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ter_list
맨체스터 시티목요일 5시

이동국에 대한, 아주 길지만, 짧기도 한 이야기

마인이동국 2010.06.30 00:59 조회 1,548 추천 5
글이 모~~ 옵시도 깁니다. 이동국 선수에 대해서 엄청난 관심이 있으시거나(팬/혹은 까) 아니면 이 참에 이 불쌍한 인간의 역사에 대해서 한번 알아봐야겠다.. 싶으신 분들께는 좋은 글이 될거라고 자부합니다. 



글의 영감은 오피니언란의 킬러지주님이 쓰신 글입니다. 






----------






0. 2006년 오직 헤딩뿐이던 조재진으로 1승 1무 1패를 했는데 아드보카트가 반년동안 공들여 완성한 이동국 쉬프트로 월드컵 갔으면 어땠을까요? 이동국이 무릎이 다치지 않은 상태에서 유럽으로 갔으면 어땠을까요?



그 해답을 우루과이전 한경기 짧고 굵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실수했지만 전후반 통틀어 양팀 가장 완벽한 찬스를 포착. 비가 내려서 실수를 했든 안 했든, 딱 그전까지의 무브먼트.




이동국의 전성기는 크게 두번의 시기로 나누어집니다. 라울의 전성기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그리고 공격수로 올라간  전후로 나누어진다면.. 이동국은 하나는 소위 말하는 철저한 프리롤에 입각한 골게터로 지냈던 1998-2000년. 그리고 광주상무에서 축구에 눈을 뜬 이후 조 본프레레와 아드보카트.. 두 네덜란드 감독의 쓰리톱의 에이스 역할을 하던 2004-2006년.






1. 1998-2000 (허정무)

오른쪽 무릎이 아싸리 나가서 그 후 2년간을 고생하기 전까지 올림픽 대표팀. 국가대표팀. 청소년 대표팀 득점 셔틀질. 과거에 파투 혹사 관련으로 글 쓰면서 한번 쓴적이 있었는데 99년부터 2000년까지 50경기 소화. 이게 혹사냐? 라고 하실지 모르시겠지만 1주일동안 3경기 치룬적이 몇번 포함(중동 원정->한국 홈경기->포항 스틸러스 경기.. 이런 식으로). 또한 부상으로 앓던 기간 제외. 




무릎 다쳐서 첫번째, 두번째 경기는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도 나왔던 아시안컵에서 오직 4경기동안 6골. 

이러한 활약을 통해서 당시 안효연, 이동국중에서 저울질 하던 브레멘이 오퍼. 축구협회가 당시 야심차게 추진하던 2002년 월드컵 성공 프로젝트중 일환이였던 '유망주의 유럽 진출 적극 지원'이라는 슬로건 하에 헐값으로 브레멘 진출. 



그리고 그 이후 펠레의 발언 ' 아시아의 이 스트라이커는 세계 최고가 될 가능성이 있다. ' 하지만, 입단 이후 줄곧 계속되는 부진. 당시 브레멘 감독이던 샤프의 발언 ' 몸이 혹사당해있다. 무릎 완치를 위해서는 3개월 가량을 쉬어야 한다.' 하지만 히딩크의 호출과 더불어 이동국 본인의 월드컵에 대한 욕심. 결국 6개월간의 짧은 독일 생활을 마치고 귀국.  



그리고 이후 스토리는 다들 아시는대로 그저그렇게 보여주다가 차두리, 최태욱의 대활약으로 엔트리 탈락. 



아시안게임에서 부주장자격으로 주장완장을 차고 나온 이동국. 4강전 엄청난 활약을 해줬으나 골운이 따르지 않았고, 승부차기에서 이영표의 실축으로 4강진출 실패. 그리고 3-4위전 가볍게 이겨주고 쓸쓸한 동메달. 그리고... 군 입대.. 



이후 2003-2004년은 코엘류에게 몇번 부름을 받았으나 확실한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대표팀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사실, 조만간 2000-2010년까지 대표팀의 흐름을 다룬 글을 한번 쓸 생각이고 그 중에 한번 더 언급할 예정이지만.. 코엘류가 원하던 원톱은 전성기 황선홍이라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역할을 요구했습니다. 1년 조금 넘는 기간동안 설기현, 안정환, 정조국, 우성용, 최용수, 김도훈, 조재진, 유상철, 이동국, 김은중같은 국내 최정상 스트라이커들이 테스트를 받았지만 전혀 부합하지 못하고 결국 안정환을 최전방에 프리롤로 세우는 4-5-1을 쓰게 됩니다.(사실상 4-6-0)


그리고 이동국은 광주 상무에서 정말 어마어마한 활약을 해줍니다. 광주 상무 모든 공격은 이동국으로부터 시작된다! 라는 말이 있었는데 반대로 광주 상무의 모든 공격은 조재진이 말아먹는다.. 라는 말또한 있을 정도로 조재진은 극악의 결정력을 자랑했습니다. 이러한 소속팀에서의 활약과는 달리.. 조재진의 단순무식한 활동량과 농부스러운 근면성 하나를 믿고 코엘류는 리그에서 눈부시던 이동국을 제외하고 조재진을 꾸준히 기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요. 이러한 맥락에서 코엘류는 융통성이 없다.. 는 식의 비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몰디브 대참사가 일어나고.. 이후 코엘류가 경질되고, 박성화 당시 청소년 대표팀 감독이 지휘봉을 2달동안 잡게 되는데요. 이러한 와중에도 이동국은 뽑히지를 않고 오히려 당시 유망주던 박주영, 김은중등을 대표팀에 부르는듯한 모습으로.. 이동국은 흡사 리그에서와는 달리 철저히 국대에서 외면받았던 윤상철, 김현석등의 전철을 밟는가 싶었습니다만... 




우주에서 가장 '이동국'이라는 캐릭터를 잘 이해하는 본프레레가 부임하게 됩니다.










2. 2004-2006(조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이동국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습니다. 



이 당시 이동국이 주로 맡았던 역할은 3-4-3의 가운데 공격수로 나와서, 볼을 잡고 밑으로 내려오면 그 뒷공간으로 이천수, 박주영, 차두리, 정경호등이 침투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2선에서 게임을 풀어주는 능력도 물이 완전히 올랐었죠


(4분 40초-5분. 이동국이 수비수를 상대로 등지면서 공중볼을 유연하게 이천수에게 연결. 이천수의 발리슛)



여튼 이러한 이동국 쉬프트의 전술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이동국의 양쪽 파트너를 김진용, 남궁도, 김동현같은 스트라이커들로 채우기도 했습니다. 이동국이 밑으로 내려오면 뒷공간으로 들어가서 제대로 꽂아넣어줄 수 있는 선수들 말이죠. 결국 기량 미달로 전부다 탈락하기는 했지만.



여튼 이 당시의 이동국은 안티가 상당히 사라지면서 좋은 활약을 연이어 보여주게 됩니다. 부진한 경기가 없었죠. 또한 세르비아, 멕시코같은 강호와의 대결에서도 득점을 기록하면서 아시아용이라는 지긋지긋한 오명을 벗는듯 했습니다. 당시 이동국에 대한 찬사는 눈부셨습니다. 제가 직접 기록해놨던 외국인사들의 언급만 봐도


LA갤럭시 수비수 - 이동국의 플레이는 막을 수 없는 수준. MLS 최고급 스트라이커
이집트 당시 감독 - 이동국의 플레이는 유럽에서 뛸만한 수준. 수비와 미드필더 사이의 공간을 영민하게 이용한다
파레이라 포항 감독 - 이동국은 지금 당장 유럽 중하위권 팀에서도 주전을 할 수 있는 K리그의 유일한 스트라이커. 다만 기복은 고쳐야 할 문제.
본 프레레 - 이동국은 아시아 넘버원
아드보카트 - 이동국은 아시아 넘버원



그리고, 지옥같은 2006년 4월 5일이 찾아왔습니다. 인천전 좋은 활약을 보이던 이동국은 후반전..... 무릎을 부여잡고.. 쓰러집니다..





이후 한국 대표팀의 전술은 상당히 바뀌었습니다. 실제로 아드보카트가 대표팀을 이끌고 원정을 다니던 2006년 1-2월의 대표팀과 2006년 5-6월의 공격전술은 영판 틀립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이동국)를 공격의 중심으로 삼던 전술에서, 최전방 스트라이커(조재진)를 단순히 헤딩만 하는 뻥축구로 전락하게 되죠. 그래도 조재진은 기대이상으로 잘해줬습니다. 유럽 떡대를 상대로 헤딩경합에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유럽에서도 오퍼를 받게 되죠.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골결정력이 ^^;





3. 이동국의 장점은 그냥 영리하다는 겁니다. 황선홍이 이동국을 말할때, 항상 하는 말은 '볼을 잘 찬다'라는 말입니다. 정조국을 향해서는 골결정력이 좋다, 정성훈을 이야기하면서 제공권이 좋다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데 비해 이동국을 향해서 이야기할때는 마냥 '공을 잘 찬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쉽게 객관적인 지표로 이야기한다면, 이동국의 데뷔초창기 활동량과 지금의 활동량은 천지차이입니다.(어찌되었건 많이 안 뛰어서 게으르다..소리 듣던 선수->K리그 챔피언 결정전 플레이오프 11km를 소화하는 활동량의 선수)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뛰는 양은 비슷한데 뛰는 범위가 많이 넓어졌습니다. 과거의 이동국이 마냥 종적인 움직임으로 전술적으로 유연하지 못한 모습이였다면, 광주상무 입대를 기점으로 이동국은 활동범위가 횡적으로도 상당히 넓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또한 과거와는 달리 세트피스 수비시에도 곧잘 내려오면서 활동량도 많이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었죠.


또, 제공권이 뛰어나다고는 보기 힘든 선수지만 상대 수비수의 제공권을 쉽사리 행사하지 못하게 만드는 재주도 있습니다. 즉, 등지고 하는 플레이가 상당히 좋습니다. (제가 본 한국 축구 역사에서 김동현, 황선홍을 제외하면 이동국이 단연 돋보입니다. 조재진은 등지는 기술보다는 점프력 자체가 좋은 선수.) 지난 10년간 최고의 외국용병이였던 마토가 과거 인터뷰에서 제공권은 정성훈을 넘버원으로 꼽았고, 반대로 수비수를 귀찮게 하는 능력은 이동국을 넘버원으로 뽑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죠.





하지만, 이동국이 세계 최정상과 거리가 먼 이유는 다름아닌 '민첩하지 못한' 움직임에 있습니다. 이동국의 전체적인 무브먼트에 비해 이동국 자체의 육체적인 능력은 우수하지 못한 편입니다. 축구가 만약에 100m 육상 경기였다면 이동국은 세계 최고의 대열에 들지도 모르겠지만(초등학교 육상대회 3관왕 출신임) 단거리 질주와 순간적인 폭발력, 민첩함을 필요로 하는 세계 무대에서 다소 둔탁한 볼터치와 움직임. 반박자 느린 슈팅 타이밍을 가진 이동국은 통용되기 어렵습니다.


루카토니도 느리고 질라르디노도 느리지만 그 둘이 적어도 이태리 무대에서라도 통용되는 이유는 슈팅 타이밍이 빠르다는 점일텐데, 앞선 둘보다 피지컬도 좋지 못하고 슈팅 타이밍도 느린 이동국이 EPL에서 통할리가..


더구나나 이동국이 진출한 미들스브로는 전형적인 투톱의 역량에만 기대서 EPL잔류만을 노리는 스타일인데, 그런 팀의 스타일과는 달리 이동국은 주변 동료들과 조화를 맞추길 원하다는 점에서도 악재였죠. 차라리 네덜란드나 프랑스리그같이 조금 눈을 낮추었다면 훨씬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기는 합니다만.. 


여튼 이동국도 스스로 저런 볼을 발밑에 갖다놓은 이후 때리는 슈팅에서 자신의 모션이 크고 빠르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에 바로 바로 볼을 차주는 논스톱 발리슛을 연마한게 아닌가 싶은데.. 결국 이는 무릎에 과부하를 가져다주면서 두번의 큰 부상을 얻게 되었죠. 



- 덧으로 순수한 육체만 따지면 정조국은 박주영을 제외하면 지난 10년간 최고의 피지컬입니다. 상당히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고, 또한 영리하죠. 아니, 유연하기 때문에 잘 부서지지 않다는게 정확한 평가일듯. 다만 2003-2005년을 허송세월로 보내면서 기량이 정체된 점이 너무나도 아쉽습니다.(ㅎㅅㅎ사건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재능이 만개하리라 믿고 꾸준히 본프레레, 비르빅, 허정무가 뽑아는 주더군요. 나오면 못해서 문제.




4. 여기서 잠깐 허정무를 비판하자면, 이동국을 조커로 기용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웃긴겁니다. 이동국은 조커로 전혀 쓸 수 없습니다. 안정환같이 한두번의 볼터치로 자신이 팀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스타일과는 달리 이동국은 철저하게 팀의 메커니즘을 따라가는 선수입니다. 


비유하자면 이동국은 망치이며 안정환은 칼입니다. 망치로 고무를 이기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때리면서 고무를 해지게 해야 합니다. 칼은 한방에 고무를 썰어버릴수 있지만요.



아드보카트가 조재진, 안정환을 테스트하면서 이동국을 몇번 후반전에 투입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활약은 최악이였습니다. 구체적으로 기억은 안 나는데, 2004-2006까지 이동국이 나온 경기의 승률은 60%를 훌쩍 넘겼는데 나오지 않은 경기는 30%에도 채 못 미친걸로 기억합니다. 






여튼 이동국의 2010년은 사라졌습니다. 그 골만 들어갔다면 하는 아쉬움은 여기까지. 
2014년에 나올지 안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무릎팍에서 황선홍이 한 멘트가 생각나네요. 98월드컵을 기점으로 국가대표팀에서는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뛰다보니 몸 관리를 잘하면 2002 월드컵을 욕심내볼법도 했고, 기회를 잡았다..라고




욕심 내지말고 K리그에 전념해주길 바랍니다. 기회가 되면 또 부를 겁니다. 
최용수가 부진했고 김도훈은 득점력은 좋으나 활동량이 부족했고, 이동국은 부상으로 인해서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였습니다. 설기현을 뽑아서 원톱에 세웠지만 제공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축구센스. 그래서 황선홍은 다시 기회를 잡았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당시 황선홍의 나이, 34세였습니다. 모두가 끝났다고 그를 외면할때 뒤돌아설때 혼자서 J리그를 향해 달렸고 70경기 42골이라는 어마어마한 득점력으로 세상의 인심을 다시 얻었습니다. 





현역 아시아 공격수중 A매치 최다 득점자 25골.
역대 아시안컵 최다득점자 10골.
최초로 아시아청소년선수권 대회 득점왕, mvp석권(이후 박주영이 바통 터치~)




하지만 앞으로 쌓아야 할 기록은 더욱 많습니다. 
이때까지 K리그 역사상 2연속 리그 득점왕은 아무도 차지 못했습니다. 이동국 선수가 이번에 노려야 할 기록은 국가대표팀이 아니라 전북 소속으로 K리그 최초의 리그 2연속 득점왕일 것입니다.










p.s 동궈형. 영원히 팬 할거야. 힘내. 내가 HOT, 동방신기 해체할때도 멀쩡했고 2006때 형 무릎 다쳐서 실려나가는거 볼때도 멀쩡했는데 엊그제는 그로기 그 자체더라. 밤에 한숨도 안 자고 형 걱정만 했어. 형을 정말 좋아하긴 좋아하나봐. 
format_list_bulleted

댓글 16

arrow_upward 스페인 VS 포르투갈 라인업 arrow_downward 제라드 영입을 위해 20M파운드를 오퍼하려는 레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