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과 첼시에서 뛰었던 탑 10 선수들

일요일 더비 경기에 앞서 , 우리는 두 클럽 에서 뛴 선수들을 볼 필요가 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에 부임한 이후 첼시는 그들 스스로 영국 축구에서 탑 자리에 올라갔었다.
첼시와 아스날의 충돌은 틀림없이 최고의 런던 더비 게임일것이다.
이제 아스날과 첼시에서 둘다 뛰었던 탑 10 선수들을 알아보자
조지 그래엄
첼시 ( 1964-66 - 72 경기 , 35골 )
아스날 ( 1966-1972 - 308 경기 , 77 골 )![]()
그 우아한 스코틀랜드 플레이어 는 베르디에서 태어났고 1964년 스탬포드브릿지에서 아스톤빌라전을 통해 데뷔전을 가졌다 그리고 그는 토미 도체스티와 함께 그스스로 골스코어러로 첼시에 어린 선수로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평균 첼시에서 매일 다른경기에서 골을 기록하였고 아스날 매니저인 베르티 미에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미는 첼시를 설득하기 시작했고 £55,000 + 토미 베드윈 을 1966년 9월에 제시했다 , 그리고 조지 그래엄은 후에 거너스 골스코어러 차트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그의 데뷔 시즌은 , 뛰어났던 그의 능력과 골스코어의 본능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뒤쳐진 페이스를 이어갔었다, 그리고 1969년 그는 아스날 팬들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선사하였다 그는 미의 170년 유로피언 페어컵 과 1971년 리그컵 이라는 더블을 그에게 선사하였다.
놀랍게도 그는 197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합의했고 스코틀랜드 국가대표였던 그래엄은 1986년 하이버리 에 돌아와서 8시즌동안 6개의 다량의 트로피를 획득하였다.
토미 베드윈
아스날 ( 1962-66 - 20 경기 , 11골 )
첼시 ( 1966-74 - 187 경기 , 74골 )
베드윈은 아스날 유스로 시작했고 리저브에 존 래드포드와 함께 랭크되었었다 그는 조지 그래엄에 트레이드 에 희생양으로 아스날을 떠났었다. 그러나 , 그는 첼시로 트레이드 이적을 하기전에 리그컵에서 처음으로 3골을 넣은등 활약을 보여주었다.
앨런 허슨
첼시 ( 1968-74 - 145 경기 , 10골 )
아스날 ( 1976-78 - 47 경기 )![]()
앨런 허슨은 첼시에서 1969년 1군 으로 올라왔었다 그리고 10대에 선발 출전을 하였다 볼 컨트롤을 하는데 능숙했고 패싱도 매우 겸비해줘서 허슨은 트레이드마크 같은 역할을 했다.
슬프게도 , 그의 재능은 실현 되지 못해었었다. 1969-70 시즌 FA컵 결승전에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그는 부상에 시달렸고 유로피언 위너스컵에서 다양 한 포지션으로 뛰어야만 했다 데이브 섹튼 감독은 그를 1974년에 스토크 시티로 보내야만 했고 그는 스토크 플레이어 에 있어서 아주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었다. 당시에 앨런 허슨은 '제2의 스탠리 매튜스가 나타났다!' 라는 소리도 들었을 정도 였다. 그러나 그는 문제로 인해서 1976년 12월 아스날로 팔려졌었다.
그는 잠시나마 하이버리에서 테리닐 감독 하에 정책에서 미드필드 리암 브래디와 함께 빛이 났었다 그는 알콜중독,파산 그리고 자동차 사고와 대응 하였고 많은 부상을 당했었다. 그는 결국 축구를 은퇴하였다.
욘 홀린스
첼시 ( 1963 - 75 - 592 경기 , 69골 )
아스날 ( 1979 - 83 , 172 경기 , 13골 )
첼시 ( 1983-84 , 30경기 , 1골 )![]()
첼시하면 누구? 홀린스라고 할정도로 첼시에서 엄청난 레전드로 불리고 있다.
그 형제들은 3대째 축구 가문을 이어받았었다 할아버지 , 아버지 그리고 그 형제들 로 이어졌었다. 욘 홀린스는 첼시 유스 에 입단하였고 그의 데뷔 경기는 스윈던 타운 과의 1963년 9월 에 있었던 경기였는데 그의 나이 17살이였다 그는 도허티 그리고 섹튼 팀에서 스탬포드브릿지에 미드필드로 뛰었었다 그리고 그는 167경기를 연속적으로 출전하는 기록을 클럽에서 기록하였고 올해의 첼시 선수상을 2년동안 받았었다.
그는 리그컵 , FA컵 그리고 유럽대회에서 첼시에게 승리를 안겨주었고 잉글랜드 캡틴이 되기전 그는 퀸스파크 레인저스에 1975년 입단하였다 1979년 그는 33번째 생일을 맞았었는데 그는 놀랍게도 당시에 아스날과 사인을 하였다 그는 아직 죽지 않은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줫었다 그리고 여전히 날카로운 볼 스킬을 보여줬었고 그는 여전히 1군에 맞는 선수로 보여졌었다.
이제 수비수 보다는 미드필더로 불려오는 그는 아스날 에서 1981-82 시즌 MBE for services to football 을 수상 하였고 홀린스는 첼시로 다시 돌아가서 1983-84 시즌까지 뛰고나서 코치로서 역할을 하였다 그가 시즌을 은퇴할때 그의 토탈 경기수는 939경기였다 그리고 1985년 존 닐이 은퇴할때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데이비드 로캐슬![]()
아스날 ( 1983 - 92 , 275 경기 , 34골 )
첼시 ( 1994 - 98 , 40 경기 , 3골 )
포레버거너스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 데이비드 로캐슬(록키) 이다.
루이샴에서 태어난 록키는 아스날 데뷔를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1985년 9월에 하였고 즉시 그는 인상적이고 창조적인 사이드에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의 가치를 팬들에게 인식시켰고 1986년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었다 , 1987년 그는 리그컵에서 우승하였고 그 다음시즌 그는 조지 그래엄의 타이틀 우승을 할때도 경기를 놓치지 않았었다.
그는 1990-91 시즌 리그 타이틀 메달을 손에 거머지었고 그리고 1991-92 시즌 중앙 미드필더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었다 조지 그래엄은 여름에 그를 리즈 유나이티드로 로캐슬을 팔았고 그러므로 아스날 팬들은 경악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리즈에서 신뢰를 얻지 못한그는 맨체스터 시티로 갔다가 역시나 마찬가지의 상황이 와서 1994년 첼시로 입단하였다. 그러나 그의 첫시즌은 부상등의 악재가 겹쳤고 노르위치 시티와 헐시티로 임대를 보내졌었다
그리고..... 첼시와 1998년 계약이 만료 되었었다.
2001년 2월 , 그는 자신이 암의 면역 시스템에 대한 공격등으로 인해서 고생하고 있다는것을 밝혔다.
그는 화학요법과 회복의 희망을 기다렸다 그러나 ....... 그는 2001년 3월 31일 새벽에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6주 후 그의 아들 라이언이 FA컵 결승전에서 아스날의 마스코트를 했다.
록키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정말 이 선수만 보면 저절로 가슴이 뭉클해지고 안타까운 선수중에 한명이다. 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엠마누엘 프티
아스날 ( 1997-2000 , 166 경기 , 11골 )
첼시 ( 2001-04 , 55 경기 , 2골 )![]()
1988년 , 아슨 벵거는 모나코에서 영입한 프티와 18살에 사인을 하였다 그리고 그를 중앙 수비로써 기용하였다 9년후 벵거는 비에이라와 프티 공존이라는 뛰어난 미드필드 조합을 만들었고 강력한 파트너쉽을 만들어냈었다 , 깔끔한 태클 그리고 완벽한 패싱이 그 조합의 주요 포인트 였다 . 레프트윙에서 뛰었던 시즌에 프티는 아스날에게 그의 시즌 최초 더블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리고 1998년 여름 그는 프랑스 월드컵 결승 우승에 큰 기여를 했고 월드컵에서 3골을 넣었다.
그와 그리고 비에이라는 아스날의 심장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프티는 2000년 바르셀로나로 이적했고 후에 그는 잉글랜드로 돌아왔는데 그곳이 바로 첼시였다. 2002 FA컵 파이널에 엠마누엘 프티는 아스날과의 경기에 나왔었고 그후에 2005년 1월 엠마누엘 프티는 무릎부상으로 고통을 앓았었고 결국 그는 은퇴를 선언하였다.
에슐리 콜
아스날 ( - 2006 , 228 경기 , 9 골 )
첼시 ( 2006년 부터 지금까지 - 156 경기 , 5골 )![]()
아스날은 에슐리콜이 12살이던 해에 그가 윙으로 옮기기 전에 스트라이커로 훈련시켰다가 결국은 레프트백으로 정착시켰다 그의 포지션은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만들어졌었다. 그는 일찍이 포워드로 경기에 출전하였는데 공격적이면서 수비적인 운영을 하였다 그리고 후에 아스날 에서 1999년 리그 컵 에서 우승할때 서브로 출전하였다 그는 실비뉴의 대체자로 기용되었는데 에슐리콜은 프리미어리그 타이틀 과 3번의 FA컵 타이틀을 2001-02 와 2004-05 를 통해서 획득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비밀리에' 첼시와 미팅을 2005년 1월에 가졌었다 그리고 그것이 노출되었을때 아스날 서포터들은 그에게 야유를 퍼부었었다 그는 결국 첼시로 떠났고 5 m + 윌리엄 갈라스와 교환을 하였다 그때가 2006년 8월이였다
에슐리콜은 잉글랜드 팀 동료인 웨인 브릿지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매달을 2008년에 수상하였고 또한 두번의 fa컵 우승 매달 1번의 리그컵 우승 을 첼시에서 이루었다.
윌리엄 갈라스
첼시 ( 2001-2006 , 230 경기 , 14 골 )
아스날 ( 2006년부터 지금까지 , 139 경기 , 17골 ) ![]()
윌리엄 갈라스는 클레어포테인에서 축구 아카메디를 졸업하였고 갈라스는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에 의해서 6.2m 파운드에 마르세유로 부터 2001년 5월에 이적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르셀 드사이 그리고 존테리와 함께 중앙 수비를 강화하였다 갈라스는 테리와 함께 16경기동안 무실점을 하였고 그는 호세 무리뉴 감독과 함께 첼시에서 2번의 리그우승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풀백에서 뛰게 되었고 그와 무리뉴와의 관계는 좋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갈라스는 2006년 5월 에 아스날로 떠나게 되었고 갈라스는 이적하기전 첼시의 미국투어 제의를 거절하였다.
그는 에슐리콜과 트레이드로 계약이 되어서 아스날과 합의를 하였다 갈라스는 팀을 떠나고 첼시를 상대로 2007-2008 시즌 결승골을 넣었다. 그리고 첼시팬들의 야유를 한몸에 받았다.
그는 아스날에서 많은 타이틀 기회를 얻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그는 캡틴 자리에서 박탈을 당하는등 팀 정신에 영향을 미쳤었다. 당시에 떠날것같던 갈라스는 오히려 후에 좋은 파트너쉽과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했고 베르마엘렌과의 엄청난 조합을 이루게 되었다 프랑스 국가대표에서는 갈라스는 2010 월드컵 예선 에서 '앙리의 핸드볼' 사건 의 앙리의 어시스트를 통해 골을 기록하였고 아일랜드를 상대로 프랑스는 2010 월드컵 본선을 진출할수 있었다.
라싸나 디아라
첼시 ( 2005-2007 , 30 경기 )
아스날 ( 2007-2008 , 13경기 )![]()
첼시팬과 아스날 팬중에서 과연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레알 마드리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아스날과 첼시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라싸나 디아라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는 현재 '라쓰'로 불리우고 있는데 그 전에 그는 첼시와 아스날 둘다 에서 뛰었었다.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첼시와 아스날 둘다에서 뛰었는데 2005년 6월 르 하브르에서 1m파운드에 첼시와 계약을 맺었고 그는 ' 제2의 마케렐레' 라고 불리어 왔었다. 당시에 라싸나 디아라는 수비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디아라는 그 스스로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잘 적응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말들이 있었다. 그러나 2005-2006 첼시에서 쉽사리 적응을 잘 하지 못했고 종종 그는 오른쪽 풀백으로 나오는 등 그가 생각했던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 나갔다. 그는 2007년 8월 31일 아스날과 계약을 하게 되었다.
벵거 감독의 열망 , 그리고 그 스스로 많은 기회를 얻을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디아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1군에서 파브레가스 , 흘렙 , 질베르투 실바 , 플라미니 사이에서 충분히 나아갈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디아라,질베르투 실바의 초반 부상으로 인해서 플라미니가 기회를 얻게 되었고 예상외의 조합으로 인해서 디아라는 기회를 잃게 되었고 이적한지 5개월 만에 그는 포츠머스로 5.5m파운드에 팔렸고 2008년 1월 이적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1군에서 제데로 된 주전자리를 꿰찼었고 그는 폼피에서 FA컵 우승에 기여를 하였고 프랑스 유로 2008 스쿼드에 포함되었었다.
그의 명성 은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 포츠머스는 공식적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제의를 받았는데 이적료는 20m 유로 ( 18.88m 파운드) 였고 그는 2009년 1월 1일에 이적하였다 , 그리고 베르나베우에서 그는 '라쓰' 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 그는 과거 마케렐레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 레알 마드리드는 사비알론소와 계약을 하였고 중원을 더 강화하였고 더 좋은 밸런스를 유지하였다
니클라스 아넬카
아스날 ( 1997-1999 , 90 경기 , 28골 )
첼시 ( 2008년 부터 지금까지 , 98 경기 , 39골 )![]()
1997년 3월 파리생체르망에서 17세의 아넬카는 1997년 3월 아스날로 이적하게 된다. 그는 기회를 얻게 되고 그는 아스날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고 아스날에게 더블을 주는등 인상적인 활약을 했다 , 아넬카는 FA컵 결승에서 득점을 하였다 . 그해에 아넬카는 페이스를 잃었고 , 아직도 그는 행복한 기억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였고 , 거너스 팬들에게 빗발치는 비난세례를 받았다. 그는 아스날에서 그의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였고 아스날은 거대한 이적료를 받고 레알마드리드로 판것이였다 , 레알 마드리드에 있는 동안 그는 적응을 잘하지 못하였고 슬럼프에 빠지는등 곤경에 처하였다.
그는 리버풀로 임대를 왔었고 , 맨체스터시티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페네르바체로 이적하고 볼튼 원더러스로 가는등 엄청난 이적을 끊임없이 반복했고 그의 별명은 '떠돌이 생활을 즐기는사람' 이였다. 한편 아스날은 아넬카를 팔고나서 티에리 앙리를 영입하여 공백을 매꾸었다.
2008년 1월 첼시에 입단한 후에 , 아넬카는 드디어 자신의 팀을 찾은듯 보였다 그는 지난 5월 에미레이츠에 골을 기록하였고 첼시는 1-4로 승리를 하였다 그는 2008-2009 시즌 득점왕을 기록하였고 지금 그는 디디에 드록바의 파트너로 투톱형태를 이루면서 뛰고 있다.
By.포레버거너스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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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 2010.02.06프랑스 선수들 꽤 보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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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벤자민로벤. 2010.02.06갈라스 ㅋㅋ 리키한테 밀려서 아스날로 ㅂㅂ2된 갈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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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우즈 2010.02.06아~ 홀린스가 대단한 레전드였군여
전 첼시레전드하면 졸라부터 떠오르던데ㅋㅋ -
스마일Man[재수생] 2010.02.06역시 캐슐리 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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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GAmel 2010.02.06전 프티선수가 ...98월드컵때가 생각이 많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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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레알 2010.02.06프티,에쉴리콜,라사나만 알고 있었는데 많았느에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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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ngo 2010.02.06갈라스 자책골드립 생각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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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또띠 2010.02.06라싸나디아라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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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 201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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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니 2010.02.06오 라쓰도이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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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iguaín 2010.02.06프티 예전에 되게 좋아했었는데 금발꼬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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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teranos 2010.02.06애슐리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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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naldo 2010.02.07헉 라스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