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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타페화요일 5시

신토불이

23년레알팬뚝배기 2009.03.22 19:42 조회 1,485

신토불이
우리것이 최고죠.

네 그렇습니다

오늘은 정말 뜬금없지만
국내 선수중에서 아쉽게 묻히거나
정말 지금 나왔으면, 하는 몇몇 추억의 올드 스타에 대한 조그마한 주절주절을 하고자 합니다.



1. 윤정환

전 부천(유공이라고도 하죠)감독이었던 니폼니쉬는 윤정환을 일컫어서 정말 환상적인 선수라고 했습니다. 당시 90년대중후반의 부천은 상당히 '탄력'있는 팀이었습니다. 마치 스페인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과거의 스페인처럼 결국 '골'을 넣지 못했고, '실점'을 하면서 리그에서 상위권에 지속적으로 랭크된 적은 없었으나, 윤정춘, 조셉, 김기동, 윤정환을 필두로 상당히 재미있는 미들의 움직임을 보여주었었죠. 그 덕에 지금도 부천 올드팬들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저 또한 어렸을때 부천 경기 보면서 K리그에 대한 환상을 꿈꿨고 지금은 조금 궤를 달리하지만 지금도 K리그의 가능성을 믿는 근거로 부천을 생각하기도 하죠.

여튼 그 축구의 중심은 윤정환이었습니다. 환상적인 패스와 아무렇지 않게 논스톱으로 전방으로 퉁퉁 올려대는 패스. 이원식, 최용수(나중엔 황선홍-최용수)밑에서 패스를 이어주고 미들의 라인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멋졌습니다.(당시 이제 막 초등학교 3-4학년때인, 어린 나이라서 축구는 전혀 몰랐죠. 지금 생각하니 그랬구나, 싶은거고.. 여튼 그때부터 제가 축구의 전술이나 움직임을 알았으면 제가 지금 히딩크지요 ㅋㅋㅋ)


윤정환은 지금 많이 회자되는 '패스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정말 빠른 드리블을 가진 선수입니다. 어찌보면 카카틱 하기도 했죠.(전 윤정환이랑 서정원을 오해했던적이 참 많았습니다. 둘 다 좀 야위게 생겨서는 멀리서 중계화면으로 잡아주면 잘 모르죠. 엄청 빠른 드리블을 하는데다가 당시 국대 선수들은 죄다 검은 머리뿐이라서..)

그런데 문제는 카카틱 하지만, 카카가 아니었기에 결국 반쪽짜리로 끝이 났습니다. 윤정환은 수비를 빗껴갈수 있으나, 젖히는 기술과 수비수와 차징하는 과정에서 볼 키핑 하는 능력이 정말 부족했습니다. 아, 적고 나니 .. 구티같네요. 드리블 기술이 나쁜건 아니지만 상대의 압박에 약한 모습.

그리고 결정적으로 윤정환은 환상적인 패스 타이밍을 가져가는데 상당히 능수능란했지만, 결정적으로 '패스루트의 다양화'가 없었던 선수였습니다. 항상 윤정환의 시야는 정면만을 응시했습니다.
결코 좌우를 넓게 가져가는 타입은 아니였죠. 그래서 윤정환을 추억함에 있어서 '논스톱 패스' '최용수와의 올림픽때 환상 호흡'만을 생각하지, 중원의 지배자, 라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았던 선수였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지단이 되기엔 조율능력이 아쉬웠고, 죠르카에프가 되기엔 득점력이 부족했으며, 피레스가 되기엔 세기에서 부족했던 미쿠드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2. 최용수

독수리슛 하나로 너무 까이는 최용수.
하지만 전성기엔 정말 완벽했습니다.

우즈벡, 이란 같이 피지컬적으로 우리 나라보다 앞서는 나라와 붙어도 절대 밀리지 않는 몸싸움과 제공권, 그리고 찬스만 나면 냅다 때려버리는 강슛. 거기다가 어시스트 능력까지 겸비.

진짜 완벽했습니다. 쉽게 지금으로 비유하면 이동국 발리슛에 조재진 헤딩에 정성훈 몸빵이라고 하고 싶네요. 하지만, 정말 아쉬웠던 것은 큰경기에서 매번 미끌어진것.
2002때 한골만 넣었어도 지금 그에 대한 대접은 지금보다 100배는 나아졌을 것입니다.



3. 김도훈

최용수, 황선홍이라는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와 같은 대열
그리고 밑에서 치고 오는 이동국과 김은중, 최철우
그리고 그 밑에 도사리는 조재진, 김동현, 정조국

언제 한번도 국대의 공격 첨병의 1순위로 꼽혔던 적은 없었습니다만, 그는 가장 '골'과 가까운 선수였습니다. 실제로 '득점력' 하나는 정말 한국 당대 최고라고 단언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축구에 필요한건 정통적으로 없는 플레이 메이커의 볼 배급을 도와줄 2선 플레이에도 능한 스트라이커였고, 이는 최용수, 황선홍, 이동국이 전부 나중에는 2선으로 내려와서 볼배급도 도와주는 스타일로 변하게 한 원인이였죠. 다만, 김도훈은 거기에 부응하지 못했기에 한번도 주역이 되지 못했구요.

하지만, 마시엘, 싸빅, 우르모브같은 당대 최고의 피지컬 보유자들과 비교했을때도 절대로 밀리지 않던 피지컬적인 강점과 골문앞에서는 항상 한골을 보장한다는 신태용 현 성남 일화 감독님의 말처럼, 그는 정말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중 한명이었습니다.

다만, 나온 시기가 너무 안 좋았죠. 한국 축구 스트라이커 열전 10명을 꼽으라면 항상 뽑히는 3명이 앞뒤로 분포해있었으니깐요. 하지만, 적어도 가장 '골냄새'를 잘 맡는 스트라이커 5손가락 안에는 뽑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 서동명

그가 제게로 다가온 첫 경기는 정말 센세이션이었습니다. 아마 95년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밤에 보면서 정말 잘 막는구나, 라고 생각했죠. 나중에 알고보니 95년 칼스버그컵 콜롬비아전이었다고 하는데, 그때 경기 본 분이 나중에 블로깅 한 글을 보니 가히 경악스럽더군요. 슈팅수 콜롬비아 : 21개 한국은 6개, 유효슈팅은 14-3개, 거의 반코트 게임이었는데 최용수의 골과 서동명의 미친듯한 선방으로 이긴 경기, 라고 하는데

여튼 서동명은 98년까지 계속 대표팀에 뽑히며 꾸준히 기회를 얻습니다. 같은 대학 무대 시절 남쪽에는 서동명, 북쪽에는 이운재라는 말로 대학 무대에서 거미손임을 자처하던 둘의 입지는 이운재가 김호의 간택을 받아서 94월드컵에 출장하게 되면서 조금씩 이운재가 앞서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차상광, 박철우, 김병지, 김종문 선수등이 A매치에서 계속 돌아가면서 주전으로 뛰는데, 이때 올림픽 레벨에선 서동명이 매경기를 미라클 세이빙으로 한국을 구해내며 주전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97년도 우즈벡전에서 그의 장신과 어울리지 않는 여러차례 크로스 캐칭 미스와 어이없는 펀칭이 이어지며, 그는 당시 주전 경쟁 구도였던 김병지의 성장과 함께 묻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전혀 국가대표팀과 깊은 인연을 맺지 못하고(물론 리그에서는 꾸준히 한몫을 해줬기에 히딩크, 코엘류때도 명단에 소집된적이 몇번 있었습니다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대로 은퇴해서 지금은 강원 FC 골키퍼 코치로 재직중입니다.


제가 봤던 혼자 막기 신공의 가장 최정점에 있는 선수입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이라서 많이 희석되고 포장되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90년대 중반의 서동명은 제가 좋아하는 황선홍, 김현석아저씨의 슛을 혼자서 다 막고 골문앞에 검은 유니폼을 입고 서면 가장 든든했던 골리중 한명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한국 축구 올드 플레이어중 누가 가장 기억에 안타까우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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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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