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웨이펑 멋지네요
http://news.xinmin.cn/rollnews/2010/01/01/3228035.html
출처: 그랑블루 - 허경오님 번역.
리웨이펑 전북의 두 배 연봉 거절 : 나는 차범근감독님께 떳떳하고 싶다.
2009년12월31일, 수원에 있는 리웨이펑은 약속대로 전화기 옆에서 조국의 팬들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춘절(설날)에 여러분들께 새해인사를 드려야하지만 호랑이해 음력1월8일(양력2010년2월21일)부터 수원삼성은 K리그 개막전을 준비하고 3일 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가장 강한 상대 감바 오사카의 도전을 받게 됩니다. 그때는 사정상 힘들 것 같아 오늘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새해 인사 드립니다.”

“일년이 되었네요, 정말 빨라요...” 대두는 마치 텔레비젼에서 다른 각도, 다른 측면으로 보여 주는 리플레이 슬로우모션 같은 느릿한 말투로 말했다. 심지어 주목 받지 못하는 인물의 재방송처럼 느리게 말했다. 2009년 마지막 날 기자를 대하고 앉아 있는 리웨이펑은 마치 축구에 흥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 “총결산해보면 역시 한국의 1년 생활에서 많은 걸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2살도 안된 대두의 딸은 사람들과 인사할 때 놀랍게도 습관적으로 깊이 숙여 인사한다...
(꼬맹이가 한국식 예절을 익혔다는 뜻입니다~)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중국 축구계 최강의 녀석은 과거 수없이 많은 출전 금지에 직면했으나 올해 국가대표 복귀의 목표를 중시하며 여전히 머리를 들고 가슴을 펴고 있다. 뜻밖에도 외국인 면전에서는 “온순함”을 선택했다. 무엇이 이 “도도함”을 부드럽게 했을까? 리웨이펑은 지위의 변화라며 “충성”이란 것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작년 12월, 차범근이 리웨이펑을 끌어들일 당시에 전북 현대도 이 중국 “제일의 센터백”을 노리고 있었다. 지금 이 이야기는 이미 공개된 비밀이다. 그러나 09시즌 중일 때와 얼마 전에도 같은 에피소드가 발생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대두의 “충성” 깊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09년 8월 쯤, K리그 시즌 중 이적 창구가 열렸다. 일찌기 리웨이펑을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에게 추천했던 한국 중개인(대두는 중개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이 사람이 현역 한국 선수 김남일, 조원희, 김두현의 공동 중개인이라고 넌즈시 흘렸다.)은 이 꿈틀거리는 계절에 대두를 위해 충분히 매력적인 계약서를 가지고 왔었다. 연봉이 수원 삼성 보다 훨씬 높았고 경기 보너스도 있었고 한 편의 가격이 적지 않은 현대자동차 광고의 계약서도 부수적으로 가져왔었다. 만약 이러한 계산을 하고 대두가 전북으로 이적했다면 수입은 수원의 두 배가 되었을 것이다! 또 같은 계약이 2009년 11월 수원이 FA컵 우승 후 재차 대두의 면전에 바뀌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모두 올해 였어요, 돈, 분명 모두들 중요하다고 하죠. 그러나 저는 차감독님께 떳떳하고 싶습니다. 수원 팬들께 떳떳하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도 대두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자신이 모범선수는 아니라며 “그러나 저는 존중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의 현재 모든 것을 존중합니다. 그러한 존중이 저에게 지금 모든 사람들을 있게 해 주었습니다. 차감독님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이 말은 좀 쑥스럽습니다. 그 분 앞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자식처럼 차감독님과 농담도 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결코 착한 척하지 않고 한다. 수원에서 최고참인 이운재, 김대의와 아울러 대두만이 차감독을 편하게 대할 수 있다며, “저의 팀내 동생인 최성환은 차감독님의 큰 아들 차두리와 형제 같습니다. 차감독님은 성환이에게도 아버지같은 분이죠. 그러나 성환이는 감독님을 좀 무서워합니다... 훈련 한번 잘 못하면 차감독님은 45분 내내 꾸짓습니다. 이 동생이 차감독님 방에서 나올 때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옷은 땀 범벅이 되죠. 그는 차감독님 방에서는 계속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고 말합니다. 성환이는 우리와 다르게 ‘착한아이’죠. 저와 이운재, 김대의는 모두 차감독님이 구해 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중대한 규율 위반으로 각자 축구협회로부터 엄한 처벌을 받고 심지어 국가 대표에서 제명된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감정은 항상 모범적이었던 선수와는 다르죠. 우리는 공차는 것 뿐만 아니라, 은혜에 보답해야만 합니다.
풍파를 경험하고 냉정과 온정을 체험한 지금의 대두는 한 가지 뚜렷한 변화가 있다.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점점 더 말을 잘 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의 1년에 대해 말하면서 엄숙하고 진지한 경기이야기 외에도 대두는 두 사람을 지금도 기억한다.
지난 시즌 K리그에서 대두는 모두 3경기에 불참했다. 두 번은 경고누적 출전 정지였고 다른 한 번은 조정을 위해서였다. 그는 90분을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8월의 평범한 리그 경기였고 상대는 경남FC였다. 경기 전 불치의 병으로 삶이 오래 남지 않은 한 분의 수원 서포터가 휠체어에 앉은 채로 응원을 하고 있었다. “저는 그분의 이름 전부를 알지 못합니다. 모두들 그를 신가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수원의 대단히 열렬한 팬이라고 합니다. 암에 걸리셨고요. 그렇게 더운 날 옷을 껴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아마도 화학 약물치료로 그는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신가님은 휠체어에 앉아서 모든 선수들과 악수했습니다. 최후의 고별인 셈이죠. 나중에 국내 언론에 대두와 신가님이 악수하는 사진이 전해졌다. 리웨이펑은 한국인들의 윗사람에 대한 예절에 따라 오른 손을 뻗고 왼 손은 가슴에 대고 윗몸을 굽혀 악수했다... 이 경기 후 신가님은 최후로 선수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했다. 한국의 전 국가대표 송종국, 곽희주, 김대의, 북한용병 안영학등은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10여일 후 신가님은 자신이 열렬히 사랑했던 팀을 영원히 떠났다. 홈경기가 열릴 때 평소 90분 내내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은 5분 동안 고요했다. “수원 팬의 팀에 대한 감정은 승리하거나 패하더라도 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몸은 이미 팀과 ‘너나’의 관계가 아닙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가족이라고 해야 할 것 입니다. 뼈와 살, 양 손 어느 하나도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대두는 한 서포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수원팬클럽의 전회장 박장혁이다. 이 30세의 남자의 신분은 “그랑 블루”의 리더였기 때문에 “전회장”으로 불려진다. 이 “스컬 크루”조직은 성립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수만 명 규모의 “수원서포터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핵심회원도 수백명 뿐이지만 팀의 가장 굳건한 후원회이다. 수원이 어디를 가던 지를 막론하고 그들은 항상 뒤따른다. 수원을 외치고 한국에 중국어 구호 “리웨이펑 찌아요우”가 울려 퍼지게 한 것은 그들의 걸작이다. 대두는 시간이 나면 팬클럽의 행사에 모두 참가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심리적으로 중국과 한국은 분명 다른 나라여서 사람들 사이에 근본적으로 큰 거리가 있고 심지어 충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수원 팬들은 자신의 팀 선수가 어느 나라에서 왔고 어느 도시에서 왔는지를 막론하고 그들은 모두 자신의 형제를 대하듯이 대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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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때 정말 감동적이었음 처음엔 국대에서 하는 행동 봐선 몇경기 뛰다가 돌아가겠지
싶었는데 이렇게 완소인 줄 ㄷㄷ 내년에 남아서 그랑블루 부활시키자 제발 ㅜㅜ
출처: 그랑블루 - 허경오님 번역.
리웨이펑 전북의 두 배 연봉 거절 : 나는 차범근감독님께 떳떳하고 싶다.
2009년12월31일, 수원에 있는 리웨이펑은 약속대로 전화기 옆에서 조국의 팬들에게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춘절(설날)에 여러분들께 새해인사를 드려야하지만 호랑이해 음력1월8일(양력2010년2월21일)부터 수원삼성은 K리그 개막전을 준비하고 3일 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가장 강한 상대 감바 오사카의 도전을 받게 됩니다. 그때는 사정상 힘들 것 같아 오늘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새해 인사 드립니다.”

“일년이 되었네요, 정말 빨라요...” 대두는 마치 텔레비젼에서 다른 각도, 다른 측면으로 보여 주는 리플레이 슬로우모션 같은 느릿한 말투로 말했다. 심지어 주목 받지 못하는 인물의 재방송처럼 느리게 말했다. 2009년 마지막 날 기자를 대하고 앉아 있는 리웨이펑은 마치 축구에 흥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 “총결산해보면 역시 한국의 1년 생활에서 많은 걸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2살도 안된 대두의 딸은 사람들과 인사할 때 놀랍게도 습관적으로 깊이 숙여 인사한다...
(꼬맹이가 한국식 예절을 익혔다는 뜻입니다~)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중국 축구계 최강의 녀석은 과거 수없이 많은 출전 금지에 직면했으나 올해 국가대표 복귀의 목표를 중시하며 여전히 머리를 들고 가슴을 펴고 있다. 뜻밖에도 외국인 면전에서는 “온순함”을 선택했다. 무엇이 이 “도도함”을 부드럽게 했을까? 리웨이펑은 지위의 변화라며 “충성”이란 것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작년 12월, 차범근이 리웨이펑을 끌어들일 당시에 전북 현대도 이 중국 “제일의 센터백”을 노리고 있었다. 지금 이 이야기는 이미 공개된 비밀이다. 그러나 09시즌 중일 때와 얼마 전에도 같은 에피소드가 발생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대두의 “충성” 깊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09년 8월 쯤, K리그 시즌 중 이적 창구가 열렸다. 일찌기 리웨이펑을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에게 추천했던 한국 중개인(대두는 중개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이 사람이 현역 한국 선수 김남일, 조원희, 김두현의 공동 중개인이라고 넌즈시 흘렸다.)은 이 꿈틀거리는 계절에 대두를 위해 충분히 매력적인 계약서를 가지고 왔었다. 연봉이 수원 삼성 보다 훨씬 높았고 경기 보너스도 있었고 한 편의 가격이 적지 않은 현대자동차 광고의 계약서도 부수적으로 가져왔었다. 만약 이러한 계산을 하고 대두가 전북으로 이적했다면 수입은 수원의 두 배가 되었을 것이다! 또 같은 계약이 2009년 11월 수원이 FA컵 우승 후 재차 대두의 면전에 바뀌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모두 올해 였어요, 돈, 분명 모두들 중요하다고 하죠. 그러나 저는 차감독님께 떳떳하고 싶습니다. 수원 팬들께 떳떳하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도 대두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자신이 모범선수는 아니라며 “그러나 저는 존중이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의 현재 모든 것을 존중합니다. 그러한 존중이 저에게 지금 모든 사람들을 있게 해 주었습니다. 차감독님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분입니다. 이 말은 좀 쑥스럽습니다. 그 분 앞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자식처럼 차감독님과 농담도 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결코 착한 척하지 않고 한다. 수원에서 최고참인 이운재, 김대의와 아울러 대두만이 차감독을 편하게 대할 수 있다며, “저의 팀내 동생인 최성환은 차감독님의 큰 아들 차두리와 형제 같습니다. 차감독님은 성환이에게도 아버지같은 분이죠. 그러나 성환이는 감독님을 좀 무서워합니다... 훈련 한번 잘 못하면 차감독님은 45분 내내 꾸짓습니다. 이 동생이 차감독님 방에서 나올 때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옷은 땀 범벅이 되죠. 그는 차감독님 방에서는 계속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고 말합니다. 성환이는 우리와 다르게 ‘착한아이’죠. 저와 이운재, 김대의는 모두 차감독님이 구해 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중대한 규율 위반으로 각자 축구협회로부터 엄한 처벌을 받고 심지어 국가 대표에서 제명된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감정은 항상 모범적이었던 선수와는 다르죠. 우리는 공차는 것 뿐만 아니라, 은혜에 보답해야만 합니다.
풍파를 경험하고 냉정과 온정을 체험한 지금의 대두는 한 가지 뚜렷한 변화가 있다.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점점 더 말을 잘 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의 1년에 대해 말하면서 엄숙하고 진지한 경기이야기 외에도 대두는 두 사람을 지금도 기억한다.
지난 시즌 K리그에서 대두는 모두 3경기에 불참했다. 두 번은 경고누적 출전 정지였고 다른 한 번은 조정을 위해서였다. 그는 90분을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8월의 평범한 리그 경기였고 상대는 경남FC였다. 경기 전 불치의 병으로 삶이 오래 남지 않은 한 분의 수원 서포터가 휠체어에 앉은 채로 응원을 하고 있었다. “저는 그분의 이름 전부를 알지 못합니다. 모두들 그를 신가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수원의 대단히 열렬한 팬이라고 합니다. 암에 걸리셨고요. 그렇게 더운 날 옷을 껴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아마도 화학 약물치료로 그는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신가님은 휠체어에 앉아서 모든 선수들과 악수했습니다. 최후의 고별인 셈이죠. 나중에 국내 언론에 대두와 신가님이 악수하는 사진이 전해졌다. 리웨이펑은 한국인들의 윗사람에 대한 예절에 따라 오른 손을 뻗고 왼 손은 가슴에 대고 윗몸을 굽혀 악수했다... 이 경기 후 신가님은 최후로 선수들과 함께 사진 촬영을 했다. 한국의 전 국가대표 송종국, 곽희주, 김대의, 북한용병 안영학등은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10여일 후 신가님은 자신이 열렬히 사랑했던 팀을 영원히 떠났다. 홈경기가 열릴 때 평소 90분 내내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은 5분 동안 고요했다. “수원 팬의 팀에 대한 감정은 승리하거나 패하더라도 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몸은 이미 팀과 ‘너나’의 관계가 아닙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가족이라고 해야 할 것 입니다. 뼈와 살, 양 손 어느 하나도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대두는 한 서포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수원팬클럽의 전회장 박장혁이다. 이 30세의 남자의 신분은 “그랑 블루”의 리더였기 때문에 “전회장”으로 불려진다. 이 “스컬 크루”조직은 성립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수만 명 규모의 “수원서포터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핵심회원도 수백명 뿐이지만 팀의 가장 굳건한 후원회이다. 수원이 어디를 가던 지를 막론하고 그들은 항상 뒤따른다. 수원을 외치고 한국에 중국어 구호 “리웨이펑 찌아요우”가 울려 퍼지게 한 것은 그들의 걸작이다. 대두는 시간이 나면 팬클럽의 행사에 모두 참가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심리적으로 중국과 한국은 분명 다른 나라여서 사람들 사이에 근본적으로 큰 거리가 있고 심지어 충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수원 팬들은 자신의 팀 선수가 어느 나라에서 왔고 어느 도시에서 왔는지를 막론하고 그들은 모두 자신의 형제를 대하듯이 대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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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때 정말 감동적이었음 처음엔 국대에서 하는 행동 봐선 몇경기 뛰다가 돌아가겠지
싶었는데 이렇게 완소인 줄 ㄷㄷ 내년에 남아서 그랑블루 부활시키자 제발 ㅜㅜ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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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구아헤 2010.01.03*의리 하나는 멋진 선수..수원과 쭈욱 함께 했으면 좋겠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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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2010.01.03와서 인간되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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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iguaín 2010.01.03와.....안좋은편견을가지고 봤던 제 자신이 한심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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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또띠 2010.01.03대륙의 홍명보.. 한국와서 이미지변신제대로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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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 Pivote 2010.01.03멋진 축구 선수 이기 이전에
멋진 사람입니다. -
subdirectory_arrow_right Diego 2010.01.03@NO.1 Pivote 222 동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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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선생 2010.01.03차붐이 작년에 유일하게 건진 두명 위봉이 ㅎㅛㅇ하고 두현이 ㅎㅛㅇ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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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illa 2010.01.03처음에 왔을 당시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는데 지난 시즌 막장 수원을 먹여살린 공신 중 1명이었던-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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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수 2010.01.03이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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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t.i 2010.01.03위봉이형. 중국 사람들도 위봉이형 다시 보고 있다던데..진짜 거칠어서 완전 싫어했던 선수였는데..수원에서 하는거보니까 또 정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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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마두^^ 2010.01.03멋있다...피온2영입해야하는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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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2010.01.03멋지네요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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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가 2010.01.03K리그와서 다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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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느마리아 2010.01.03와우 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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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룰렛 2010.01.03훈훈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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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go 2010.01.04좋은 자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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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7 라주장 2010.01.06오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