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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타페화요일 5시

팀전력 안정화와 골키퍼의 중요성

조용조용 2009.03.02 14:44 조회 1,959
지난 몇 라운드 동안 여러 팀의 경기, 특히 골키퍼들을 지켜보면서 느낀점을 적어봅니다.

골키퍼라는 포지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순발력, 반사 신경 등과 함께 판단력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0.000000000000000001초의 순간에 오른쪽으로 몸을 날릴 것인가, 왼쪽으로 날릴 것인가, 발을 뻗을까 아니면 손을 뻗을까, 1:1 상황에서 나갈 것이냐 골문을 지킬 것이냐, 이 모든게 판단력에 좌우됩니다. 물론 필드 플레이어에게도 판단력은 중요한 요소이지만 골키퍼의 판단은 바로 실점이나 선방이냐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겠죠. 그 눈깜박할 사이에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따져 볼 여유는 당연히 없을 것이고 수백분의 1초 사이에 본능에 따라 판단을 내리게 되는데, 이게 자신감과 큰 연관이 있죠.
 
한두 번 실수를 하고, 볼을 놓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0.000000001초 사이에 오른쪽? 왼쪽? 머뭇거리게 되고, 그 순간 그냥 골은 골대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골키퍼가 자신감을 잃고 폼이 떨어지고 나면 다른 포지션보다 폼회복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무조건 선발에서 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고, 왠만큼 삽질하거나 부상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주전 골키퍼는 그냥 계속 출전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경기 삽펐다고 바로 세컨 골리를 내보내는건 양날의 검과 같기 때문입니다. 주전 골키퍼의 경쟁심에 불을 붙혀 바로 폼 회복으로 이어질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자신감을 완전히 잃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거든요. 물론 유럽 유수의 클럽에서 뛰는 주전 골키퍼라면 그정도 어려움을 극복할 멘탈은 대부분 가지고 있다고 보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게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죠. 

이케르도 리그 초반에 매우 부진했죠. 물론 삽질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분명 월클 골키퍼가 보여줄 실력은 아니었습니다. 해외팬들이 혈관 안에 얼음이 흐른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의 멘탈을 가진 이케르지만 천하의 이케르조차 폼 회복이 어려웠습니다. (솔직히 이케르 냉정한거에 비하면 부폰은 구수한 편;;; 그래도 인간적이죠. 이케르는 솔직히 좀 징그러움 ㄷㄷ) 헤타페전 보러 갔을 때 손 한 번 제대로 뻗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골먹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케르를 보고 얼마나 속이 상했던지 ㅠㅠ

그래서 골키퍼가 폼을 회복하려면 어떤 '드라마틱한 계기'가 필요합니다. 결정적인 PK를 하나 막아낸다던가, 어느 한 경기에서 미친 선방을 해내거나, 아니면 월드컵 준결승 정도로 엄청나게 중요한 경기에 나선다거나. (이건 골게터가 이적 후 일단 마수걸이 골을 터뜨려야 그 다음부터는 술술 골이 잘 터지는 원리와 같다고 할 수 있겠죠.) 이케르는 '엘 클라시코'에 서면서 부진을 극복해냈습니다. 엘 클라시코라는 중요한 경기에 임하면서 부상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벼랑끝에 선 팀에게 자신마저 부진함을 보일 수 없다는 의지 하나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비록 지기는 했지만) 그 경기를 계기로 완전히 폼을 회복했습니다. 그 후에는 다들 아시는 바처럼 수비의 안정화와 함께 최소 실점을 기록중이죠. 

골키퍼의 폼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인 것 같아요. 수비수 한 명이 정줄을 놓으면 수비진 전체가 흔들리고, 미들 한 명이 정줄을 놓으면 미들 자체가 흔들립니다. 공격수 한 명이 정줄을 놓으면 뭐;;; 헛발질이나 홈런이 나오겠죠. 하지만 골키퍼가 정줄을 놓으면 최전방 공격수부터 최후방 센터백까지 다른 10명의 선수가 모두 흔들립니다.

수비수는 골키퍼를 믿을 수 없으니까 내가 실수하면 그냥 골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므로 조바심내고 불안한 상태에서 허둥대는 수비가 나올 수밖에 없죠. 그걸 지켜보는 미들도 불안해지게 되니 부정확한 패스가 나오게 되며 앞으로 볼 공급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공격수는 짜증이 나니까 자꾸 무리한 개인 돌파나 말도 안되는 슛팅을 때리게 되므로 팀 전체가 삐걱이게 되는거죠. 반면 골키퍼가 최후방에 든든히 버티고 있다면 설령 수비수들이 좀 정줄을 놓더라도 미들, 더 나아가서 공격수까지 함께 흔들리는 것은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라모스 부임 이후 극도로 실점이 줄어든 것은 물론 감독이 라쓰의 영입 및 미들의 수비 가담 등 수비 안정화에 최우선적으로 신경쓴 탓도 있겠지만 전반기에 비해 이케르의 폼이 급상승하면서 수비수들, 나아가서 미들 이상까지 필드에서 뛰는 대부분의 선수의 뇌리에 '최후방에는 믿을 수 있는 골키퍼가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새겨지게 된 것도 일부 작용했다고 봅니다. 

오늘 치뤄진 AT-바르셀로나전도 그런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발데스가 과연 지난주 카탈란 더비의 슈퍼 삽질(a.k.a 데라페냐 일촌신청)을 극복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냐? 물론 오늘 경기에서는 지난주처럼 발데스의 결정적인 실책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었고 네 골 모두 AT 공격수들이 잘 차기는 했지만 아주 찰나의 순간에 머뭇거리는 모습이 보였고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 보이더군요. PK 장면에서도 포를란이 공을 차기 전에 잠시 멈칫했고 방향을 맞게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0.000001초 늦게 점프하는 바람에 공이 지나간 후에 손을 뻗고 말았죠. 원래부터 발쪽으로 오는 공에는 약점이 있었지만 AT전에서도 여지없이 쿤에게 그쪽으로 결승골을 먹었구요. 발데스가 흔들리면 수비진도 흔들립니다. 그 앞도 마찬가지죠. 결과적으로 쿤에게 오늘 유효슛팅만 7-8개를 허용하며 역전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AT 수비진도 잘한건 없지만;;;) 

주중 경기부터 바르셀로나는 일단 발데스의 자신감 회복이 급선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쿠레가 아닌 저로서는 바르셀로나가 발데스에게 보여주는 무한 신뢰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마드리드 팬으로서 그저 발데스는 영원히 바르셀로나의 골문을 지켜주길 바랄 뿐이죠. 제 생각에는 골키퍼가 아무리 슈퍼 세이브 몇 개로 실점을 몇 번 막는다해도 강력한 슈퍼울트라 삽질 하나로 팀 전원(+팬들)을 기막히고 코막히게 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보지만(골키퍼의 실수는 단순히 실점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가지니까요), 뭐 제가 응원하는 팀이 아니니 감놔라배놔라할 건 없겠죠;; 어쨌든 이번 라운드로 팔럽-발데스-이케르의 사모라 경쟁도 본격 불이 붙은 느낌이니 앞으로 더욱 흥미진진한 라리가가 될 것 같습니다.

P.S. 여담이지만 제 생각에 발데스는 본인을 위해서도 국대는 안뽑히는게 좋을거 같음. 안그래도 다혈질인 스페인 사람들인데 월드컵 가서 팀 동료라고 메시에게 1촌패스하면 신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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