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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수나::

[펌] 야즈의 시대 - 지단 스토리

GAGO 2007.03.12 23:48 조회 2,235
A tempo di Yaz

야즈의 시대-지단 스토리


98년 월드컵 프랑스 대회에서 모국 프랑스를 정점에 이끈 남자 야짓드 지네딘 지단, (애칭- 야즈,지주). 그 알려지지 않은 자라난 내력으로부터의 걸음을 더듬는 작은 여행이 시작된다.
 
1972년 6월 23일. 여름이 시작될 사이도 없이, 마르세이유에는 태양이 찬란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구릉지에는 구수한 향기가 감돌고, 사람들은 상쾌하고 얼근한 기분을 즐기고 있다. 돌은 그 백색을 자랑하듯 같은 모양으로 존재하고, 바다는 마치, 매미의 목소리가 연주하는 메로디를 자장가처럼 여기는지 작열하는 태양의 포옹속에 온화하고 조용하게 물결쳐. 그 온화함과 고요함이 바다를보다 거대하게 느끼게 만들고있었다. 떠들썩하고, 각양각색의 군중에 가득찬 에스택의 작은 항구에서는, 식사시간이 되면 바의 테라스에서 큰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마르세이유 북부의 볼품없는 지방, 시멘트 허름하게 만든 즐비한 집. 그것들이 마르세이유·라·리벨교회와 같은 높이로 소용돌이쳤다. 그것이 카스테라느 였다. 그곳은 미로 같은마을, 경관조차도 도둑 걸음으로 걷지 않아서는 안 될것 같은 마을...


양친의 가르침을 지킨날


6월 그 날의 아침, 스마일과 마리카는 창을 열었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오늘, 7번지의 그들의 집에서, 성대한 경사가 있었다. 가족에 새로운 멤버가 더해진 것이다. 그아이의 이름은 '지네딘'.

야짓드 지네딘 지단이 이세상에 생을 받은 것이다. 조용하게 자는 갓난아기의 베개옆에서는 양친(스마일 지단,마리카)과 3명의 형(쟈멜, 파리드,노르딘)과 1명의 누나(리라)가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아버지 스마일은 옛 헐키 (헐키란, 제2차 세계대전중 프랑스군과 함께 싸운 알제리인. 1962년 알제리가 독립을 이루었을 때, 알제리에서 추방당했다)이다.

알제리를 쫓겨난 스마일은 옷과 먹을 것을 구하기위해 프랑스로 이주해 왔다. 스마일은 슈퍼마켓의 창고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그 급료봉투는 얇았다. 그러나, 사랑과 생각이 풍부한 어린이들에 있어서는, 매우 부족한 유년 시대였다.

「물건이 풍족하진 않아도, 지금있는 것에 만족합니다.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고해서, 무엇인가 몹시 어떤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까요.」그것이 아버지 스마일의 말버릇이었다.

지금도, 지네딘이 양친의 이야기를 할 때, 눈이 빛난다. 지네딘은, 후에 양친에게 호화로운 별장을 사주었다.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모두 양친덕택으로. 나에게 엄하지만 옳은 교육을 베풀어 주었어요. 양친은 나에게, 집단에 있어서의 자신의 장소를 확립하도록 입이 닳도록 말하곤 했었죠. 개인 주의에 매달려서는 소용없다고. 타인을 존경하는 마음, 교만하지 않는 것, 타인과 모두를 분담하는 것, 그 모두를 양친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양친의 가르침을 지켜 지금의 생활을 하고 있지만, 만약 이 가르침이 없으면, 나의 인생은 나쁜 방향로 향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부모님에게는 평생을 감사하며 살고싶어요.」


단지 나는 볼을 차는 순간에만 살아있다.


지단가의 저녁식사는 딱 7시이다. 어린이들은 화요일의 밤 (수요일은 학교가 쉬므로) 과 주말만 텔레비젼을 보는 것이 허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그것만 으로도 충분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채널에서 수많은 축구게임을 볼수있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젼으로 축구 시합을 보고 있었을 무렵은, 화면에 비추어지는 광경의 모두가 별세계였어요. 꿈의 세계였던 것입니다. 프로의 축구 선수가 되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실이죠.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은 오직 한개, “축구를 하면서 노는” 것뿐이었습니다. 장래무엇이 되자고 생각한적이 없었거든요. 장래의 설계란 머리속에 요만큼도 안중에 없었던 것입니다. 단지 나는 볼을 차는순간 때문에 살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떤 학생이었던 것일까?
지네딘에게 있어서 학교는 아무 의미도 없는 곳이던것 같다.
어머니 마리카는 말한다.

「좋은 학생이었어요. 그렇지만, 주의력이 산만했죠. 지네딘의 푸른 눈동자는 선생님에게 인상적으로 기억되었습니다 」

지네딘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은 예를 갖추어 말한다.

「언제나 좋은것 같았어요. 머리로 말하는 어린이였죠. 그렇지만 언제나 공상하곤 했죠.」라고.

영어 수업중에 책상위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지네딘을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도 있었다. 건강하고 생명력에 넘친 소년은 그 에너지를 축구를 하게되면 단번에 폭발시켰다.

누나인 리라가 사랑스러운 동생, 야즈의 소년 시대를 회상한다.

「금발의 고수머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지금의 야즈를 보면 그무렵의 모습이 믿어지지 않아요. 시간이 있을때면, 언제나 볼과 놀곤했죠. 드리블을 시작하면, 그 코스에 있는 것은 모두 파괴되었어요. 야즈가 3살때, 자전거 타는 연습을 했었죠. 보조고리를 붙였지만 원치않았기 때문에. 반드시 어른과 같은 것을 하고 싶어했었죠. 2분에 1회는 굴러 떨어지곤 했어요. 그렇지만야즈는 무서운 것같지 않았어요. 스케이트 보드로 비탈을 내려갈때의 일인데요, 스피드가 지나쳐 거꾸로 떨어지 곤했죠. 유도에 관해서는, 11세까지 했어요. 오렌지띠였죠. 그무렵의 야즈는 정말로 무서운 걸알지 못했었어요. 얼굴로부터 핏기가 끊길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죠. 어쨌든, 완고한 아이였죠.」

“자신은 어디에 적성이 있는것인지”
결심을 하지 못하고있었으며 가지각색인 것들에 손을 댄 지네딘이였지만, 유일, 그리고 진정한 정열은 그 무엇도 축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축구가 나 자신의 피속에 숨쉬고 있었어요. 내가 태어났을 때, 머리에 볼이 들어 있던 것입니다」

지네딘이 1살때, 물론 그의 그라운드는 아파트의 거실이었지만, 야즈의 강렬한 발리킥으로 샹들리에가 깨졌다고 말하는 일화도 있다. 축구야말로 야즈의 기쁨이 집약된 세계이고, 취하기 지친 세계였던 것이다.

「제일 능숙했던 것은 야즈예요. 우리들의 팀에는 제법 능숙한 선수들이 몇있었죠 하지만, 길거리에서도, 야즈만은 특별했죠. 야즈의 볼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다리에 손이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볼을 가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어요. 특히 드리블은 대단했죠. 게다가 게임의 파악력도 뛰어났죠. 팀에서는 야즈가 최연소였지만, 그 덕택으로 언제나 이겼죠. 지기 싫어하는 경향이있었던 그는. 그것을 언제나 그라운드에서 표현하고 있었어요. 최연소이지만 우리들은 야즈를 캡틴으로 지명했죠. 피치의 밖에서는 사려깊고, 수줍음을 타는거 같으면서도, 피치에 들어서면 인격이 바뀌는 아이예요. 전력을 구멍 내는 동료가 있으면, 셔츠를 끌어내 화를 내었죠.」

그렇게, 그들에 있어서, 그것은 진지한 게임이었던 것이다. 마을의 한가운데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월드컵을 치루고 있던 것이다.

「골대는 어떻게 했냐구요? 빈 깡통이 4개있으면 충분했죠. 트로피는 어떻게 했냐구요? 와인병을 알루미늄박으로 싸면 충분한 것이었죠.」

팀은 인종의 도가니였다. 백인, 흑인, 프랑스인, 아라비아계, 알제리계... 모두, 모두 친구였다. “거리” 라는 이름의 학교에 모이는 동료였다. 모두, 함께 “단결력”과 “인내력”을 배운 동료들이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꺼림칙한 인종 차별등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언제나 함께였어요. 모두 지금도 그들은 동료죠. 나는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세계 챔피언이 되었어요. 그렇지만, 동료와 만날 때는 언제나 처럼. 길에서 만나면 “엄마, 건강? ”이라고 말을 걸죠. 아무것도 변한건없어요. 말투도, 얼굴 생김새도 변한건없죠. 우정은 결심했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란 얘기 예요. 스스로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라는 것을 결심하고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네딘은 자신의 문벌을 잊지 않았다. 월드컵에서 트로피를 내건 몇일후, 내성적인 슈퍼스타는 카스테라느에 귀향하고 있었다. 카메라맨과 TV카메라로부터 피하듯, 부끄러워하면서, 주위에 배려하면서, 자신이 출생되어 커온 카스테라느에 돌아왔다. 야즈는 고향을 잊지않았다. 당시의 팀도 물론 잊지않았다, 당시의 팀 스폰서는 말한다.

「카스테라느로부터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일은 없겠죠. 그러나 훌륭한 젊은이가 출현하고, 그리고 세계 챔피언이 되었어요. 지네딘은 제멋대로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었죠.」

지우지 않았다. 지단은 적어도, 6600명의 아이돌(idol)이고, 큰 자랑이 된 것이다.

카스테라누는 “천사의 마을”이었다. 일반의 척도에서 보면, 교육에는 부적합인 마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야즈의 팀메이트는 누구한사람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도둑질도 없었다. 겨우, 타인의 집의 뜰에있는 플럼을 훔친 정도다.

야즈는 축구를 하게되면 인격이 바뀌었다. 누나인 리라가 그 변모를 말한다.

「여름 방학에 이웃 학교와 경기때는 좀 심했어요. 팀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나와 나의 친구(여자 아이)까지도 다뛰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합에 져, 그 책임을 우리들 여자 아이가 지게 되었어요. 우리는 벌을 받아야했죠.」

야즈는 8세때, 세인트· 앙리· 클럽의 선수로서 등록되었다. 그리고 당분간은 축구와 유도를 병행했다. 당시의 야즈를 아버지가 회상한다.

「토요일 이었습니다. 유도 대회가 꽤 먼 곳이었으므로, 귀가가 꽤 늦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도착 하고서 5시간뒤에는 축구대회가 예정되어 있던 것입니다. 나는 야즈가 피로해서,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게 아닐까하고 걱정했습니다. 그런데도 야즈는 일어났어요. 그리고 대회에서 플레이했습니다. 1경기, 2경기 어떻게든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3경기째는, 과연 고전하는것 같았습니다. 게임이 종료된 순간, 생각을 잃어 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지단의 운전수의 역할도 했다. 매주 일요일, 액차르노12에 야즈를 태우고는 쥬니어 스타디움에 데려다 주었다. 쥬니어 스타디움이야말로, 야즈의 영광스러운 무대였다. “천재”는 매회 같이 경탄해 마땅한 플레이를 하고있던 것이다. 아버지는 계속 말한다.

「야즈는 황금 다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강하고, 높고, 완고한 아이였습니다. 남들에게 연령을 속이고 있다고 언제나 불평을 들었었죠. 그때마다 선수증을 보여주곤 했었죠.」

당시, 지단가의 최대의 즐거움은 올림픽· 마르세이유를 벨로드롬에서 응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북쪽 코너쪽에 위치했다. 올림픽·마르세이유는, 가족에게 있어서, 물론 지단에게 있어서도 최고 사랑스런 팀이었던 것이다. 운명의 짓궂은 장난인지... 지단이 태어난 1972년은, 올림픽 마르세이유가 리그전과 컵의 2관왕을 달성한 해였다.

「엔조· 프란체스콜리가 나의 히어로였습니다. 물론, 다른 선수도 좋아했지만, 프란체스콜리는 특별했습니다. 나의 방안에 엔조의 사진으로 가득했었죠. 그의 플레이를 좋아했던 것입니다. 진정한 축구 플레이어가 되는 소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선수였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무렵, 프란체스콜리와 만날 수 있었다면, 먼저 그의 다리에 입을 맞추었을거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흐르고, 엔조와 만나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인터콘티넨탈컵의 결승(96년 도요타컵)입니다. 프란체스콜리를 눈앞에 두었을때는 정말로 감동했습니다. 몇분간, 그와 대화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엔조는 그의 리베르플라테 셔츠를 내게 주었습니다. 프란체스콜리와 언제나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그 셔츠를 파자마로서 사용합니다. 그 후, 나는 첫아들에게 엔조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죠. 이것을 들은 프란체스콜리는 매우 기뻐해 주었어요」

1984년 6월 23일의 벨로드롬은 야즈에 있어서 잊어지지 않는 추억의 날이 되고 있다. 자신의 12세의 탄생일에, 볼보이의 “중임”을 지시받은 것이다. 그것도, 무려 유럽 선수권의 준결승, 프랑스 대 포르투갈의 시합이다. 게임의 승패를 정한 것은, 지단이 10수년후에, 월드컵에서 몸에 지니게되는 10번의 유니폼을 입은 남자였다. 그것은, 그 미쉘· 플라티니였던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인생으로 최고의 추억입니다. 초만원의 스타디움,마법이 지배되는 세계...」지단은 지금이라도 그 때의 흥분을 잊을 수 는 없다.

어른으로의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뛰어오르는 조숙의 지단이 거기에는 있다. 양친과의 이별, 염원의 프로 데뷔, 이적, 그리고 연애... 이야기는, 이윽고 슈퍼스타 지단으로 가까워져 간다.


모래위의 운동장


13세가 된야즈 (지단의 애칭)는 세인트·앙리·클럽을 그만두고, 형인 노르딘이 있는 스포르·올란픽·드·세프테임·레·바론에서 뛰기 시작한다. 피에르·베시리·스타디움. 확실히 이 모래가 섞여있는 피치위에서, 야즈는 “위대한 지단” 으로의 일보일보를 기록하고 있었다. 당시, 야즈는 전반은 왼쪽사이드백, 후반은 리베로로서 플레이하고 있었다. '파곤'은 회상한다.

「지단의 볼 콘트롤은 놀라웠어요. 그 무렵의 지단은 원석의 다이아몬드같았어요. 원석이라고는 해도 이미 커팅이 거의다되어 마무리만 필요한 고품질의 다이아몬드였습니다. 그에게 더이상 가르칠것이란 거의 없었던것 같아요. 그의 플레이는 빼어났어요. 팀 넘버원이었습니다. 다른 선수에 비해도 20cm정도 등이 높았으므로, 팀의 사령탑으로서도 최적이었습니다. 핀치의 내가 얘기하면 반드시 서포트되어 돌아왔죠. 그는“쾌걸조로”였던거 같아요. 부드러운 볼 터치,우아한몸놀림, 그리고 테크닉. 비평이 필요없는 선수였습니다. 7,8명을 드리블로 제치고, 자신이 직접 골을 넣는 경우도 많았죠. 볼을 가졌을 때 자신이 무엇을 할것인가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어요.」

당시의 팀메이트는 야즈의 플레이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있다.

「마르세이유 북부팀과의 경기였는데요. 2-1로 이기고있었지만, 시합 종료까지 앞으로 2분이라고 말하는 도중에, 롱볼이 패널티 에어리어내에 띄워졌어요. 틀림없이 크게 클리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단은 그 볼을 가슴으로 트래핑한 뒤, 발 밑에 흘리고, 그대로, 대쉬해 오는 상대 FW의 두상위로 띄웠습니다. 그리고, 민첩하게 역습의 기점이 되었죠. 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어요. 시합뒤, 탈의실에서 그 플레이에 대해서 그에게 신과 같다고 말했고, 그는 나에 이렇게 말했죠. 흡사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냉정한 어조로 “바로잡고 싶었던것 뿐이야”라고」

“천재” 의 평판이 세프테임의 경계를 넘어가 밖으로 들리게 된 것은, 정확히 이 무렵이다.


칸느로의 여행을 떠나다


아침, 낯선 남자가 피치(운동장)의 귀퉁이에서 야즈의 플레이를 진지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잘· 로우. AS 칸느의 스카우트이다. 당시, 올림픽· 마르세이유가 지단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교섭이 지지부진하다는것을 인지한 로우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교섭에 들기 전에 자신의 눈으로 “소문을 확인하려고 그라운드에 다리를 옮긴 것이었다. 로우는 한 눈에 지단의 재능을 간파했다.

「이 소년이 위대한 플레이어가 될것이라 직감했습니다. 볼을 콘트롤하는 스피드는 정말로 놀라게 했습니다. 이런 선수, 언제고 나는 본 적이없어요. 그것에 더해, 궁핍한 환경에서 출생되어 자란 선수 특유의 “투쟁심”을 가졌었죠. 헝그리 정신입니다. “날때부터 축구 선수”였어요. 곧바로 계약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야즈는 칸느에서 3일간의 합숙에 참가했다. 이 때, 불과 13세6개월이다.

「연습 시합에서는 리베로를 하도록 지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최악의 경기였습니다. 마을의 거리와, 세프테임의 작은 클럽에서 언제나 하고 있는 것 같은 축구를 말입니다. 패널티 에리어내에서도 “바보 플레이”를 더하고, 신중함에 빠진 플레이는 팀을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최악의 경기였습니다. 연습 시합(테스트)뒤, 나는 당연히 낙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우씨가 1주간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난 필사적으로 뛰어야했습니다. 아무리해도 팀에 남고 싶었던 때문입니다」라고 뒤에 지단은 말하고 있다.

지단의 재능을 높게 평가한 칸느는 합격의 판정을 내렸다. 단지 지단에 남겨진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양친을 설득하는 것. 어머니 마리카는 당초 이 이야기에 완전히 내켜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 아이가 혼자 되어, 길에서 빗나가 버리는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라고 마리카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로우는 적절한 말로 양친의 설득에 성공한다. 아버지 스마일은 포인트 첨부의 스파이크를 사기 위해서 가계를 줄이지 않으면 안 될수록 가계는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야말로 'OK'의 의사표시로 승낙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승낙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야즈의 정서를 돌봐주는 “좋은 가정”을 이루게 해주라는 것이었다.

3개월뒤, 야즈는 페고마의 에리노부부의 아래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남편 졍크 로드는 AS 칸느의 중역, 아내 니콜은 노인폼을 경영하고 있었다. 에리노 부부의 3명의 어린이와 연습생인 아메데· 아르노. 야즈는 칸느에서 2번째의 가족을 가지는데 이른것 이다. 그리고 성장 과정에 필요한 정신적밸런스를 손에 넣을 수 있던 것이었다.

「팀메이트도 모두 가족과 떨어져 칸느에 있었던 것입니다. 홈식크(home-sick:망향병)에 걸려 있었어요. 나도 외롭게 되어, 밤에 운적도 자주 있었죠. 다만, 나는 새로운 생활에 곧 익숙해졌습니다. 진정한 어린이답게, 나에게 신뢰와 애정을 가지며 보살펴준 에리노 부부 덕택으로」

아내인 니콜은 당시의 “지단을 돌보던 그날”의 모습을 기억하며, 추억을 말한다.

「야즈는 속으로 생각하는 어린이였죠. 과묵했고. 그렇지만, 상냥한 아이였습니다. 무슨일이 있으면 언제나 도와 주었어요. 야즈는 가족의 일원이 되고는. 불평 불만등을 물은 적도 없었습니다. 정말로 훌륭한 아이였어요. 모두가 사랑하고 싶어한 아이였죠.」

에리노부부에게는 지금도 지단의 수많은 추억이 남겨져 있다. 많은 사진과 앨범. 지단이 폴랜드 원정시에 사서 에리노부부에게 선물한 크리스탈의 화병. 그리고 벚꽃나무의 나무도 그곳에 있다. 후에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의 리스트에 그 이름을 올려놓게 되는 야즈라고 불리우는 소년이 심은 벚꽃나무의 나무가 에리노가의 뜰에 있는 것이다.

이윽고, 야즈는 자신의 다리로 인생을 걷기 시작한다. 그는 젊고 아름다운 발레리나, 벨로니카(후에 지단의 아내가 되는 여성)와 서로 알게 되는 것이다. 벨로니카 앞에서의 두근거리는 마음, 그리고, 연습에 치이며. 지단은 어른이 되어 간다.

에리노가를 떠나고, AS 칸느의 기숙사에 살게 된 지단. 기이·라콘브의 지도 아래에서, 그의 재능은 한꺼번에 개화한다.


새빨간 크리오(註:자동차명)


「1일에 24시간 연습이라고 말했죠, 하고 있던 일이니까요」라고 지단은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지단은 15개월간, 3부리그에서 플레이했다. 그의 드리블을 끊는 것은 아무도 할 수 없었다. 상대 선수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지단의 복사뼈를 겨냥한 태클뿐이었다.

칸느 팀의 일원으로서 몽펠리에와 싸웠을 때, 지단은 상대DF의 오른쪽 다리를 걷어찼다. 그전까지 집요하게 러프 플레이를 걸어온 상대에게로의 보복 행위였다. 그 행위의 대상이 레드 카드. 3시합의 출장 정지, 및 1주간의 탈의실의 청소였다. 이 최초의 레드 카드로부터 월드컵· 프랑스 대회의 사우디아라비아전의 레드 카드에 도달할 때까지, 지단에는 이런 종류의 사건은 영구히 일어나고 있지 않았다. 지단은 공격당했을때 처음으로 거친선수가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부정 행위나 폭력은 절대로 허락할 수 없어요. 상대의 거친 플레이도 되도록 용서하도록 하고 있지만, 그것에도 한도가 있으니까요. 때를 넘으면, 나도 다시해요. 나는 마르세이유의 궁핍한 지역에서 낳고 자랐지만, 축구로 싸운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라고 지단은 말한다.

16세때, 야즈는 칸느의 프로팀 과 함께 연습하게 된다.

「진짜 축구 선수와 플레이한다는 꿈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축구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갈수있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좀 더 높은 레벨로 오를수있는 야망도 태동하고 있었죠.」

지단의 코치는 라콘브로부터 톱팀의 감독 페르난데스를 대신했다. 그리고 1989년 5 월 20일, 낭트의 죠워· 스타디움에서 지단은 1부리그의 피치를 밟게 된다. 그것은, 그의 17세 탄생일의 1개월전의 일이었다.

「시합 종료 직전에 교대로 피치(운동장)에 들어섰습니다. 시합은1-1 의 무승부였지만, 어웨이에서의 무승부라는 점때문에 보너스가 나왔습니다. 5000프랑. 유스팀 월급의 5배의 금액을 오직 1시합에서 벌었습니다」

야즈는 보너스를 그대로 양친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1년후, 역시, 낭트전에서 지단은 첫골을 팀에 선사하게 된다. 칩킥으로, GK의 다비드· 마로의 그물안으로 공을 넣은것이다. AS 칸느의 회장, 알란· 페드렛티는 그에게 차를 선물했다.

「새빨간 크리오(자동차) 였습니다. 게다가 신제품. 연습이 끝난 뒤, 크로와제트를 드라이브했습니다. 매우 기뻤어요. 마치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받은 직후의 어린이처럼요.」


지롱당·보르도로


“천재”는 그 본령을 점차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랑스 축구계는“천재”의 출현에 들끓었다. 지단의 이름은 단번에 프랑스 국내에 퍼진 것이다. 급격하게, 아니, 너무 급격하게 그의 주위가 바뀌어 갔다. 그러나, 그 때, 지단은 벽에 직면하고 있었다.

「칸느에서 플레이한 마지막 시즌은 심한 것이었습니다. 최악이었습니다. 길에 헤매인 꼴이죠. 무엇을 해도 능숙하게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의 원인은 이거였죠. 월요일에 Cannes를 출발하고, 목요일에 돌아오고, 토요일의 게임에 출장한다는 것이 패턴이었지만, 그것은 지옥의 생활이었습니다. 10미터의 산책조차 할 수 없었을 정도, 나 자신의 몸은 그런 생활에 위태위태해하며 녹초가되어 버렸죠. 그와 동시에 팀도 위태위태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팀은2부에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정확히 그 무렵, 지단의 인생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인물이 출현한다. 마르세이유 출생의 인물, 로런· 크루비스가 바로 그사람이다. 크루비스는 지론단· 보르도의 감독에 취임하는 즉시 칸느의 회장을 만나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단의 영입 교섭이 아니었다. 에리크·게리와 잘프랜의 영입 교섭 때문에, 칸느에 출향하고있던 것이다.당시, 지단에게는 올림픽· 마르세이유가 흥미를 나타내고 있었으므로,크루비스는 지단을 단념하고 있었다. 그런데, 칸느에 와서보니, 올림픽의 이야기는 끝난것이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크루비스의 눈은 빛났다.

「이런 큰 찬스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즉시 교섭에 들어갔고, 교섭은 2,3시간으로 끝났습니다. 이적금은 350만프랑. 저런 재능을 가진 선수에게 있어서는 실례되는 금액이군요. 그는 진짜 천재인 것입니다. 지단은 게임의 국면, 국면에서, 다른 플레이어가 할 수 없을 것 같은 것을 과감하고도 간단하게 해버리는 인재인 것입니다」라고 크루비스는 힘을 주어 말한다.

지단의 유별나게 보인 테크닉은 어린이무렵에 길러진 것이다. 지단은 웃으면서, 말한다.

「확실하게 거리에서 테크닉을 배웠어요. 놀면서 플레이하고, 친구를 깜짝 놀래키려고 플레이하고, 나밖에 할 수 없는 플레이를 만들어 낸다고 말하는 중에 테크닉을 몸에 익힌것이죠. 축구만이 아닙니다. 거리에서는 훌륭한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보르도의 보석”이라고 불리우고, 플레이할 때마다 눈부신 빛남을 발하기 시작한 지단.

94년의 여름, 드디어 프랑스 대표로의 데뷔를 완수한다. 사람들은, 스타디움에서, 길거리에서, 저녁식사의 테이블에서, 입으로 지단을 플라티니와 비교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지단의 영광에로의 도정에는 고난이 도사리고 있었다. 96년, 생사를 가르는 의외의 자동차 사고, 그리고 유럽 선수권에서의 굴욕적플레이, 립피가 인솔하는 유벤투스에서의 활약을위해 세월이 흐름을 지단은 말하고 있다.

1992년 후반, 지네딘· 지단은 보르도에 이적했다. 거기서 크리스토프·뒤가리와 함께 플레이하게 된다. 지단과 뒤가리는 프랑스 대표 (U-15)로 함께 뛴이래, 대단히 친한 친구사이로서 지금까지 이르고있다. 어떤 기쁨도 슬픔도, 함께 서로 나누어 온 사이. 2명은 서로 돈을 모아 보르도에 바(bar)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친한동료이다.

「뒤가(뒤가리)와는 여러 가지일이 있었죠. 제일 기억나는 것중에 하나는 대표(U-21)에 선발되어 파리로 갔을때의 일입니다. 파리에 도착했을때, 뒤가가 돌연 수트(suit)를 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택시를 한대잡아타고 베르사체 매장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가게 앞에 차를 멈추어주어, 나는 차 안에서 기다렸습니다만, 뒤가는 1시간 지나서도 나오지 않았어요. 미터기는 자꾸자꾸 오르는데... 물론, 택시요금은 협회에 청구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렇게 큰 걱정은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만. 내가 너무 미안했었거든요. 덧붙이자면, 그 때의 요금은 협회에 이자까지 첨부해서 갚아 주었어요.」

지단은 친구 뒤가리 말고도, 또한 빅상트 리자라쥐와도 친한동료로써 함께 뛰면서, 그들은 그의 재능에 기대를 걸어갔다. 지단은 말한다.

「보르도가 나를 바꾸어 주었습니다. 비약하는 최고의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찬스를 잡았다는 것보다, 단지 단순히 행운이었는지. 보르도에서의 1년간은 나에 있어서 최고의 시즌이었습니다. 리그전에서 12골을 뽑을 수 있었습니다. 프로에서 버텨나갈 수 있는 자신감은 물론이고, 좀 더 높은 레벨에서 플레이하고 싶다는 욕구가 태동한 것도 그 무렵입니다. 보르도는“ 스텝업” 하기에는 이상적인 팀이었습니다. 테크닉면에서도, 피지칼면에서도, 멘탈면에서도, “보다 높은”플레이를하기 위한 준비를 해 주는 장소로서 존재했던 것입니다. 로런· 크루비스밑에서 플레이할 수 있던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인물입니다. 언제나, 내게 자신의 아이 처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크루비스는 하지만 나를, 인간으로서, 그리고 스포츠맨으로서, 성장시켜 준 의인입니다」

크루비스는 “보르도의 보석”을, 참을성이 있게, 애정을 가져 단련한 의인이다. 후에 유명하게 되는 지단의 별명 “지주(Zizou)”를 생각해 낸것도 크루비스이다. 그는 지단에게 팀 리더의 역할을 주는 것만이 아니고, 프랑스 대표에로의 길도 열리게한 것이었다.


94년 후반기, 극적인 대표 데뷔전


대표의 일원이 된 지단에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큰 찬스가 나타나게 된다. 유리· 죠르카예프가 부상한 것이다. 당시의 대표 감독은 체코와의 프렌들리 매치에 죠르카예프의 대역으로서 지단을 지명한 것이다.1994년 8월 17일의 게임이다.

클레르 퐁텐의 대표팀 트레이닝 센터에서의 생활은 Smooth하게 시작되었다. 에릭· 칸토나가 지단을 위해서, 여러가지 생각을 전해준 것이다.

「에릭이 있던 덕분에 대표에서 곧 적응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는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어서. 에릭덕택으로 불안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라고 지단은 말하고 있다.

체코전은, 지단을 한 사람 분의 프로 축구 선수로서 길러낸 보르도의 스타디움에서 행해졌다. 탈의실에 들어오면 거기에는 사용이 익숙해진 자신의 로커가 있다. 친한친구인 뒤가리와 리자라쥐도 지단의 응원에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2명은 「지주는 스타팅 멈버에는 나오지 않겠지만,도중 교대로 출장하면, 반드시 일을 저지를 것이다」라고 믿고 있었다.

예상은 적중한다. 지단은 벤치에서 스타트한 게임을 지켜보았다. 초반, 체코의 맹렬한 공격에 프랑스는 분전한 편이었다. 전반을 종료했을때 0- 2 라는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감독은 지단에게 모든 걸 걸기로하고, 몇분뒤, 지단을 불렀다.

「네가 나갈 차례다. 경기에만 집중하고. 다른 일 같은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마라!」

그렇게 얘기하곤 지단을 피치에 내보낸 것이다. “결정적인 일을 해라” 피치에 드는 순간, 카스테라누의 젊은이의 머리에는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전에 없던 공포감에 습격당하고 있었다.

「이런 높은 레벨의 시합에서 나 자신의 플레이가 과연 통할수 있을까? 」

그의 지나치게 섬세한 성격이, 자신감 조차도 잃게 하려하고 있던 것이다. 후반18분, 끝끝내 그 때가 왔다. 지단은 다리의 진동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러나, 꼭 머리를 올리고, 가슴은 위풍당당하게 피치위로 튀어나갔다.

지단은 최초의 패스를 미스했다. 2번째의 패스도 미스했다. 그리고, 3번째도... 스탠드에서 지단의 부실한 플레이에 비난의 휘파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지단은 그 천재성을 발휘한다.

후반40분, 오른쪽사이드에서 볼을 가진 지단은 화려한 드리블로 DF를 제치고, 골대로부터 25미터 지점에서 상대편 GK의 포지션을 확인했다. GK가 앞으로 나오고 있는 것을 확인한 지단은 그 배후에 긴 로빙볼을 차넣었다. 골네트가 흔들렸다. 지단의 대표로서의 첫골. 한편 그로부터 2분후, 앙글로마의 코너 킥을 헤딩슛 으로 연결. 골네트를 다시한번 흔들었고, 게임을 단번에 출발점으로 돌린 것이다. 로우가 그 때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한다.

「헤딩은 지단의 약점입니다. 그 자신도 상당히 컴플렉스를 안고 있었을 것입니다. 게임의 다음날, 지단으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스스로도 놀라고 있던것 같더군요. 골칫거리로 여기고 있던 헤딩으로 골을 넣은것을」

그로부터 4 년후, 월드컵 결승에서, 자신이 헤딩으로 2 골을 넣게 되는것을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플라티니의 후계자」를 부정


지단의 대표 데뷔의 다음날, 신문은 “프랑스 축구계의 신성”의 탄생을 전했다. 그리고 “플라티니의 후계자”라고 말하는 문자가 범람될 때까지 오랜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지단은 “플라티니의 후계자”라고 말하는 상표가 붙여져 수많은 국제 시합에서 플레이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지단은 플라티니와의 대비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머리 속에서는, 로와· 미쉘(프랑스에서의 플라티니의 통칭, '로와'는 킹의 의미)의 후계자는 될 수 없다는 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날, 지단은 쌓인 심정을 털어놓았다.

「플라티니의 뒤를 잇는 건 나에는 너무 무겁습니다. 플라티니와 비교되는 것은 좋지않죠. 플라티니는 한사람밖에 없어요. 그와 동일시 되는 선수는 없습니다. 나는 지네딘· 지단이지 플라티니가 아닙니다. 향후, 내가 경기장안이나 밖에서도, 플라티니가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와 비교되는 것은 나의 성품에 맞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나의 성격이기때문에」

1996년 5월, 보르도는 UEFA컵의 결승에 나아가고, 바이에른· 뮌헨과 대전했다. 보르도는 원래 UEFA컵의 출장권을 얻을수 없었으나, 인터토토· 컵에서의 좋은 성적으로 UEFA컵 참가 자격이 주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결승에 진출할 때까지 많은 예선을 싸우지 않아서는 안 되고, 장기간의 경기가 불가피했다. 준결승에서는 밀란을 상대로 예상외의 결과를 이룩했다. 밀라노에서의 첫경기를0-2로 패해서, 준결승 탈락을 누구나가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홈에서의 제2전, 보르도는 3-0으로 기적적인 승리를 이룩한 것이었다.

결승 제1전은 어웨이의 뮌헨에서 행해지고, 보르도는 0-2의 패배를 당했다. (지단은 출장 정지로 플레이하지 못했다.) . 그리고 홈에서의 제2전에 사활을건 보르도였지만, 결국 1-3의 완패. 지단은 패전에 쇼크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기분을 전환했다.

「항상 긍정적인것, 그것이 나의 철학이거든요.」

지난 것을 회상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1996년, 유벤투스와 3500만 프랑(약7억엔)의 계약에 조인. 프랑스 대표로서 임하는 유럽 선수권(잉글랜드)의 준비를 하지 않아서는 안 되었다.


자동차 사고


EURO'96 개막의 몇일전, 한대의 차가 보르도 근교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운전하는 남자는 무언가의 생각에 골똘히 취해있었고, 일순간, 백 미러를 잘못 보았다. 그곳에 한대의 BMW가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그 순간, 앞을 달리는 차가 코스에 들어온 것이다. BMW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balustrade(난간)를 들이받고 말았다. 시속100km로 달리던 도중 충돌의 쇼크는 굉장한 것이다.

차의 운전수는 차에서 내려 BMW에 접근했다. 운전석에는 에어백으로 움직일수가 없게 된 남자가 있었다. 안면은 피투성이. 남자는 중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가해자”는 그 얼굴을 본 순간 기절할 것 같았다. 피투성이가 된채로 허덕이고 있던 것은, 무려 지네딘· 지단이었던 것이다. 그 때의 광경 (피투성이의 얼굴) 만 보면, 오늘의 지단은 없다고 추측될 것이다. 지단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뜻밖에도 그 날 저녁때에는 병원을 나서고 있었다. 양친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의 희망으로 인한 퇴원이었다.

지단은 대사고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 이상이 없었던건 아니다. 기어레버가 떨어져나갈때, 오른쪽에서 그를 강타한 것이었다. 한편, 그 때, 천정에 귀와 머리를 부딪혔다.(머리 부분에 있는 2개의 큰 상처자국은 이 사고에 의해 생긴것이다)

지단은 삼색기밑에서 처음으로 싸우는 큰 국제 대회를 위해서 잉글랜드로 향했다. 그러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대회에서의 플레이도 최하였다. 길고 괴로운 리그전을 싸운 (80시합 출장) 피로도 있었던 것일게다. 교통사고의 영향도 있었다. 그런데도 자케 감독은 지단을 계속 중용했다. 그리고 다음에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두었다. 무려, 프랑스는 준결승까지 진출한 것이다.(체코에게 PK전에서 진다) 프랑스에 있어서는 분전한 대회였지만, 지단에 있어서는 낙담이 큰 대회가 되었다.

「그 유럽 선수권의 일은 추억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소중한 것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그같은 대회(레벨의 높은 대회)를 싸우기 위해 서는, 100%의 컨디션으로 나서서. 또한 300%를 발휘할 형편이 안되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사퇴하는 편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 대회에서 나는 큰 잘못을 범했습니다. 피치에 오르고 싶다고 주장한 나 자신이 어째서.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컨디션이 형편없이 나쁘다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플레이시켜 달라고 부탁했냐 하는것이 그것입니다」

카스테라느의 작은 광장에서 이야기를 개시한 야즈 소년은, 한 스카우터에 의해 발굴되고, 보르도, 유벤투스와 스텝업. 그리고 98년 후반, 스토리는 클라이막스를 맞이한다. 알루미늄 박으로 가린 장난감 트로피를 황금의 진짜의 트로피로 바꾼날, 지단은 스스로의 손으로 이야기를 완결시켰다.


유벤투스에서의 고뇌


1996년, 유럽 선수권. 이 대회에서 지단의 이야기의 제1막은 마지막을 고했다. 그리고 새로운 막이 오르려하고 있었다.

「지단은 지불(이적료)한 대로의 플레이를 유럽 선수권에서 보여 주었다.」 당초는 그 능력에 회의적이었던 유벤투스의 회장도 이렇게 말해, 지단을 받아들였다. 프랑스 1 부리그에서는 결국, 8시즌동안 200시합에 출장하고, 27골을 기록. 96년 후반, 지단은 보르도의 거리를 뒤로했다.

그러나 지단의 몸은 리그전과 유럽 선수권의 연전으로 피로상태에 있었다. 1개월의 바캉스로 심신을함께 원기회복하고, 겨우 유벤투스의 트레이닝 캠프로 향했다. 유베의 피지컬트 레닌에서 그의 지휘를 맡은 것은, 스파르타로 유명한 장피에로·벤트로네이다. 지단은 이렇게 회상한다.

「벤트로네의 트레이닝은 매우 엄하다고 데시로부터 들어서 알고있긴 했지만, 실제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지나치게 딱딱한 메뉴로 연습 뒤, 몇번이나 토할 것 같게 되었어요」

샤티욘의 태양아래, 지단은 유벤투스에서 플레이하는 것에 대해서 당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벤투스의 유니폼을 입고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영광인 것과 동시에 큰 책임을 느끼게 되었어요. 또 나는 유벤투스를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클럽에 왔기 때문에는 엄한 도전이 내 앞에 대기하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만약 이 클럽에서 멋지게 해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의 축구 인생에서 최대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 유명한 플라티니조차도, 유벤투스에서 느닷없이 활약한 것이 아니다. 지단도 역시 시즌초에는 좋지도 나쁘지도 못했다고 말한 플레이가 계속되었다. 세리에A로의 환경에 순응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리고있던 것이다. 큰 활약을 기대하고 있던 매스 미디어도, 인내하던끝에, 드디어 지단 비판을 개시했다. 당시의 매스컴의 비판에 대해서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무렵, 신문은 읽지 않았습니다. 나는 바보가 아니예요. 자신의 어디가 나쁠까정도는 신문을 읽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죠. 그 당시의 내가 빠져 있던 것은,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패스를 하거나, 공격을 조율하거나 하는 일에서는 그런 대로 만족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고 있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빠져 있던 것은, 슛을 하는 것이었죠. 외국인 선수의 경우, 다른 선수보다 “굉장한”이라는 느낌을 들게하지 않아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나는 자신의 플레이를 믿고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을 받아도 마음의 동요가 일거나 하는것은 없었던 것이죠.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믿고 그렇게 했습니다. 거기에 팀메이트가 언제나 나의 옆에 있어 준 덕분으로 대단히 격려가 되었어요. 나는 기분으로 플레이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자신이 신뢰되고 있다고 느끼면, 두배이상이라고 말할수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기때문입니다」

지단에 있어서 당초의 최대의 문제점은, 팀의 승리에 공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 책임의 일단은 감독 립피에게도 있었다. 립피는 지단을 어느 포지션에 두면 좋은가에대해 알지 못했던 탓이다. 그 점에 관계해 지단은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립피는 당시 4-3-3의 포메이션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3명째의 공격적인 역할이 아니고, 데샹과 함께 수비형 MF로서 플레이하고 있던 겁니다. 그 포지션에서 명쾌한 플레이(누가 봐도 굉장한 플레이)를 하는 것은 어려워요. 수비에 있으면, 공격할 수 없기 때문이구요. 유벤투스의 플레이는 매우 조직적인 것입니다. 그 조직에 익숙해지기까지 는 꽤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죽여 팀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지금이야 좋게 들리지만, 그것이 때로는 자신의 독특한 맛을 봉해 버리는 것도 있거든요.」

팀 비판과도 같이 받아들여지는 지단의 발언에 신문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매일 같이, 지단의 포지션 논쟁이 신문 종이 위를 요란하게 했다. 많은 의견이 비일비재 하던중, 미쉘·플라티니가 지단의 변호를 하기 시작했다. 「지주 자신이 제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포지션에서 플레이시켜야 마땅하다. 데샹과 같은 포지션을 하게 하면 지주의 독특한 맛은 살아 있지않게된다. 내가 보니니(당시의 DF)같은 플레이를 할 수 없었던것 처럼 말이다」


공격형 미드필더로서의 개안


지단에 있어서 혼란속의, 최초의 1개월이 지나갔다. 그리고 10월, 생각지 않은 전환기가 온다. 미드필더의 주력인 콩테가 상처를 입어 결장했기 때문에, 립피는 4-4-2의 포메이션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4-4-2의 투톱아래, 즉 지단 본래의 포지션에서 플레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96년 10월 20일, 스타디오·델레·알피에서의 인테르전. 지단은 마음껏 뛰었다. 그리고 끝끝내 그 때는 왔다. 후반 17분, 기념하는 것이 마땅한 세리에A 첫골을 넣은것이다. 플레이의 내용도 이탈리아에 온 이래, 최고였다.

「그와 같은 게임이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시합은 시즌의 전환기, 아니, 나의 축구 인생의 확실히 전환기였는지도 모릅니다. 인테르전 직전에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경기를 승리했었기 때문에, 립피는 인테르전에 대비해 나를 쉬도록 배려해 주고, 한층 유리한 위치에서 플레이하도록, 포지션을 체인지해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야말로 정말로 납득이 가는 플레이를 할 수 있던 것입니다. 골도 넣을 수 있었고, 최고였습니다. 확실히 그일이 있은 후로부터, 나의 이탈리아에서의 캐리어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나는 겨우 스타트를 끊은것입니다. 이미 누구도 멈출수없는... 그런 기분으로 가득했습니다」

드리블, 패스, 슛, 골, 한층 상대의 볼도 자주 빼앗고, 경쟁하기도 싫어하지 않는... 지네딘· 지단의 플레이로 유벤투스는 단번에 활력을 되찾았다. 「복잡한 상황을 단순한 것으로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마르첼로· 립피는 지단의 플레이를 분석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에 온이래, 감정을 표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이기고 싶다는 기분이 더 늘고있다는 뜻이죠. 모든 타이틀을 취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고, 유벤투스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한, 빅 타이틀도 가능한 것입니다」

토리노에서의 최초의 1년간(96-97 시즌)으로 지단은 인터 콘티넨탈컵 (도요타컵) , 유럽 슈퍼컵, 그리고 스쿠데토를 획득. 97년 5월의 챔피언스리그의 결승에서는 도르트문트(독일)에 졌지만, 여러 빅타이틀을 따내게 된것이다.

「가지각색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었을 뿐이 아니고, 자신 자신의 플레이도 더 좋아지고, 전술면, 그것에 신체적인면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비해서, 파워가 늘어나고, 정신적으로도 강하게 되었고, 안정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서도 이렇게 능숙하게 되는 건 생각만해도 , 매우 기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놀란 것은 아닙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소원성취”는, 언제나 자신에게 말하여 들려주어 지금 그것을 이룩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1 년후, 지단은 온화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년전에 비해, 2년째(97-98 시즌)는 좀 더 부족함을 느꼈어요. 좀 더 능숙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좀 더 골도 결정지을수 있다고 생각했구요. 게다가, 좀 더 확실히 트인 플레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절에 실패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있었지만, 다행히 오래 끌지 않았었지만, 아직 배우는게 마땅한 점이 많다고 실감한 한 해였습니다. 더 경험을 익히고 싶어요. 플레이의 질을 높이고 싶고, 좀 더 셀프 콘트롤을 몸에 지니고 싶기 때문에. 많은 빅 게임을 체험 할 수 있는 것은 기쁜일이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레알·마드리드에게 진 것은 유감이었어요. 나에게 있어서는 3회 연속 결승 패배니까요. “다시 돌아온다”란 말이 있습니다만... 내년이야말로 이기지 않으면 안되겠죠」

「월드컵은 나의 머리안에 딱 달라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고 있어요. 무엇인가가 매달려있는 것 같은 느낌이죠. 월드컵 타이틀을 가지고 싶고, 그것이 단지 꿈이 아닌 현실로 손에 다가오는게 아닐까하고...」


실의의 레드 카드


지단이 클레르 퐁텐에 있는 프랑스대표팀의 합숙소에 도착했을 무렵, 둘째 아들 루카가 탄생했다. 지단은 월드컵을 개최하는 고장 프랑스국민의 기대를 일신에 짊어지고 있었다. 지주의 초상화가 파리의 개선문과 마르세이유의 콜니슈 건물의 벽을 꾸몄다. 프랑스 국민은 지단의 이름을 언급하고, 잡지는 그 표지를 지단의 사진으로 메꿔갔다. 확실히 메시아(구세주)의 출현으로 받아들여짐이 선명했고, 그의 어깨에 놓인 압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지단은 압력에 억압받게 되었다. 마음 속은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지단은 속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핀란드에서 행해진 대회 직전의 테스트매치. 상대팀은 당연한 것처럼 지단을 집요하게 마크한다. 그 하드 마크에 불이 붙은 지단은, 드디어 보복의 파울을 범한다. 셀프 콘트롤을 잃은 지단의 모습이 거기에는 있었다. 헬싱키에서의 테스트 매치에서의 보복 행위에는 엄한 징계를 줄 수 없었지만, 진짜는 달랐다.

그것은 6월 18일, 월드컵 프랑스 대회 예선 그룹2시합에서 일어났다.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상대의 거친플레이에 응해(보복 행위), 레드 카드를 받은것이다. 남아프리카와의 첫경기에서도 절반 정도의 플레이 밖에 할 수 없었고,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는 70분간만에 끝나 버린 지단. 그는 자신 자신의 생각으로 “유로96의 망령”이 소생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는 월드컵 같은 큰 대회는 싸울 수 없다. 팀메이트는 자신을 버릴거라고 일방적으로 생각해 버렸다. 확실하게 지단이 레드 카드를 받은 날의 밤, 팀의 캡틴, 디디에· 데샹은 엄한 말로 지단을 질책하고 있다. 「그가 저지른 짓은 허락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행위는 팀을 난처하게 했을 뿐이 아니고, 팀을 위기에 빠뜨렸다」라고 비난했다.(바로, 다음날 이 발언은 철회되었지만)

클레르 퐁텐의 방안에서 지즈는 고독을 강요당했다. 에로스·라마조티의 “La Musica”를 듣는 지단의 큰 푸른 눈에는 목표없는 눈물이 넘치고 있었다. 월드컵이 자신의 손안에서부터 떨어져 나간다. 지단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탈리아와의 준결승의 전날, 자케 감독이 지단의 방을 방문했다. 자케는 프랑스가 이겨 내기 위해서는 지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2명은 서로 이야기했다. 자케는 그 때의 모습을 술회한다. 「지네딘은 매우 섬세한 젊은이죠. 그가 절망에 빠진 이유는 주위로부터의 부담때문이죠. 자신의 플레이에 전념할수 없었던 이유니까요. 그는 스스로 내가 그의 플레이에 만족해하고 있지 않다고 굳게 결심한 상황이었죠.」

자케는 지단에게 속삭였다.

「지주, 군인 한사람의 힘으로 프랑스가 이길 수 있다든가 진다든가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서 프랑스를 이기게 해 주는 인간이 한사람만 있으라고 한다면, 지주, 그것은 너인거야!」

자케는 이 짧은말로 지단으로부터 책임감이라는 압력을 철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잃어버린줄 알고 있었던 서로의 신뢰감을 다시 두사람은 얻어내고 있었다.


영광이라는 이름의 진실


1998년 7월 12일, 오후 6시.

스마일과 마리카의 아들, 야짓드· 지네딘· 지단은 패스를 타기 위해 올라서는, 평소와 같이 최후부의 오른창측의 “지정석”에 몸을 가라앉혔다. 클레르 퐁텐에서 파리로 향하는 패스 안에서, 앞으로 시작되는 게임의 중요성이 지단의 마음속에서 소용돌이 치고있었다. 그는 국민의 소원과 희망이라고 말하는 중압을 오싹오싹 체내에 느끼고 있었다.

생드니 스타디움에 패스가 도착했다. 스탠드에는 이미 “파랑, 흰색, 빨강” 의 삼색의 프랑스 국기가 물결치고 있었다. 그들의 「나는 이긴다! 」, 그리고 「지주, 지주」의 대합창이 탈의실에까지 닿고 있었다.

브라질과의 월드컵 결승킥 오프를 몇분뒤 치루기위해 있던 탈의실에는 진주층의 광택을 가득 채운 빛이 비치고 있었다. 지단의 뇌리에 자연과 다양한 장면이 소생해 왔다. 축구 선수를 꿈꾸고 있던 어린이 무렵, 스탠드에 앉아있는 아내 벨로니카를 생각하고, 장남 엔조를, 그리고 어머니에게 안겨 푹 자고 있는 이제 태어난 직후의 둘째아들까지도, 고향 마르세이유의 TV의 앞에 앉아있을 그의 양친, 그리고 카스테라느의 친구들...

피치에 오르기 직전에, 경고누적으로 인해 결승에 나오지 못하는 로랑·블랑이 지단에 접근해서는 귓전에 속삭였다. 「지주, 네가 슛을 날려! 이 게임으로 네가 위대한 플레이어가 되는 거다」

자케감독은 냉정한 어드바이스를 잊지 않았다.

「브라질은 코너킥에서 마크가 어긋난다. 코너킥에서는 니어 사이드에서 달려라. 반드시 무슨일이 일어나게 될것이다」

이 말대로 지단은 코너 킥때 골대 근처에서 위치를 맞추고, 헤딩으로 GK 타파렐의 배후의 골 네트를 흔든 것이다. 그것도 2번에 걸쳐...

뒤에 자케는 시적인 표현을 이용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진리의 빛을 프랑스 대표에게 쥐어 주었다」라고.

서투른 헤딩으로 2개의 골을 성공시킨 지단은 말했다.

「월드컵에서 아무리 그래도 1골은 넣고 싶은게 사실아닙니까? 그런데도 2개나 넣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결승전, 그것도 헤딩으로. 나는 자신을 위해서도, 나에 기대를 걸어 준 팀메이트를 위해서도 무리하고서라도 골을 넣고 싶었어요. 팀의 동료들이, 나에게 어떻게해서라도, 너의 힘으로 이길수 있게 하라고 부탁했었기 때문에. 그들덕뿐에, 나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기대를 배반하는 것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세계 챔피언의 타이틀을 거두었습니다. 이 타이틀은 이미 어디에도 도망칠수 없죠.」

지단은 큰 감동을 맛보고 있었다. 한층 큰 행복감에도 잠기고 있었다. 지단은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너무 너무 훌륭하게 하고, 너무 강렬한 인상을 받았죠. 시상식뒤 계단을 내려오던 도중, 아내와 아들에게 키스를 했습니다. 그 순간, 돌연, 눈물이 넘쳐 흐름과 동시에 어떻게 할수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볼을 사랑하세요」


프랑스의 거리, 그리고 광장이라고 모든 불리우는 광장은 프랑스의 “영웅들”의 쾌거를 축하하는 군중으로 메어졌다. 도처에서 사랑에 넘친 닮은 모습의 포옹이 반복되어졌다. 백인도 흑인도 아시아인도 관계없었다. 지단이 어린시절, 인종의 벽을 넘어 타르탄광장에 모여 플레이한 것처럼, 알제리 출신의 부모에게 태어난 내성적인 소년의 골에 의해서, 프랑스는 피부의 색을 넘고, 통합된 것이었다.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으로부터 수여된 명예 훈장을 수여하는 “위대한 역사상의 인물”이 된 지네딘 지단. 세계챔피언이 된 카스테라느의 소년. 그리고 그의 활약에 의해, 프랑스의 수백만 어린이들은 승리의 기쁨을 느낄수있었다. 지단은 어린이에게 다음과 같은 메세지를 보냈다.

「무엇보다도 먼저 “볼(ball)을 사랑하세요”라고 말하고싶어요. 단순하게 볼을 사랑하는 것, 내가 어린 시절 무렵, 그렇게 했던 것처럼, 지금도 그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자신에 대해 자신을 가지는 것, 타인에 대한 경의를 잊고 살지 않는것. 소망을 가지고,날마다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너무 결과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대가를 얻는 날이 올겁니다. 꿈이 실현되는 과정 또한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7월의 감미로운 밤, 열광의 스타디움에서 지단이 내건 트로피는, 이제 소년 무렵 와인병의 반을 알루미늄 박으로 싸서 손수 만들었던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확실히, 축구의 역사에 이름을 새기는 운명에 있던 남자를 상징하는 트로피 였기 때문이다

-다음 레블뢰카페-

혼자 보기 너무 아까워서 올립니다... 내인생 최고의 슈퍼스타.. 지주횽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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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arrow_upward 리오랄 \"퇴장이 없었으면 우리가 이겼을 것!\" arrow_downward 호나우도..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