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 마드리드 TV, Real Coentrao

그가 “꿈”이었다고 여러 번 고백하였던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지도 세 달 이상이 지났다. 파비우 코엔트랑은 팬들의 애정을 얻었으며, 팀 동료들의 애정 역시 얻었다. 최근 공식 경기들에서 그를 뛰지 못하게 만들었던 부상에서 돌아온 이 포르투갈 선수는,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과 라커룸에 대해 칭찬하는 말들만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 도착했을 때, 저는 이 라커룸이 환상적이며 모두가 친구임을 깨달았어요. 이 팀이 제가 살면서 뛰어봤던 팀 중에 최고에요. 여기에 세계 최고의 선수도 있고, 세계 최고의 골키퍼도 있고요, 세계 최고의 감독도 있죠. 무리뉴는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사람이예요. 모든 걸 우승한 분이고 아주 특별한 인물이며 그 분을 존경해요. 선수들과 대화하는 법을 아시며 그건 감독에겐 아주 중요한 요소죠.”
Keemo의 "Beautiful Lie"가 오늘 코엔트랑이 인터뷰 시작을 위해 선택한 노래군요. 좋은 노래에요. 안녕하세요, 레알 마드리드 TV에 방문한 걸 환영합니다.
안녕하세요. 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노래에요. 아주 좋은 노래고 또..음...제가 스페인어를 잘 못해요...
알아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파비우 코엔트랑은 오늘 여기 레알 마드리드 TV에 나오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려고 제가 여기에 있잖아요. 조금은 스페인어로도 하고, 조금은 포르투갈어로도 말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파비우 코엔트랑이라는 사람을 알고 싶어 해요. 파비우 코엔트랑에 대해서는 수줍음을 타고, 말을 많이 하진 않는 사람이라고 해야겠죠, 그렇죠?
네, 저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는 사람이죠. 평범한 사람이고요.
제가 발데베바스에 있을 때면 늘 봤는데요, 농담하는 것도 좋아하고,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그러던데요? 수줍어하긴 하지만, 사람들과 지내면서 자신감을 얻고 나면 또 굉장히 열린 사람이기도 한 것 같아요.
네, 뭐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클럽에 도착하면, 사람들을 잘 모르죠. 그러니 말을 많이 하지 않거나 조용히 있는 건 굉장히 자연스런 일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을 알게 되고 나면, 말도 많이 하고 그런 거죠.
제가 좋아하는 파비우 코엔트랑의 장점 중 하나는 겸손함이에요. 당신은 참 겸손한 사람이죠.
제가 생각하기엔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겸손함인 것 같아요. 저한테는 그게 참 중요한 요소인데, 제가 가지고 있는 특성 중 하나죠.
당신이 지금 앉아있는 그 자리에 지난주에는 카카가 앉아 있었죠. 카카가 말하길 상파울루는 많은 빈곤층이 존재하는 도시이지만 그는 운이 좋게도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고 하더군요.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선생님인 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면서, 그에게는 가난이 닿지 않았다고요. 하지만 파비우 코엔트랑에게는 그런 삶이 닿았죠.
네, 아주 소박한 가정에서 자랐죠. 하지만 저는 언제나 아주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죠. 제가 소박한 가정에서 자란 건 사실이지만, 저는 늘 아주 행복했어요.
파비우 코엔트랑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빌라 두 콘데에 도착하게 되겠죠. 빌라 두 콘데의, 카시나스라는 동네로요. 카시나스는 어떤 동네였나요? 코엔트랑의 첫 시작이 된 카시나스는 어떤 곳이었죠?
어떤 곳이었다가 아니라 지금도 그런 곳이라고 봐야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동네예요. 그곳 사람들이며...전부 다요. 거기가 제 동네이고, 제가 태어난 곳이며 제가 정말 오랫동안 살았던 곳이고, 또 축구선수로서의 제 커리어가 끝나고 나면 돌아가고픈 곳이에요. 왜냐면 그곳에서 저는 행복하거든요.
카시나스는 어촌이죠? 어때요, 바닷가에 작은 집들이 있나요?
집들은 좋아요. 작지는 않고, 큰 집들이 있죠. 어려운 점들도 존재하는 곳이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잘 살아요.
당신은 카시나스 사람들을 참 좋아한다고 했어요. 이유가 뭐죠? 카시나스 사람들이 어떤 점에서 특별한가요?
저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말 좋아해요.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고, 이상적인 사람들은 아니지만 정말 좋아요.
코엔트랑의 아버지는 선원이었죠.
네.
어린 아이에겐 힘든 일이었을 것 같아요. 왜냐면 선원인 아버지는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곤 하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아뇨, 빌라 두 콘데에서 태어난 어린이들에게는 아빠가 바다에 나가있는 게 그냥 일상적인 일이었어요. 카시나스 사람들은 다들 바다로 나가니까요. 시간이 지나면 거기 어린이들에겐 그게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죠.
아버지가 항해를 떠나면 보통 얼마나 오래 떠나계시곤 했어요? 파비우 코엔트랑은 얼마나 오랫동안 아빠 얼굴을 못 보곤 했나요?
일주일, 5일, 4일...토요일, 일요일에 아빠를 보곤 했어요.
그런 직업 때문에 아빠가 그립거나 하기도 했나요?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으러 가시면...
그럼요, 당연하죠. 하지만 뭐, 사는 게 그랬어요.
만약에 파비우 코엔트랑이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부가 되었을까요?
네, 당연히 그랬을 거예요. 어부가 되는 것...제가 많이 좋아하는 직업이에요. 하지만 삶은 저에게 축구선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저는 지금 많이 행복해요.
어머니는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셨다면서요.
네, 오랫동안 일하셨죠. 다행히도 통조림 공장에 일자리가 있었어요. 매일 아침 저를 데리고 공장에 가셨는데 저는 그럼 아침 내내 거기에 같이 있곤 했죠. 뭐 어머니는 그러셔야만 했어요. 제가 말했듯이, 삶이란 게 그렇죠.
그럼 공장에서, 어머니 곁에 남아서 일하시는 걸 지켜보곤 했던 거예요?
네, 저는 어렸고, 거기서 나가지 않았어요. 왜냐면 어머니는 저를 어디 다른 데로 보내실 여력이 안 되셨거든요.
공부를 시킬 수가 없으셨던 거군요.
네, 네. 거기가 제 학교였죠 뭐. 엄마 옆이요.
그 학교에서 뭘 배웠어요? 다른 어린이들처럼 학교에 가지 못하고, ‘엄마’학교에 있는 동안 무엇을 배웠나요?
그 덕분에 저는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생각해요. 어부이건,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건, 축구 선수이건, 저에겐 모든 사람들이 평등해요. 많은 사람들을 겪어보았으니까. 저는 좀 다른 방향의 삶을 산거죠, 하지만 긍정적인 방향이었어요.
하나만 물어보고 싶은데요, 파비우 코엔트랑은 출신에 대해서 몇 번이나 기억하곤 했나요? 그러니까, 성공을 위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축구계에선 특정한 순간에 행운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잖아요. 코엔트랑은 얼마나 여러 번, 스스로가 출발한 곳에 대해 생각하곤 했나요? 학교에 갈 수 없어서 어머니와 지내고, 아버지는 바다에 나가계시곤 했던 그런 순간들에 대한 기억 말이에요.
그건 하루 기억했다가, 다른 날 또 갑자기 기억하고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에요. 늘 제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이죠. 매순간, 매일, 매 분마다요. 저는 그걸 지우고 싶지 않거든요. 저는 제 자신이고 싶어요. 저는 그런 삶을 살아왔고, 많은 것들을 겪어왔죠. 그리고 그것을 아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요.
어린 시절의 파비우는 굶주리기도 했나요?
아뇨, 신께 감사하게도 굶주린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부모님은 언제나 저하고 형들을 먹이곤 하셨어요. 하지만 무언가를 원하는 게 있을 때에, 그게 가능하지가 않았죠. 하지만 다행히 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코엔트랑 가족의 집은 어땠어요?
집은 좋아요, 아주 크고요. 왜냐면 아버지가 정말, 정말 일을 많이 하셨거든요. 겨우 열 살 때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셨는데, 열 살이면 진짜 어리잖아요. 그 때부터 돈을 벌러 캐나다에 가셨고, 그 이후에 저희 어머니하고 결혼을 하셨죠. 그렇게 버신 돈으로 가족들이 살 집을 장만하실 수 있었어요.
형제는 몇이나 있어요?
저말고 두 명 더 있어요.
남자 형제들이요? 아니면 여자 형제들이요?
남자 형제들이요. 큰 형은 서른여덟 살이고 둘째 형은 서른 살이에요.
그러니까, 당신이 집에선 꼬마였군요.
(웃음) 네, 저희 집의 꼬꼬마였죠.
그럼 집에서는, 많지 않은 가능성들을 가지고 그 꼬마에게 조금 더 혜택을 주려고 하지 않았나요? 언제고요. 그렇죠?
네, 그랬죠. 그리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조카들도 있었는데 그 중엔 지금 스무 살인 조카도 있어요.
조카가 스무 살이요? 그럼 거의 당신하고 비슷한 나이잖아요!
네, 네. 그리고 조카 하나는 열여덟 살인 애도 있고요. 그래서 저만 가족들의 막내이진 않았어요. 저하고 조카들이 그랬죠. 지금 말하셨듯이 많은 게 있진 않았지만, 저는 아주아주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지나온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저는 행복한 사람이었죠.
어린이 시절의 코엔트랑은 잠자리에 들 때면, 어떤 꿈을 꾸곤 했어요? 어떤 삶을 꿈꿨나요?
제 꿈은 언제나 축구에 관련된 거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보는 거며 하는 걸 정말 좋아했죠. 어머니는 제가 축구공을 안고 자고 축구공을 안고 일어나곤 했던 걸 기억하신다는 말씀을 하세요. 한시도 공을 떼어놓질 않았어요. 언제나 공을 곁에 두곤 했죠. 선수가 되는 꿈을 꾸었으니까요. 그 이후에도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많은 일을 했고, 지금 저는 축구선수죠.
축구 선수가 되기 전에 일을 해야만 했죠. 제가 잘못 안 게 아니라면 페인터였다면서요?
네, 그 일도 했고요...
몇 살 때부터 일을 한 거예요?
열네 살.. 열세 살 때부터요. 처음에는 Padeiro였는데...근데 여기서도 그렇게 말하는 거 맞죠? 빵 만들고 그러는 거요.
아, 제빵사요?(Panadero)
네, 제빵사요. 열세 살 때는 그걸 했고 그런 다음에는 페인터 일을 했고요. 그런 다음엔 공사현장에서도 일을 했었고, 그런 다음엔 축구를 했죠.
그 때, 제빵사며 페인터,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위해서 집에 돈을 벌어다 주려고 했던 거예요?
그 때 저희 부모님은 프랑스로 이민을 가셨었어요. 저는 포르투갈에 남았었고요. 부족한 게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냥 돈을 좀 벌려고 일을 했던 거죠. 놀러 나가거나, 옷을 사거나...저는 열네 살, 열다섯 살 이었으니까요. 그 나이 때에는 뭔가 갖고 싶은 게 있잖아요. 그래서 일을 했어요.
코엔트랑은 일찍 성숙했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럼요. 열세 살에 그...
제빵사요?
네. (웃음) 제빵사로 일하고, 열다섯 살엔 페인터 일을 하고, 그 이후엔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고...아주 쉬운 삶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아주 좋은 삶이었고, 그래서 저는 기뻐요.
당신이 했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는데, 저는 그걸 듣고 정말 놀랐어요. “어렸을 때 나는 돈은 없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길에서 할 수 있었다. 나처럼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라고요. 진짜 멋진 문장이에요.
네, 제가 자란 카시나스에서는 어린이들은 모두가 자유로워요. 말했듯이 돈은 없었지만 자유가 있었고 저는 행복했어요. 그게 중요하다고들 하잖아요.
어린 시절 같이 다니던 친구들은 어땠어요? 친구가 많았나요?
네, 많았죠. 카시나스에서는 그게 보통이었어요. 저는 아주 좋은 유년기를 보냈죠.
그 친구들은 지금 뭘 하고 있나요? 파비우 코엔트랑은 축구선수죠. 카시나스의 친구들은요? 다들 어부가 되었나요?
인간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다들 똑같아요. 직업이라면 저는 축구선수고, 어떤 애들은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요, 또 어떤 애들은 바다로 나갔고요.
만약에, 어린 시절의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하면 바꾸고 싶어요? 아니면 그대로 다시 반복하고 싶어요?
아뇨, 아무 것도 바꾸지 않을 거예요. 그대로요. 가난했지만 저는 행복했고, 그게 제일 중요하잖아요. 사람은 행복해야 해요. 저는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고, 그러니까 절대 아무 것도 바꾸지 않을 거예요.
파비우 코엔트랑은 나중에 아이들한테 어떤 충고를 해줄까요? 아빠가 자랐던 환경하고는 분명히 다른 환경에서 자랄 거잖아요.
네, 그렇죠.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서 태어났을 때, 우리는 자식들은 다르게 태어나길 바라죠. 저는 제 딸을 위해서 일하고, 어쩌면 나중에 더 갖게 될 아이들을 위해서 일을 해요. 그리고 분명 나중에 언젠가는 제 딸하고 대화를 하게 될 거예요. 삶이란 게 그 애가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건 아니라고, 어쩌면 아주 다른 환경에서 태어날 수도 있었다고, 뭐 그런 대화를 할 것 같아요. 제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았는지도 얘기해주면서요.
지금까지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대로라면,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던 환경에도 불구하고 힘들지 않았고, 행복한 어린이였다고요. 학교에 못 가고 어머니와 통조림 공장에서 보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건가요.
아, 아뇨 그게 저 통조림 공장에서 지내던 때는 겨우 서너 살, 아니면 한 다섯 살 된 아가 때였어요. 그래서 거의 기억도 잘 안 나요. 두세 살 때에는 그렇잖아요. 다섯 살, 여섯 살 때 기억은 조금 나요.
당신은 바로 일을 시작했나요? 아니면 학교에 다녔던 때가 있었나요?
여섯 살 때 입학했죠. 그래서 한동안 학교에 다녔고, 그러다 열세 살 때부터는 일을 시작했고요. 학교는 내 길이 아니구나, 일을 해야겠다 하고요. 그리고 저 일 하던 시기에는, 일한 후엔 언제나 공을 가지고 축구를 했어요. 언제나요. 아침 여덟 시에 일하러 갔다가, 오후 다섯 시, 혹은 여섯 시에서 여덟 시까지는 히우 아베에서 훈련을 하고 그랬죠.
코엔트랑이 기억하는 첫 필드는 어떤 곳인가요? 운동장일 수도 있고, 길거리, 혹은 광장일 수도 있겠고, 심지어 옷가지 두 개를 늘어놓고 그 사이를 골대로 삼은 기억일 수도 있겠죠. 코엔트랑의 첫 필드는 어디였나요?
어렸을 때부터 필드는 늘 집 앞에 있었어요. 뛰기엔 좋았죠. 자갈밭이었지만.
자갈이요?
지금은 아니고요, 지금은 잔디가 깔려있죠.(웃음) 예전에는 자갈이 깔려있었어요. 좋은 곳이었고, 늘 공을 가지고 거기 가서 축구하곤 했어요.
코엔트랑은 어렸을 때도 친구들보다 잘했나요?
네. 사람들이 다들 저더러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했었죠. 어렸을 때는, 친구들끼리 “넌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거야”하고 말해주는 걸 듣잖아요. 실제로 가능할 거라곤 생각지 않았어요. 삶은 앞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어렸을 때는 제가 훌륭한 선수로 살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죠.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정말 거기까지 올라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을 카시나스의 피구라고들 불렀다던데요.
네, 그건요, 왜냐면 제가 피구를 정말 좋아했어요. 언제나 제 우상이었죠. 그것 때문에 어렸을 때 사람들이 절더러 카시나스의 피구라고 부른 거예요.(웃음)
히우 아베로 가기로 결정한 건 누구였어요? 당신이 직접 그랬나요?
제가 그랬죠. 저희 부모님은 언제나 저랑 함께 하셨고요. 저는 히우 아베에서 훈련을 받기 시작했는데, 어느 시기에는 훈련을 가기가 싫었어요. 그냥 집에서 트레이닝하고 싶었죠. 그런데 부모님이 제가 훈련에 빠지지 않도록 늘 저하고 같이 붙어 다니셨어요. 언제나요. (웃음) 두 분께 굉장히 감사하고 있죠.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당신이 여기 없었겠죠. 훈련받으러 가는 대신 친구들하고 집 앞에 있는 그 자갈밭에서 축구하고 그랬을 거잖아요.
의심의 여지없이 그렇죠. 부모님이랑 또 저를 도와주셨던 많은 다른 분들, 예를 들면 히우 아베 코치님이라던가...많은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었어요.
히우 아베에서는 몇 살 때부터 몇 살 때까지 있었어요?
열여섯 살 때부터 열여덟 살 때까지요.
그 무렵에 첼시 입단 테스트를 받아보기도 했다는 게 정말이에요?
제가 첼시에 테스트를 받으러 갔을 때 첼시 감독은 무리뉴였어요. 테스트를 받은 후에 저하고 이야기도 하셨는데 제가 뛰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고, 좋은 선수라고 해주셨죠. 그랬는데 그대로 별 일없이 끝났어요. 저는 히우 아베로 돌아왔고, 그러다 나중에 벤피카와 사인했죠.
그렇다면 만약 그 결정이 무리뉴에게만 달려있었다면, 당신은 첼시 선수일 수도 있었겠네요.(웃음) 히우 아베에서 벤피카로, 그것 역시 중요한 한 걸음이었죠.
네, 제 커리어에선 아주 중요한 도약이었죠. 히우 아베에서 벤피카로 훌쩍 뛰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저에겐 새로운 것들이었고, 아직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였고, 경험도 없었고...그래서 시작은 잘 풀리지 않았죠. 저는 나시오날로 임대를 갔고 거기서는 좋았어요. 그리고 그 다음엔 사라고사로 임대를 갔는데, 거기선 결코 뛰지 못했죠. 정말 슬펐어요. 제가 태어난 이후로, 제 삶에 행복하지 못했던 순간이 딱 여섯 달 있는데 그게 바로 사라고사에서 겪은 시간들이에요. 그런 다음엔 다시 히우 아베로 임대로 돌아갔고, 일이 모두 다 잘 풀렸어요. 그리고 나서 벤피카로 복귀했고, 그때부턴 거기에 남았어요.
그리고 벤피카에서 정말로, 정말로 훌륭한 시즌을 보냈죠. 코엔트랑의 이름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하고요. 이름이 알려질 만큼의 그런 커다란 발전을 하기까지, 그 무렵의 파비우 코엔트랑은 어떤 측면에서 성장한 건가요?
어쩌면 사라고사에서 겪은 그 여섯 달 동안의 힘들었던 경험이 저를 성장시킨 것 같아요. 그 동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뛰고 싶고 승리하고 싶고 제 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강한 욕구들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사라고사에서 벌어진 일이 저에게는 좋았던 것 같아요. 그 시기 이후로는 삶이 저를 잘 돌봐주었죠.
그러다 갑자기 어느 날, 누군가가 당신에게 전화를 걸더니ㅡ아마도 에이전트겠지만, 레알 마드리드가 당신을 원한다고 말해요.
재밌는 일이죠. 왜냐면 저는 제 에이전트에게 벤피카에서 떠나고 싶지 않다고, 여기서 아주 좋고, 여기에 남고 싶다고, 여길 떠난다면 그건 오직 레알 마드리드로 가기 위해서만 떠날 거라고 이야기했었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당신을 원하는 클럽은 더 많이 있었는데요. 바이에른 뮌헨, 첼시, 맨체스터 시티...왜 레알 마드리드였어요?
네, 네, 많이 있었어요. 그보다도 더 많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에이전트에게 레알 마드리드만을 원한다고 말했어요. 레알 마드리드가 최고의 클럽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저에겐 레알 마드리드가 최고에요. 제 에이전트도 저한테 “그래, 너에겐 레알 마드리드가 최고야. 너에게, 그리고 모든 선수들에게 그렇지.” 라고 했고요. 저는 다시 한 번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고 싶어요. 레알 마드리드가 아니면, 여기 남을 거예요.”라고 말했고요.
레알 마드리드가 당신을 영입하고 싶어 한다고, 무리뉴가 당신을 원한다고 전해 들었을 때는 어땠나요?
저는 아주 기뻤죠. 며칠간은 안절부절 못하면서 계약서 어딨는거야, 어디 있어 이런 상태였고요.(웃음) 그러다 무리뉴와 대화를 했고, 그런 다음엔 결국 모든 게 다 잘 풀려서 사인을 하게 되었죠. 사인을 한 이후에는, 정말 행복하고 기뻤어요. 레알 마드리드와 사인을 하는 것, 세계 최고의 클럽과 사인하는 것은 그냥 평범한 일이 아니잖아요. 그건 어떤 선수 에게건 정말로 좋은 일이에요. 저는 정말 기뻤어요.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나요? 레알 마드리드에 도달하는 것이 당신의 꿈이었다는 걸 알고 계셨죠?
그럼요, 부모님께나, 제 친구들에게나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었죠. 세계 최고의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가 된다는 것...저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 많이 행복해했어요.
저희 어머니는 축구에 대해선 말씀을 많이 안 하시는데, 너한텐 진짜 좋은 일이구나, 최고다, 뭐 그러셨어요. 어머니는 제가 못 뛸 때도 항상 네가 제일 잘 하더라 그러시거든요.(웃음) 아버지는 아주 기뻐하셨고, 벤피카에서 하던 것처럼 해라, 시간이 좀 필요할 거다, 그런 말씀들을 하셨어요.
제가 사라고사에서 뛰다가, 히우 아베, 그리고 벤피카로 돌아간 이후에, 부모님은 자주 절더러 너는 다른 클럽에서 뛰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레알 마드리드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은 아니었죠, 하지만 늘 그러셨어요. 아주 거대한 클럽의 선수가 될 거라고.
아주 자랑스럽겠어요.
그럼요. 제가 태어난 거기에서, 갑자기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라니. 살면서 제게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생각도 못했어요. 삶이란 참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던 순간에 대해선 어떤 기억들을 갖고 있나요?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 간 모든 선수들, 그 위대한 모든 선수들이 다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특별한 구장이라고 말해요.
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아주 좋은 구장이고, 언제나 경기를 보러 아주 많은 사람들이 와주는 곳이죠. 제가 처음으로 그곳 잔디를 밟던 순간에는, 정말 좋았고 기뻤어요. 진짜 행복했어요.
지금까지 인터뷰에서 부모님, 형들, 그리고 여태까지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하지만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 역시 정말 중요하잖아요. 비토리아의 엄마이기도 한, 아내 안드레이아는 코엔트랑에게 얼마만큼 중요한 사람인가요?
선수로서의 삶에는 그런 좋은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정말 중요한데, 저는 신께 감사하게도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늘 곁에서 말해주는 사람을 만났고, 그건 참 중요한 일이에요.
딸인 비토리아는 당신에게는 전부이며 생명과도 같죠.
제 생명이죠. 제 삶에서 일어났던 그 모든 일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존재에요. 내 딸...
파비우 코엔트랑은 자유 시간에 뭘하는 걸 좋아하나요? 훈련이 끝나고 집에 가면 가족들과 보내나요?
네,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요. 딸하고 보내고...가끔은 아내와 딸과 함께 산책을 가고요. 이런 건강한 삶을 사는 게 행복한 삶인 것 같아요.
그리고 왜, 크리스티아누네 집에 채소를 가지러 간다면서요. 크리스티아누가 집에서 채소를 키우는데, 저녁 때 수프를 만들려고 채소 가지러 간다던데요? (웃음) 뭐예요, 코엔트랑은 수프용 채소로는 크리스티아누네 채소가 마음에 드는 거예요?
(웃음)아뇨, 그게요. 저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고, 아직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가끔은 뭐가 필요하고 그럴 때가 있는데, 그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네 집에 가서 가져오는 거죠. 만약에 문을 안 열어주면, 제가 담을 뛰어넘어서 그냥 가져와요.(웃음)
마드리드에서 행복한가요? 레알 마드리드 말고도, 마드리드라는 도시에서요.
네, 무척요. 아주 좋은 도시에요. 아주 아름답고...그러니 누구에게나 마드리드에서 사는 건 좋은 일일 거예요.
아, 그리고 한 번은 포르투갈 프로그램에서 당신에게 몰래 카메라 장난을 쳤잖아요. 그 프로그램에 뭐냐면, 갑자기 경찰들이 나타나서, 뭔가 문제가 있다고 하고, 그럼 당신은 막 걱정을 하고...그 때 이야기도 좀 해줘요. 어땠어요?
뭐, 저를 참..잘 속여먹었죠. 아주 잘. (웃음) 저는 트레이닝이 끝나고 집에 도착한 참이었는데, 경찰들이 나타나더니, 빌라 두 콘데에 있는 바(bar) 때문에 왔다고 하는 거예요. 감옥에 가야 한다고 하고, 저는 막 아니라고 했는데 맞다고 그러면서...저는 막 아니라고 하면서 울고요...
(웃음)감옥에 가는 거라고 한 거예요?
네, 수갑도 채우고요.
맙소사, 장난이었다고 밝혔을 때 화났었어요?
네, 하지만 한편으론 저는 침착하기도 했어요. 왜냐면 아무 것도 안 했다는 걸 알았거든요. 하지만 그래도 손에 수갑을 차고 경찰들이랑 있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잖아요. (웃음)
이제 그럼 축구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감독으로서, 혹은 한 개인으로서 조세 무리뉴는 코엔트랑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제게는 큰 의미가 있는 분이죠. 저를 레알 마드리드에서 뛸 수 있도록 찾아내 주셨고, 저는 많은 애정과 존경을 갖고 있어요. 저를 벤피카에서 마드리드로 불러 주셨잖아요.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감독으로서는 어때요?
최고죠. 그냥 간단하게 최고에요. 모든 걸 따낸 감독이고, 특별한 감독이고. 그냥 세계 최고의 감독이에요. 언제나 감독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선수들이 있기 마련이죠. 선수들은 감독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해요. 하지만 무리뉴에 대해서는, 모든 선수들이 좋게 이야기하고, 이건 감독에겐 중요한 자질이죠. 그는 선수들과 대화하는 법을 알아요. 환상적인 사람이에요.
파비우 코엔트랑은 레알 마드리드에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많이 있겠죠. 저는 잘 해야만 하고 제가 받은 신뢰를 되갚아야만 해요. 지금 제 삶에서 유일한 목표가 바로 레알 마드리드가 제게 주었던 그 신뢰에 보답하는 거예요.
뛰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모두가 똑같은 질문을 하더라고요. 풀백에, 윙어, 미드필더까지 뛰는데, 어떤 포지션에서 뛰는 걸 제일 좋아해요?
저는 골키퍼로라도 뛰라고 하면 뛸 거예요. 저는 그저 뛰고 싶고, 레알 마드리드가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고 싶어요. 아마 모든 선수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그거일 거예요. 레알 마드리드가 모든 타이틀을 따내도록 돕는 것이요.
당신이 했던 말 중에는 레알 마드리드 팬들을 보고 많이 놀랐다는 이야기도 있었잖아요. 늘 경기장이 꽉 차있고, 항상 팀과 함께 하는 마드리디스모 말이죠.
네, 환상적이에요. 레알 마드리드가 세계 최고의 클럽이라면, 그건 아마 팬들 때문이기도 할 거에요. 우리에게도 많은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정말 중요한 점이고요.
팀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레알 마드리드가 파비우 코엔트랑이 뛰어본 최고의 팀인가요?
그럼요. 당연하죠. 제가 생각하기엔, 세계 최고의 선수가 여기에 있고 세계 최고의 감독이 있는 팀이며 세계 최고의 골키퍼도 있잖아요. 그러니 제가 뛰어본 팀 중에 여기가 최고인 게 당연하죠.
올 시즌 사람들이 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열심히 해야죠.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다른 것들은 자연히 나타날 거예요. 마드리드의 목표는 언제나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이며, 물론, 우리는 많은 타이틀을 따낼 거예요.
라커룸 분위기는 어때요?
제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때에 저는 과연 라커룸이 어떨지 상상했었죠. 분위기가 좋을까? 나쁠까? 혼자 생각해보면서, 아주 좋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 도착하고 나서, 진짜 환상적이라는 걸 깨달았죠. 분위기는 정말 좋고 우리 모두가 다 친구에요. 레알 마드리드의 라커룸은 놀라워요.
아직은 갈 길이 많이 남아있으니 좀 이른 질문이긴 하지만, 당신도 시벨레스에 가서, 모든 사람들과 함께 우승을 축하하는 꿈을 꾼 적이 있나요?
당연히 있죠.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라면 언제나 많은 것들을 정복하는 꿈을 꿔요. 제가 말했듯이 우리는 열심히, 정말 열심히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 결과들이 나타나겠죠. 올해 우리는 많은 것들을 따낼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Real Coentrão 프로그램을 한다고 발표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이며 트위터, 레알 마드리드 홈페이지를 통해 엄청나게 많은 질문들을 보내왔어요. 그 중에 몇 가지를 우리가 여기서 해보려고요. 예를 들면 여기에 이런 질문이 있네요. “레알 마드리드에서 당신과 가장 친한 친구는 누구인가요?” 아마도 크리스티아누 아닐까요, 그에게서 이것저것 가져다가 요리하고 그러잖아요. (웃음)
네, 크리스티아누는 저에게 아주아주 중요한 사람이에요. 모든 면에서 저를 도와주었던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저에겐 페페나 마르셀루도 있는데, 페페 역시 중요한 사람이고요. 마르셀루도 그렇고...
카시야스도 항상 당신과 함께 있으면서 농담하고 하던데요.
네, 네, 모두 다요. 모두가 다 친구지만, 크리스티아누랑 페페, 마르셀루 이 세 명이 저하고 제일 친한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질문은, “신체적으로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나요?” 왜냐면 당신은 아주 말랐잖아요, 영양섭취가 중요할 텐데, 먹는 것에 많이 신경을 쓰나요?
음, 저한테 더 중요한 건 트레이닝이에요. 트레이닝을 늘 잘하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해요.
그리고 이런 질문도 있어요. “축구선수로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합숙 소집이 아닌가요? 카시야스는 그 얘기 하던데.
네, 그것도 그렇고.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이 적다는 거요. 사람들은 우리 축구선수들이 하는 것도 없고 늘 집에 있지 않나 할 텐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늘 집을 떠나 있고, 그게 가장 나쁜 점이지 않나 싶어요.
그럼 마지막 질문인데요, 모든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주겠어요? 파비우 코엔트랑이 개인으로서 올 시즌 갖고 있는 꿈과, 또 코엔트랑이 레알 마드리드의 일원으로서, 갖고 있는 팀의 꿈을 이야기해주세요.
저 개인으로서는, 열심히, 아주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할게요. 왜냐면 저는 열심히 하는 것 말고 다른 건 할 줄을 몰라서요. 그리고 팀에 관해서는, 우리가 많은 타이틀을 얻게 될 거라고 약속해요.
그럼 마무리로 탁자에 사인을 하는 동안 제가 말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정말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에, 당신은 팬들과, 그리고 라커룸 안의 선수들의 존중을 얻어냈어요. 그리고 여기, 레알 마드리드 TV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물론 전 마드리디스모와 축구팬들이 파비우 코엔트랑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승리하기를, 레알 마드리드의 셔츠를 입고 많은 것을 수확할 수 있기를 바란답니다. 오늘 고마웠어요.
감사합니다.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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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즈 2011.10.15트랑이말 알아듣기가 너무 어렵; 제가 포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특히 오역이 좀 있을 거예요.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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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011.10.15며칠간은 안절부절 못하면서 계약서 어딨는거야, 어디 있어 이런 상태였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아 웃기당 -
덩어리 2011.10.15ㅋㅋㅋㅋㅋㅋ 코엔트랑 귀염내여ㅋㅋ 다음은 공격수가 나오길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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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rid]미니 2011.10.15ㅋㅋㅋㅋ 날동이 집 담을 넘어서 채소서리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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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2011.10.15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소서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버는 돈이 얼만데 채소 서리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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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ssure 2011.10.15어릴 때 소박한 얘기들이 맘에 드네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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휼리오 2011.10.15뜨아아아!!!!드디어 올라왔네요ㅠㅠ이거올라오기만 기다렸어요!!
트랑이 발음은 스페인어 귀머거리인 저한테도 뭉글뭉글하던데
번즈님 번역하느라 늠 수고하셨습니다!!최고!!
스크롤바 내리는게 아까울 정도로 넘 잼나게 읽었네요!
트랑이 후리한 소울을 가졌군요ㅋㅋㅋ영화같아요!
채소서리 대목이 진짜 仍빱빱빱 -
릴팬 2011.10.15너무 귀엽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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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Giaconda 2011.10.15채소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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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야스의둡 2011.10.15채소서ㄹㅣ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귀엽네ㅇㅕ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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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카카느님 2011.10.15코엔트랑 생긴건 날라리처럼 생겼는데 멘탈은 정말 모범생이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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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se88 2011.10.15항상 좋은 번역 감사해요 ㅎㅎ
꾸엔뜨랑 오기 전부터 널 좋아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친구 넘 좋네요.ㅠㅠㅠㅠㅠㅠㅠ
내가 레플사면 난 꾸엥뜨랑으로 마킹하게썰!! -
LORENZO 2011.10.16제가 생각하기엔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겸손함인 것 같아요. 저한테는 그게 참 중요한 요소인데, 제가 가지고 있는 특성 중 하나죠.
ㅋㅋㅋㅋ 겸손한 코렁탕의 답이네요 ㅋ -
레이군 2011.10.16!! 잘해줘서 고맙 !! ㅠ ^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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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s 2011.10.16오늘은 분량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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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얼짱 2011.10.16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호날두 채솤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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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m♥ronaldo 2011.10.16잘읽었어요!!
코엔트랑 되게 긍정적이고 착하고 겸손한듯하네요ㅎㅎ 더잘커주었으면!! 근데 날두 채소는 봐도봐도 웃기네욬ㅋㅋㅋㅋㅋ -
No.08 2011.10.16채소 서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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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쥬 2011.10.18코렁이 되게 곱게 큰 부잣집 아들처럼 생겼는데 고생 많이 했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버지도 캐나다로, 프랑스로 이민 가시느라 진짜 힘드셨겠당 엉엉. 그나저나 여기서도 또 알 수 있는 것이 코렁이도 셋째아들이었군요ㄷㄷ 것도 나이 차 많이 나는..홀. 인텁 영상 인트로 음악이 참 미묘하다고 생각했는데 트랑이의 개취였구Eㅋㅋㅋㅋㅋ 저는 채소 서리도 서린데 호날두가 텃밭 농사 짓는게 너무 웃겨요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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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를구워먹으리 2011.10.18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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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힌 2011.10.19나도 당신이 좋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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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론송 2011.10.27열심히하는거 말고 할줄아는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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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ioR@mos 2012.09.11코엔트랑인터뷰한구절만 퍼갈께요^^
