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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돈도의 은퇴 시점을 즈음하여...

피오호 2007.11.21 07:50 조회 2,198
레돈도가 은퇴한지도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군요. 언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갔는지...


페르난도 레돈도 (Fernando Redondo). 아르헨티나. 수비형 미드필더. 186cm.

1969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유복한 가정에서 출생한 레돈도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고, 예체능쪽에 재능이 많았다. 특히나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부모는 그가 미대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1978년 아르헨티나에서 열렸던 월드컵을 지켜보면서 축구선수가 되기로 다짐했고 아르헨티안이라는 클럽의 유스팀에 입단 15세의 나이로 힘나시아戰에 출장하면서 또 하나의 10대 천재의 출현을 알렸다.

아르헨티나 리그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많은 클럽들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게 되었고 1990년 당시만해도 프리메라 리가의 중상위권 클럽이었던 테네리페로 이적, 서서히 적응을 시작하며 테네리페에서 뺄 수 없는 핵심 선수로 성장했다. 1992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과 93-94시즌 유벤투스와의 UEFA컵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월드컵 국가대표에 승선했다. 마라도나의 강제 추방, 카니쟈의 잠적 등으로 어수선한 상태에서 4경기 모두 출장.

월드컵이 끝나고 많은 이탈리아 클럽들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94-95시즌 레알 마드리드는 4년간의 바르셀로나 전성시대의 종지부를 찍으면서 리가 타이틀 차지했으며 여기에 레돈도의 활약은 가히 절대적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하지만 본인은 한적한 휴양지 카나리아 제도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서인지 대도시 마드리드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95-96시즌 치명적인 무릎 부상. 그의 부상 기간동안 마드리드는 여러 경기에서 중원을 내주며 이겼어야 하는 경기에서 승점을 쌓는데 실패를 거듭하며 결국 아틀레티코가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레돈도의 공백을 메꾸지 못한 채, 유벤투스에게 패해 탈락.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돈도는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 수상.

96-97시즌 카펠로 감독의 지휘 아래 다시금 리가 타이틀 회복. 이미 94년 카펠로가 감독으로 재직하던 당시 레돈도에게 오퍼를 했던 AC밀란이 천문학적인 금액의 오퍼. 실제로 당시 마드리드의 프런트에서는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레돈도를 이적시킬 생각이 있었으나 레돈도 본인의 거부로 인해 무산.

97-98시즌 챔피언스 리그 우승.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파사레야의 단발령에 반발하여 국가대표 은퇴. 레돈도 본인은 이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있으나 마라도나는 물론 그의 은퇴로 인해 반사이익을 받게 된 시메오네마저도 그의 은퇴를 아쉬워했다.

99-00시즌 또 한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10골로 득점왕에 올랐던 라울을 제치고 챔피언스 리그 MVP 수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戰의 매직 드리블은 여전히 화제거리.

2000년 여름. 페레스는 재정난 타개를 위한 일환으로 AC 밀란의 오퍼 승인. 당시 감독이었던 델보스케와 이에로, 그리고 라울등이 직접 페레스를 찾아가 방출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으며, 각 스페인 미디어에서는 페레스의 결정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었고 설문 조사 결과 무려 89%의 참여자가 레돈도 방출을 반대했다. 페레스의 사무실 앞에서는 연일 시위가 이어졌으며 페레스의 승용차에 대한 테러까지도 발생, 레돈도는 10여일간 잠적하며 밀란行을 원치 않는 자신의 의지를 보였으나 페레스는 결정을 철회하지 않았다. 레돈도의 아버지의 설득으로 결국 밀란行 비행기를 탑승했고, 그가 밀란行 비행기를 타던 날, 비가 내렸던 바라하스 공항에는 수많은 팬들이 운집하여 그를 배웅했다.

밀란 이적 그 이후...

당시 AC 밀란은 오렌지 3총사의 빈 자리를 메꾸지 못한 채, 유벤투스를 비롯하여 강력한 전력을 구축하면서 남 이탈리아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던 AS로마와 SS라치오에 대항하지 못하며 자존심을 구기고 있었다. 베를루스코니와 갈리아니는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루이 코스타와 레돈도를 영입하여 전환을 꾀했으나 레돈도가 또다시 치명적인 무릎 부상을 당했고, 갈리아니 부총재가 직접 찾아와 그의 복귀를 염원했으나 복귀 이후에도 끊임없는 재발과 잔부상으로 결국 2004년 11월 은퇴를 결심하게 된다.

'뛸 수 없는 선수는 선수가 아니다' - 이탈리아 언론과의 인터뷰 中

레돈도는 부상이 장기화되자 인터뷰를 통해 부상기간에 해당하는 주급을 반납했고 복귀 전까지 주급을 받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 밀라노에서 회복의 진전이 보이지 않자 그는 스스로 제 2의 고향이라 말하는 마드리드로 건너가 자비로 치료를 받을 정도로 마드리드에 대한 사랑과 프로로서의 자긍심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와 AC밀란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

경기 시작 전, 베르나베우의 전광판에 라울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던 레돈도의 모습이 비치자 베르나베우에 모여있던 마드리드의 팬들, 그리고 AC밀란의 원정팬들까지도 모두 기립박수를 치면서 레돈도를 연호했고, 레돈도는 눈물을 흘리며 그들에게 답례를 했다고 한다.

'Don Redondo'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레돈도의 별명은 '황태자'다. 잘생긴 외모에 훤칠한 키, 우아하고 세련된 플레이는 물론이거니와 주장으로서의 리더십까지 갖춘 그에게 걸맞는 별명일 것이다. 이 외에도 스페인의 팬들과 미디어들은 레돈도를 부를 때, '황태자'라는 별명 외에도 'Don Redondo'라는 호칭으로 불렀는데 영어식으로 표기하자면 'Sir Redondo'라고 할 수 있다.


앙굴로 & 가르시아의 칼럼 中

레돈도는 페레스에 의해 밀란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누구도 페레스를 지지하지 않는다. 89%라는 수치가 이것을 증명한다. 챔피언스 리그를 2번이나 안겨주었던 마드리드 최고의 선수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페레스는 지금 실수하고 있는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의 자긍심, 그리고 팬들의 마음은 절대 '현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에게 죄를 짓고 있다.



어쩌면 레알 마드리드는 레돈도를 잘 판 것일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레돈도는 4년간 제대로 경기를 뛴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 리그와 리가 우승을 계속 이뤄냈구요. 하지만 어쩌면 말이죠. 레돈도는 마드리드를 떠났기 때문에 더욱 잦은 부상에 시달렸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요.

개인적으로 가고 선수를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가장 좋아했던 미드필더였던 레돈도를 닮았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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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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