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 독재와 레알 마드리드
본 글은 제가 석달 전부터 구상하고 조금씩 쓰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 이야기'의 한 부분입니다. 분량으로 따지자면 전체 분량의 2%정도인 짤막한 글이구요. 원래는 제가 쓰던 글을 모두 썼을때 함께 올리려고 했습니다만 이 주제는 레알을 처음 좋아하시게 된 많은 분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 올려봅니다. 제가 원래 역사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쓴 글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예전에 라키님 덕분에 이 글에 관한 많은 사실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으실겁니다. 또한 이렇게 빨리 올리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번 더 올리는 것은 그 만큼 강조하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거니와, 결과로만 알았던 사실의 과정또한 짚어보고자 올려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은 글입니다. 딱딱한 주제라서 그다지 재미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주위에서 아무런 근거없이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는 독재자의 앞잡이였다.'라고 비난하는 말을 들었을때, 이 글에서 되짚어본 지식으로 여러분들이 그것은 아니라고 반론할 수만 있다면, 저는 더할나위 없이 기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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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프랑코와 레알 마드리드.
정치를 하는 목적은 공공의 이익과 번영이다. 이러한 정치가 원활하게 돌아가야 국가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이것은 공공의 이익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이러한 정치의 영역에서 모든 국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은 정책 수립의 효율성에 있어서 확실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인정하기 싫은 것이 사실이지만, 전체의 참여보다는 소수의 참여가 더욱더 효율적이며 신속한 결정을 내릴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상을 따지고 든다면 전체의 참여가 더욱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이것은 간단히 말할수 있는 것이 아닌듯 싶다.
정치가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대중을 지배한다.
첫째, 대중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방법.
둘째, 대중을 정치에서 멀리두는 방법.
대중을 정치에 참여시킨다는 것은 선거권을 준다는 뜻이다. 정책 수립에 있어서 - 현재의 민주사회 조차도- 모든 국민들의 의사를 듣고 반영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들을 대표할 정치가에게 투표할 권리를 준다. 이는 자신을 대신하는 자에게 투표함으로써 국민들 개인이 가진 정치적 욕망을 대리 만족하고 개인의 원해는 정책을 실현하길 바라는데에 그 본질적인 목적이 있다. 그러나 흔히 현대 사회의 민주정치가 아닌, 본래의 민주정치의 실현이란 완벽하게 실행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으며, 이것을 해결할수 있는 것은 선견지명을 가지고 교묘한 정치 싸움을 할수 있는 페리클레스와 같은 지도자 뿐이었다.
다음은 전혀 다른 내용인데 주로 전제왕권, 즉 독재자가 사용하는 방법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는 방법- 이다. 우리가 예상할수 있듯이, 정치에서 멀어지게 함이란 대중을 우매화한다는 것과 동의어다. 상식적으로 프랑코는 독재자였기에 대중에서 정치 참여권을 줄 수 없었다. 그것은 곧바로 자신의 독재를 부정하는 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정치의 역학 관계를 그는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대사의 독재자들 뿐만이 아니라, 고대 사회부터 보여주던 정치가들의 '대중의 우매화' 정책에도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째, 공포와 잔혹성을 조성하는 전쟁.
둘째, 기쁨과 쾌락을 조성하는 축제.
무력으로 스페인을 장악한 프랑코는 스페인 국민들이 정치에서 멀어지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앞서 그가 독재자가 되기까지 공포와 잔혹성의 전쟁 -내전과 혼란기- 을 조성하고 세계 2차대전이라는 외부적인 요소가 있었다. 이 단계에서 그는 스페인 국민들의 이성을 빼앗았으며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안정을 위시한 정책을 펼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공포가 엄습한 인간에게 그 공포를 지나치게 강요하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동요하게 되고, 이러한 대중의 특성을 꿰뚫고 있던 프랑코는 그들이 정치에서 멀어지게 할 또다른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고심에 찬 그의 시선이 스페인 사회 여러 요소를 향해 움직이던중, 그 눈동자는 어느 한곳에 머물게 되었다. 바로 축구였다.
축구는 여타 스포츠와는 다른 구석이 있다. 경기내내 뛰어다녀야 하며, 거칠고, 공격적이다. 이러한 축구만의 특성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전쟁의 요소인데, 이 운동장에서의 작은 전쟁은 인간의 잔혹성과 공격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 승리한 팀과 그 팬들에게는 무한한 기쁨과 쾌락을 준다. 단지 축제로서의 요소가 아닌 전쟁과 축제라는 요소를 함께 머금고 있는 스포츠가 바로 축구인 셈이다. 즉 프랑코에게는 축구가 분열된 스페인 국민성을 더욱더 분열시키는 동시에 각자의 기쁨을 그것에서 얻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쯤되면 축구는 감정의 자급자족을 선양한다고 말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프랑코가 원했던 '축구가 가진 역할'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 프랑코는 스페인 국민들의 정치 욕망을 축구에 주입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의도는 성공적이었고 우리가 보는 스페인 리그의 특성은 그가 완성시켰다는것을 우리는 부정할수 없다. 가령 프랑코가 행한 만행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바스크 지방이나 (물론 바스크는 끝까지 저항한 지방이다.) 카탈루냐 지방의 축구 문화는 세계 어느 팀보다도 거칠고 맹목적이며, 그만큼 열정적이다. 이는 프랑코 시대부터 자신들의 지역적 정치 욕망을 그들이 서포트하는 클럽에 주입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프랑코 독재 정권 시대에서 마찬가지였다. 바르셀로나의 팬들은 그들의 클럽이 레알 마드리드를 이기면 마치 프랑코에게서 벗어난 마냥 좋아했고, 이 기쁨은 그들의 지친 생활에 청량제이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바르셀로나의 팬들이 프랑코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거에 씁쓸한 감정을 앞선다. 하지만 그들이 그들의 정신력만이라도 독재자를 이기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클럽의 여부와 관계없이 한 인간으로서, 그들을 존경스럽게 만드는 부분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프랑코가 어떻게 축구 정책을 폈는지는 그 결과가 아닌 그 과정을 차근차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정책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는 평소에 독재자 클럽이라는 오명을 듣는 레알 마드리드를 변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사실에 근거하여, 상식적인 생각내에서 사실대로 서술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클럽의 역사에 관해서 제대로 바라봐야만 현재의 레알 마드리드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수 있고 앞으로의 방향또한 제시할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클럽이니깐 가능한 말이지만...
스페인을 자신의 손아귀에 거머쥔 프랑코는 마드리드에 그 거처를 마련했다. 그가 있는 마드리드는 프랑코라는 독재자를 대변하는 도시였고 스페인 전반적인 정책또한 마드리드에서 결정되었다. 그는 정책에 있어서도 친 마드리드라는 정책을 내세웠고, 이는 타 지방 사람들 -특히 바스크와 카탈루냐 지방- 의 모든 시선을 '도시 마드리드'로 쏠리기 시작했다. 프랑코가 독재를 시작한 후, 스페인 축구는 대대적인 변화, 강자와 약자가 나뉘는 변화를 겪게 된다. (물론 이것의 이유에서 그 크기가 거대해져버린 자본주의의 영향이 컸다.)
독재자는 저항세력의 이목과 정치적 욕망을 축구에 주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대변하는 것 처럼 보이는 클럽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했고, 이는 레알 마드리드의 이미지에 자신의 이미지를 덧칠하기 시작한다. 저항 세력이 잔존하는 지방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경기를 하면 그들은 선수들에게 끝없는 야유를 보냈고 그것은 클럽에 대한 야유라기 보다는 프랑코에 대한 야유라고 하는 것이 맞을 법 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는 그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감수해야만 하는 의무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프랑코는 축구의 결과에 대해서는 철저히 스포츠적인 관점을 지켰다. 간단하게 생각한다면 레알 마드리드가 모든 경기에서 이겼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프랑코는 그렇게 간단한 인사가 아니었다. 경기 자체는 공평하게 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비난과 분노를 축구장에 쏟아내게 했다. 상식적으로 경기 자체를 레알 마드리드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저항세력이 잔존하는 지방 사람들의 마지막 탈출구가 바로 축구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서 축구를 빼앗는 것은 어린 아이에게서 마지막 장난감을 빼았는 것과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코는 철저하게 스포츠는 스포츠적인 관점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가 늘 패배하는 팀이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프랑코의 절대적인 패배를 암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레알 마드리드만큼은 이길때도 있고 질때도 있는 -절대적이진 않으나-, 강력한 팀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위의 통계는 재밌는 사실을 알려준다. 흔히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스페인 리그의 양강 체제는 리그 초창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차근차근 보다보면 1위자리가 절대적으로 유지되는 일은 없고 업치락 뒤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1932-33시즌부터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하기 바로 전 시즌인 1952-53 시즌인 것이다. 참고로 1928-29 시즌부터 1931-32 시즌까지는 빌바오와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가 각각 2회,1회, 1회씩 우승을 차지했다.
1936년부터 1940년도까지 스페인은 온갖 내란으로 혼란한 상태였다. 그리고 프랑코가 스페인 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실세를 잡기 시작한 때는 1938년부터였고 우리는 이 다음부터의 우승 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면 알 수 있듯이 프랑코 정권 1938년부터 1953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은 단 한번도 없었다. 시간이 지난 후, 1954년도에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그 우승에는 알프레도 디 스페파노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외의 사실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프랑코가 레알 마드리드에게 많은 지원을 시작하기까지에는 스페인 내부의 문제때문에 생긴 상황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레알 마드리드가 다시 우승하기까지, 전 세계는 경제 공황으로 생긴 상처에 신음을 앓고 있었으며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적인 사건 또한 있었다. 이 시기 - 전쟁과 가난으로 전 세계의 국민들이 이성을 잃었던 시기- 는 프랑코는 자신의 의도대로 스페인 국민들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1950년대부터 좀 더 한 차원 높은 방법으로 장악하기 시작하는데, 그 방법 중에 하나가 축구라는 것이었다.
즉 레알 마드리드가 프랑코의 앞잡이라는 오명을 듣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이후부터였다. 또한 1933년부터부터 1950년대가 될때까지 레알의 우승이 없었다는 것은 그 당시의 마드리드 시민들이 축구에 관한 열정이 지금과 같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물론 1940년대 후반부터는 좀 더 열성적으로 된다.) 만약 지금만큼 열성적인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 그 당시에도 있었다면 프랑코가 무슨 수라도 썼을 것이라는게 나의 짧은 생각이다. 독재자라면 주위의 기반부터 탄탄히 만들어가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권한을 굳건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시대는 프랑코의 경기 내적인 관여 덕분이 아닌,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해볼 필요가 있다.
1947년 마드리드의 새로운 경기장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경기장에 관중을 불러들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였다.
예전에 라키님 덕분에 이 글에 관한 많은 사실들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으실겁니다. 또한 이렇게 빨리 올리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번 더 올리는 것은 그 만큼 강조하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거니와, 결과로만 알았던 사실의 과정또한 짚어보고자 올려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고쳐야 할 부분이 많은 글입니다. 딱딱한 주제라서 그다지 재미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주위에서 아무런 근거없이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는 독재자의 앞잡이였다.'라고 비난하는 말을 들었을때, 이 글에서 되짚어본 지식으로 여러분들이 그것은 아니라고 반론할 수만 있다면, 저는 더할나위 없이 기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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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프랑코와 레알 마드리드.
정치를 하는 목적은 공공의 이익과 번영이다. 이러한 정치가 원활하게 돌아가야 국가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이것은 공공의 이익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이러한 정치의 영역에서 모든 국민들이 참여하는 방식은 정책 수립의 효율성에 있어서 확실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인정하기 싫은 것이 사실이지만, 전체의 참여보다는 소수의 참여가 더욱더 효율적이며 신속한 결정을 내릴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상을 따지고 든다면 전체의 참여가 더욱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이것은 간단히 말할수 있는 것이 아닌듯 싶다.
정치가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대중을 지배한다.
첫째, 대중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방법.
둘째, 대중을 정치에서 멀리두는 방법.
대중을 정치에 참여시킨다는 것은 선거권을 준다는 뜻이다. 정책 수립에 있어서 - 현재의 민주사회 조차도- 모든 국민들의 의사를 듣고 반영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들을 대표할 정치가에게 투표할 권리를 준다. 이는 자신을 대신하는 자에게 투표함으로써 국민들 개인이 가진 정치적 욕망을 대리 만족하고 개인의 원해는 정책을 실현하길 바라는데에 그 본질적인 목적이 있다. 그러나 흔히 현대 사회의 민주정치가 아닌, 본래의 민주정치의 실현이란 완벽하게 실행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으며, 이것을 해결할수 있는 것은 선견지명을 가지고 교묘한 정치 싸움을 할수 있는 페리클레스와 같은 지도자 뿐이었다.
다음은 전혀 다른 내용인데 주로 전제왕권, 즉 독재자가 사용하는 방법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는 방법- 이다. 우리가 예상할수 있듯이, 정치에서 멀어지게 함이란 대중을 우매화한다는 것과 동의어다. 상식적으로 프랑코는 독재자였기에 대중에서 정치 참여권을 줄 수 없었다. 그것은 곧바로 자신의 독재를 부정하는 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정치의 역학 관계를 그는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대사의 독재자들 뿐만이 아니라, 고대 사회부터 보여주던 정치가들의 '대중의 우매화' 정책에도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째, 공포와 잔혹성을 조성하는 전쟁.
둘째, 기쁨과 쾌락을 조성하는 축제.
무력으로 스페인을 장악한 프랑코는 스페인 국민들이 정치에서 멀어지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앞서 그가 독재자가 되기까지 공포와 잔혹성의 전쟁 -내전과 혼란기- 을 조성하고 세계 2차대전이라는 외부적인 요소가 있었다. 이 단계에서 그는 스페인 국민들의 이성을 빼앗았으며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안정을 위시한 정책을 펼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공포가 엄습한 인간에게 그 공포를 지나치게 강요하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동요하게 되고, 이러한 대중의 특성을 꿰뚫고 있던 프랑코는 그들이 정치에서 멀어지게 할 또다른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고심에 찬 그의 시선이 스페인 사회 여러 요소를 향해 움직이던중, 그 눈동자는 어느 한곳에 머물게 되었다. 바로 축구였다.
축구는 여타 스포츠와는 다른 구석이 있다. 경기내내 뛰어다녀야 하며, 거칠고, 공격적이다. 이러한 축구만의 특성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전쟁의 요소인데, 이 운동장에서의 작은 전쟁은 인간의 잔혹성과 공격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 승리한 팀과 그 팬들에게는 무한한 기쁨과 쾌락을 준다. 단지 축제로서의 요소가 아닌 전쟁과 축제라는 요소를 함께 머금고 있는 스포츠가 바로 축구인 셈이다. 즉 프랑코에게는 축구가 분열된 스페인 국민성을 더욱더 분열시키는 동시에 각자의 기쁨을 그것에서 얻을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쯤되면 축구는 감정의 자급자족을 선양한다고 말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프랑코가 원했던 '축구가 가진 역할'의 모든 것은 아니었다. 프랑코는 스페인 국민들의 정치 욕망을 축구에 주입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의도는 성공적이었고 우리가 보는 스페인 리그의 특성은 그가 완성시켰다는것을 우리는 부정할수 없다. 가령 프랑코가 행한 만행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바스크 지방이나 (물론 바스크는 끝까지 저항한 지방이다.) 카탈루냐 지방의 축구 문화는 세계 어느 팀보다도 거칠고 맹목적이며, 그만큼 열정적이다. 이는 프랑코 시대부터 자신들의 지역적 정치 욕망을 그들이 서포트하는 클럽에 주입시켰기 때문이다.
이는 프랑코 독재 정권 시대에서 마찬가지였다. 바르셀로나의 팬들은 그들의 클럽이 레알 마드리드를 이기면 마치 프랑코에게서 벗어난 마냥 좋아했고, 이 기쁨은 그들의 지친 생활에 청량제이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바르셀로나의 팬들이 프랑코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거에 씁쓸한 감정을 앞선다. 하지만 그들이 그들의 정신력만이라도 독재자를 이기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클럽의 여부와 관계없이 한 인간으로서, 그들을 존경스럽게 만드는 부분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프랑코가 어떻게 축구 정책을 폈는지는 그 결과가 아닌 그 과정을 차근차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정책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는 평소에 독재자 클럽이라는 오명을 듣는 레알 마드리드를 변호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사실에 근거하여, 상식적인 생각내에서 사실대로 서술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클럽의 역사에 관해서 제대로 바라봐야만 현재의 레알 마드리드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수 있고 앞으로의 방향또한 제시할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클럽이니깐 가능한 말이지만...
스페인을 자신의 손아귀에 거머쥔 프랑코는 마드리드에 그 거처를 마련했다. 그가 있는 마드리드는 프랑코라는 독재자를 대변하는 도시였고 스페인 전반적인 정책또한 마드리드에서 결정되었다. 그는 정책에 있어서도 친 마드리드라는 정책을 내세웠고, 이는 타 지방 사람들 -특히 바스크와 카탈루냐 지방- 의 모든 시선을 '도시 마드리드'로 쏠리기 시작했다. 프랑코가 독재를 시작한 후, 스페인 축구는 대대적인 변화, 강자와 약자가 나뉘는 변화를 겪게 된다. (물론 이것의 이유에서 그 크기가 거대해져버린 자본주의의 영향이 컸다.)
독재자는 저항세력의 이목과 정치적 욕망을 축구에 주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대변하는 것 처럼 보이는 클럽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했고, 이는 레알 마드리드의 이미지에 자신의 이미지를 덧칠하기 시작한다. 저항 세력이 잔존하는 지방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경기를 하면 그들은 선수들에게 끝없는 야유를 보냈고 그것은 클럽에 대한 야유라기 보다는 프랑코에 대한 야유라고 하는 것이 맞을 법 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는 그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감수해야만 하는 의무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프랑코는 축구의 결과에 대해서는 철저히 스포츠적인 관점을 지켰다. 간단하게 생각한다면 레알 마드리드가 모든 경기에서 이겼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프랑코는 그렇게 간단한 인사가 아니었다. 경기 자체는 공평하게 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비난과 분노를 축구장에 쏟아내게 했다. 상식적으로 경기 자체를 레알 마드리드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저항세력이 잔존하는 지방 사람들의 마지막 탈출구가 바로 축구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서 축구를 빼앗는 것은 어린 아이에게서 마지막 장난감을 빼았는 것과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코는 철저하게 스포츠는 스포츠적인 관점을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가 늘 패배하는 팀이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프랑코의 절대적인 패배를 암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레알 마드리드만큼은 이길때도 있고 질때도 있는 -절대적이진 않으나-, 강력한 팀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 연도 | 1위 | 2위 | 3위 |
| 1953-54 | 레알 마드리드 | 바르셀로나 | 발렌시아 |
| 1952-53 | 바르셀로나 | 발렌시아 | 레알 마드리드 |
| 1951-52 | 바르셀로나 | At.빌바오 | 레알 마드리드 |
| 1950-51 | At.마드리드 | 세비야 | 발렌시아 |
| 1949-50 | At.마드리드 | 데포르티보 | 발렌시아 |
| 1948-49 | 바르셀로나 | 발렌시아 | 레알 마드리드 |
| 1947-48 | 바르셀로나 | 발렌시아 | At.마드리드 |
| 1946-47 | 발렌시아 | At.빌바오 | At.마드리드 |
| 1945-46 | 세비야 | 바르셀로나 | At.빌바오 |
| 1944-45 | 바르셀로나 | 레알 마드리드 | At.마드리드 |
| 1943-44 | 발렌시아 | At.마드리드 | 세비야 |
| 1942-43 | At.빌바오 | 세비야 | 바르셀로나 |
| 1941-42 | 발렌시아 | 레알 마드리드 | At.마드리드 |
| 1940-41 | At.마드리드 | At.빌바오 | 발렌시아 |
| 1939-40 | At.마드리드 | 세비야 | At.빌바오 |
| 1935-36 | At.빌바오 | 레알 마드리드 | 오비에도 |
| 1934-35 | 레알 베티스 | 레알 마드리드 | 오비에도 |
| 1933-34 | At.빌바오 | 레알 마드리드 | 라싱 |
| 1932-33 | 레알 마드리드 | At.빌바오 | 에스파뇰 |
위의 통계는 재밌는 사실을 알려준다. 흔히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스페인 리그의 양강 체제는 리그 초창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차근차근 보다보면 1위자리가 절대적으로 유지되는 일은 없고 업치락 뒤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1932-33시즌부터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하기 바로 전 시즌인 1952-53 시즌인 것이다. 참고로 1928-29 시즌부터 1931-32 시즌까지는 빌바오와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가 각각 2회,1회, 1회씩 우승을 차지했다.
1936년부터 1940년도까지 스페인은 온갖 내란으로 혼란한 상태였다. 그리고 프랑코가 스페인 내전을 승리로 이끌고 실세를 잡기 시작한 때는 1938년부터였고 우리는 이 다음부터의 우승 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면 알 수 있듯이 프랑코 정권 1938년부터 1953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은 단 한번도 없었다. 시간이 지난 후, 1954년도에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그 우승에는 알프레도 디 스페파노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외의 사실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프랑코가 레알 마드리드에게 많은 지원을 시작하기까지에는 스페인 내부의 문제때문에 생긴 상황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레알 마드리드가 다시 우승하기까지, 전 세계는 경제 공황으로 생긴 상처에 신음을 앓고 있었으며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적인 사건 또한 있었다. 이 시기 - 전쟁과 가난으로 전 세계의 국민들이 이성을 잃었던 시기- 는 프랑코는 자신의 의도대로 스페인 국민들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1950년대부터 좀 더 한 차원 높은 방법으로 장악하기 시작하는데, 그 방법 중에 하나가 축구라는 것이었다.
즉 레알 마드리드가 프랑코의 앞잡이라는 오명을 듣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이후부터였다. 또한 1933년부터부터 1950년대가 될때까지 레알의 우승이 없었다는 것은 그 당시의 마드리드 시민들이 축구에 관한 열정이 지금과 같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물론 1940년대 후반부터는 좀 더 열성적으로 된다.) 만약 지금만큼 열성적인 레알 마드리드 팬들이 그 당시에도 있었다면 프랑코가 무슨 수라도 썼을 것이라는게 나의 짧은 생각이다. 독재자라면 주위의 기반부터 탄탄히 만들어가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권한을 굳건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레알 마드리드의 전성시대는 프랑코의 경기 내적인 관여 덕분이 아닌,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해볼 필요가 있다.
1947년 마드리드의 새로운 경기장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경기장에 관중을 불러들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였다.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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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 200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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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latan In Bernabeu 2008.11.26궁금해하던 주제였는데 이렇게 알게 되는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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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brother 2008.11.26오~~원츄 . 기대하겠습니다.
계속 써주세요.. -
San Iker 2008.11.26이게 2%라니... 다음 글들을 기대하게끔 만드시네요 ㅎㅎ
ㅊㅊ -
타키나르디 2008.11.26말이 필요없죠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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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 200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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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renthe 2008.11.26춫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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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키 2008.11.27잘 정리 해 주셨네요. ^^ 다음 글들도 기대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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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딘 2008.11.27기대하겠습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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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_rRaVIEW27 2008.11.27ㅋㅋㅋ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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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펜딩챔피언 2008.11.27진짜 무한료쿄교가 생겨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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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directory_arrow_right 쌀허세InOldTraford 2008.11.27@디펜딩챔피언 본격 무한캡라교 소환댓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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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2008.11.272%라면 50개가 더 올라오나요? ㅋ
다음글이 기다려지네요^^ -
Higuaín 2008.11.27잘읽을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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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허세InOldTraford 2008.11.27이거 포럼으로 가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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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랍구티 2008.11.272%의 내용이라니.. 너무 좋은글 감사해요. 포럼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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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2008.11.28마지막세줄 소름끼침 ..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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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_rRaVIEW27 2008.12.01마지막 세줄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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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2008.12.01많은걸 알고 가네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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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니형 2008.12.03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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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ker 2008.12.03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