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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시티목요일 5시

무링요 믿고 갑시다

홍기원 2010.05.29 05:51 조회 1,701

페예그리니 지지자였지만 ㅜㅜ


무감독님 이왕 오신거 화끈하게 응원해주자고요 ㅜㅜ


출저: 싸커라인

이름: 호세 무링요  (Jose Mario Santos Mourinho Felix)

국적: 포루투갈

소속: 인터밀란

수상: 2008년 수페르코파 이탈리안 우승

경력:

무리뉴는 포르투갈 국가대표 골키퍼 출신의 아버지 펠릭스 무리뉴의 아들로서 1963년에 태어났다. 무리뉴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키워나갔지만 크게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도리어 무리뉴는 어린 시절부터 볼을 차는 것보다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거나 전술적인 측면에서 남다른 안목을 발휘해 아버지를 크게 놀라게 했다. 아버지가 감독으로 데뷔하자 무리뉴는 상대 팀의 트레이닝을 관찰하거나 전술을 분석함으로써 매 경기 력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고, 어린 시절부터 지도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무리뉴는 아버지가 코치로 재직하던 벨레넨세스와 세심브라에서 선수생활을 이어나갔지만 자신의 재능과 발전 속도에 회의를 느껴 프로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축구화를 벗기로 결심한다. 선수생활을 포기한 무리뉴는 지도자로서의 길을 걸어가려 했지만 어머니는 우수한 학업성적을 유지하던 아들이 비즈니스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길 원했다. 그럼에도 무리뉴는 끝까지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켜 대학에서 스포츠 사이언스를 전공한 뒤 체육교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무리뉴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코치 연수를 받았고, 스포츠 심리학 및 어학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아 부었다.



축구유학을 마치고 포르투갈로 돌아온 무리뉴는 비토리아 세투발에서 유스팀 코치로 활동하다 아마도라의 어시스턴트 코치 겸 통역으로 부임했다. 아마도라에서 두각을 나타낸 무리뉴는 1992년 당시 보비 롭슨 감독이 스포르팅 리스본의 감독으로 부임하자 통역 겸 코치로서 스카웃되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무리뉴는 능숙한 영어솜씨와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앞세워 롭슨 감독으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확보해 나갔고, 이후 무리뉴는 롭슨 감독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로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다. 롭슨 감독은 스포르팅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1993년에 포르투로 둥지를 옮길 때에도 무리뉴를 자신의 코칭스탭에 합류시켰다.



포르투에서 활동하던 시절 롭슨 감독이 스페인 명문 바르셀로나로부터 러브콜을 받자 무리뉴 역시 둘도 없는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무리뉴는 카탈루냐어를 공부하며 바르셀로나 행을 준비했고, 1996년 롭슨 감독과 함께 통역 겸 코치로서 누 캄프에 입성했다. 가족과 함께 카탈루냐로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바르셀로나 생활을 시작한 무리뉴는 언론 담당관, 통역관, 트레이닝 겸 전술 코치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롭슨 감독의 스페인 적응을 크게 도왔다. 무리뉴는 롭슨 감독과 함께 바르셀로나를 컵 위너스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롭슨 감독이 팀을 떠난 뒤에도 바르셀로나에 남아 반 할 감독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부임했다.



롭슨 감독의 추천에 의해 무리뉴를 오른팔로 삼게 된 반 할은 네덜란드에서도 전술적 지식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지도자들을 압도하는 지적 능력을 갖춘 감독이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크라이프의 축구이론에 깊은 인상을 받아 온 무리뉴는 반 할로부터 토털풋볼 및 4-3-3, 3-4-3 시스템에 대한 실전적∙이론적 내용들을 모두 전수받았고, 이때부터 자신의 전술적인 정체성을 확립시켜 나갔다. 반 할과 무리뉴 콤비는 바르셀로나를 97/98, 98/99 시즌 리그 2연패로 이끌었고, 반 할은 무리뉴를 크게 신뢰하여 B팀의 지휘봉을 맡기는 등 적극적으로 기회를 장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무리뉴는 B팀을 지휘하던 시절 반 할의 토털풋볼 이론과 자신의 수비적 스타일을 접목시켜 고유의 방식으로 팀을 이끌어나갔다.



반 할이 바르셀로나를 떠난 뒤 무리뉴 역시 포르투갈로 돌아왔고, 2000년 9월에는 벤피카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부임했다. 무리뉴는 00/01 시즌 도중 헤인케스 감독이 경질되자 벤피카의 사령탑으로 승격하며 놓칠 수 없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무리뉴는 뉴캐슬 감독으로 부임한 ‘은사’ 롭슨 감독으로부터 어시스턴트 코치직을 제의받았지만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무리뉴는 팀 전체에 자신의 색깔을 불어넣기 위해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려 했으나 벤피카 측은 무리뉴의 경험부족을 우려하여 베테랑 감독 페레이라를 어시스턴트 코치로 부임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무리뉴는 이를 강경히 반대했고, 그 대신 은퇴한 수비수 카를로스 모제르를 자신의 오른팔로 삼아 자신의 반대파를 양산시켰다.



무리뉴는 부진에 시달리던 벤피카를 빠르게 재건시켜 나갔고, 스포르팅과의 라이벌 전에서 3-0 완승을 거둔 이후에는 언론 및 팬들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회장선거에서 승리한 빌라리뉴는 무리뉴를 탐탁히 여기지 않았고, 반대파들마저 빌라리뉴 회장에게 달라붙자 결국 무리뉴는 두 달만에 스스로 벤피카의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2001년 1월, 무리뉴는 중소클럽 우니앙 레이리아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00/01 시즌 5위에 올려놓는 성과를 일궈냈다. 01/02 시즌 전반기에도 우니앙 레이리아는 4위를 질주하며 쾌속행진을 거듭했고, 당시 성적부진에 고심하던 포르투는 무리뉴 감독에게 SOS 사인을 보냈다. 01/02 시즌 도중 포르투의 감독으로 부임한 무리뉴는 팀을 3위까지 올려놓아 그 역량을 크게 인정받았다.

02/03 시즌에는 데쿠와 마니셰 등을 주축으로 포르투를 강력한 조직력의 팀으로 완성시킨 무리뉴는 리그, UEFA컵, 코파 3연패라는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듬해 포르투는 챔피언스리그마저 제패했고, 리그에서도 2위 벤피카를 8점차로 따돌리고 여유 있게 2연패를 차지했다. 유럽의 대표적인 젊은 명장으로 떠오른 무리뉴는 2004년 여름 석유재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이끄는 첼시에 입성, 세계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지도자로 이름을 올렸다.



무리뉴는 구단 측의 전폭적인 후원을 등에 업고 첼시를 빠르게 자신의 팀으로 바꿔나갔다. 데뷔 시즌부터 승승장구한 무리뉴는 29승 8무 1패 승점 95점이란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 전 시즌 무패우승팀 아스널을 승점 12점차로 따돌리고 팀을 50년 만에 리그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무리뉴의 첼시는 05/06 시즌에도 여유 있게 우승을 차지하며 새로운 황금기를 예고했다. 그러나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무리뉴 특유의 수비적이고 끈끈한 축구를 탐탁히 여기지 않았고, 토트넘으로부터 아르네센을 기술이사로 불러들여 선수 영입의 권한을 부여한 뒤 무리뉴와의 별다른 상의없이 셰브첸코와 발락을 스쿼드에 추가시켰다. 무리뉴는 06/07 시즌 들어 불가피하게 전술적 수정을 가해야만 했다.



첼시는 셰브첸코와 발락의 부진 및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06/07 시즌에는 이전만큼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자국리그에서 맨유에게 패권을 빼앗긴 첼시는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도 승부차기 끝에 리버풀에게 다시 한 번 고배를 마셨고, 06/07 시즌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첼시는 축구 내외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무리뉴는 07/08 시즌 초반 팀이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첼시와 결별을 고하고 말았다. 무리뉴는 구단과의 상호합의하에 이루어진 계약해지임을 분명히 했지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에 의해 해고되었다는 설이 유력하게 제기되며 당시 많은 이슈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인테르에서 트레블을 달성하면서 세계 최고의 감독이 된 무링요


무링요감독님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를 만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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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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