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과 현대의 축구경기장
작년에 아를(프랑스 발음은 뭔가 달랐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재밌다고 막 따라했는데ㅋㅋ)에 있는 원형경기장에서 bull show를 봤습니다. 이 show를 보면서 든 생각은 이것저것 많았지만.. 축구와 관련된 이야기만 하자면, 현대의 축구경기장은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계승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기장의 외형, 출연자(검투사/ 축구선수)의 퍼포먼스와 인기, 관중들의 열광- 이 모든 것을 말이죠.
그런데 저보다 앞서 이런 생각을 한 사람-움베르토 에코-가 있었다는 것을 한 책을 읽으며 알게되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는 에코가 쓴 책은 아니고, 축구에 대한 에코의 견해를 가지고 트리포나스라는 사람이 쓴 책입니다. 두께? 얇습니다. 재미? 저한테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 제가 흥미있게 읽은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 (해석체 말투때문에 잘 안읽혀서 읽기 좋게 수정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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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는 "원형경기장 분위기 때문에 대형경기장은 갇혀 있던 감정이 해방되도록 북돋는다"고 말하면서, 만약 우리가 그것이 어떤 윤리적 목적들에 활용되며 왜 그런지를 정확하게 안다면, 장점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p.34
축구를 원형경기장 놀이들, 그 중에서도 특히 로마 검투사들이 막시무스 원형경기장에서 벌이는 구경거리에 간접적으로 빗댐으로써, 에코는 축구가 전쟁 뒤의 축전 기간에 이루어진 축제와 방탕과 강탈의 광경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최초의 축구 경기는, 서기 217년 “참회의 화요일”에 지금의 영국 더비 지방에서 열렸다. “축구”는 주둔 로마군에 대해 거둔 결정적인 군사적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1175년까지 참회의 화요일의 축구 시합은 연례적인 행사였다.
훗날 1823년에 럭비가 등장해 두 경기 사이에 용어상의 혼란이 초래되자 골대 안으로 공을 차 넣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기를 장려하기 위해 1863년에 결성된 런던 축구연맹과 함께 “아식축구association football"의 준말인 ”사커soccer"라는 이름이 탄생하였다.
대부분의 근대적 형태의 축구는 옛날의 게임들, 가령 그리스와 로마의 하르파스톤harpaston이나 하르파스툼harpastum 같은 경기들에서 변형된 것이다.
이러한 경기는 오늘날에도 토스카나와 피렌체에서 “칼치오calcio"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오늘날 이탈리아에서 축구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칼치오: 매년 6얼 19일, 24일, 28일에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에서 벌어지는 전통적인 운동 종목 칼치오calcio는 축구와 럭비를 혼합한 형식이다. 따라서 공을 발로 찰 수 도 있고 (calcio란 원래 ”발로 차는 것“을 의미한다) 손으로 던지거나 잡을 수도 있다. 중세의 전통적인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이 경기는 아주 격렬하여 부상자들이 속출한다. 도시의 네 구역을 대표하는 네 팀이 상징적인 색깔의 전통적인 복장을 입고 출전하며, 각 팀은 2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p.56
이탈리아에서, 팬 충성도는 국가의 정치적 영역과 계급 구조를 구성하고 또 강화시킨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자이자, 언론 재벌이며, 수상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AC밀란 팀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팀의 팬들은 대개 베를루스코니가 속한 전진이탈리아당의 지지자들이다.
파아트 사의 창립자인 아넬리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유벤투스 FC는 부의 상징인 반면, 피아트 사의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토리노 칼치오 팀을 더 선호한다.
정치가가 선출될 기회는 확보하고 있는 축구 충성도에 의해 더 많아지거나 적어질 수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AC밀란의 축구팬들이 전진이탈리아당에 확실히 투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서야 무엇 때문에 베를루스코니가 선거 당일에 잡혀있던 AC밀란과, 같은 도시의 라이벌 팀인 인터밀란 사이의 경기를 연기하려 했겠는가?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 中, 피터 페리클레스 트리포나스 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