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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타 비고토요일 5시

이정수 팬이 쓰는 이정수 이야기 ^^

Gago N.Torres 2009.10.16 11:08 조회 1,808 추천 1
저번에, 이야기가 한번 나와서
그때 글을 적어야지.. 적어야지.. 하다가

조금 뒷북이지만, 이제 이정수의 입지도 국대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핵심 요원으로 부상했고, 또한 국대 팬들 사이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진듯 해
이정수 선수의 오랜 팬으로써 몇자 적어볼려고 해요 ^^

예전에 링고군이랑 한참 친해지던 과정에서
이정수, 이정수 주목해라
쟤는 한국의 페페가 된다, 된다
라고 막 주장한 이력이 있는지라 이정수가 못하면 어떡하나 -,,- 라고 걱정했는데..
결국은 잘되고 인정받아서 참 기분이 좋네요 ^^



그럼 이정수의 이력 훑어보는 글 시작하겠습니다..



1. 한없이 어리고, 부진했던 안양 LG에서의 공격수 생활


이정수의 커리어는, 많이들 언론에서 오르내리락 하지만 공격수로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몰락한 세대이고, 근 10년 사이에 유일하게 중국에게 패한 청소년 대표팀이지만
박용호, 이천수, 최태욱, 조재진등이 주역으로 있었던 2000년 아시아 청소년 대표팀
일원으로 발탁되기도 했었죠.


그리고, 당시 최용수, 정광민, 김성재, 안드레, 드라간등등의 우수한 공격자원들이
거쳐간 안양LG의 조광래 감독이 눈여겨보고, 냉큼 데리고 가죠.

그리고, 2002년 시즌은 상당히 괜찮았어요. 꾸준히 조광래의 엄호 아래 후반 조커, 선발 요원을 오가며 꾸준히 제몫을 해주었죠. 그리고 초반이었지만 경희대에서의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신인왕 후보에도 이름을 오르내렸구요.

그러다가, 이정수가 제 컨디션을 못 찾고, 2년차 징크스를 겪기 시작하자, 조광래 감독은 수비수로 전업시킵니다. 그냥 기분 전환 삼아서 쉬다 오라, 는 의미에서 수비수로 내린건지, 아니면 진짜로 장래성을 보고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수비수로써의 첫시즌은 좀 많이 못했습니다.







2. 인천 공격진을 박살내고, 인천으로 이적하다.


그리고 FC서울로 바뀌는 동시에, 이정수는 2군에서 시즌 스타트를 했는데 결국 사고를 치고 맙니다.

당시, 갓 신생팀인 인천유나이티드의 2군 멤버와 FC 서울의 2군 멤버가 경기를 벌였는데, 당시 인천 유나이티드에는 부산에서 안정환과 바람의 투톱을 이루었던 마니치, 일본의 올림픽 대표팀 출신 마에조노, 한국의 올림픽 대표팀 전재호 선수등이 몸을 푼다는 의미로 경기에서 뛰고 있었는데, 이정수 단 한명에게 돌아가면서 '발리고 맙니다'

그때 아마, 인천유나이티드 팬들이 경기를 보러 갔다가 단체로 뒤집어져서, 아이러브사커에 글을 꽤 올렸습니다. 서울 FC 부럽다,(물론 서울 FC라고 안 하고, 패륜이라고 했죠 ^^; 그때 한참 K리그팀 vs 서울FC 구도가 심해서리) 대박 수비수 한명있다, 이런식으로요.

그리고 당연히 그 경기를 관람했던 인천의 안종복 단장이 FC 서울 보드진에 사정, 사정을 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여기에 빡쳐서 그만두었다고 하더라구요 ^^; 이놈의 서울 윗대가리들은 선수 볼 줄 모른다, 라면서요.(카더라~입니다.)







3. 드디어 진가가 드러난, 수비수 이정수



그리고,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서 인천에 안착한 이정수는, 마침내 그 진가를 드러내고 맙니다. 말 그대로 대폭발 했습니다. 매경기 각팀의 에이스들은 골라 드시는데다가 모자라서, 오른쪽에서 한번에 깊숙하게 찔러주는 패스, 드리블이 매우 부각받게 됩니다. 수비능력은 완벽한데, 공격도 그에 못지 않게 준수하다는 걸 보여준거죠.

그 덕에 K리그 팬들은 이정수를 당시 중원이 횡~하던 한국 대표팀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넣자고 이야기 했었죠. - 당시 국가대표팀은 이을용은 본 프레레가 외면해서 안 뽑히고 있었고, 김남일은 잦은 부상으로(발등 2연속 골절 ㅠ_ㅠ) 제대로 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그리고, 그 결과 인천은 K리그 플레이 오프 결승까지 갈 수 있었지만, 이정수의 결장은 결국 이천수의 원맨쇼를 유발했고, 인천은 창단 이후 첫 우승의 감격 문턱에서 좌절하게 됩니다. 그리고 울산 팬들도, 인천 팬들도 하나같이 ' 이정수가 없어서' 라는 말로 울산팬분들은 승리를 자축, 인천팬분들은 패배를 위로했었죠.



여전히 2005년때도 상승세를 이어가던 이정수.
그리고 당시 박재홍, 박동혁, 김한윤, 김진규, 유경렬의 시덥잖은 삽질의 연속으로 수비불안을 이어가던 본 프레레가 동아시안컵을 앞두고 뽑습니다.

그런데, 이정수가 그만 부상을 당하게 되고, 결국 낙마했습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동아시안컵때 끝내 수비불안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국 대표팀은 무너지고, 한달 이후 본 프레레는 사임되어 쓸쓸히 대한민국을 떠나죠.


그리고 K리그의 거상 수원 삼성이 이정수를 영입합니다.
인천으로써는 흑자 경영이라는 목표를, 그리고 수원으로써는 부상이 잦은 곽희주를 대신해 마토와 파트너를 맞출 최정상급 센터백을 영입하게 된, 윈윈 전략이 수립하는 만족스러운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그동안 인천 유나이티드라는 비인기구단의 에이스라는 설움을 벗어던지고
수원 삼성이라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인기구단의 에이스로 거듭나면서 국가대표팀까지 오르게 되죠.






4. 이정수의 장단점



이정수의 최대 장점은, 공격수 출신 답게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커버플레이와 동시에 악착같은 대인마크 능력입니다. K리그의 이따마르, 이동국, 나드손, 박주영, 네아가, 모따까지. 제가 눈으로 한번씩 다 이정수가 우주로 보내버리는걸 본 선수들 명단입니다. 화려하지 않나요? K리그에서 난다 긴다하는 공격수들이 다 이정수와의 1:1마크에서 순수한 개인역량으로 돌파를 하는 장면을 단 한차례도 보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아쉬운 점은 좀 성질이 있는 선수인지라, 경기가 좀 말리거나 거칠게 공격수가 나오면 자신도 덩달아 거칠어진다는 점인데.. 수원에 간 이후로는 많이 나아졌더군요. 차붐이 다른건 몰라도 선수 관리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잖아요. ^^


..

여기까지 이야기하니깐, 누가 연상되지 않으시나요?
레알에서 3번 달고... ^^

네, 그렇습니다.
볼때마다, 페페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선수입니다. 지나치게 개인 기량을 자신하는 나머지, 이따금씩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지나치게 넓은 공간을 뛰어다니면서 위기를 초래할뻔도 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기량으로 상대팀의 공격을 저지하고 날카로운 패스로 우리팀의 공격의 물꼬를 틀어주죠. 또 살짝 특유의 다혈질 분위기를 솔솔 풍기는 것도 비슷하구요. (맨 밑에 골영상 보시면 더 확신이 드실겁니다. 센터백인데 냅따 전방에 빈공간 생기니 두다다다다 죽어라 뛰어가서 냅따골)


전, 개인적으로 이정수가 유럽에 간다면..
라리가에 온다면, 장담하건데 레알이 한번쯤 루머를 낼만한 수준의 선수입니다. 성공할지는 모르겠습니다(먼산....)

제 말은, 그만큼 이정수가 남긴 아시아 리그에서의 임팩트와 정복의 역사는 강합니다. 브라질 명문 크루제이루의 에이스 모따를, 프랑스 리그의 차세대 에이스 박주영을, 현재 멕시코 리그의 에이스 이따마르, 아시안컵 역대 최다골 기록 보유자 이동국을 한번씩 무너뜨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한다면 지나치게 K리그 팬 같은가요?!! ^^;









5. 이정수의 국가대표 커리어



팬으로써 유럽 진출을 못하게 된 게 많이 아쉽기도 하지만, 더더욱 아쉬운 점은

이정수의 국가대표팀 데뷔가 상당히 늦어진 감이 짙습니다.


2004. K리그 팬들 사이에서 '대박'이라는 평가를 받고
2005, K리그 팬들 사이에서 '본좌 ㅎㄷㄷ'이라는 평가를 받고
2006, 2007, 2008년도 꾸준히 수원의 뒷문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는데


실제로, 이정수가 수원에 오기 직전인 2005년. 수원삼성은 고작 10위에 그칩니다. FA컵은 조기탈락했구요.

그런데 이정수가 오고 난 후인 2006년 리그 2위, FA컵 준우승
2007년 리그 3위, 컵대회 4강
2008년 리그 우승, 컵대회 우승
을 달성하는.

누가봐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또 반대로, 이정수가 떠난 올 시즌의 수원은 ^^; 그야말로 막장 테크죠.
물론, 수원의 부진과 상승세에는 비단 이정수만의 효과라고 단정짓기는 힘들지만
이정수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어느정도는 있다, 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이관우 효과, 박호진 효과, 마토 효과 등등..)

국가대표팀 데뷔는 그가 넘버원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2005년부터, 3년 반이 지난
2008년 하반기에나 이루어졌습니다. 그것도, 그나마 곽태휘가 부상당했기 때문에
데뷔가 빨라졌던 거죠.


이정수에게 조금 더 운이 따라서, 2005년 도중에 부상으로 국가대표팀에서 하차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상당한 유명세와 네임벨류를 얻어서 유럽에서 뛰는 최초의 한국인 센터백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다들 보시다시피, 매경기 세트플레이때 상대팀이 누구든 상관없이 헤딩슈팅을 가장 많이 시도하는 수비수이며, 스피드, 패스, 개인기, .. 뭐 뒤쳐질게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떡대 호주를 상대로도 유일하게 제공권에서 밀리지 않던 유일한 한국인이였는데요 ^^



얼마전에, 사우디의 한 유명클럽에서 3년 계약, 연봉 30억원 언저리의 대박 제안을 이정수에게 해왔다고 하더라구요. 이정수가 지금 교토에서 받는 연봉이 8)억원이 조금 넘는데 비해서, 무려 3배에 달하는 최고의 대우가 이정수에게 제시된거죠. 말 그대로, 이제는 동아시아를 넘어서, 범 아시아적인 스타가 된거에요.

생각해보세요. 초반에 김진규, 곽태휘, 조용형, 강민수등이 수비로 나왔을때 센터백에 대한 질책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이제 조용형, 이정수 라인은 누가봐도 든든합니다. 이번 세네갈전에서도 그 흔한 1:1 찬스 한번 허용하지 않았구요. 당연히 사우디같은 거상 리그에서도 관심을 드러낼 수 밖에 없을거에요. 나이도 많아서 유럽에 가기는 힘들겠지만, 아시아에서는 호적수가 없는 실력의 선수.


일본의 평균적인 공격수 수준은 다들 잘 아실테고(K리그에서 득점 순위 5위 안에 든 역사가 없는 이근호, 조재진이 득점 5걸에 드는 리그니ㅠ_ㅠ; 야나기사와, 오쿠보 등.. 우리가 들으면 웃는 선수들이 일본 리그의 국내파 에이스입니다..) 좀 더 수준이 높고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뛰는 사우디에 가서, 돈도 벌고 다양한 경험도 쌓으면서 여러모로 국가대표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6. 조병국.. 그리고 이정수..


조병국을 처음 알게 된.. 2002년

이정수를 처음 알게 된.. 2004년..

그리고 이정수-조병국 환상 센터백 궁합을 꿈꾸던 2005년..


한 선수는, 부상을 극복하고 K리그를 정복한데 이어, 국가대표팀도 정복에 나서고 있지만
한 선수는 망가져버린 허리를 완치시키지 못하고, 준수한.. 한 팀의 수호신으로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많이 아쉽네요.


두 선수 다 탁월한 개인기량, 뛰어난 제공권, 파이팅 넘치는 성격 덕분에 유럽 진출하면 100% 성공한다고 자신하던 선수였는데 말이죠.







이정수, J리그 3호골 장면 - 3:45초부터 보시면 되요. 후반 종료 직전에 오버래핑 나가서
공격수가 흘려준 볼 냅따 발리슛

(현재 J리그에서 5득점 기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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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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