. 미식에 관한 그의 답변들을 읽고 있노라면, 이 산세바스티안 사람은 공을 가지고 즐기는 만큼이나 양 어깨살이나 라그리마 완두콩, 크리스탈 페퍼도 즐기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알론소가 완벽한 사람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ㅡ그는 올리브를 싫어하는데다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뛰지 않는단 말야ㅡ하지만 그토록 미식가인 운동선수를 만나본 것은 정말로 좋았다.


음식과 관련한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인가?
우리 메르체 할머니가 톨로사의 할머니 댁에서 해주셨던 토마토와 삶은 달걀을 곁들인 마카로니.

어렸을 때, 진짜 싫었는데 어른들이 꼭 먹게 만들었던 음식은 뭐가 있었나?
내 생각엔 올리브였던 것 같다. 우리 할머니께선 나하고 우리 형을 오렌다인에 있는 (음식)클럽에 데려가시곤 했었는데, 거기선 언제고 우리에게 올리브를 먹게 하곤 했어. 아마 몇 천 번을 먹어봤더래도, 여전히 나는 올리브는 좋아지지가 않더라.

당신은 요리를 하나? 무슨 요리를? 언제?
요리는 쪼끔 한다. 하지만 특히 내가 좋아하는 건 애정과 기쁨을 가지고 만든 요리와 다른 것들이다. 언제냐고? 내가 도노스티로 올라가서 우리가 다 같이 클럽의 식탁 앞에 모일 때지. 무슨 요리냐고? 거창한 건 아니고, 보통 피키요 피망을 곁들인 찹스테이크를 사거나, 새끼양의 어깨살을 사곤 한다. 나는 한계가 있는 요리사이자, 흥미가 많이 있는 조수이고, 또 감사할 줄 아는 먹는 사람이지...하하.

당신이 아는 축구 선수 중에, 가장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나, 혹은 그 테마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음식에 가장 흥미가 있고 좋아하는 사람은, 라 레알(소시에다드)에서 만났던 아이토르 로페스 레카르테. 사실 그는 지금 몬드라곤에 델리카트슨(※특이한 수입 식품 등을 파는 가게)을 소유하고 있어. 와인도 취급하고, 음식도 판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혹은 좋아했던 과링돈가다(※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괴식?? 정도인 듯-_-;)는 무엇인가?
나는, 가끔씩은 노씨야(※스페인의 누텔라)를 바른 빵에다 팜플로나산 소세지를 끼워 먹는 그 세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조합이지...

혹시 특정한 음식에 대해 특별히 잊지 못하는 기억 같은 게 있는지?
내게는 많은 기억들과 잊을 수 없는 요리들이 있다. 카디스에서 직송해온 신선한 가재 구이는 훌륭한 기억이었지. 그리고 또 내가 수마이아에서 잡았던 도미(이건 아마 내가 낚은 것 중에 제일 큰 거라 그럴 거야)하고, 치프로네스 펠라요(※작은 오징어와 양파를 이용한 요리). ‘엘카노’의 구운 코코챠(※대구류 생선의 볼살에 해당하는 부위)와 넙치는 정말 괜찮아. ‘훌리안 데 톨로사’의 피키요 피망을 곁들인 스테이크, 그리고 ‘마르틴’ 식당의 프렌치 토스트...

설령 배고파서 죽어간다 쳐도 이것만은 먹지 않겠다하는 음식이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말하겠어. 거의 록키처럼 말이지, 하하. 비록 가능하면 개구리 다리는 피해보려고 하지만.

세계 최고의 핀초들(※바스크식 타파스. 보통 꼬치로 꽂은 형태이기 때문에 이렇게 부름)은 산 세바스티안에서 만든다는 걸 감안할 때, 당신에게 바(bar)를 몇 개 좀 추천받을 수 있을까?
추천은 늘 어려운데, 왜냐면 굉장히 다양한 바가 있고 각각 자기들 나름의 특별한 것이 있단 말이지. 오래된 곳에는 아주 좋은 바들이 있다. ‘간바라’바는 정말 좋아, 버섯요리 전문이고. ‘푸에고 네그로’는 혁신적이며 퀄리티도 훌륭하지. ‘라 쿠차라 데 산 텔모’는 작은 핀초들이 끝내준다. ‘파코 부에노’는 최고의 샌드위치를 파는 클래식 바이고.

당신의 가족들은 에우스카디(바스크)에서 마드리드로 당신을 보러 올 때면 무언가 음식을 가져올 텐데, 뭘 가져오나?
아버지는 자주 톨로사의 1등급 고기를 가져오시곤 한다. 입에 넣으면 꼭 버터 같아. 투델라에 사는 친구들은 새로 수확한 아스파라거스나, 아티초크, 라그리마 완두콩, 크리스탈 페퍼를 보내주곤 한다. 내가 약한 것들이지.

조금 깊이 들어가 볼까, 바스크인들과 음식의 상관관계 말이지, 이건 유전적인 걸까? 아니면 학습된 것일까?
이건 문화적인 거야. 어려서부터 흡수하게 되는 거지. 축하 행사 같은 걸 하면 거의 언제나 장소는 식탁 앞이 되고, 당신은 그걸 즐기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당신이 흥미만 조금 갖는다면, 우리가 에우스카디(바스크)에서 가질 수 있는 가능성들은 하나의 특권이라 할 수 있어.

당신은 정말 심각한 중범죄를 저질렀다. 재판에서는 당신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어. 전기의자에 앉기 하루 전날 밤, 당신에게 마지막 식사로 먹고 싶은 걸 주겠다고 하면, 어떤 메뉴를 선택하겠나?
어려운 질문인데. 내 생각에 내가 정할 메뉴는 너무너무 광범위해서 사형 순간이 오기도 전에 소화불량으로 죽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뭐, 여러 가지를 선택할거야. 구운 버섯에 노른자위, 라그리마 완두콩, 해물도 조금, 그리고 여러 가지 구운 생선(도미, 대구 목살, 가자미, 넙치, 참치대뱃살)이랑, 양 어깨살. 그리고 마지막으로 디저트는 프렌치 토스트 조금하고 치즈 케이크로. 뭐 그런 걸로 먹고 나면, 긴 낮잠을 향해 떠나기에 섭섭지 않을 것 같다...

우리에게 공유해 줄 수 있는 간단한 레시피가 있는지?
레시피보다는, 피키요 피망을 요리할 때 마무리하는 걸 알려주겠어. 프라이팬에서 약한 불에 그걸 익힐 때에, 설탕을 살짝만 뿌려주도록 해라. 이미 알겠지만 나는 요리사로선 한계가 있는지라 감히 이 이상의 충고를 주는 것은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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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0. 10 El Pais Semanal
(http://www.elpais.com/articulo/portada/Xabi/Alonso/elpepusoceps/20101010elpepspor_18/Tes)

   산 세바스티안, 안티구오 출신의 진주, 어느 팀이건 앞 다투어 데려가고 싶어 할 축구선수. 사려 깊으며, 현명하고 책임감 있는 이 스물여덟 살의 바스크인은 이제 스페인 대표 팀에서나 그의 소속팀인 레알 마드리드에서나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아주 조용하고 우아하게.

  미켈과 샤비 알론소 형제는 자주 산 세바스티안의 콘차 해변에서 놀곤 했었다. 1990년의 어느 여름날 아침, 영화감독 훌리오 메뎀은 그의 첫 장편영화가 될 [Vacas]의 주인공 페루의 아역을 절박하게 찾아 헤매고 있었다. 빨간 머리에 강한 성격과 바스크인의 얼굴을 한, 열한 살 정도 된 어린이를. 그리고 그는 거기서 어린 샤비를 만났다. 거기, 그가 상상해왔던 페루가 있었다. 샤비는 아직까지 그 일을 기억할 때면 웃는다. 그의 아버지인 페리코 알론소가 집에 없는 사이에ㅡ"그 때 아마 훈련하러 가셨었을 거예요" 미켈의 말에 따르면.ㅡ샤비의 어머니인 이사벨이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정중하게 캐스팅을 거절했다. 결국 페루의 아역은 미겔 앙헬 가르시아가 연기했다. 그리고 샤비 알론소 올라노는 축구를 계속했다. 샤비는 한 번도 그걸 아쉽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스타가 길 원한 적이 없으니까. 영화계의 스타라면 더더욱. 사실, 열일곱 살의 나이로 하비에르 클레멘테의 손에 이끌려 레알 소시에다드 1군에 데뷔하던 그 때까지도 그는 심지어 프로 축구선수가 될 생각도 해보질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월드컵 챔피언이고 틀을 깨뜨린 스페인 대표 팀의 필수적인 선수이며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마드리드의 살라망카 구역에서 산다.

  "처음에는 포수엘로 쪽에서 한 번 살아봤는데요." -두 달 동안을 그랬단다. "근데 저하고 나고레가 더 좋아하는 걸 찾다보니, 우린 시내에서 사는 게 더 맞겠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사는 걸 좀 좋아해요, 도시적인 거요. 그래서 결국 이사를 했고 뭐, 지금 굉장히 행복해요. 마드리드는 놀랍습니다." 처음에는 물론 이웃 사람들이 깜짝 놀라곤 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별로. 다들 습관이 되다보니 처음의 놀라움은 사라지고 이제는 훈련 가기 전에 동네 모퉁이 바에 들러 커피 한 잔 하거나, 혹은 식료품점에서 나오거나, 아니면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고 있는 알론소를 봐도 그러려니 일상으로 여기게들 되었다. "집보다 길에 있는 걸 좋아해서요. 저하고 나고레는 둘 다 그렇게 사는 데 익숙해요. 산 세바스티안에서도, 리버풀에서도 그랬고, 그래서 마드리드에서도 그런 식으로 사는 거죠. 특별히 유용하거나 장점이 있는 삶의 방식은 아니지만, 평생 그렇게 살아온걸요." 그는 설명했다.

  비의 뿌리를 찾아들어가자면 기푸스코아의 심장, 오리아 강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그의 아버지인 페리코 알론소는 톨로사에서 태어났으며 국가 대표로 20경기를 뛰었고 1980년과 81년에는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그리고 1986년에는 바르셀로나에서 리가 우승을 거머쥔 선수였다. 그리고 어머니인 이사벨 올라노는 거기서 몇 킬로미터 더 북쪽인 오카인고로의 작은 마을 오렌다인 출신이다. 샤비는 톨로사에서 태어났다. 가까운 이바라에서 처음 여섯 달을 보냈고, 그의 아버지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가족들은 모두 디아고날 근처로 이사를 갔다. 거기서 그들은 6년을 살았다. 페리코가 바르셀로나에서 뛴 3년과 또 다른 카탈루냐 팀인 사바델에서 뛰었던 3년 동안. 그렇게 샤비의 유년기의 첫 기억들은 바르셀로나와 연관되어 있다. 특히 그가 다녔던 빨간 모자 유치원과 유치원 선생님이었던 플로라 선생님에 대한 기억들.

  "애들도 왜, 이를테면 무는 애들이 있고 물리는 애들이 있잖아요? 전 무는 쪽이었죠...그것도 엄청요." 샤비는 말했다. 카탈루냐에서 보낸 시절의 기억 중 또 그가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는 처음으로 프로 선수들의 라커룸에 들어가 본 것이었다. 사바델의 홈구장인 '노바 크레우 알타' 에서였다. "그 때 저 깃발 들고 갔는데 완전 신나있었거든요. 근데 깃발을 밟는 바람에 관중석 계단에서 데굴데굴 굴렀죠." 그보다 한 살 위인 미켈 역시 축구선수이며 아틀레틱, 레알 소시에다드, 수만시아, 볼튼을 거쳐 지금은 테네리페에서 뛰고 있다. 어렸을 때에 둘이는 요주의 꼬맹이들이었단다.  "그, 아시잖아요. 어느 날 둘 중 하나가 아이디어를 뭐 하나 떠올리면 그 다음날 다른 하나가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키고...그런 거죠." 샤비는 웃었다. 둘은 오카인고로에서 보낸 여름날을 특별히 애정 어린 날들로 기억한다. 형제는 도마뱀을 잡으러 다니고, 집에 있는 닭장에서 달걀을 훔쳐다가 근처 고속도로에서 지나다니는 차들에게 던지곤 했으며, 할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두 형제의 어린 시절에서도 두드러지는 건 역시나 축구였다. 하지만 아버지가 전직 축구선수이자 코치라는 사실에서 추측해볼 수 있는 것과 달리 의외로 집에서 축구 얘기는 별로 나오질 않았다. "집에선 어머니가 대장이셨거든요. 원래 에우스카디(바스크)에선 여자들이 다 명령하고 그러는데 모르셨어요? 하여간 어머니께 제일 중요한 건 저희가 공부를 하는 거였죠." 이카스톨라 이쿤차 학교의 학생이었던 샤비는 말했다. 그 학교에 다닐 때 한 번은 카스테야노(스페인어)시험에서 낙제를 했는데, 샤비는 그 대가를 비싸게 치러야 했단다. “글쎄 저를 한 달 동안이나 축구 못하게 하셨어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아직까지도 유감을 숨기지 못했다.

  샤비는 드러내놓고 산 세바스티아인이다. 그는 콘차 해변에서 축구를 했고, 두 미식 클럽의 회원이다. 하나는 그가 늘 살았었던 안티구오 지역의 미식 클럽이고 다른 하나는 사우세 소속의 클럽이다. 거기 속해 있는 친구 때문에 멤버가 됐는데, 거기서 그는 'Bone'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산 세바스티안이 제 도시에요. 거기서 자랐고, 처음 축구를 했죠." 물론, 산 세바스티안은 샤비가 그의 아내이자 두 아들딸의 엄마인 나고레 아람부루를 만난 곳이기도 하다. 첫째인 욘은 2008년 3월 11일에 리버풀에서 태어났고, 아네는 2010년 3월 30일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22살이 되던 해, 샤비는 산 세바스티안을 뒤로하고 짐가방을 챙겨 리버풀로 떠났다. 세 시즌 동안을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보내면서 라 리가에서 준우승을 하기도 했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뛰었으며 국대에서 15경기를 뛰었던 후였다. 이제 뭔가를 좀 바꿔볼 시간이 된 게 명확했고, 그래서 샤비에겐 단순한 에이전트 그 이상이었던 이냐키 이바이네스ㅡ그는 샤비가 갓난쟁이였을 때 이미 아버지 페리코 알론소의 컨설턴트였다ㅡ는 레알 마드리드와 합의를 보려했다. 그러나 플로렌티노 페레스는 당시 소시에다드 회장이었던 호세 루이스 아스티아사란과 계약을 마치지는 데 실패했다. 그는 15M을 지불하려고 했고, 소시에다드는 거기에 3M을 더 원했다. 결국 이바이네스는 한동안 일에 빠져 산 끝에 샤비에게 다른 오퍼를 따다 주는데 성공했다. 안필드로 와달라는 오퍼를.

  "그 때부터 모험이 시작된 거죠. 지금은 알아요. 그게 제 삶을 바꿨다는 거요." 샤비는 머지사이드에서 보낸 시간들을 두고두고 인생에서 참고할 교훈으로 여긴다. 비단 축구와 연관된 부분에서만이 아니라, 그 잊을 수 없는 2005년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나 (리버풀은 전반이 끝날 때 까지도 3-0으로 지고 있었지만, 팀은 그 위기를 뛰어넘었고, 결국 승부차기로 경기를 이겼다.) 2009년 4월 15일의 그 잊을 수 없는 경기보다도 (그 날은 셰필드의 구장에서 96명의 팬들이 죽었던 비극적인 힐스보로 참사에서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더한, 인생의 경험.

  "리버풀에서 저는 문제들을 직면하는 법을 배웠어요. 집에서는, 산 세바스티안에서는, 제가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었죠." 샤비는 이사하던 때를 회상했다. 산 세바스티안의 한 의류점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나고레는 그 때 한참 아시에르 일투나와 텔모 에스날의 영화 [¡Aupa Etxebeste!]의 복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영화 촬영이 끝난 후에야 나고레는 리버풀로 왔고 그 때 샤비는 이미 거기서 두 달을 보낸 후였다. 나고레는 부두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아주 가까운 시내의 한 호텔에 일자리를 얻었다. 샤비는 엔지니어링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를 계속하려고 했지만 그의 첫 아들이 태어나기 조금 전에 3학년에서 공부를 멈췄다. 아들의 탄생과 맞물려 일어났던 일들은 샤비가 어떻게 사는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내와 함께 있기를 원했고 감독이었던 라파 베니테즈와 충돌했다. "사실 심각한 일은 없었어요." 그는 말했다. "토요일엔 뉴캐슬 상대로 뛰었었고, 일요일에 아내가 양수가 터졌죠. 월요일에는 챔피언스 리그 때문에 밀란으로 떠나야 했는데, 전 감독님께 원하신다면 아기가 태어난 다음에 합류하겠다고 말했어요." 그는 설명했다. "나는 너를 기다릴 수가 없어." 라고 베니테즈는 말했다. 샤비는 그 말을 이해했지만 그럼에도 리버풀에 남았다. "베니테즈는 절대 저에게 억지로 밀란에 가라고 한 적이 없어요. 이미 제가 남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죠."

  리버풀에 대해 말하면서 샤비는 감정이 북받쳤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아토차(레알 소시에다드의 옛 홈구장)에서 그의 할아버지와, 늘 옆자리에 앉았던 카를로스 아르기냐노씨와 축구를 보면서 자라났고, 그러면서 축구에 대해 본인 나름의 평가 기준도 생겼다. 여기에 대해서는 그는 의견이 확고하다. "안필드는 성지에요. 제가 과장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저한텐 세계 최고로 놀라운 구장이라구요." 샤비는 단언했다. 안필드 뿐만 아니라 그는 리버풀을 거친 도시라고 말하면서 그가 리버풀에서 활력을 옮겨 받았다고 말했다. "리버풀의 성격을 부여하는 건 거기 사람들이에요. 대부분이 노동자고, 단련된 사람들이죠. 대처리즘 시기에 조선소들이 폐쇄되면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이요. 그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일종의 프라이드 같은 게 아직도 살아 있어요. 리버풀 사람들은 스스로 믿는 바를 위해 싸우는 데 익숙하고 그런 특성이 다른 사람들까지 전염시켜요. 저는 거기서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왜 거길 떠났을까? 분명 그래야 할 시간이 왔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마드리드가 다시 한 번, 그를 부르려고 문을 똑똑 두드렸다.

  이적은 순수하게 축구에 관한 일이었다. 왜냐면 샤비는 영국에서 너무나 행복했고 영국 음식조차도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까. 매주 친구나 가족 중 누군가가 꼭 손에 가득 강낭콩이며 신선한 야채, 심지어 톨로사의 테하 과자까지 꽉꽉 들어찬 가방을 들고 샤비를 방문하러 나타났다. 그 중에는 심지어 커다란 찹스테이크를 숨겨서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샤비에게는 잘 먹는 것 보다 중요한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았으니까. "전 바스크인 이니까요. 뭐 바스크인 다운 면들도 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샤비는 농담을 던졌다.

  "아, 전 먹는 게 좋아요. 과식하는 것까지도 좋아요." 그리고 요리하는 것도, 샤비는 좋아한다. 그가 부엌에서 완전 망쳤던 건 파에야였다. "진짜 이상하게 됐어요. 완전 망했죠. 재앙이었다니까요. 잘 만들었으면 좋았을 거예요. 저 파에야 좋아하는데. 그렇지만 그거 당최 감을 못 잡겠더라고요." 그는 심플한 요리가 제일 어려운 법임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도미 요리건, 가자미 요리건 오븐에 굽는 요리는 잘한다고 한다. "강하지 않은 향신료 종류를 좀 넣고, 올리브유랑, 비니거 넣고, 마늘 쪼끔...저 완전 좋아해요. 이렇게 기본적인 요리나, 아님 잘 구운 닭고기에 양상추 좀 곁들여서, 그러면 행복 그 이상을 느낄 수 있죠."

  샤비는 미식가에겐 풍요롭기 그지없는 마드리드의 환경이 그에게 좋지 않음을 인정했다. "저 정말 미쳐요. 저는 특별히 열광하는 분야가 없고, 뭐든 다 먹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마드리드는 끝이 안 나죠. 온갖 제철 요리들, 일식, 중식, 완전 공들여 만든 요리, 비교적 손이 덜 가는 요리...전 상관없어요. 먹는 거 진짜 좋아해요. 얼마나 좋아하는지 요샌 자제를 좀 해야 될 정도죠. 만날 먹자파티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쨌건 마드리드는 옵션이 엄청나요." 샤비는 추천도 해줬다. "피키요 피망하고 고기 요리는 톨로사의 카사 데 훌리안에서 먹어야 돼요. 그건 카바 바하에 있는 식당이구요, 제대로 된 채소요리는 사가스타 거리에 만두카 데 아사그라 라고 있어요. 일식이요? 웰링턴의 가부키. 코시도랑 파베스는(둘 다 강낭콩을 베이스로 한 요리), 파라구아스에서." 샤비는 이런 말도 했다. "먹는 거에 관해서라면 전 모든 새로운 요리에 활짝 열려있어요. 추천도 받습니다."

  하지만 옷에 대해서는 그다지 열려있지가 않다. "거기에 관해선 전 완전 클래식한 취향이에요. 디테일한 걸 좋아하고, 제가 입는 것에 꼼꼼히 신경 써요. 손목시계랑 구두를 좋아하고. 그렇지만 제가 패션 빅팀은 또 아니죠. 전 메이커 옷도 사고 그냥 상표 없는 옷도 사고 가리지 않고 사거든요. 제가 뭘 좋아하고 뭘 안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아요. 본능적으로요. 제가 털 코트를 입는 일은 절대 없을걸요." 샤비는 또 유행하는 거라면 어울리지 않는 옷도 무조건 걸치는 사람들을 못 견뎌한다. "그냥 누구 따라서, 그렇게 입는 거 사람들을 보면 가끔 웃기다구요." 베르나베우 라커룸에 대한 얘기를 들춰내려고 하자 샤비는 또 좋다고 웃었다. "아, 진짜 별별 스타일 다 있어요. 그런데도 가끔은 특히나 '오 맙소사, 저건 아냐. 있을 수가 없어'하고 생각하게 되는 날들이 있죠.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는 절 웃겨 죽게 만드는 노력을 많이 해요. 그렇지만 드렌테 패션이랑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습니다. 네, 그 에르쿨레스 간 네덜란드 선수요. 걔 패션은 정말 스펙타클했어요. 그리고 전 아르벨로아도 많이 비웃어요. '너 오늘 마누라가 옷 입혀준 거 입었지? 아냐?'이러면서. 그러면 걔는 완전 화내죠."

  샤비는 옷을 고르는 데 있어선 고전적인 취향의 소유자다. 그리고 영화를 고를 때도 그렇다. "흑백 영화를 좋아해요. 느와르 영화나, 역사나 정치랑 관련된 영화들을 좋아하고요." 음악에 관해서는? "전 레전드들을 좋아해요. 어렸을 땐 너바나 광팬이었는데, 요새는 점점 더 사비나, 칼라마로, 비틀즈, 닐 영, 톰 웨이츠나 로킬요..." 그는 와인 취향 역시 클래식하다고 고백했다. "좋은 리베라 델 두에로나, 마우로 한 병이면 아, 행복해요."- 한편 샤비는 그의 약점은 탄산이라고 인정했다. "샴페인이라면 미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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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ow_upward 국대 경기 후기 arrow_downward AS가 달라졌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