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기사!! (연민과 애증의 그 이름, 이천수)
이천수가 J리그에서 데뷔했다. 최근 이호와 함께 오미야 아르디자에 입단한 이천수는 마찬가지로 한국인 선수 2명이 뛰고 있는 주빌로 이와타를 상대로 데뷔전을 가졌다. 이날 경기를 보러 간 대표팀의 조광래 감독은 “이천수를 보러 가는 게 아니다”라며 묘한 타이밍의 일본 방문에 대한 미디어의 추측에 반박했지만 이천수는 이날 그라운드에 선 모든 선수들 중 가장 눈부신 플레이로 조광래 감독이 자신을 주목하게끔 만들었다.

2006년 월드컵에서 16강에 실패하자 서럽게 울던 이천수. 이 한장의 사진으로 그는 많은 팬들로 하여금 연민의 정을 느끼게 했다. 악마와 같은 그의 축구재능을 국가대표팀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날이 올까? (사진=연합)
등번호 16번을 단 이천수는 ‘일본 무대 적응일 필요할 것이다’는 일각의 지적이 무색할 정도로 데뷔전을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 수원, 전남을 거치며 1년 여 동안 K리그에서 뛸 때와는 확실히 달라 보이는 몸 상태와 한창 때의 가벼운 몸놀림을 선보인 그는 좌우 측면과 중앙, 미드필드를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일본 현지 방송의 중계 카메라에 가장 많이 잡힌 선수는 당연히 이천수였다.
전반 41분, 반격의 신호탄을 알린 왼발 감아차기와 후반 23분의 절묘한 전진 패스, 그리고 후반 31분 조금만 안 쪽으로 향했다면 분명 골이었을 유연한 오른발 슛까지. 분명 이천수는 이천수였다. 더 놀라운 것은 팀 플레이와 거의 괴리감이 없었고, 골라인 밖으로 흘러나가는 공을 악착같이 따라붙어 어떻게든 오미야의 공으로 만들려고 하는 집념이었다. 스타에 목 마른 NACK5 스타디움의 오미야 홈 팬들은 경기 중간,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이천수를 연호했다.
하지만 그의 활약상을 한국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아쉬울 뿐이다. 이천수는 고려대 재학 시절 이미 J리그 유수의 구단들로부터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일본 무대에는 흥미가 없다며 울산 현대에 입단했고, 유럽 진출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날 경기에서도 증명됐지만 J리그는 이천수라는 큰 물고기가 놀기엔 좁은 무대다. 섣부른 예상일지 모르지만 주빌로전의 컨디션과 몸 놀림을 본다면 조만간 이천수는 J리그에 센세이션을 몰고 올 것이고 오미야와의 계약이 끝나는 6개월 뒤에는 분명 정상권 팀들이 그를 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 이천수라는 한국 축구의 특별한 자산이 J리그의 하위권 팀에서 에이스 놀음을 하고 있어야 하나.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지금부터 약 1년 전으로 거슬러 가게 된다. 당시 전남에 임대 신분이던 이천수는 K리그에 분란을 일으켰다. 당시 건설 사업에 투자를 했다가 사기를 당해 투자금을 잃은 위기에 처한 이천수는 목돈 마련을 위해 중동행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페예노르트와의 계약에 따라 내 의지와 관계 없이 중동으로 가야 한다’는 거짓말을 했다.
이천수는 박항서 감독에게 알리지 않고 먼저 언론에 이 사실을 공포했고 이후 부상을 이유로 경기 출전을 거부했다. 이천수가 마음이 떠난 것을 안 박항서 감독은 마지막으로 포항 원정에 따라 나설 것을 지시했다. 당시 전남은 리그에서 연패를 기록하며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이천수는 결국 포항행을 거부했고 코칭스태프와의 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벌어지게 됐다. 이후 이천수는 전남으로부터 임의 탈퇴되며 K리그를 떠나 사우디로 갔다. 그러나 운명은 여기서 또 한번 잔인하게 엇갈렸다. 전남은 이천수가 떠난 뒤 오히려 팀 전체가 단단히 뭉치며 기적적으로 6강에 갔다. 이천수는 결국 사우디에서도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나왔다.
오미야에서의 데뷔전을 갖기 하루 전 리그 1위 제주를 4-2로 꺾고 한 숨을 돌린 박항서 감독은 경기 후 가진 자리에서 이천수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평소에는 이천수에 대한 질문을 꺼내면 그리 반기지 않지만 이천수가 일본에 새롭게 둥지를 튼 시점이어서인지, 모처럼의 홈 승리에 기분이 좋아서인지 마음 깊숙이 숨겨두었던 얘기들을 꺼냈다.
“아마 그때 천수가 포항으로 갔다면 임의탈퇴까지 가는 일은 없었겠죠. 그때 천수가 조금만 현명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사우디에서 빠져 나와 저렇게 고생은 안 했을 겁니다.”
박항서 감독은 몇 개월 전 한국으로 돌아온 이천수로부터 문자가 왔었다고 말했다. 차마 전화조차 할 수 없었던 이천수는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난 잘못을 용서하고 임의탈퇴를 풀어달라는 간접적 제스쳐였다. 그러나 박 감독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았습니다. 그때 우리도 힘든 상황이라서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선수 이천수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대단한 지는 제가 더 잘 아니까요. 하지만 저는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입니다. 이천수는 전남 드래곤즈에 큰 피해와 상처를 줬습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용서를 할 수 있겠지만, 전남이라는 팀은 이천수를 용서 못할 것입니다. 내가 이 팀의 감독으로 있는 한 이천수는 와선 안됩니다."

2009년 전남에서 뛰던 당시의 이천수. 갖가지 돌출행동에도 불구하고 박항서 감독은 이천수에게 각별한 애정을 줬다. (사진=연합)
2002년 한일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통해 이천수와 사제 관계를 맺은 박항서 감독은 그가 전남에 있을 당시 다른 선수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애정과 관심을 보냈다. 당시의 솔직했던 사랑은 지금도 유효하다. 자식이 아무리 부모에게 상처를 입혀도, 부모는 자식은 안을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천수라는 선수에 대한 증오는 이제 없습니다. 내가 싫었던 것은 선수 이천수가 아닌 인간 이천수였죠. 그 친구는 변명을 위한 거짓말을 너무나 당연히 했습니다. 실력이 아닌 인성과 사회성의 문제죠.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 팀 스포츠인 축구에서 치명적인 결격 사유였습니다. 이 팀에 있는 동안 그 문제를 풀어주지 못한 나도 지도자로서 부족한 부분이었고요."
"이제 천수는 선수로서 길어야 4~5년 정도 더 뛸 겁니다. 일본 행은 정말 마지막 기회죠. 위기에 강한 친굽니다. 아마 잘 할 겁니다. 브라질 월드컵은 그에겐 선수로서 동기를 내게 해 줄 마지막 목표입니다. 인간 이천수야 어떻든, 선수 이천수는 한국 축구에 너무나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가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을 위해 큰 몫을 한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항서 감독에게 이천수라는 이름은 애증인 동시에 연민이었다. 너무나 갖고 싶었지만 결국 자신이 품지 못한 악마와 같은 재능. 박항서 감독뿐만이 아니다. 차범근, 김정남 등 다른 지도자들 역시 결국 이천수로 인해 난 생채기를 아무는 데 꽤 긴 시간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그렇게 이천수에게 아픔을 겪고도 하나같이 그에 대한 연민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박항서 감독도 자신이 컨트롤하지 못한 이천수의 대단한 재능을 옳은 방향으로 향하게 해 한국 축구의 큰 이익이 될 수 있게 다른 지도자들에게 부탁했다.
"대표팀의 조광래 감독이 천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나는 그 친구를 다시 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도자가 그 역할을 해줬으면 합니다."

2006년 월드컵에서 16강에 실패하자 서럽게 울던 이천수. 이 한장의 사진으로 그는 많은 팬들로 하여금 연민의 정을 느끼게 했다. 악마와 같은 그의 축구재능을 국가대표팀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날이 올까? (사진=연합)
등번호 16번을 단 이천수는 ‘일본 무대 적응일 필요할 것이다’는 일각의 지적이 무색할 정도로 데뷔전을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 수원, 전남을 거치며 1년 여 동안 K리그에서 뛸 때와는 확실히 달라 보이는 몸 상태와 한창 때의 가벼운 몸놀림을 선보인 그는 좌우 측면과 중앙, 미드필드를 가리지 않고 뛰어다녔다. 일본 현지 방송의 중계 카메라에 가장 많이 잡힌 선수는 당연히 이천수였다.
전반 41분, 반격의 신호탄을 알린 왼발 감아차기와 후반 23분의 절묘한 전진 패스, 그리고 후반 31분 조금만 안 쪽으로 향했다면 분명 골이었을 유연한 오른발 슛까지. 분명 이천수는 이천수였다. 더 놀라운 것은 팀 플레이와 거의 괴리감이 없었고, 골라인 밖으로 흘러나가는 공을 악착같이 따라붙어 어떻게든 오미야의 공으로 만들려고 하는 집념이었다. 스타에 목 마른 NACK5 스타디움의 오미야 홈 팬들은 경기 중간,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에도 이천수를 연호했다.
하지만 그의 활약상을 한국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아쉬울 뿐이다. 이천수는 고려대 재학 시절 이미 J리그 유수의 구단들로부터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일본 무대에는 흥미가 없다며 울산 현대에 입단했고, 유럽 진출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날 경기에서도 증명됐지만 J리그는 이천수라는 큰 물고기가 놀기엔 좁은 무대다. 섣부른 예상일지 모르지만 주빌로전의 컨디션과 몸 놀림을 본다면 조만간 이천수는 J리그에 센세이션을 몰고 올 것이고 오미야와의 계약이 끝나는 6개월 뒤에는 분명 정상권 팀들이 그를 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 이천수라는 한국 축구의 특별한 자산이 J리그의 하위권 팀에서 에이스 놀음을 하고 있어야 하나.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지금부터 약 1년 전으로 거슬러 가게 된다. 당시 전남에 임대 신분이던 이천수는 K리그에 분란을 일으켰다. 당시 건설 사업에 투자를 했다가 사기를 당해 투자금을 잃은 위기에 처한 이천수는 목돈 마련을 위해 중동행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페예노르트와의 계약에 따라 내 의지와 관계 없이 중동으로 가야 한다’는 거짓말을 했다.
이천수는 박항서 감독에게 알리지 않고 먼저 언론에 이 사실을 공포했고 이후 부상을 이유로 경기 출전을 거부했다. 이천수가 마음이 떠난 것을 안 박항서 감독은 마지막으로 포항 원정에 따라 나설 것을 지시했다. 당시 전남은 리그에서 연패를 기록하며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이천수는 결국 포항행을 거부했고 코칭스태프와의 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벌어지게 됐다. 이후 이천수는 전남으로부터 임의 탈퇴되며 K리그를 떠나 사우디로 갔다. 그러나 운명은 여기서 또 한번 잔인하게 엇갈렸다. 전남은 이천수가 떠난 뒤 오히려 팀 전체가 단단히 뭉치며 기적적으로 6강에 갔다. 이천수는 결국 사우디에서도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나왔다.
오미야에서의 데뷔전을 갖기 하루 전 리그 1위 제주를 4-2로 꺾고 한 숨을 돌린 박항서 감독은 경기 후 가진 자리에서 이천수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평소에는 이천수에 대한 질문을 꺼내면 그리 반기지 않지만 이천수가 일본에 새롭게 둥지를 튼 시점이어서인지, 모처럼의 홈 승리에 기분이 좋아서인지 마음 깊숙이 숨겨두었던 얘기들을 꺼냈다.
“아마 그때 천수가 포항으로 갔다면 임의탈퇴까지 가는 일은 없었겠죠. 그때 천수가 조금만 현명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사우디에서 빠져 나와 저렇게 고생은 안 했을 겁니다.”
박항서 감독은 몇 개월 전 한국으로 돌아온 이천수로부터 문자가 왔었다고 말했다. 차마 전화조차 할 수 없었던 이천수는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난 잘못을 용서하고 임의탈퇴를 풀어달라는 간접적 제스쳐였다. 그러나 박 감독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았습니다. 그때 우리도 힘든 상황이라서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선수 이천수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대단한 지는 제가 더 잘 아니까요. 하지만 저는 전남 드래곤즈의 감독입니다. 이천수는 전남 드래곤즈에 큰 피해와 상처를 줬습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용서를 할 수 있겠지만, 전남이라는 팀은 이천수를 용서 못할 것입니다. 내가 이 팀의 감독으로 있는 한 이천수는 와선 안됩니다."

2009년 전남에서 뛰던 당시의 이천수. 갖가지 돌출행동에도 불구하고 박항서 감독은 이천수에게 각별한 애정을 줬다. (사진=연합)
2002년 한일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통해 이천수와 사제 관계를 맺은 박항서 감독은 그가 전남에 있을 당시 다른 선수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애정과 관심을 보냈다. 당시의 솔직했던 사랑은 지금도 유효하다. 자식이 아무리 부모에게 상처를 입혀도, 부모는 자식은 안을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천수라는 선수에 대한 증오는 이제 없습니다. 내가 싫었던 것은 선수 이천수가 아닌 인간 이천수였죠. 그 친구는 변명을 위한 거짓말을 너무나 당연히 했습니다. 실력이 아닌 인성과 사회성의 문제죠.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 팀 스포츠인 축구에서 치명적인 결격 사유였습니다. 이 팀에 있는 동안 그 문제를 풀어주지 못한 나도 지도자로서 부족한 부분이었고요."
"이제 천수는 선수로서 길어야 4~5년 정도 더 뛸 겁니다. 일본 행은 정말 마지막 기회죠. 위기에 강한 친굽니다. 아마 잘 할 겁니다. 브라질 월드컵은 그에겐 선수로서 동기를 내게 해 줄 마지막 목표입니다. 인간 이천수야 어떻든, 선수 이천수는 한국 축구에 너무나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가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을 위해 큰 몫을 한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항서 감독에게 이천수라는 이름은 애증인 동시에 연민이었다. 너무나 갖고 싶었지만 결국 자신이 품지 못한 악마와 같은 재능. 박항서 감독뿐만이 아니다. 차범근, 김정남 등 다른 지도자들 역시 결국 이천수로 인해 난 생채기를 아무는 데 꽤 긴 시간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그렇게 이천수에게 아픔을 겪고도 하나같이 그에 대한 연민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박항서 감독도 자신이 컨트롤하지 못한 이천수의 대단한 재능을 옳은 방향으로 향하게 해 한국 축구의 큰 이익이 될 수 있게 다른 지도자들에게 부탁했다.
"대표팀의 조광래 감독이 천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나는 그 친구를 다시 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도자가 그 역할을 해줬으면 합니다."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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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피부 2010.08.182002년끝나고 스페인 무대 갈때쯤만 해도, 자신의 포지션에서는
명실상부 월드클래스였죠.... 멘탈이 박지성 만큼만 됬어도, 레알에는 이천수가 있지 않았을까... -
subdirectory_arrow_right 호두신짱!! 2010.08.18@아기피부 그정도는 아닌거같아요..월드클래스는 아니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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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Loptimist 2010.08.18@아기피부 저도 그정도는 절대 아닌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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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강민경♥강꼬북 2010.08.18*@아기피부 월드 클래스는 아니고요.. 충분히 박지성 이상 만큼 클 수 있는 재목 감은 되었는데.. 멘탈이 문제인지.. 노력의 부족인지.. 더 크질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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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아기피부 2010.08.18@아기피부 아 되게 민망하네,,, ㅋ 저는 이천수 소시지 가서 데뷔전했을때는 그렇게 봤었는데,,, 저만의 생각이었나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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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카카_ 2010.08.18@아기피부 분명이천수선수도 박지성선수큼될수있었죠 그만큼재능이있었지만......... 참우리나라는 재능있는선수들이 많이 흔들리는모습을보여주네요 고종수.이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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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tar☆ 2010.08.18이천수를 다룰수 있는 감독이 국내에는 없다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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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종 2010.08.18이천수, 꼭 다시 일어나서 국대 승선됐으면 좋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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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리동궈 2010.08.18기사 전체다 퍼오시면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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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지주 2010.08.18기사는 주소만 링크하시고 본인 의견이나 소감이 들어가야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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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2010.08.18이천수! 다시 국대에 승선되서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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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itan Raúl 2010.08.19다시 한 번 국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