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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선수 이야기

각성엠똘가고 2009.12.16 14:32 조회 2,327

밑에 이기형 선수 이야기 나온 김에...
갑자기 유상철 선수가 생각나서요.


한번쯤은 유상철 코치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클럽 커리어(거의 우승청부사 수준이에요.)
- 울산 현대, 요코하마 마리노스, 가시와 레이솔
- K리그 우승 2회, 준우승 1회
- 기타 컵 종류 우승 4회, 준우승
- K리그 베스트 일레븐 3회 수상
- K리그 득점왕 1회 수상

- J리그 우승 2회, 준우승 1회
- 기타 컵 종류 우승 1회, 준우승 1회


국가대표팀 커리어
- A매치 122경기 18득점
- 월드컵 2회 참가
- 아시안컵 3회 참가


Fifa - 2002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유상철, 홍명보 선정

일본 닛칸스포츠 - 한국에는 유상철이 있었고, 일본엔 없었다.

네털란드 일간지 데볼스 크로트/영국 파이낸셜타임스 -  2002월드컵중 최고 미드필더는 유상철

UEFA  - 유상철의 침착성과 탁월한 볼배급 능력은 경의로운 수준 , 유상철이 유럽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거친 상대들을 완벽히 제압했다. 세계 축구 팬들은 그의 등 번호(6번)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가시와레이솔 - 외국인 선수 최초로 은퇴경기 마련    

1998년 2000년, 2001년 세차례 FIFA올스타 자선경기 출장    


유상철은 정말 당시 축구판의 무지함때문에 엄청 무시당하던 케이스였어요. 히딩크가 부임하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고, 다른 나라에서는 데샹, 둥가, 쁘티, 과르디올라..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미드필더의 중심추로 잡고 있을때 저희는 그런거 없이 오직 측면에서의 크로스->한방 꽂기, 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이러한 풍토에서, 당연히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고(잘 생각해보면, 유상철 이전에 수비형 미드필더의 자리에서 유명했던 선수는 오직 허정무가 유일합니다.) 또 유상철의 묵직한 한방이 자주 빗나가는 현상을 빗대어 '홈런왕 유상철'이라는 조롱까지 일삼기 일수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그의 가치를 인정했어요.
피파 올스타 자선경기에 3회 초청 받았었고, 일본에서 거액의 돈으로 지속적인 러브콜을 해왔으며, 그리고 일본에서는 神으로 군림했죠.(아마, 2000년대 초반 스포츠 신문에서 본건데, 일본 외국 용병 연봉 탑 10에도 이름이 올라와 있던 걸로 기억해요. 홍명보, 황선홍, 노정윤, 유상철이 아마 탑 10에 같이 있었을겁니다.)


이후, 히딩크 부임 이후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이을용-김남일-유상철로 만들어지는, 미드필더 황금세대의 중심으로 활약하게 되었고, 그리고 2002월드컵에서, 그동안의 비난을 모두 다 無로 돌려놓는 완벽한 활약...



그런데, 조금 더 시계바늘을 뒤로 돌려서, 유상철의 진가는 아테네 올림픽때 발휘됩니다.
아테네 올림픽때 와일드카드로 참가하게 되었죠. 그리고 평범한 활약을 보여주다가, 마지막 말리전에 폭발하게 됩니다.

저희는 그전에 그리스 2-2무승부, 멕시코 1-0승리로 인해, 비기거나 이기면 자력으로 8강 진출가능한 상황이었고, 반대로 진다면 무조건 떨어지는 상황이였어요. 그러는 와중에 전반 초에 수비가 크게 흔들리면서 순식간에 3-0으로 뒤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센터백으로 나왔던 유상철이 미드필더 중앙까지 올라가서 경기를 지휘하기 시작하자, 경기의 양상은 크게 달라집니다. 이후, 한국의 일방적인 공격 일변도였고, 결국 3-3 무승부를 거두어내서 8강에 진출하게 되죠. 이 경기에서, 유상철은 33살 먹은 노장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걸 보여줬습니다. 파워풀한 제공권 장악, 뛰어난 2선 조율력, 리더쉽, 말리 떡대 2명 사이에 휩싸여도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바디밸런싱을 이용한 볼간수능력까지.



하지만, 이후의 유상철은 고질적인 무릎부상이 재발하면서 1년정도 부상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은퇴를 하게 됩니다. 아쉬운 순간이였죠. 이을용, 이호, 김두현, 김정우 정도가 있다고는 해도, 제 컨디션이 아니던 당시  우리 미드필더의 모든 것 - 김남일의 공백을 메꿔줄 유일한 대체자원이였던 유상철이 은퇴하게 되었으니 말이죠.




유상철은 정말 장점이 많은 선수였어요. 미국, 유럽 떡대들한테도 안 뒤지는 몸싸움을 보유했었지요. 어찌보면, 김남일보다 더 부각받아야 했는데, 김남일이 나이, 외모, 성격 등. 여러가지 스타성을 지녔던지라, 더 부각받기도 했지만 정말 2002월드컵때의 유상철은 '완벽한 선수'였어요.


A매치 골의 모든 기록이 중거리, 세트피스에서만 나왔을 정도로 뛰어난 2선 득점력과 더불어 다용도 멀티플레이어..히딩크가 송종국과 더불어 가장 스타팅 멤버에 먼저 적는다고 언급, 월드컵 끝나고 트벤테, 페예르노트, 바르셀로나, 도르트문트와 루머(스포츠신문에서 본거)..


하지만

결국 바르셀로나 드립은 개드립으로 끝났는데..


(개인적으로는 도르트문트행이 확정인줄 알았어요. 그때 유상철 선수도 인터뷰에서 독일에서 뛰어보고 싶다, 라고 했구요 - 아무래도 김주성, 이동국, 황선홍이 가서 실패했던 리그니깐, 자존심 회복도 겸사겸사였겠지요 ^^)



반대로, 단점은 한국의 당시 대부분 선수가 그랬듯이 테크닉이 좋은 편이 아닙니다.
K리그와 J리그에서는 먼치킨 득점머신으로 군림했지만 허정무, 히딩크가 그를 공격수로도 가동해봤다가 결국은 중앙으로 내린 이유도 최전방에서 포스트 플레이를 해주기에는 너무 볼 간수 능력이 좋지 못했어요. 


뭐 한국이랑 일본 그 호빗들을 상대로는 떡대로 밀어붙이면 나가 떨어졌으니 볼 테크닉이 딱히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여전히 리그에서는 위협적이였지만요.


2001년쯤에, 당시 일본 대표팀이 자랑하던 플랫 3(세명의 수비수)의 주축이던 마쓰다 선수가 언론과 인터뷰를 했을때 ' 유상철을 공격수로 쓰지 않으면 후회할거다!!!! ' 라면서 한국에 친절하게 조언(?)을 하는 일이 생각나네요.


그의 요지는, 유상철의 뛰어난 헤딩능력과 최용수, 황선홍, 이동국의 득점 능력을 이용한 두명의 공격수를 쓰고, 미드필더에 많은 수의 선수를 배치해서 빠른 공수전환 싸움을 가져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여튼 그 정도로 유상철의 최전방에서의 파괴력은 '최소한' 아시아에서는 독보적이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으로 유럽에도 통한다는걸 보여주기도 했지요 ^^



제가 이 형님 때문에 아직도 김정우, 김남일, 이호를 깝니다. 카를로스 보시던 분들이 마르셀루, 드렌테 까는 것과 비슷한 심정. (그나마, 가장 비슷한 향기는 김정우가 풍기고 있어요. 좋은 공수밸런스에 비난을 받아도 상관없이 자기 할일 하고, 상대팀을 향해 거침없는 태클을 날리는 뛰어난 멘탈능력까지.. 이호의 하드웨어에 김정우 소프트웨어를 달면 딱 유상철일려나요?)


이호의 피지컬, 김남일의 영리함과 넓은 시야, 김정우의 경기 조율능력 , 거기다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잘 찬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가능한 중거리슛까지!! 정말 수비형 미드필더의 모든 덕목을 다 보유한 선수였지요. 질베르투 실바를 생각하시면 편하겠네요.




딱 한마디로 요약 가능해요.

경기 컬러와, 전술이 다른 박문성과 서형욱이 뽑은 대한민국 역대 올타임 베스트 11에서 미드필더의 중앙은 유상철이 양쪽 다 선정되면서, 명실상부한 한국 역대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로 선정했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을 맡고 계시다던데, 좋은 성과 거두셔서 나중에는 좀 더 높은 곳에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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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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