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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타페화요일 5시

레알은 블랑이 필요해

피오호 2009.05.27 04:58 조회 1,747 추천 3
스탐이 자서전 사건으로 퍼거슨과 틀어진 후 라치오로 떠나버렸을 때, 퍼거슨은 블랑을 영입했습니다. 은퇴를 코 앞에 둔 선수를 말이죠. 당시 많은 사람들이 퍼거슨이 노망났다, 스탐 버리고 영입한다는게 고작 다 늙은 블랑이냐, 라며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바보테즈의 개삽질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수비라인을 구축했지요. 스탐이 빠진 공백을 전혀 느끼지 못할만큼 말입니다. 몸으로 수비하던 퍼디난드는 머리로 수비하는 선수로 탈바꿈했고 수비라인에서의 리더쉽이 얼마나 수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기왕 경험많은 베테랑 수비수를 영입하고자 한다면 리더쉽을 갖춘 선수가 필요합니다. 칸나바로는 아쭈리의 캡틴이지만 사실 리더쉽과는 거리가 조금은 있는 선수라고 봅니다. 마드리드의 수비 상황에서 수비 라인을 조율하는 것은 칸나바로가 아니라 언제나 카시야스였습니다. 칸나바로의 팀내 위상 문제가 아니라 칸나바로는 선수시절동안 수비라인을 조율하는 위치에 서본 경험이 거의 없는 선수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나바로의 풍부한 경험은 어려운 상황에서 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고, 젊은 선수들에게도 귀감이 되었다고 봅니다.

개개인의 능력만으로 수비를 하기에는 공격 전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언제나 수동적인 입장일 수 밖에 없는 수비 전술은 그 발전 속도가 공격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의 공격 전술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머리를 가진 선수가 필요하고 그 선수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자신은 물론 동료들로 하여금 수행할 수 있게끔 해야줘야 합니다. 감독이 아무리 뛰어나도 필드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죠. 경기가 시작되면 감독은 제 3자가 되어버립니다. 필드 위의 선수들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거죠.

PSV 시절 히딩크는 필립 코쿠에 대해서 '필드 위에서 내 의지를 대신 실현해 주는 선수'라고 평가했습니다. 필드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언제나 적절하게 대처하면서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로 하여금 겉돌지 않게끔 하는 역할 말입니다. 칸나바로는 스스로는 그러한 상황에서 대응할 줄 알지만 동료들을 지휘하는 스킬이 부족했습니다. 물론 전성기의 칸나바로는 동료들을 지휘하기 앞서 자신이 수비를 해내왔기 때문에 그런 것이 불필요했겠습니다만...칸나바로가 발롱도르를 타고서도 자신에 비해 한없이 부족한 커리어를 가진 네스타에게 명성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리더쉽 말이죠.

레알 마드리드는 이에로 이 후로 리더쉽 있는 수비수를 갖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상대 공격수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수비수들이었죠. 그러한 수비는 결국 기량에서 밀려버리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감독이 수비라인을 올려라 라고 말한 것은 경기 시작 전이고 상황에 따라서 수비 라인을 내릴지 올릴지, 오프사이드 트랩을 구사할지 아니면 한 명이 뒤로 빠진 채 맨마킹을 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은 감독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독이 지시할 수도 없고 지시한다고 해도 이미 상황은 지나버린 후겠죠. 경기가 시작되면 감독은 필드 밖에 머무는 사람일 뿐이니까요. 그 상황에서 그러한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은 수비 라인의 리더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선수가 없다는게 안타깝네요.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블랑은 다른 수비수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다룬 선수 가운데 한 명입니다. 굳이 자신이 수비를 하지 않더라도 다른 수비수들을 적당한 위치에 배치하고 끊임없이 라인을 조절하며 상대 공격수의 숨통을 조여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 공격수에게 볼이 가게끔 유도하고 빠르게 협력 수비로 뺏어버릴 수 있는 조직력을 단 몇 초만에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그저 소리만 버럭버럭 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닌 정확한 타이밍, 정확한 위치, 정확한 배치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선수였다는거죠.

프랑스의 전설적인 '철의 포백'은 외계인이라 불리던 튀랑도, 참가할 수 있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리자라쥐도, 가장 이상적인 수비수라고 불렸던 드사이도 아닌 키만 멀대같이 큰 느려터지고 10미터 이상의 패스는 부정확하며 드리블의 '드'자도 모르는 블랑이 중심이었습니다.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진 선수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리더쉽과 명석한 두뇌로 말이죠. 사실 프랑스의 주장은 데샹이었습니다만, 데샹조차도 수비시에는 블랑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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