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컴 독점 인터뷰
"이제까지 제 주위에는 항상 최고의 감독들과 코치들이 있었기 때문에, 전 항상 운 좋게 경력을 쌓을 수가 있었어요. 유소년 시절 저는 아버지, 그리고 스튜어트 언더우드와 스티브 커비와 항상 함께였어요. 언더우는 거의 해병대 상사같은 분이었죠. 그는 저를 경기장 구석으로 밀어넣고 거기 서 있으라고 한 적도 있어요. 아버지는 굉장히 불쾌해하셨죠. 노비 스타일스, 에릭 해리슨... 다들 강경한 분들이셨죠.
그 중 에릭은 제가 본 최고의 유스팀 코치였어요.. 그는 우리를 제대로 이끌었어요. 우리가 꼭 배워야할 것들을 실습하게 했죠. 그는 우리에게 드레싱룸을 청소하게 했고, 바닥을 닦게 했고... 그런 것들은 일종의 축구선수가 되기 위한 학습 곡선의 일부였어요. 경기장에서 그는 또 다른 무서운 코치였죠. 많은 자신감과 축구에 대한 흥미를 안겨주었지만, 무언가 잘못했을 경우.. 상상이 가시죠? 그리고 물론 당연히, 알렉스 퍼거슨 경도 빼놓을 수 없죠. 지금의 저를 만드신 그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런 분들의 말씀을 새겨 듣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을 테니까요.
전 여전히 배우는 중이예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많은 경험을 쌓고 있구요. 맨유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 예기치 못하게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됐고, 다른 선수들과, 다른 팀을 위해 뛰게 되었죠. 전 카를로스 케이로스를 이미 알고 있었고 우리는 친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카마초는 여기 온 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그를 코치로서 많이 알진 못했어요. 겨우 연습 경기만 치루고는 모든 게 변했으니까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한 코치님 밑에서 10년을 있었어요. 매주 같은 코치에게 지도를 받았고, 뭘 해야할 지 알고 있었죠.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에서 코치가 자주 바뀌는 것이 저를 힘들게 했어요. 이제 적응해야겠죠. 저는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또 어떤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지 다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전 '다른 것'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면서 자랐으니까요..
(여기 그의 적응능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또 하나 있다. 그의 자서전, My side 에서 베컴은 그의 좋은 친구들 네빌 형제에 대해 숨김없이 털어놓았었다. 개리와 필립에게서 어떤 걸 기대할 수 있는지, 어떻게 잔소리를 하면 되는지, 어떻게 그들을 화나게 할 수 있는지, 놀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곳, 심지어 농담 한 마디 할 수 없는 곳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무척 힘들어요.. 편안한 곳을 떠났으니까요. 전 맨체스터에 아주 만족스런 집이 있었고, 맨체스터의 모든 것이 다 완벽했어요. 그곳에 친구들이 있었고, 가족들도 불과 2시간 떨어진 곳에 있었고, 수 년간을 함께한 동료 선수들이 있었고, 저에게 많은 의미를 가져다 준 팬들이 있었죠.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을 다 바꾸어야만 한다니, 무척 두려워요. 뭘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마치 제가 실습생 자격으로 1군팀 드레싱룸으로 걸어들어가 유명한 선수들을 만나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2003년 봄, 올드 트래포드에서 있었던 챔피언스 리그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를 언급..)
"우리는 리그를 이기기 위해 노력했고, 저는 좀 더 많은 골을 넣기 위해 노력했죠. 하지만 그 날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그렇게 생각대로 되진 않았어요, 유나이티드에겐 한 획을 그을 만한 역사적인 경기였지만, 정말 실망스러웠죠. 하지만 큰 좌절을 겪었다해도 그걸 극복해야 하잖아요. 사람들은 제가 그때부터 레알 마드리드와 접촉을 하고 있다고 떠들어댔지만, 난 그런 적 없어요. 제가 항상 말하는 거지만, 제가 처음으로 (레알 측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것은 피터 캐년으로부터 팀을 떠나달라는 확인 전화를 받은 후였어요."
(유나이티드를 떠난 후, 베컴은 그의 예전 정신적 지주였던 퍼거슨과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니예요, 문자 그대로 '한번'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우리가 한 젊은 선수의 장례식에 갔을 때였죠... 부끄러운 사실이예요. 저는 퍼거슨 감독님과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누게 될 순간을 예견하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성공하기까지 그가 해준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드리고 있어요. 그는 제가 17살때 저에게 기회를 주고, 팀에 넣어준 분이예요. 그는 어린 우리들을 모두 돌보아주셨죠. 저는 아무 나쁜 감정도 갖고 있질 않아요. 저는 그저 제가 떠날 때보다 상황이 나아졌길 바라는 마음뿐이지만, 어쨌든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네요."
(그가 떠날 때 퍼거슨 경은 심지어 'Good luck’이라는 인사조차 안해주었다고 한다.)
"제가 처음 레알에 왔을때, 제가 왜 여기 있는지, 티셔츠를 팔러 온건지 아니면 정말 축구를 하러 온건지에 대해 엄청 많은 기사가 떠돌아 다녔죠.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런 오해는 사람들이 저를 실제로 만나본 뒤에야 사라지더군요. 저는 사람들에게 제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며, 얼마나 평범한 지를 증명해보여야만 했어요. 사람들이 보고 듣는 이야기 중 99%는 거짓이예요. 바로 그게 문제예요, 제가 그들을 직접 만나야만 그 인상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그가 하는 더욱 많은 (좋은)일들은 대중에 소개되는 법이 없다. 이를 테면 그가 마드리드 폭탄테러 피해자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한 것 같은 일이 그렇다.)
"저는 정말 축구선수로만 기억되고 싶어요. 바로 그게 제가 이런 모든 것들을 아이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이유니까요. 저는 아픈 아이들을 위해 많은 특별한 일을 했어요. 그들을 방문했고, 그것은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겠죠. 하지만 저는 제가 항상 축구에 감사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걸 잊지 않아요. 10년이란 시간동안 사람들은 여섯 개의 프리미어 타이틀과, 유러피안컵, 잉글랜드 컵에 대해 얘기했지만, 저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진 않아요.
새로운 선수들과 새로운 클럽을 만나는 일은 저로 하여금 그들이 얼마나 뛰어난 지를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제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지도 발견하게 해주죠. 저는 '다른 축구'에 적응해야만 했어요. 잉글랜드에서 하는 태클을 여기서도 할 수는 없는 일이죠. 심판이 다르니까요."
(케이로스는 그를 제2의 '마케렐레'로 만들길 원했다. 그에게 "구티 뒤에 서라, 구티가 공격을 더 잘하니까"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반면, 카마초와 가르시아는 루이스 피구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베컴을 센터에 남겨두었다. 파블로 가르시아의 영입 이후, 오른쪽 측면에서의 베컴의 활동량이 늘면서 멀티플한 플레이를 펼치게 됐고, 팀에 더 많은 헤딩슛 찬스를 올려주는 능력을 보였다. 그는 첫 6주간 더 많은 어시스트를 만들어냈고, 레알의 지도부들도 이런 헌신성과 협동적 책임감, 다재다능함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물론, 그의 크로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베컴은 드디어 클럽 내에서 그의 포지션을 찾게 되었고, 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더불어 공을 잡는 시간이 더 많아졌는데, 이것이 레알 같은 팀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것이다.)
"제가 팀에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더 잘할 수록 더 많은 자신감이 생기고, 동료들이 저를 더 의지하게 되는거죠. 저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때 시도하고,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선수예요. 어떨때는 제 뜻대로 되지만, 가끔 그렇지 않을 때도 있죠."
(그는 이반 엘게라, 미첼 살가도와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팀내 대화 상대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라운드에서 소통하는데 문제가 없어요. 필요할 때마다 서로를 돕고 이야기를 하죠. 제가 처음에 마드리드에 입단했을 때, 누군가 말하길, 팬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를 좋아한다고 했어요. 저에겐 그럴 만한 에너지가 있으니 참 고마운 일이죠."
(마이클 오웬의 '외국 모험'에 대한 태도와는 달리, 스페인 팬들은 베컴이 더 많은 스페인어를 배울 것을 요구하며 그를 결코 (오웬처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당신이 원하는 만큼 경기할 수 없고, 또 행복하지도 않다면, 최선의 방책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요."
(오웬은 그가 영국 신문을 그리워했으며, 잉글랜드에서 축구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개인적으로 저는 여기서 행복해요. 저는 오랫동안 잉글랜드에서 활동했고, 이제는 다른 분위기의 나라와 스페인의 생활을 좋아하게 됐어요."
(다행스러운 점은, 비록 몇몇 타블로이드지들이 그의 사생활로 먹고 살고는 있지만, 스페인의 언론은 다르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축구 언론기자들은 선수의 사생활따위 보다는 그의 기술에 더 흥미를 두고 있다. 어찌되었건, 호나우딩요와 함께 부활한 바르셀로나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의 트로피 수집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게 되었다.)
"(호나우딩요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이고, 그가 받는 모든 상은 당연한 거예요. 저는 절대 호나우딩요 때문에 짜증을 내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저는 그런 선수들의 경기를 보는 것이 너무 좋아요. 물론 그가 저와 같은 팀에서 뛰는 것이 그를 상대로 뛰는 것보다는 좋았겠지만요.
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재능을 지녔어요. 그는 베르나베우(레알경기장)를 통째로 뒤흔들어 놓았는데, 호나우딩요가 바로 그런 선수예요. 그는 저의 클럽과 제 조국이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제 바람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인물이죠. 바르셀로나는 강하면서 팀워크도 좋아요. 솔직히 모든 게 순탄하게 돌아갈 거란 기대는 여기 스페인에서는 안해요. 저는 게임이 쉬울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죠. 팀 전원이 잘하지 않는 한, 이길 수 없어요."
(레알을 위협하는 클럽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첼시를 빼놓을 수 없다.)
"전 누구의 이름을 대진 않을 거예요. 첼시가 리그의 탑 위치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질투하는 것 같았죠.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아무리 좋은 선수들을 샀더라도 그들이 서로 협동하지 않거나, 감독이 선수들을 정확한 포지션에 넣지도 않고, 또 '팀'으로 뭉치게 할 수 없다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어요.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던지 간에 말이죠."
(부상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축구 선수들은 누구나 부상과 통증을 달고 살아요. 할 수 없이 적응해야만 하는 부분이예요. 그동안 제가 매경기 전후마다 주사를 맞는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예요. 저는 이번 시즌 딱 두 번 주사를 맞았고, 전부 항염증제였을 뿐이예요. 별로 심각한 것도 아니었고, 약간의 통증이 지나갔을 뿐이죠. 의사들은 제가 공을 차는 방식때문에 등에 압력이 가해져서 문제가 생긴다고 했고, 저는 (기술상) 몇 가지를 바꿈으로써 최대한 (문제를) 피하려고 하고 있어요. 뛰다 보면 정말 온갖 통증이 다 올라오지만, 저는 그 정도도 극복할 수 없는 선수가 아니예요."
(여가시간도 축구선수에게는 중요하지만, 베컴은 다른 선수들처럼 스포츠채널에 눈을 고정하진 않는다고 했다.)
"전 축구 관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예요. 제가 호텔에 있을때 만약 중계를 해준다면 아스날, 첼시의 경기를 보지만 끝까지 보진 않아요."
(심지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최근의 경기조차 끝까지 보진 않았다고 했다.)
"리버풀-밀란의 경기는 정말 놀라웠어요. 저는 전반전을 보고는 나가서 피자를 사 먹느라 리버풀의 3골을 놓쳐버리고 말았죠. 리버풀이 첫번째 골을 넣었을 때 저는 전화를 받고 있었고, 그 뒤로 바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나머지 두 골도 보지 못했어요. 저는 잉글랜드팀의 제이미 캐러거와 스티븐 제라드의 활약을 보며 기쁨을 감출 수 없었죠. 전 정말 기뻤다니까요, 믿어주세요. 하지만 유나이티드의 팬으로서 역시 '우리 팀'이 낫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죠. '우리 팀'은 절대 패하지 않아요. 3분안에 두 골을 넣잖아요!"
(이제 곧 베컴의 주말에서도 경기가 사라질 것이다..)
"경기를 하지 않을 때는 힘들어요. 여름 내내 휴식을 취해야 할 기간에도,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죠. 하지만 나중에는 제 축구학교를 돌볼 거예요. 이건 오랫동안 제 꿈이었지만, 이렇게 큰 꿈이었을 지는 몰랐어요."
(베컴의 첫번째 축구교실은 동류 중 유럽에서 가장 큰 시설을 갖추고 있다. 두개의 풀사이즈 실내축구장을 비롯, 교실과 다이닝홀, 그리고 메디칼 센터를 포함하고 있다. 8~15세의 만 여명의 어린이들이 일부는 무료로, 나머지 일부는 175~250유로정도를 내고 3~5일 코스로 방학 기간동안 이용할 수 있다.)
"이건 제 미래를 위한 거예요. 제가 선수 생활을 마감할 이후에요."
(베컴의 다리가 아마 그가 얼마나 레알에 더 머무를수 있을지 결정하겠지만, 그의 가족이 언제쯤 잉글랜드로 돌아갈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다.)
"저는 항상 런던에 제 집을 유지할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남은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은 제 마음을 숨기진 않을 거예요. 저는 레알을 위해 계속 뛰고 싶고, 잉글랜드의 주장으로도 할 수 있는 만큼 오래, 남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한가지, 여기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제 아들들 [6살짜리 브루클린은 이미 스페인어를 마스터했다]이 훗날 제 경력을 뛰어넘을 거라 믿어요. 맞아요. 저는 이제까지의 제가 살아왔던 것보다 더 길게 이곳에 머물 지도 몰라요."
그 중 에릭은 제가 본 최고의 유스팀 코치였어요.. 그는 우리를 제대로 이끌었어요. 우리가 꼭 배워야할 것들을 실습하게 했죠. 그는 우리에게 드레싱룸을 청소하게 했고, 바닥을 닦게 했고... 그런 것들은 일종의 축구선수가 되기 위한 학습 곡선의 일부였어요. 경기장에서 그는 또 다른 무서운 코치였죠. 많은 자신감과 축구에 대한 흥미를 안겨주었지만, 무언가 잘못했을 경우.. 상상이 가시죠? 그리고 물론 당연히, 알렉스 퍼거슨 경도 빼놓을 수 없죠. 지금의 저를 만드신 그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런 분들의 말씀을 새겨 듣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을 테니까요.
전 여전히 배우는 중이예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많은 경험을 쌓고 있구요. 맨유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 예기치 못하게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됐고, 다른 선수들과, 다른 팀을 위해 뛰게 되었죠. 전 카를로스 케이로스를 이미 알고 있었고 우리는 친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카마초는 여기 온 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그를 코치로서 많이 알진 못했어요. 겨우 연습 경기만 치루고는 모든 게 변했으니까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한 코치님 밑에서 10년을 있었어요. 매주 같은 코치에게 지도를 받았고, 뭘 해야할 지 알고 있었죠.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에서 코치가 자주 바뀌는 것이 저를 힘들게 했어요. 이제 적응해야겠죠. 저는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또 어떤 피치못할 사정이 있는지 다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전 '다른 것'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면서 자랐으니까요..
(여기 그의 적응능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또 하나 있다. 그의 자서전, My side 에서 베컴은 그의 좋은 친구들 네빌 형제에 대해 숨김없이 털어놓았었다. 개리와 필립에게서 어떤 걸 기대할 수 있는지, 어떻게 잔소리를 하면 되는지, 어떻게 그들을 화나게 할 수 있는지, 놀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곳, 심지어 농담 한 마디 할 수 없는 곳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무척 힘들어요.. 편안한 곳을 떠났으니까요. 전 맨체스터에 아주 만족스런 집이 있었고, 맨체스터의 모든 것이 다 완벽했어요. 그곳에 친구들이 있었고, 가족들도 불과 2시간 떨어진 곳에 있었고, 수 년간을 함께한 동료 선수들이 있었고, 저에게 많은 의미를 가져다 준 팬들이 있었죠. 그런데 그런 모든 것들을 다 바꾸어야만 한다니, 무척 두려워요. 뭘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마치 제가 실습생 자격으로 1군팀 드레싱룸으로 걸어들어가 유명한 선수들을 만나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2003년 봄, 올드 트래포드에서 있었던 챔피언스 리그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를 언급..)
"우리는 리그를 이기기 위해 노력했고, 저는 좀 더 많은 골을 넣기 위해 노력했죠. 하지만 그 날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그렇게 생각대로 되진 않았어요, 유나이티드에겐 한 획을 그을 만한 역사적인 경기였지만, 정말 실망스러웠죠. 하지만 큰 좌절을 겪었다해도 그걸 극복해야 하잖아요. 사람들은 제가 그때부터 레알 마드리드와 접촉을 하고 있다고 떠들어댔지만, 난 그런 적 없어요. 제가 항상 말하는 거지만, 제가 처음으로 (레알 측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것은 피터 캐년으로부터 팀을 떠나달라는 확인 전화를 받은 후였어요."
(유나이티드를 떠난 후, 베컴은 그의 예전 정신적 지주였던 퍼거슨과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니예요, 문자 그대로 '한번'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우리가 한 젊은 선수의 장례식에 갔을 때였죠... 부끄러운 사실이예요. 저는 퍼거슨 감독님과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누게 될 순간을 예견하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성공하기까지 그가 해준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드리고 있어요. 그는 제가 17살때 저에게 기회를 주고, 팀에 넣어준 분이예요. 그는 어린 우리들을 모두 돌보아주셨죠. 저는 아무 나쁜 감정도 갖고 있질 않아요. 저는 그저 제가 떠날 때보다 상황이 나아졌길 바라는 마음뿐이지만, 어쨌든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네요."
(그가 떠날 때 퍼거슨 경은 심지어 'Good luck’이라는 인사조차 안해주었다고 한다.)
"제가 처음 레알에 왔을때, 제가 왜 여기 있는지, 티셔츠를 팔러 온건지 아니면 정말 축구를 하러 온건지에 대해 엄청 많은 기사가 떠돌아 다녔죠.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런 오해는 사람들이 저를 실제로 만나본 뒤에야 사라지더군요. 저는 사람들에게 제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며, 얼마나 평범한 지를 증명해보여야만 했어요. 사람들이 보고 듣는 이야기 중 99%는 거짓이예요. 바로 그게 문제예요, 제가 그들을 직접 만나야만 그 인상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그가 하는 더욱 많은 (좋은)일들은 대중에 소개되는 법이 없다. 이를 테면 그가 마드리드 폭탄테러 피해자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한 것 같은 일이 그렇다.)
"저는 정말 축구선수로만 기억되고 싶어요. 바로 그게 제가 이런 모든 것들을 아이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이유니까요. 저는 아픈 아이들을 위해 많은 특별한 일을 했어요. 그들을 방문했고, 그것은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겠죠. 하지만 저는 제가 항상 축구에 감사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걸 잊지 않아요. 10년이란 시간동안 사람들은 여섯 개의 프리미어 타이틀과, 유러피안컵, 잉글랜드 컵에 대해 얘기했지만, 저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진 않아요.
새로운 선수들과 새로운 클럽을 만나는 일은 저로 하여금 그들이 얼마나 뛰어난 지를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제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지도 발견하게 해주죠. 저는 '다른 축구'에 적응해야만 했어요. 잉글랜드에서 하는 태클을 여기서도 할 수는 없는 일이죠. 심판이 다르니까요."
(케이로스는 그를 제2의 '마케렐레'로 만들길 원했다. 그에게 "구티 뒤에 서라, 구티가 공격을 더 잘하니까"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반면, 카마초와 가르시아는 루이스 피구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베컴을 센터에 남겨두었다. 파블로 가르시아의 영입 이후, 오른쪽 측면에서의 베컴의 활동량이 늘면서 멀티플한 플레이를 펼치게 됐고, 팀에 더 많은 헤딩슛 찬스를 올려주는 능력을 보였다. 그는 첫 6주간 더 많은 어시스트를 만들어냈고, 레알의 지도부들도 이런 헌신성과 협동적 책임감, 다재다능함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물론, 그의 크로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베컴은 드디어 클럽 내에서 그의 포지션을 찾게 되었고, 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더불어 공을 잡는 시간이 더 많아졌는데, 이것이 레알 같은 팀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것이다.)
"제가 팀에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더 잘할 수록 더 많은 자신감이 생기고, 동료들이 저를 더 의지하게 되는거죠. 저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때 시도하고,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선수예요. 어떨때는 제 뜻대로 되지만, 가끔 그렇지 않을 때도 있죠."
(그는 이반 엘게라, 미첼 살가도와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팀내 대화 상대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라운드에서 소통하는데 문제가 없어요. 필요할 때마다 서로를 돕고 이야기를 하죠. 제가 처음에 마드리드에 입단했을 때, 누군가 말하길, 팬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를 좋아한다고 했어요. 저에겐 그럴 만한 에너지가 있으니 참 고마운 일이죠."
(마이클 오웬의 '외국 모험'에 대한 태도와는 달리, 스페인 팬들은 베컴이 더 많은 스페인어를 배울 것을 요구하며 그를 결코 (오웬처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당신이 원하는 만큼 경기할 수 없고, 또 행복하지도 않다면, 최선의 방책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요."
(오웬은 그가 영국 신문을 그리워했으며, 잉글랜드에서 축구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개인적으로 저는 여기서 행복해요. 저는 오랫동안 잉글랜드에서 활동했고, 이제는 다른 분위기의 나라와 스페인의 생활을 좋아하게 됐어요."
(다행스러운 점은, 비록 몇몇 타블로이드지들이 그의 사생활로 먹고 살고는 있지만, 스페인의 언론은 다르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축구 언론기자들은 선수의 사생활따위 보다는 그의 기술에 더 흥미를 두고 있다. 어찌되었건, 호나우딩요와 함께 부활한 바르셀로나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의 트로피 수집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게 되었다.)
"(호나우딩요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이고, 그가 받는 모든 상은 당연한 거예요. 저는 절대 호나우딩요 때문에 짜증을 내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저는 그런 선수들의 경기를 보는 것이 너무 좋아요. 물론 그가 저와 같은 팀에서 뛰는 것이 그를 상대로 뛰는 것보다는 좋았겠지만요.
그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재능을 지녔어요. 그는 베르나베우(레알경기장)를 통째로 뒤흔들어 놓았는데, 호나우딩요가 바로 그런 선수예요. 그는 저의 클럽과 제 조국이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제 바람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인물이죠. 바르셀로나는 강하면서 팀워크도 좋아요. 솔직히 모든 게 순탄하게 돌아갈 거란 기대는 여기 스페인에서는 안해요. 저는 게임이 쉬울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죠. 팀 전원이 잘하지 않는 한, 이길 수 없어요."
(레알을 위협하는 클럽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첼시를 빼놓을 수 없다.)
"전 누구의 이름을 대진 않을 거예요. 첼시가 리그의 탑 위치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질투하는 것 같았죠.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아무리 좋은 선수들을 샀더라도 그들이 서로 협동하지 않거나, 감독이 선수들을 정확한 포지션에 넣지도 않고, 또 '팀'으로 뭉치게 할 수 없다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어요.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던지 간에 말이죠."
(부상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축구 선수들은 누구나 부상과 통증을 달고 살아요. 할 수 없이 적응해야만 하는 부분이예요. 그동안 제가 매경기 전후마다 주사를 맞는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예요. 저는 이번 시즌 딱 두 번 주사를 맞았고, 전부 항염증제였을 뿐이예요. 별로 심각한 것도 아니었고, 약간의 통증이 지나갔을 뿐이죠. 의사들은 제가 공을 차는 방식때문에 등에 압력이 가해져서 문제가 생긴다고 했고, 저는 (기술상) 몇 가지를 바꿈으로써 최대한 (문제를) 피하려고 하고 있어요. 뛰다 보면 정말 온갖 통증이 다 올라오지만, 저는 그 정도도 극복할 수 없는 선수가 아니예요."
(여가시간도 축구선수에게는 중요하지만, 베컴은 다른 선수들처럼 스포츠채널에 눈을 고정하진 않는다고 했다.)
"전 축구 관전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예요. 제가 호텔에 있을때 만약 중계를 해준다면 아스날, 첼시의 경기를 보지만 끝까지 보진 않아요."
(심지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최근의 경기조차 끝까지 보진 않았다고 했다.)
"리버풀-밀란의 경기는 정말 놀라웠어요. 저는 전반전을 보고는 나가서 피자를 사 먹느라 리버풀의 3골을 놓쳐버리고 말았죠. 리버풀이 첫번째 골을 넣었을 때 저는 전화를 받고 있었고, 그 뒤로 바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나머지 두 골도 보지 못했어요. 저는 잉글랜드팀의 제이미 캐러거와 스티븐 제라드의 활약을 보며 기쁨을 감출 수 없었죠. 전 정말 기뻤다니까요, 믿어주세요. 하지만 유나이티드의 팬으로서 역시 '우리 팀'이 낫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죠. '우리 팀'은 절대 패하지 않아요. 3분안에 두 골을 넣잖아요!"
(이제 곧 베컴의 주말에서도 경기가 사라질 것이다..)
"경기를 하지 않을 때는 힘들어요. 여름 내내 휴식을 취해야 할 기간에도,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죠. 하지만 나중에는 제 축구학교를 돌볼 거예요. 이건 오랫동안 제 꿈이었지만, 이렇게 큰 꿈이었을 지는 몰랐어요."
(베컴의 첫번째 축구교실은 동류 중 유럽에서 가장 큰 시설을 갖추고 있다. 두개의 풀사이즈 실내축구장을 비롯, 교실과 다이닝홀, 그리고 메디칼 센터를 포함하고 있다. 8~15세의 만 여명의 어린이들이 일부는 무료로, 나머지 일부는 175~250유로정도를 내고 3~5일 코스로 방학 기간동안 이용할 수 있다.)
"이건 제 미래를 위한 거예요. 제가 선수 생활을 마감할 이후에요."
(베컴의 다리가 아마 그가 얼마나 레알에 더 머무를수 있을지 결정하겠지만, 그의 가족이 언제쯤 잉글랜드로 돌아갈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다.)
"저는 항상 런던에 제 집을 유지할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남은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은 제 마음을 숨기진 않을 거예요. 저는 레알을 위해 계속 뛰고 싶고, 잉글랜드의 주장으로도 할 수 있는 만큼 오래, 남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한가지, 여기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제 아들들 [6살짜리 브루클린은 이미 스페인어를 마스터했다]이 훗날 제 경력을 뛰어넘을 거라 믿어요. 맞아요. 저는 이제까지의 제가 살아왔던 것보다 더 길게 이곳에 머물 지도 몰라요."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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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지단 2006.02.01벡사마 ㅠㅠ 알라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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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라모스 2006.02.01변함없는 충성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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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y Bien! 2006.02.01인터뷰가 아니라 웅변이구나 ;; 정말 기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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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메니아 2006.02.01퍼거슨경이랑 사이가 진짜 안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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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ZIDANE 2006.02.01스크롤의 압박;; ㅋㅋ 아..말하는것도 멋있다는..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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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Ca 2006.02.01와 엄청 길어요 ㅋㅋ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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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윤 2006.02.01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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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Ronaldo♥ 2006.02.01후다읽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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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온군 2006.02.01역시 베컴.-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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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2006.02.01벡스 -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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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ksKingdom 2006.02.01피터케년이 예전 맨유 구단주?
오ㅐ떠나달라고했을까.-_-; 그때 베컴 진짜 지존이었는데 -
아마추어베컴 2006.02.01피커캐년 과거 맨체스터의 사장이였습니다 첼시의 거대화를 예건한듯 첼시로 옮겼죠 호나우딩요의 맨체스터행에 있어서 최대 삽질맨중 하나였습니다 제라드를 데려오겠다고 했다가 로만과의 불화도 있었던걸로 알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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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ks7 2006.02.01로만이 축구운영에도 신경써야한다면서 경영능력이 뛰어난
피터캐년도 영입했죠 -
nanako 2006.02.01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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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무애 2006.02.01후아~ 배컴에 대해서 더 정이드는 인터뷰였어용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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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마두리 2006.02.02ㅋㅋㅋ이쁘게 생긴 남자들은 얼굴값한다던데...ㅠㅠㅠ진짜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